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이익상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저녁상을 막 치우고 난 숙경(淑卿)의 집 안방에서는 어린 시동생 영희(永熙)와 숙경과 방 주인 되는 시어머니의 세 사람이 환하게 비치는 램프 불 아래 윗목으로 늘어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였었다.숙경은 이와 같이 식구가 모여 앉았을 때에는 알 수 없이 기쁘고도 슬픈 듯한 맘이 그의 가슴에 가득하였다. 그는 어떠한 행복스러운 것을 느끼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불만과 섭섭한 것이 반드시 있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그의 행복스러운 이 평화스러운 순간을 항상 위협하였었다. 그는 만일 자기의 남편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을 태웠다. 또 만일 자기 남편이 역시 이 자리에 자칫 앉았으면 어찌어찌하겠다는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상이 그의 시어머니의 살림에 대한 이야기와 시동생 영희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항상 그의 머리에 떠나지 않았었다.장짓문을 격(隔)한 윗목방에서는 하녀 복순(福順)이가 솜을 되우랴고 솜뭉치를 손에 든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것을 바라본 영희는 무슨 재미스러운 일을 발견한 듯이"어머니 저것 좀 보시오."하면서 소리를 쳐서 웃었다. 숙경과 그의 시어머니도 따라 웃었다.이러할 점에"저녁 잡수셨소?"하면서 미닫이를 열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그는 이웃집 노파였었다. 이 노파는 아들도 딸도 없는 고독한 신세였었다. 그러나 몸은 젊은이보다도 튼튼하므로 추석이나 설 때가 되면 각처로 돌아다니며 비단 장수를 하여서 아무 부족 없이 살림을 하였었다. 몇 십 년 동안 이러한 생애를 하였으므로, 인근 지방에서 상당한 생활을 하는 집치고는 이 할멈을 모르는 집이 없었다.수십 년 동안을 단련하여 온 그의 교제 수단은 어떠한 집에를 가든지 의대(疑待)를 받았었다. 숙경은 친가에서도 그를 알았고, 이 시집에 와서도 축일(逐日) 상봉을 하게 되었다.그 노파는 오늘 저녁에도 상투의 너스레를(어성)치며,"세 분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나도 들어 관계찮을까요."--- “번뇌의 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