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의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마음 속에선 여전히 마의 산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곱씹어 보곤 하고있다.
결핵에 걸린 아내를 문병했던 3주간의 토마스 만의 경험담이 약 1,500page에 걸친 대장정으로 남았는데, 그의 문장력 (전체적인 흐름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나, 어느 한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책을 덮고 상념에 잠겨야 함에 완독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으로 정말 20세기의 최고의 독일 작가인 듯 싶다.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을 병문안 겸 휴양을 목적으로 고산에 위치한 국제요양원을 방문하게 된다. 3주간의 일정이였지만 그에게도 (심각하지 않은) 폐에 침윤된 부분이 발견되고, 열이 있어 일정은 연기된다. 그의 지적 스승이자 교육자 세템브리니와의 숱한 논쟁을 즐기고, 전형적인 암고양이 쇼샤 부인, 그녀가 데려온 우람한 페퍼코른, 무신론적 혁명론자 나프타, 늙은 의사 베렌스 등 책의 규모에 비례해 상당한 주요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요양원에서 죽게된다. 마의 산이 토마스 만의 작품 중 제일 에로틱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쇼샤 부인과의 몇 장면 뿐 나에겐 딱히 전해지질 않았다. 동성애적 느낌도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쇼샤 부인과의 애정 관계도 한스 카스트로프의 일방적인 행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한스 카스트로프는 요양원에서 여행을 떠난 쇼샤 부인을 기다리며 마의 산에서 7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요양원에서 진실로 아픈지 의문스러운 사람 두 명이 쇼샤 부인과 주인공이다.)
시간.
이 책에서 가장 의미있는 주제이고, 나에게도 많은 의문을 던진 단어이다.
공간.
이것은 두 번째 주제이고, 시간과 공간의 철학적 사유를 깊게 만드는 마의 산. 마의 산의 공기에 허겁지겁 도망가버린 한스 카스트로프의 친척이 있는가하면, 주인공은 거기에 마법처럼 걸려들어 7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7년이란 시간은 주인공에게 365일 * 7년의 나날들이 아니다. 며칠같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단, 몇 달처럼만 느껴지는 그 시간들 속에서 결국 세계1차대전의 발발로 총알처럼 튕겨져 그곳에서 나와 전장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내가 속해있는 시간은 어떤 것인가? 눈에 보이는가? 잡히는가? 느낄 수 있는가? 나름 찬란했던 20대를 보낸 후 그 되돌아보는 10년이 10년같이 느껴지는가?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난 일 년이 진정 일 년처럼 느껴지는가? 엊그제 같았던 첫째의 산고. 그 끝에 태어난 아이의 치아는 20개가 모두 완성되었다. 그 시간들. 마의 산은 그 어떤 철학서보다 더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23살의 젊은 청년이였던 주인공은 고립된 요양원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들로 채워진, 정말 거기에서 사는게 체질인 듯한 시간, 7년을 보낸다. 지루할틈 없는 사람들과의 논쟁, 멋진 식사, 안락한 안정요양시간. 흥미로운 강연 시간. 산책 시간. 나도 거기에 동참하는 꿈을 꾸어본다.
탐구해볼만한 주요한 인물들의 특색을 느끼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문학 정신은 정신 그 자체이며 분석과 형식이 결합된 기적입니다.문학 정신은 온갖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해력을 일깨워 주어 어리석은 가치 판단과 신념을 약화,해소시켜며 인류의 교화,순화 및 향상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문학 정신의 최고의 도덕적 세련성과 민감성을 유발하면서 광적으로 만드는 대신에 회의,정의 및 인내의 정신을 함양시켜 줍니다. 문학의 정화 작용과 순화 작용,인식과 언어를 통한 열정의 억제,이해와 용서,사랑으로 이끄는 길인 문학,언어가 지닌 구원의 힘,무릇 인간 정신이자 성자인 문사" /430
나프타에게 세템브리니가 열변을 토하며 했던 말이다.하 권의 중간 정도에 등장한다.누군가 '마의 산'에 대해 물어 온다면,망설임없이 430쪽의 말을 인용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사이사이 토마스 만과 마의 산에 대한 해설설을 찾아 읽었다.쏟아내는 말들마다 너무 철학적이다 싶어 그냥 참고 넘어 갈 수가 없었다.그리고 알았다.저들의 관계가 니체의 사상에서 발원했다는 것을. 이 책이 철학서처럼 읽힐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토마스 만 선생은 문학을 통해 니체의 말을 대신 실천하고 있었던 거다.문학이 줄 수 있는 구원.철학을 필두로 삶과 죽음,종교,역사,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온전히 소화하려면 사전적 지식이 충분히 있어야 할 지 모른다.그러나 고전이 늘 그렇듯,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교양소설이 될 수도 있고,정치소설이 될 수도 있는 거다.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한 니체의 사상으로 이끄는 힘이 내게는 가장 컸던것 같다.놀라웠던 점은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힘든 책이였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마도 중간 중간 정신 번쩍 나게 하는 아포리즘 같은 문장을 만난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 있었던 덕분인 듯 하다. 상 권에서 죽음에 대한 묘사가 그러했고,하 권에서는 단편으로 뚝 떼어 놓아도 좋다고 생각한 '눈'편을 읽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할 듯 하다. 정신적으로 아직 다듬어져 있지 않았던 나이의 청년 한스에게 이른 죽음은,그 자체가 삶을 흔들게 만드는 요인이였고,나프타와 세템브리니의 사상에 끝없이 흔들렸지만 결국 혼자 스키를 타고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예지몽 처럼 꾼 꿈 덕분에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았다. 앤딩 장면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해피앤딩이 아닐수도 있겠으나,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해 찾아 나선다는 그 자체만을 보았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덧붙임...
크레마의 기능이 매우 흡족하지 않음에도 두꺼운 책은 어쩔수 없이 크레마의 도움을 받는다.그런데 처음으로 마의 산 (하)편에서는 정도가 조금 심한 불편이 있었다.다행히 페이퍼북과 비교하며 읽고 있었기에 바로 문의를 할 수 있었고,삭제 후 다시 다운을 받았더니 날아간 페이지가 부활했다...^^
요아힘 침센은 병이 완쾌되지도 않았는데, 요양원 생활에 지친 나머지 하산해 다시 군대로 돌아간다. 사촌을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카스토르프는 요양원 생활의 단조로움과 무기력함을 부끄럽게 생각해 스키를 배울 결심을 한다. 몇 차례의 연습을 통해 스키를 탈 수 있게 되고 그러다 어느 하루 스키를 타고 흰 눈이 덮인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고 눈보라에 갇혀버리게 된다. 거기에서 인간이 착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공감에서 벗어나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후 1부에서 요양원을 떠났던 쇼샤 부인이 돌아오는데, 네덜란드 식민지 자바의 커피 재배업자로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대표하고 있는 인물인 페페르코른을 동반한다. 페페르코른은 건강과 삶을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물로서 소설 속에서 제템브리니와 나프타를 왜소하게 만들고, 쇼샤 부인의 위험성을 줄여주며, 주인공 카스토르프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그는 카스토르프와 쇼샤 부인의 에로틱한 관계와 자신의 성적 무기력을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하며, 쇼샤 부인은 다시 요양원을 떠난다. 쇼샤 부인이 떠난 후 카스토르프는 허탈 상태에 빠지는데, 그 와중에 제템브리니와 나프타가 자유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결투를 벌이고 나프타는 자기 머리를 권총으로 쏘아버린다는 내용..... 내용이 너무 길기도 하고 사실 읽기 편하진 않다.
'마의 산 - 상'을 샀으니 '마의 산 - 하'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을유세계문학전집 02권이자 토마스 만의 유명 소설 '마의 산'의 주인공은 한스 카스토르프로 그는 사촌을 문병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았으나 도리어 그가 폐결핵 징후를 보였다. 결국 그는 7년 동안의 요양 생활을 거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배경 지식이 부족한 터라 토마스 만이 어떤 상황에서 이 글을 써내려 갔는지, 이 글에 어떤 생각이 담겨 있는건지 알기 어려웠다. 좀 더 상식을 쌓아야 하나보다...
「20세기 유럽의 철학, 문학, 사상을 집대성한 대작」. 《마의산》은 이런 어마어마한 찬사가 괴면쩍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은 대작답게 교양소설, 성장소설, 시대소설 등 많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소설 제목「마의 산」은 스위스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 베르크호프를 말한다. 소설에서 마의 산의 상징적 의미로 죽음이나 질병 또는 코뮨 같은 키워드를 거론해볼 수도 있다. 등장인물 세템브리니의 말을 빌리면 휴양지 베르크호프에서 살아가는 요양객들은 침대에 누워지내는 수평인간이고「깊은 심연에 빠진 존재들」처럼 몽롱한 꿈같은 상태로 세월을 보내는 정태적 인간이다. 그러나 세템브리니의 관찰은 반만 맞춘 셈이다. 「마의 산」은 단순히 한 가지 색깔만을 지닌 단일하고 정체된 공간이라기 보다는 다중적인 악센트가 매복해 있는, 여기와 거기를 가르는 문턱의 역할을 하는 이질적 장소이다. 베르크호프는 다양한 인식이 서로 충돌하고 시간의 몽환적 흐름, 그리고 생의 의지와 죽음의 의지간의 대립과 모순을 보인다.
소설의 공간적 틀은 크게 산상세계와 평지세계로 이분된다. 이런 공간적 구조의 이중적 틀과 이원적 주제는 현실과 이상,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시민과 예술, 자아와 세계간의 긴장관계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런 이분적 공간 구도는 시간적 장단의 의미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공간도 시시각각 시간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키며, 인간을 원래 그대로의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 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15쪽)
동시기의 유명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요양객》이나 《싯다르타》에서도 이런 이원적 구도를 찾아볼 수 있다. 헤세의 요양원은 중풍이나 신경통을 치료하는 요양지로, 폐결핵의 요양지와는 좀 다른 이미지를 전달한다. 공기냐 물이냐의 차이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상승이나 하강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보면 헤세의 《요양객》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골깊은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