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윤기정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동대문을 등지고 방금 떠나 청량리로 향해 살갗이 닿는 전차 안에는 남녀노소로 초만원을 이루었는데 그 틈틈에는 한 떼의 학생이 섞여있다.바로 저번 일요일 날은 온종일 끊일 줄 모르고 촉촉이 내린 보슬비로 말미암아 나날이 짙어가던 봄빛을 더한층 재촉해 수삼일 내로 개나리와 진달래꽃을 활짝 피게 하였다. 그래 이제는 제법 봄 기분이 농후해진 더구나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일요일이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치 어수선한 도회 생활에 휘둘리고 들볶이는 뭇 사람은 단 하루라도 흐릿해진 머리와 고단한 몸을 맑은 공기와 그윽한 대자연에 마음껏 씻고 흠씬 위안을 얻으려 함인지? 북적대는 서울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교외로 나마 아쉬운 대로 몰려나가는 모양이다.오정때가 가까워 올수록 전차는 더 한층 분빌 따름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 차도 초만원을 이룬 채 정류장마다 별로 서는 법도 없이 줄기차게 내닫고만 있다.이처럼 줄달음치던 전차가 어느덧 청량리 앞에 와 닿으니 차 속으로부터 여러 사람들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내리기 시작하였다. 머리에는 각모를 쓰고 어깨에는 ‘스프링 코트’를 걸친 한 떼의 학생 여럿. 방금 차에서 내리는 그들 틈에 겉묻어 내려가지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홍릉도 가는 어구에까지 이르더니만 한번 꺽여 모두를 그길로 잡아 들어선다.겨우내 꼭 죽었던 풀들은 대견하게도 다시금 새싹이 파릇파릇 숨쉬기 시작하는데 간간이 은가루처럼 시설이 돋고 진 자주빛인 할미꽃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 체 피어있고 냇가에 드문드문 섯는 수양버들, 제철만난 듯이 뾰족뾰족 싹이 트여 가지가 축축 늘어져 있다. 그들의 한 떼는 백사장처럼 편한 길을 무척 흥에 겨워 가로뛰고 세로뛰면서 걷고들 있다. 어떤 학생은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먼 산을 바라보고 목을 소승겨 노래를 빼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마라톤’ 하듯 무작정하고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줄달음 치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뭉텅한 돌맹이를 축구나 하듯이 발 뿌리로 우락부락하게 막 걷어차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맨 뒤에 떨어져서 이름도 모를 이상야릇한 풀과 생생하게 피었어도 보기에 시든 듯한 할미꽃 몇 송이를 따가지고 연해 코에다 댔다 뗏다 하며 천천히 걷고 있다.바로 이때다. 철모르는 어린애들처럼 개댁질을 하는 그들의 등 뒤에서 별안간 경풍을 할 만치 경적을 울리며 한대의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려든다. 자동차와 그들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 올수록 요란한 엔진소리는 귀를 시끄럽게 무소라 노았다. 그 중 맨 뒤에서 걸어가던 학생이 멈칫하고 길 옆으로 비켜선다.지금까지 전속력을 내 달리는 자동차도 바로 그 학생 앞에 와 우뚝 선다.--- “춘몽곡(春夢曲)”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