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계용묵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할아버지는 무거운 몸을 지긋둥 지긋둥 좀더 지팡이에 힘을 실어본다.그러나 제 한 몸만 해도 한 다리로 걸어내긴 된 짐이었다. 아무리 젖먹이의 어린것이라고는 해도 그것은 숨주머니다. 결코 헐한 짐이 아닌 것이다. 맥을 조금만 놓다가도 그것의 요동을 받을 땐 자꾸만 한 편으로 쓰러지려는 위태로움을 느끼게까지 된다.하건만 할아버지는 그것이 조금도 괴롭지 않다. 그 괴로움 속에 도리어 낙이 있음을 맛보는 것이다. 자기의 잔등이에 만일 이 손자의 숨소리가 없다면 자기의 여생은 얼마나 쓸쓸한 것일까. 앞날의 영원한 행복은 이 잔등이엣것의 숨소리를 두고는 다시 없을 것만 같게 여겨지는 것이다.손이 모자라서 남 다 떼는 김을 떼지 못하고 이렇게 김이 늦어져 혼가이 떨쳐나서도 쩔쩔매는 것을 보면 단박이라도 머리에 수건을 자르고 논배미로 뛰어들든지 그렇지 않으면 수차에라도 기어올라 다만 한 이랑의 김이라도, 다만 한 바퀴의 물이라도 메고 돌리고 하여 보고 싶은 마음은 참아 낼 길이 없으나, 다리가 말을 안 들어 바로 요 며칠 전에도 한 번은 남 모르게 슬그니 수차 위로 올라섰다가 물을 한 바퀴도 못 돌리고 뒤로 나자빠져 물만 먹고 기어나오던 일을 뒤미처 생각 할 땐 인젠 자기의 천생인 직능을 잃은 듯이 그리하여 인생으로서의 온갖 힘을 다 잃은 듯이 눈앞이 아득한 적막을 느끼다가도 자기에겐 이미 성장한 아들이 있고 그 밑에 또 어린 손자가 있음을 헤아릴 땐, 그리하여 그것은 이제 무력해진 자기의 직능에 대를 이어 주는 생명의 연장인 것임을 미루어 보고는 도리어 알 수 없는 생의 의욕에 이렇게 손자를 자기의 품속에서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묘예(苗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