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클루게는 독특한 이력의 소지자다.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그를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대부이자 ‘오버하우젠 선언’을 주도한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겠지만, 그는 법률가이자 작가였으며, 교육자이자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였을뿐만 아니라 문화 이론 및 문화 정책 비평가이기도 했다.
워낙 박학다식하고 다방면에 걸쳐 활동해서 독일 내에서는 문화계 전체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국내엔 이 책 말고 『〈자본〉에 대한 노트』라는 책이 한 권 더 번역되었는데, 인문서로 분류되는 이 책이 어떤 성격인지 알면 이 작가에 대한 대충의 짐작도 가능해질 것 같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라는 구 소련의 영화감독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화하려고 했으나 미완의 기획으로 그친다. 알렉산더 클루게는 에이젠슈테인의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이라는 영화를 2008년에 만든다. 그리고 이 작품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하기 위해 동명의 소책자를 2015년에 만드는데, 이 책을 옮긴 것이 바로 『〈자본〉에 대한 노트』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역사 속에 살다간 인물들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역사라는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클루게는 두 가지를 수행하는데, 첫째는 역사적 파국에서 희생된 자들을 다양한 기억의 방식을 통해 추모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단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정의의 문제와 선과 악의 문제와 맞닿는데,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역사의 다양한 장면들과 인물들을 접하면서, 2차 세계대전 직후 인간들이 직면하고 대면했던 문제들을 살펴보게 된다. (그가 독일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 책은 단편들을 모은 작품집으로 표제인 '이력서들'은 수록 작품이 아니라 전체 작품을 아우르는 제목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사랑에 대한 어떤 실험」이 가장 좋았다. 이 단편소설은 나치의 생체실험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전후 세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 무겁고 진지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다큐와 픽션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설은 현대 독일문학의 대표작이자 수작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어보면 이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일본에서도 이렇게 솔직히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작가들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점만 보더라도 독일이 일본보다는 몇 수 위라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