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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재미(在美) 이집트 인들의 욕망과 갈등의 서사 (p. 459)

번역자가 쓴 해설의 제목이다. 책의 내용을 간결한 하나의 문장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반독재 투쟁 등을 비롯한 글쓴이의 실제 경험에 기반하여 씌어진 영향에서인지 답답하지만 ‘이게 현실이었을 거야’하는 인상을 주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소설에서는 시카고에서 사는 여러 이집트인들의 다양한 생각과 생활 방식 및 문화 충격에 대응하는 방식 등이 무바라크 치하의 시간대를 배경으로(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무바라크가 75세라고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2003년 및 그 이전의 시기)하여 전개된다. 그런데 등장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지리적, 물리적 조국을 떠나왔으나 마음 속의 조국을 떠나지 못한다. 그들의 육신이 자라고 심리가 형성된 토양을 그리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무언가에 묶인 듯 다시 그곳으로 회귀한다. 정치적이든 아니든, 인간적이든 아니든 그들의 말과 생각과 행위에는 이집트가 작용한다. 그 안에는 나이가 든 사람도 있고 아직 젊은 사람도 있다. 그러한 상태가 그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기도 하고 생명수처럼 삶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시카고가 배경인 것은 글쓴이가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교 치의대에서 석사 학위를 획득한 영향으로 보인다. 시카고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주어지지 않아서 모르겠다. 글을 쓰는 행위와 치과의사의 업을 같이 하고 있다고는 한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바이기는 하지만 이집트 인들의 의식 구조에도 여성혐오적인 사고가 뿌리 깊이 박혀있는 모습들이 보여질 때에는 적지 않게 답답했다.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여성스러움을 강요하고 남성에 대한 지나친 복종 등을 강요하는 상황은 전통이 아니라 인습인 관계로 그냥 씁쓸하다.

 그러면서 미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인종차별의 현황을 종종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흑인(아프리카 계 아메리칸이라고 표현을 누그러트린)을 통해서, 그 다음으로는 이집트 사람으로 총칭되는 유색 인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그 느낌이 전달되어 온다.

이집트 내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탄압과 빈곤, 압제, 미래에 대한 절망, 민족주의적 목표의 부재 (p. 376).

 국가라는 커다란 권력이 한 개인을 무너트리는 방법은 너무도 많고 교활하다.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어떤 음흉한 짓도 꺼리지 않는다. 소설 중의 몇몇은 그런 상황에 무너진다. 독재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반대의 외침은 자주 폭력과 위압에 의해 좌절된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사상은 직/간접적으로 이집트 권력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 그들이 자유로운 인간이 되지 못하는 여러 상황을 보다 보면 한국의 과거 상황도 별반 차이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 유학생들을 묶어서 간첩으로 몰아 사상 전쟁하던 시기도 있었으니까.

책의 페이지 수를 넘겨가면서 다소 의문스럽게 여겨지는 바가 생겨났다. 글쓴이가 성장 과정 등에서 성적으로 심하게 억압된 환경을 겪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

 내용을 보면 각각의 인물들의 사고나 의식 구조를 표현하는데 성과 결부된 상황 배치나 설명이 꽤 많은 편이다. 이런 것들이 대부분 억제되었던 환경을 뚫고 나오는 성욕이라든가 사디스트 적인 성 취향, 죽어버린 성 기능 등이 배경화되어 전개되어서 글쓴이의 의식 구조 하부에 성적 불만과 같은 뒤틀린 성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계속 생겨났다. 이런 부분이 한편으로는 고향을 떠나 타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 놓인 불안감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고 비틀어진 성적 접근을 통해 이집트의 억압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굳이 여러 개의 성적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소설 쓰기였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미국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에 사는 이집트인들의 다양한 사건을 전개하면서 시카고 내 미국인들의 생활을 관찰하고 미국 내 문제에 대한 아랍인의 시각을 보여 주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이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나 변화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야기 구조가 탄탄하고 흥미로워서 빠르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