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윤기정의 소설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그 시대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듯, 과거의 한국문학을 보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더보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1가물에 비를 기다리는 농군의 마음이란 비할 때 없이 안타깝고 눈물겨운 일이다. 솔개미 그림자만 지지리 탄 땅위로 스칠라 치면 행여나 구름장인가 하는 무슨 기적이 아니면 요행수를 바라는 듯한 반갑고도 일면 조마조마한 생각에 끌려 뭇사람은 재빠르게 허공만 헛되이 치여다 본다. 다른 해 같으면 거의 두벌 김이나 나갔을 터인데 금년엔 어찌나 가물던지 초복이 가까워도 제법 모 한포기 꽂아보지 못한 이 근처 마을사람들은 불안에 싸여있다. 생전 비라고는 안 올 듯한 날씨가 거듭할수록 군데군데서 일어나는 물싸움만이 더욱 소란해질 뿐이오. 오늘도 봉례네 집에서는 이른 아침밥이 끝난 다음 그의 아버지는 활등같이 굽은 등에다가 가래를 둘러 메고 개울로 나갔고 그의 어머니는 겨우내 눈이라곤 오지 않은 데다가 지독한 강추위로 해서 다 얼어 죽다시피 된 갈보리를 다른 식구들은 생각지도 않고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먹이에 하도 궁하니까 그래도 좀 건져먹을게 있을까 하고서 낫을 들고 보리밭으로 나갔고 봉례의 남편인 갑룡이는 용두레 질을 하려고 바로 자기가 부치는 논두렁 옆웅덩이로 나간 다음 봉례는 밥 먹은 설거지와 여기저기 귀살머리쩍게 벌려놓은 군지력이를 걷어치우는 동안 올봄에 겨우 백날 지낸 아들놈이 일곱 살 나는 제 누이에게 안겨서 젖 달라고 보채다 못해 나중에는 악파듯 우는 바람에 치우던 것을 건성건성 보살피고는 자지러지게 우는 어린애를 딸년 금순이에게서 받아가지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젖꼭지를 어린애 입에다 물렸다.구름 한 점 없이 내리쪼이는 이글이글한 햇볕이 온 마당으로 하나 가득차 뜨거운 김이 마치 불화로를 가까이 갖다대는 듯 확확 끼쳐 오른다. 더운 기운에 숨이 컥컥 막힐 지경이다. 봉례는 어린 것을 다시 금순이에게 업혀놓고 장독대 앞에 놓은 물동이를 집어 이고서 우물로 향해 나갔다.바로 홰나무 아래 있는 우물두덩에는 크고 작은 동이와 방구리와 양철통들이 즐비하게 수없이 그러나 차례차례로 가지런히 놓여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물을 찌느라고 우물 속에 들여다들 보고 있으며 아직 차례가 닥쳐오지 않은 사람들은 우물 언저리에서 버정대고 서서들 있다. 봉례도 머리에 이었던 그리 크지 않은 동이를 내려서 맨 꽁무니에다 갖다 놓고 이 동리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자기 나이와 어금지금한 성복이 어머니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이렇게 비가 안 오다가는 농사는커녕 먹을 물도 없어 말라 죽지들 않겠수? 성복이 어머니?"봉례가 먼저 이렇게 말을 건넸다.--- “천재(天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