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나도향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가을의 세검정(洗劍亭)은 더한층 사람을 쓸쓸하게 함이 있다. 세검정의 역사적 내력을 말할 것은 없으나 우리로서 그 자리에 서서 옛일을 돌아보는 이의 마음 가운데 물들듯이 스며드는 감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곧 우리의 마음속에 속살거려 주는 세검정의 말일 것이니 그것을 듣는 이에 따라서 그 말의 빛이 엷고 진함이 다르기는 할는지 모르겠으나 그 말이 그 말일 것은 다시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날이 아직 더웁지는 아니하였으나 높다라니 개인 벽옥색 하늘에는 서쪽으로 넘어가는 저녁해가 장엄한 오색빛을 서편 산 위에서 하늘을 향하여 흠뻑 퍼뜨리었다. 그 빛을 다시 이쪽 산이 가리어 산은 산 그림자를 넓지 못한 산골짜기 위에 검은 포장을 눌러 놓듯이 높은데 얕은데 나뭇가지 시내속 틈틈 사이사이 남겨놓지 않고 가려 놓았는데 우뚝 바위 위에 말없이 서 있는 세검정의 그림자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늘여서 기름하게 가로 놓았다.꽃이 봄에 아름다운 것이라 하면 단풍이 가을에 귀한 것이니 먼 산 가까운 언덕에 누르고 붉게 피어 있는 단풍은 돌아가는 여름이 선지를 물었다가 흠뻑 내뿜은 듯이 처참하기도 하고 겨울을 맞는 가을이 여름 한 겹을 두고 봄을 뒤집어 복사(複寫)한 듯이 알 수 없는 감회를 일으키기도 한다.바람은 분다. 을씨년스러운 생각이 난다. 단풍은 바람에 떨 때 바위 틈을 기어나고 모래로 숨어들어 은방울 울리듯이 흐르는 가을 물은 그것을 비쳐서 마치 뜨거운 붉은 피가 모였다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다.벌거벗은 산에는 울퉁불퉁 내어밀은 바위가 멀리서 와서 멀리 가는 바람이 스칠 때마다 서늘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 듯 하다.그 위 소림사(小林寺)에서 저녁 종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산골에서 퍼질 대로 퍼지는 종소리는 혹은 이었다 끊어지는 듯 끊겼다 이어지는 듯하기도 하였다.하나씩 둘씩 떨어지는 갈잎이 종소리에 묻어서 다시 한번 재주를 넘고 한구석으로 모여든다.--- “미정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