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현진건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어느 가을 나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참담한 경우를 당한 일이 있다. 처음 온 수토(殊土)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타향에서 나는 주머니에 돈이라고는 쇠천 샐 닢도 없고 하롯밤 눈 붙일 곳도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처음 와서 이틀 사흘 지나는 동안에 내 몸에 붙어 있는 것으로 없어도 출입 못하게 되잖을 것을 있는 대로 다 팔아 먹은 나는 그 시가지를 나와 증기선 부두가 있는 ‘이스테’라고 하는 데를 가 보았다. 거기는 항해의 시절이면은 거친 노동자의 생활로 하여 뒤끓는 듯하던 곳이건만, 시방은 적적히 사람의 그림자 하나 어른거리지 않았다. 그 때는 벌써 시월의 마지막 날인 까닭이다.축축이 젖은 자각 돌멩이에서 자각 돌멩이로 발을 질질 끌며 그 어디 면포(??)의 조각이 떨어져 있지나 않았는가 하고 눈에 불을 켜면서 나는 인적이 끊어진 건물과 창고 가로 빙빙 돌아다니었다. 그러면서 먹을 것이 넉넉함은 얼마나 좋은 일이랴 하였다.오늘날 우리의 교양 정도에 있어서는 마음 주림은 육체의 주림보담 쉽게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시(試)컨대 길거리에 방황해 보라. 밖으로 보아도 물론 내부도 그렇게 나쁘지 않을 듯한 건물이 제군의 전후좌우에 즐비할 것이다. 그것을 보고 제군은 어떤 생각을 일으키는가. 필연코 건축이라든가 위생이라든가 기타 종종의 현명하고 고상한 문제에 관하여 갖가지로 사색할 것이다. 그리고 또 제군은 따스하고 말쑥하게 차림차림을 차린 분들과 마조치리라. 그네들이 제군에게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모두 예절있게 깍듯하게 제군의 생활상의 비참한 사실을 주의치 않으려고 짐짓 외면을 할 것이다. 이렇다, 이렇다. 배고픈 사람의 마음은 배부른 사람의 마음보담 반보담 더 수양되었고 보담 더 건전한 것이다. 여기다! 여기 배 곯는 이를 위하여 만장(萬丈)의 기염(氣焰)을 토(吐)할 결론도 생기는 것이다.--- “가을의 하롯밤(코리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