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같은 누군가를 알고 있다. 처음엔 싫었는데 이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과 비례하여 그 누군가도 가련해진다. 정말 꼭 그렇게 살아야겠어? 하지만 나도 엄마가 되었다. 내 혈육을 양육하는 부모인 것이다. 부모라면 그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고리오 영감이 있을 것이다.
고리오 영감은 수완이 좋은 제면업자로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을 키웠다. 그의 두 딸은 곧 그의 인생이며, 그의 심장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물의 많은 부분을 지참금으로 챙겨 시집보내자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사위탓이라고 하지만 정작 딸들도 자식들 외에는 모든 것에 인색한 아버지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아쉬울때는 언제나 남편보다는 아버지를 찾는 그녀들. 결국 고리오 영감은 하숙집에서도 제일 싼 방에 기거하게되고 찾아오지 않은 딸들을 남겨둔 채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참 아름다운 여자구나!'라는 속삭임을 내 주위에서 듣게 되죠. 그런 말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 애들은 내 핏줄이 아니던가요? 나는 딸들을 태우고 가는 말들을 사랑하며, 나는 그 애들 무릎 위에 있는 강아지가 되고 싶다오. 나는 딸들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소. 각자 자신의 사랑하는 방식이 있는 법이죠. 나의 방식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이 많은지 모르겠소.' ----- page 171
하지만 그는 임종을 앞두고
'아! 내가 부자라면, 내가 내 재산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재산을 그 애들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애들은 여기 와서, 키스로 내 두 뺨을 핥을 텐데!..' ----- page 376
이것은 고리오 영감에 대한 줄거리이지만 이 책에서는 고리오 영감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인물이 몇 명 더 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 파리로 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어머니와 누이를 등쳐먹는 대학생 라스티냐크. 그리고 보트랭. 이들은 모두 보케르 부인의 하숙을 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과 더불어 이들은 어긋난 출세욕, 당시 프랑스 하층민의 삶. 물질 만능의 병리적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고전을 왜 읽을까. 누군가는 너무 옛날에 나온 이야기들이라 현재하고 안 맞아서 안 읽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직도 옛작품들이 지금도 먹힌다는 건 옛날 사회상을 반영한 그 이야기들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사회상이나 그 시대를 살던 이들의 생활상을 통해 분명 얻는 교훈이 있는 것이다.
본 작품에서 주인공은 가난한 귀족가문 출신이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온갖 연줄을 이용해 사교계에 데뷔하고자 한다. 우리는 유럽사람이 아니므로 귀족의 생활은 단지 외국영화에 나오는 화려한 모습만 익히 알고 있지만 스탕달이나 발자크, 플로베르의 작품을 보면 역시나 그 당시도 사람 사는 동네라 온갖 술수가 판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불륜도 불사하고 이를 묵과하는 등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것이다.
고리오영감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의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이를 이용하기만 하는 반도덕적인 딸들. 게다가 도덕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실제는 고리오를 은근히 이용하는 주인공의 모습. 또한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지도층 귀족의 추악한 면모 등...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건 똑같고 이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전의 가치는 충분하다.
[고리오 영감] 괴물의 괴물, 부성애의 그리스도 근대 전설
오랫동안 발자크의 글을 읽는 것을 주저하였다. 쓰는 것이고 먹는 것이고 등등, 발자크는 과한 사람. 주워 듣고 읽은 일화와 발췌 문장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흥미를 돋웠다. 아니, 그는 범인에게 평가받고 말고 할 작가가 아니다. 발자크 문학을 책 한권으로 가장 많이 파악할 수 있는, 그의 대표작 <고리오 영감>을 드디어 읽었다. 읽는 내내 고통이었고 읽고 나서 며칠을 이 책에 대해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물론 만족스러울 만큼 읽어내는 것에 실패한 것도 있다. 하지만 발자크와 이 책에 대해 느꼈던 본능적인 거부감이 <고리오 영감>의 독서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다. 서평을 준비하며 그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깨달았다. 광기로 꿈을 투쟁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작가와 글은 외면하지 못하는 고문 같은 것. 총 집필 기간 4개월여, 그 중40일 동안은 고작 80시간만을 자며 완성한 소설 <고리오 영감>. 이런 소설을 정상적인 상태로 읽으려 했던 태도가 비정상적이고 무례가 아닐까. ‘같은 과’의 인간이라면 더욱.
<고리오 영감>의 서술은 매우 장황하다. 도입부의 보케 하숙집 묘사부터, 인물 소개, 대사 등등 뭐 하나 과하게 현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에 비해 큰 줄거리와 메시지는 아주 간명하다. 여기서 독자의 취향과 끈기에 따라 감상이 갈린다. 화려한 성찬을 씹고 뜯고 맛보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황홀함에 홀려 있거나, 죽은 작가의 완성된 책에 본론만 말할 것을 강요하며 지루함에 질풍노도를 겪거나.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은 고리오 영감이다. 고리오 영감이 몰락하는 소설이다. 자수성가하여 꽤 많은 부를 축적하지만 싸구려 하숙집에서 수전노처럼 노년을 보낸다. 두 딸을 너무 사랑하여, 오로지 두 딸의 행복과 안위만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두 딸과 사위는 고리오 영감의 집착적 부정을 악착 같이 착취하고 그를 불행한 파멸로 이끈다. 이러한 고리오 영감의 삶은 파리 주류 사회로의 편입을 욕망하는 시골 출신 가난한 귀족 외젠 드 라스티냐크의 관찰을 통해 주로 서술된다. 따라서 <고리오 영감>은 크게 퇴락하는 노인과 성장하는 젊은이의 삶의 이중주요, 엇갈린 희비다.
“지금까지 한국 독자는 <고리오 영감>의 정본 번역을 본 적이 없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은 특유의 딱딱한 편집과 만듦새, 미주, 가끔씩 등장하는 괴랄한 표지로 만인에게 읽고 소장하기는 유쾌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워더링 하이츠>나 <젊은 베르터의 고뇌> 같이 제목 번역 자체를 새로 제안하는 등 ‘좋은 번역’에 대한 노력과 의지가 남다른 출판사다. <고리오 영감>의 경우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 이동렬이 맡으며 4장으로 구성된 기존 번역본을 비판한다. 2010년에 출간한 을유세계문학전집 <고리오 영감> 이전에 나온 읽을 만한 완역본으로는 중앙대 불문과 박영근 교수가 번역한 민음사 번역본(1999)와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 임희근 박사의 열린책들 번역본(2009)을 들 수 있다. 둘다 4장 구성인데 민음사는 쇠이유 1965년판 <인간극>을, 열린책들은 갈리마르 1971년판(폴리오 클라시크)과 2000년판(라 비블리오테크 갈리마르)을 번역대본으로 삼았다.
을유문화사는 갈리마르 1979년판 <인간극>을 대본으로 가르니에 프레르 1981년판 <고리오 영감>을 참조하여 번역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가의 의도는 을유세계문학전집 번역본처럼 장 구분이 없지만, 서지사적으로는 4장 구분본이 엄연히 있었고 굳이 피해 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고리오 영감>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 전 『르 뷔 드 파리』 지에 ‘네 차례’ 연재되었다. 그래서 초판도 네 장으로 구분되어 나왔다. 다만 1839년 발자크가 개정하면 장 구분을 없앴고 죽을 때까지 번복하지 않았다. 발자크의 광팬이거나 공부하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 번역본의 만듦새를 보고 취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민음사본이 가장 구하고 읽기가 무난하지만 번역 문장이 가장 예스럽다. 작품 해설이 <고리오 영감> 읽기보다 발자크와 <인간극> 입문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시적인 두께는 가장 두껍고 글이 빽빽하지만, 의외로 가장 가볍고 문장 가독성이 좋은 것은 열린책들 번역본이다. 해설 역시 가장 일반인 독자 맞춤형이다. 민음사와 열린책들 번역본의 주석은 각주이다. 을유세계문학전집 <고리오 영감>은 출판사와 번역자의 자신감만큼 학도와 일반 독자 모두 만족스러울 만한 <고리오 영감> 및 발자크 문학 전반에 대한 해설을 자랑한다. 발자크가 보인 최종 <고리오 영감> (우리말화) 구현에 최선을 다했고 주석도 대단히 많은데 이게 다 미주라 호불호가 갈린다. 그리고 <고리오 영감> 문체와 난이도 자체가 처음부터 술술 읽히지 않는데다가 장 구분이 없다보니 찬찬히 읽으면 괜찮은데 처음엔 다른 번역본에 비해 딱딱하게 느껴진다. 치밀하게 읽지 않으면 세 번역본이 다른 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을유문화사는 자사의 번역본의 장점으로 발자크의 강조점(이탤릭체)를 굵은 고딕체로 더욱 살렸다고 되어 있는데 민음사와 열린책들 역시 ‘<>’로 그를 살려놓았다. 다만 을유문화사본이 굵은 고딕체와 ‘()’ 표기로 발자크의 강조점을 나눠서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였다.
<고리오 영감>을 읽는 데 있어 놓칠 수 없는 두 중요 개념이 있다. 발자크의 『인간극La Comédie humaine』과 ‘인물 재등장 기법’이다. <고리오 영감>을 통해 발자크 문학에 입문하면서 떠올린 작가가 셋 있다. 한 사람은 19세기의 정신으로 20세기를 사는 것을 괴로워하며 일본의 근대문학과 현대문학 모두를 세운 나쓰메 소세키다. 다른 한 사람은 평생 70여 개의 이명을 만들고 그들 각각에 성격을 부여해 그들의 목소리로 글을 쓴 페르난도 페소아다. 마지막은 연작시 <만인보>를 통해 20세기 한국을 기록한 고은이다. 발자크는 입헌군주제와 가톨릭을 지지한 보수주의자였다(주류 사회와 좋아하는 여자를 의식해 사상을 전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발자크는 프랑스 사회와 역사의 비서를 자처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학은 남다른 근대성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인간극』은 그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단테의 <신곡>을 의식한 기획이다. 중세의 <신곡>이 신의 관점의 드라마라면 근대의 『인간극』은 인간 관점의 드라마다. 당대 주류 문화에 저항하며 발자크는 『인간극』을 통해 고대와 절연하고 근대 그리고 그 미래만을 바라보려 애쓴다.
또한 대중에 희망을 걸었던 발자크는 대중의 단어를 쓰거나 새로운 단어를 제안하는 것을 즐겼는데, 그 때문에 언어 파괴자라고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발자크의 문학은 그의 삶과 사상과는 전혀 다른 진보의 정점을 찍는다. 발자크가 <고리오 영감>를 당대의 자연과학자인 조프루아 생틸레르에 대한 헌사로 시작하는 것처럼 발자크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자신의 문학에 접목시키고자 한다.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 세 주제로 『인간극』을 구성하기로 계획한 발자크는 『인간극』 내내 같은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 재등장 기법’을 통해 문학적 경제성과 세계(관)의 완성도를 높인다. 페소아는 이명과 작가의 관계를 설정하고 심지어 특정 이명과 삼각관계에 빠지기도 하며 평생 출간에 소극적인 자세로 치밀한 창조에 매달렸다. 사업에 크게 실패해 빚에 쫓기며 다작에 집착했던 발자크, 그의 인물들은 의미 순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떤 책에선가 불쑥 출연할 뿐이다.
<고리오 영감>은 사생활, 지방생활, 파리생활, 정치생활, 군인생활, 전원생활 여섯가지 정경으로 나뉜 ‘풍속 연구’의 첫 번째인 사생활 정경 항목에 속한 책으로 ‘인물 재등장 기법’을 처음 사용한 장편소설이다. 흔히 발자크를 프랑스 사실주의 문예사조의 시조이자 확립자로 보는데 사실주의나 ‘인물 재등장 기법’이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자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발자크식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반세기 후에 활약한 에밀 졸라도 『인간극』에 필적하고자 『루공마카르 총서』를 쓰며 프랑스를 기록했지만 그는 문예사적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완성자로 취급받는다. 그런 것을 보면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이룩하는지 알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이 잘 쓰고 있는지밖에 알지 못하는 서글픈 운명인 것 같다.
<고리오 영감>은 1835년에 완성되었으나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프랑스 왕정복고 체제 하인 1819년 11월 말 외젠의 상경부터 1820년 2월 21일 고리오 영감의 장례가 이뤄지기까지의 3개월 정도의 기간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현재의 시선에서 십 수 년 전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1830년 7월 혁명의 지리멸렬함에 대한 당대 지식인들의 환멸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고리오 영감 70년 인생을 통해 프랑스의 그 시간을 톺아보는 소설이기도 하고, 외젠을 통해 젊은 세대에 대한 양가감정을 숨기지 않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외젠과 고리오 영감만큼 그 딸들과 보세앙 부인, 보트랭 등 주목할 인물은 한없이 많다. 발자크의 인물들은 줄거리와 관련이 있건 없건 『인간극』 안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값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감상이 다채롭지만 그만큼 시선이 분산되기에 전작주의는커녕 한 작품을 제대로 읽기도 녹록치 않다. 뭐든지 과했던 발자크는 그 과함에 몸이 잡아먹혀 명을 재촉한다. 그렇게 쓴 글을 최대한 허투루 읽지 않으려 애쓰는 것, 무지렁이 독자가 작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시대를 불문하고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물불을 가리지 않은 모습이다. 그 사랑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모습만 달리 보일뿐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아버지의 열풍을 몰고 온 문학작품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아버지를 통해 가슴 저린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문학작품들이 많다. 그만큼 아버지라는 존재가 담고 있는 사회적 가치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인간군’이라는 테마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담아내고 싶어 했던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역시 그런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계기를 준다. 작가의 작품 테마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는 의지의 구현이라면 아버지라는 존재 역시 훌륭한 작품의 소재가 될 것이라 본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19세기 프랑스를 살았다. 부르조아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나이차가 심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그러한 한계를 자신의 삶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여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업에 실패하고 난 후 20년간 90편의 장편과 중편,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 등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던 그는 ‘인간극’이라는 대 작업을 통해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긴 작가다. 주요 저서로는 ‘루이 랑베르’, ‘시골 의사’, ‘철학적 연구’,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이 있다.
‘고리오 영감’은 프랑스 왕정 복고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상류층의 파티문화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파리의 숨겨진 이면 드러내 보이는 뒷골목 하숙집이 주 무대가 된다. 남부 프랑스지역 출신이며 가문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 파리에 온 대학생 라스티냐크, 보케르 관 하숙집 여주인, 제면업자로 부자가 되었으며 아내를 잃고 두 딸을 키워 많은 지참금으로 시집보낸 아버지이자 그 딸들에게 버림받은 고리오 영감,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란 속에 탈옥자로 밝혀지는 보트랭이 중심인물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대학생 청년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 파리의 상류층 사교모임에 진출하여 돈 많은 귀부인의 후견인을 얻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다. 어떻게 하면 귀붕니들의 눈에 들어 자신의 꿈을 이룰까 고심하면서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점차 상류층의 문화와 생리를 알게 된다. 그 속에서 만난 아름다운 부인이 같은 하숙집 외톨이 영감 고리오의 딸임을 알아 영감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고리오 영감’에는 부와 권력 그 사이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상류층의 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사회로 진출하려는 청춘의 도발적인 야망이 있다. 또한 끊임없이 그 야망에 불을 지르는 보트랭의 모습은 야망을 향한 인간의 기본 속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와 사회적 신분에 대해 사람들은 움켜쥐려 하거나 방관자의 모습으로 비난을 하는 모습를 보인다. 또한 보이는 모습과 그 내면의 불일치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막연하게 동경하기도 한다. 그 속에 인간의 다양한 모습이 노출되는 것이다. 작가가 인간군이라는 테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 아닌가 싶다.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의 연속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죽어가는 아버지 고리오 영감의 쓸쓸한 최후는 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