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이익상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닭의 거의 울 때가 되었다. 이렇게 깊은 밤에 더욱이 넓은 들 한가운데의 외로운 마을에 사는 사람 기척이 있을 리는 없으나, 그래도 득춘(得春)은 귀를 기울여 사람 기척이 있나 없나 가끔가끔 바깥을 살핀다. 그러나 바깥은 한결같이 고요할 뿐이요, 다만 이웃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멀리 들릴뿐이다.득춘은 이와 같이 한참 동안이나 두 팔로 무릎을 에워싼 채 펑퍼짐하게 앉아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난 듯이 세운 무릎을 아래도 내려놓으며 조끼 호주머니에서 궐련 한 개를 끄집어낸다. 그것을 대물부리에 찔러 사기 등잔불에 대고 뻑뻑 빨기 시작한다. 대추씨만 한 석유 불은 궐련과 대물부리를 통하여 전부가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그리하여 그다지 밝지 못한 방 안이 더욱 어두컴컴해버린다. 그 궐련 끝에서 등불 빛보다도 더 붉은빛이 희멀건 연기 가운데에서 두세 번 반짝거리더니 꺼질 듯한 불이 다시 살아나며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진다.득춘은 궐련을 한참 동안 뻐끔뻐끔 빨다가 등잔 밑에다 비비어 끄고 방 아랫목에 벽을 향하고 드러누운 아내를 부른다."여봐! 웬 잠을 그리 자?"아내는 아랫목 벽으로 향하였던 얼굴을 남편 있는 편으로 돌이킨다. 그의 아내가 잠을 잘 리가 없다. 그다지 밝지도 못한 등불에, 더구나 담배연기가 꽉 차서 윗목에 쪼그리고 앉은 남편이 봄날 아지랑이 속에 들어있는 산처럼 희미하게밖에 아니 보인다. 조금 날카로운 소리로 대답한다.--- “쫓기어가는 이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