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 붐이 이는 알래스카로 떠난 스물한살의 청년. 하지만 행운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1년 후, 청년은 병만 얻고 돌아온다. 청년은 낙심했겠지. 하지만 당시의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금맥을 품에 안고 돌아왔음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야성의 부름'이 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리라는 것을 말이다.
'야성의 부름'엔 당시 알래스카에 불어닥친 금광 붐이 잘 묘사되어 있다. 벼락부자를 꿈꾸는 사람들은 사방에서 몰려들고, 그에 따라 늘어난 우편량을 감당하기 위해 배달부들도 덩달아 바빠진다. 푹푹 빠지는 눈 위에선 말보단 썰매를 끌 개가 더 적합한 법, 추위를 이길 긴 털과 단단한 근육을 가진 개들은 높은 값에 거래된다. 그리고 그 곳에 벅이 있다.
벅은 본래 판사집에서 기르던 개였다. 세인트버나드의 큰 덩치와 셰퍼드의 날렵한 몸을 물려받은 벅은 금광 붐의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가지 못했고, 주인 몰래 알래스카의 썰매 개로 팔려간다. 그 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더이상 우정과 사랑의 세계가 아니다. 개를 매매하는 빨간스웨터 사나이의 몽둥이 세례와 동료 개 컬리의 잔혹한 죽음을 통해 배운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세계인 것이다.
타고난 적응력으로 새로운 세계의 삶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벅은 내면의 속삭임을 듣게 된다. 피에 새겨진 먼 조상의 울음, 인간의 손에 길들여 지면서 봉인된 그것. 바로 야성의 부름이다.
저자 잭 런던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니체의 위버멘쉬(예전에는 '초인'으로 표기하였으나, 최근에는 원어 발음대로 표기한다.)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로도 그러한 사상은 그의 작품 다수에 묻어난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회진화론에 따른 적자생존의 법칙이 벅을 통해 세밀히 묘사된다. 하지만 벅의 모습에서 위버멘쉬를 찾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버멘쉬는 영어로 overman 혹은 superman 으로 번역되는데, 둘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overman이 지속적인 자기 극복의 모델이라면, superman은 타고난 초인적 존재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점에서 의미상 니체의 위버멘쉬에 더 가까운 것은 overman 이지만, 벅은 superman적인 요소가 강하다. 타고난 체형, 뛰어난 적응력과 전투력, 잠들어 있던 야성을 일깨우는 끝없는 내면의 속삭임.
그러하기에 벅에게서 위버멘쉬의 모습을 찾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벅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극복하고 야성의 본능을 추구했다는 것은 일면 인정하지만 앞서 언급한 선천적인 조건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과연 그러한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벅의 여정을 통해 대자연의 일면을 바라보길 권한다. 개라는 것은 결국 길들여진 늑대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가축화 된지 수천, 수만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살아 꿈틀대는 야성의 본능. 벅이 야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집에서 키우던 개가 들개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다. 개이기 이전에 늑대였던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숭고한 여정이다.
물론 썰매개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데이브의 모습도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뼛속 깊이까지 병들어 지친 몸이면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썰매를 끌려고 노력하는 데이브. 그에게 썰매끌기는 의무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하지만, 데이브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데이브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워가면서 까지 썰매를 끌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데이브가 죽을 때 까지 이루어낸 가치는 개의 것이 아니다. 그의 몸에 썰매를 끌기 위한 가죽 끈과 죔쇠를 채운 인간의 것일 뿐이다.
벅은 용맹을 떨치는 야성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 늑대개. 한무리의 늑대를 이끄는 우두머리. 푸른 달빛을 받으며 설원을 달리는 한마리 맹수.
오랜 문명의 발전 속에서 인간의 야성은 어디로 갔을까. 인간의 야성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이지만 벅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켠의 꿈틀거림을 느낀다. 일종의 공명이었으리라.
40세의 짧은 삶이 순탄하지 않았던 잭 런던의, 흡사 작가의 치열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듯한 이 책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벅'이라는 개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했던 이야기이다. 따뜻한 남쪽 지방의 어느 한 가정에서 편안하게 살아온 벅은 집안의 배신자로 인해 알래스카의 썰매개로 팔려가게 된다. 그 순간부터 벅은 내던져진 삶을 살게 된다. 숨겨진 본성, 야성을 발견해가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은인인 손톤에 대한 강한 애정을 버리지않고 그와 함께하게 되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운사이 인디언들의 공격에 죽은 손톤을 마지막으로 인간세계와 단절하고 그만의 세계에서 유령 개로 군림하게 된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몽둥이를 든 인간'에 관한 사건들은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매우 치열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리고 목숨을 지켜내기위한 최소한의 깨달음이 된다. 벅은 영리하게도 정말 자존심이 땅바닥에 내팽겨쳐지는 상황을 잘 극복한다. 가죽과 뼈 밖에 남지않은 초라한 몸뚱이에 멈추지 않은 몽둥이질을 당하는 벅. 가해자인 인간. 최후엔 강한 자신을 찾고 원시적으로 포효하는 벅이 최근 몇 년 동안의 내 삶에 물결을 일으켰다.
유랑같은 삶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사실상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의 이야기가 번역가의 해설로 자세히 나와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연이나 동물에 관한 책을 더러 읽긴 했지만 이 책은 그보다 흥미롭고 나의 일상에 더 자극이 되었다. 역시 책은 나를 깨어있게 만든다.
잭 런던 작가의 야성의 부름입니다. 임종기 님이 옮겼어요. 영화는 vod로 볼 수 있내요. 책은 대여 이벤트 기간에 900원에 구입했습니다. 책 분량이 많은데도 책 판매가격이 엄청 저렴해서 놀랐습니다. 영화는 디즈니에서 제작했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보고 싶습니다. 책을 대여 했던 것고 6개월전인데 사실 책소개도 안보고 영화 원작이라고도 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기회다 싶어서 구입했는데 내용이 정말 새롭습니다. 개인 벅이 주인공이었어요.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라고 하는데 책 끝나는 마지막 까지 재미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