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물은 과거로부터 흘러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고, 현재의 모순과 갈등을 지양한 새로운 현재가 곧 미래라고 한다. 미래는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유가를 이야기할 때 흔히 공맹의 도를 말한다. 공자는 제자가 3000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왜 백년도 훨씬 넘어 맹자가 등장한 다음에야 유가사상이 완성되었을까? 맹자가 주장한 사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맞을 때 마다 그의 어머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몸의 가르침과 말의 가르침을 통하여, 항상 몸을 준칙으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통해 맹자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맹자는 전국시대 중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이름은 가(軻)이다. 공자가 죽은지 100년이 지나 추나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또한 공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주장한 왕도정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세상을 주유하였다. 우리는 맹자 하면“맹모삼천지교”라는 말과“성선설”을 떠 올린다. 학교에서 배울 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흔히“맹모삼천지교”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로 이해하고,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것으로 순자의 성악설과 대비하여 이해하여 왔다.
고전 [맹자]는 [논어]와 달리 문체가 일관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맹자가 직접 쓴 것이라는 설도 있고, 맹자사후 그의 제자인 만장과 공손추가 쓴 것 이라는 설도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맹자와 순자의 행적을 담은 [맹순열전]을 통하여, 맹자의 주도아래 만장과 공손추가 썼다고 말한다. [맹자]의 구성은 양혜왕(梁惠王), 공손추(公孫吜), 등문공(滕文公), 이루(離婁), 만장(萬章), 고자(告子), 진심(盡心)의 총 7편으로 되어있으나, 후한시대 [맹자장구]를 지은 조기(趙岐)가 각 편을 다시 상하로 나뉘어 14편으로 만들었으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기의 분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맹자]는 한나라 때, 유학이 통치이념이 된 이래 유학의 중요저작으로 중시되어 왔다. 또한 논어의 단편적이고 산발적인 내용들을 발전시켜 유가사상을 완전한 하나의 사상적 체계로 만들어 내었기에, 성리학을 집대성한 남송의 학자 주희는 [논어], [대학], [중용]과 더불어 유가의 핵심고전으로 삼아 4서라 칭함으로써, 전통시대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요약하여 말하면 공자는 인의(仁義)를 이야기 했고, 맹자는 인의의 실천 각론을 이야기 하고 있는 셈이다.
[맹자]에는 전국시대에 대한 맹자의 진단과 처방을 담고 있다. 맹자는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다. 따라서 [맹자]의 기본적인 성격은 정치사상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왕도정치로 천하의 통일을 이야기 한다. 그가 말하는 왕도정치란 군주를 포함한 지배계층의 도덕적 각성을 바탕으로 백성의 경제적 복지를 보장하고, 도덕적 교화를 실행하는 복지국가와 도덕국가를 목표로 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이것으로만 볼 때 [맹자]는 현재의 정치에 대입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 시대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지만, 지배계층의 도덕적 각성과 자기수양을 바탕으로 한 도덕국가와 복지국가는 아마 현대사회의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그는 특히 성선설(性善說)을 통해 왕도정치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부합하는 정치임을 주장하고 있다. 공손추(公孫吜)나 고자(告子)등 [맹자]의 여러 편에 나오는 인성론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면 우리는 오해를 하기 싶다. 맹자의 성선설은 순자의 성악설과 비교되어 우리들에게 맹자의 대표적인 사상으로 알려져 왔다. 맹자가 말한‘사람 중에는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라는 말의 뜻을 우리는 사람의 본성이 원래 선하다는 말로 판단한다. 그러나 맹자가 주장했던 것은 사람의 본성 자체가 선을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자(告子)가 사람의 본성은 선이나 불선의 경향이 없고(性無善無惡) 도덕적 행위는 후천적으로 밖에서 가해지는 인위적 교화를 통한 것이라 했을 때,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본래 선의 경향성이 있으며, 도덕적 행위는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이라고 대답한다. 사람의 마음에 사단(四端)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인(仁)과 의(義)와 예(禮)와 지(智)를 나타내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맹자]에서는 먼저 우리에게 사람의 본성이 선을 향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다음으로는 어떻게 선을 선택해서 끝까지 고집할 것 인가를 알려주고, 마지막으로는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 최후의 목표임을 알려주고 있다.
맹자는 선에 머무르기 위하여 교육과 자기수양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륜의 교육을 특히 강조하였고, 그래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륜을 이야기 한다. 그런가 하면 학문하는 방법은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 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이것이 곧 자기수양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삶은 부단한 선택의 과정이며,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그리고 그 용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올바른 정의와 이치를 따져보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맹자가 끊임없이 요순의 도와 공자의 도를 강조한 까닭이다. 그렇게 될 때 인생의 즐거움 또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공자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즐거움으로 절제된 예와 악을 즐기는 것, 남의 장점을 말하기를 즐기는 것, 그리고 좋은 벗을 많이 사귀기를 즐기는 것이라 하고, 해가 되는 즐거움으로 교만하고 오만한 것을 즐기는 것, 빈둥거리며 노는 것을 즐기는 것, 그리고 매일 크고 작은 잔치를 벌이기를 즐기는 것 이라고 말했지만, 맹자는 선을 행하고 남을 돕는 요순의 도와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모든 백성의 생명을 존중하는 공자의 도를 따를 때 우리의 삶은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은 부모가 살아 있으며 형제들이 아무 탈이 없는 것, 우러러봐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봐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 그리고 천하의 뛰어난 인재들을 얻어서 가르치는 것 이라고 하였다. 우리의 전통시대 선비들이 추구한 삶이 바로 맹자의 이런 즐거움을 뜻하는 것 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각 제후가 다투는 시기 이었다. 전국시대의 미덕은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패도정치가 풍미하던 시기이다. 그러나 맹자는 모든 전쟁을 악으로 보았으며, 오직 통치자가 도덕적인 인격을 갖추고 모범이 되어서 백성을 덕으로 교화할 때 천하를 차지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맹자가 사상가이기에 앞서 정치가로써 각국을 돌며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했음에도 그를 기용하는 제후가 없었음은, 그 시대 맹자의 덕치는 그만큼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가가 통치이념으로 확립된 시기는 전국시대가 끝나고 천하가 통일된 시기인 한나라 이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원전을 보고픈 욕심이야 한이 없지만, 원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어쩔 수 없이 번역서나 해설서를 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해설이 달려있기는 하지만, 각주 수준에 머무른다. 따라서 이 책을 보면서 해설서 한권쯤 별도로 보는 것이 이해를 하는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에 해설서로서 [맹자]를 읽은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생각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전에 읽을 때는 미처 머릿속에 담지를 못했는데, 유난히도 마음을 끄는 구절이 있다. 맹자는 벗을 사귀는 자세에 대해서 말한다. 벗을 사귈 때는 자신의 나이가 많음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지위가 높음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 형제 중에 부귀한 사람이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 삼는 것 이므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벗을 사귈 때 어떠했는지 돌아보며, 지금 나의 벗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불현듯 그들이 보고 싶다.
맹자는 전국시대 추나라 사람이라고 하는데 추나라는 노나라 근방의 녹읍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가 썼다고 전해지는 맹자는 그의 제자들의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총 7권으로 구성됐으나 서한시대의 조기가 주석을 달면서 각 권을 상, 하로 구분해서 총 14권으로 구성되었다.
맹자는 주로 비유를 탁월하게 많이 사용해서 가르침을 전했다. 대표적인 예로 고자와의 설전에서도 비유를 사용함이 많이 보인다. 맹자가 사람의 본성은 본시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한 반면, 고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선무악설’을 주장하였다. 제후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유를 통해서 꼼짝 못하도록 쓴소리를 날린다.
고자(하) 12-15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에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종교의 경전말씀처럼 보이기도 하는 구절이다. 하늘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 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맹자는 공자 사후 약 백여 년이 지난 뒤의 사람이다. 맹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랐고, 잘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양한 제자들이 따랐을 정도로 포용력이 있고, 자애로웠던 공자에 비하면 맹자는 약간 까다로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차이가 각자의 개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각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보다 좀 더 혼란스러웠던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때문에 맹자가 주장하는 ‘인’과 ‘예’를 제후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힘들어 보인다.
수천년을 이어온 고전인 맹자를 보고 리뷰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왕도정치와 사단(四端)인 仁, 義, 禮,智 의 근본에 대해 설명한 맹자는 매년 보는 책이지만, 조금 더 마음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글들만 따로 정리해서 리뷰로 대신할 생각입니다.
같은 책을 여러번 보지만 볼때 마다 그 느낌이 다르고 감흥이 다른것은, 글을 그대로이지만, 그글을 보는 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아무리 좋은 글귀. 좋은 책, 좋은 스승을 만나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변화 시킬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운행되기 때문입니다...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曾子曰, ‘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스스로를 돌이켜보아서 옳지 않다면 누더기를 걸친 비천한 사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고, 스스로 돌이켜보아서 옳다면 천군만마가 쳐들어와도 나아가 용감히 대적할 수 있을 것이다.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縮千萬人, 吾往矣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上之豊, 必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도 그가 나를 친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반성해보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을 경우는 자신의 지혜를 반성해 보고, 다른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하는데도 그것에 상응하는 답례가 없을 경우는 자신의 공경하는 마음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한 몸이 바르면 천하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돌아온다.
愛人不親反其仁, 治人不治反其智, 禮人不答反其敬,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基身正而天下歸之
진실함 자체는 하늘의 도이고,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지극히 진실한데도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고, 진실하지 않은데도 남을 감동시키는 경우는 없다.
誠者, 天地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至誠而不動者, 未之有也. 不誠, 未有能動者也.
무엇인들 섬겨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섬기는 일의 근본이다. 무엇인들 지켜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마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지키는 일의 근본이다.
孰不爲事? 事親, 事之本也. 孰不爲守? 守身, 守之本也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내버려 두고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 찾을 줄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仁, 人心也. 義. 人路也. 含其路而不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己矣.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어떤 사람에게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있게 해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以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이로써 근심과 걱정은 사람을 살아나게 하고, 안일한 쾌락은 사람을 죽게 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然後知生於憂患而死於安樂也.
남이 나를 알아주어도 초연히 자족하고,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또한 초연히 자족하라.
人知之, 亦囂囂, 人不知 亦囂囂.
“그만두어서는 안되는 경우인데도 그만두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그만둘 것이고, 후하게 대우해야 할 사람에게 각박하게 대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각박하게 대할 것이다. 나아가는 데 성급한 사람은 물러나는 데도 성급하다.”
“於不可己而己者. 無所不己. 於所厚者薄, 無所不薄也. 其進說者, 其退速.”
연초에 마음을 다스릴 글이 필요하신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으실듯 합니다.
흔히 춘추와 전국을 싸잡아 춘추전국 시대로 일컫지만 두 시대 사이에는 꽤 큰 시간 차가 있다. 단순하게 말해 춘추는 공자의 시대였고 전국은 맹자의 시대였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도 아닌 그 손자의 제자에게서 유학을 배웠다. 맹자가 태어난 때는 공자가 죽은 지 이미 100년이 가까운 시대였다.
전국은 춘추보다 혼란과 분열이 심화되었는데, 예(禮) 운운하며 격식을 차리던 제후들이 비로소 가면을 벗고 이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국은 오로지 힘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당연하게도 전국을 평정한 남자는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교활하기로 소문난 '영정'이었다. 최초의 황제. 진시황 말이다.
공자나 맹자나 지금에 와서야 성인으로 떠받들여지지만 당시에는 내뱉는 족족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이상주의자 떠돌이들이었다. 맹자의 말대로 인간이 본래 선하며 따라서 누구나 요, 순, 우, 탕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는거라면 춘추와 전국은 왜 그리 피와 살육을 즐겼을까? 군마를 이끌고 달려오는 적국의 왕에게 인과 예를 설파하여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인가? 힘의 시대에 인의는 무력하다. 그리하여 힘을 강조한 시황이 비로소 길고 긴 춘추와 전국을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그런데 웃긴 건 천하를 통일하게 만든 그 힘이 정작 통일된 천하를 무너뜨리는 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 진(秦)은 20년도 가지 못해 멸망하고 말았다. 분열된 천하를 두고 항우와 유방이 싸웠는데, 힘의 항우가 덕의 유방에게 패해 비로소 유학의 전성 시대를 여는 한(漢) 나라가 건국된다.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받아들인 한 나라는 이후 400년 동안 유지된다.
유학은 확실히 전란의 시대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나 평화의 시대, 즉 통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선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은 우선 생존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야 인의라는 가면을 손 쉽게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와 맹자는 이 점을 몰랐다. 두 사람에겐 큰 뜻은 있었지만 그 뜻을 실현할 전략이 부재했다. 상황이 받쳐주질 않는데 꼬장 꼬장 자기 주장만 되풀이 해서야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두 사람은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 "아아, 세상이 정녕 나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구나" 하며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당시의 사람들이 정말 공맹의 사상을 이해 못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도 충분히 유학의 사상을 적용하여 힘과 덕의 균형을 맞추는 정치를 벌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 원인을 맹자 본인에게서 찾는다.
솔직히 맹자는 같이 일하기 싫은 동료 유형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꼽을 만큼 짜증나는 인간이었다. 우선 잘난척이 심하다. <맹자> 공손추 하 편에는 그의 제자 충우가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는다"(p.137)며 스승의 언행 불일치를 힐난하자 "만일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려 한다면 오늘날의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그런데 내가 무엇 때문에 유쾌해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요즘 같으면 대단한 swag으로 치부하고 박수를 칠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군자의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맹자의 잘난척은 사람을 너무 가르치려 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무지한 사람을 경멸하고 모욕하는 걸 즐기는 전형적 엘리트였다. 사사건건 왕을 모욕하고 왕을 힐난하고 왕의 권위를 짓누르면 과연 누가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는가? 이루 상편에서 맹자는 "사람들의 문제는 남의 스승 노릇을 하기 좋아하는 데 있다."(p.211) 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이 말의 반만 지켰어도 전국 시대에 왕도정치를 실현하는 게 완전히 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최악은 독선이었다. 맹자는 요, 순, 우, 탕이라는 전범을 세워 놓고 이들과 같으면 선, 다르면 악이라 몰아 세웠는데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행동에 모순이 있고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맹자는 온갖 변명을 늘어 놓아 이 같은 모순을 옹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반드시 논쟁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한마디로 맹자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유교 광신도였던 것이다.
정녕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다면 사람을 마음으로 감화시켜야 한다. 맹자는 그냥 뭘 해도 밉상인 사람이었다.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맹자가 성인의 뜻을 헤아리는 대신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의 왕도정치는 충분히 전란을 평정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써 놓고 보니, 내 얘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