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독자들에게 불륜과 성적 욕망을 도덕으로 간단히 단죄할 수 없는 '자연적 본능'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는 이 책. 라이겐.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가의 활동 시기가 1900년대임을 생각하면 그 '충격'을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것, 사랑을 하는 인간들의 행태(내가 행태라고 하는 것은 라이겐에서 그린 사랑의 행위가 불륜이기 때문에)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다. 지금의 시대라고해서 그것이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불륜은 있어서는 안되지만 존재하기때문에 그 크기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것이다.
라이겐의 불륜 묘사는 그리 직접적이지는 않다. 그냥 행위가 있었다.라는 것이지 그것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묘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건 중심이랄까.. 큰 축으로 두 개의 이야기를 구성되는데 각각 '라이겐'과 '아나톨'이다. 이것은 또 각각의 작은 에피소드로 나눠지는데 각각의 에피소드는 조금씩 연결되어 순환되는 구조로 읽는 재미가 있다.
'라이겐'은 당대의 문제작인만큼 하나같이 도적적으로 굉장히 해이한 사람들의 사랑이 나온다. 그것이 과연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사랑에 시간을 중심으로 둘 순 없겠지만 이들의 사랑의 기간은 지극히 짧고 모두들 배반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과 사랑엔 정답이 없는 법. 이 점을 지각하고 읽으니 그냥 재미있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아나톨'은 데카당스적인 청춘들의 여린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섬세한 마음을 가진 아나톨과 그의 친구 막스가 등장한다. 나는 '아나톨'을 더 즐겁게 읽었다. 왠지 결혼 전 연애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는 마음이 들어서...반추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과의 만남은 표지그림 때문이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 '앉아있는 소녀'. 에곤 쉴레의 그림은 전부터 참 좋아했는데 작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을 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된 화가이기도 하다. 때마침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그의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와 플랜카드가 펄럭여 한참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여행 일정상 그의 전시회는 갈 수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의 그림을 더 찾아보게 되었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이야기거리를 가진 듯한 인물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눈길을 빼앗겼고 그것이 이 책을 좀 더 살펴본 계기가 되었다.
앞서 표지 이야기를 했지만, 단순히 표지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가 책을 읽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아니었다. '성을 노골적으로 테마화하여 가장 커다란 스캔들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란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문학에서의 프로이트' 라는 작가의 수식어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학계의 프로이트라니. 뭔가 인간의 내밀한 심리묘사나 표현들, 감정에 대한 분석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라이겐>은 짧은 희곡들의 모음집이다. 라이겐, 아나톨, 구스틀 소위 이렇게 3가지의 큰 테마로 19가지의 희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춤의 형태로 원형으로 둘러서 추는 춤이란다. 이 중 '라이겐' 테마는 특히나 이 춤과 닮은 구성이다. 창녀, 군인, 하녀, 젊은 주인, 젊은 부인, 남편, 귀여운 아가씨, 시인, 여배우, 백작이 10개의 단막극에 등장한다. '라이겐' 은 주로 성애가 주제가 된다. 그러나 전혀 외설적인 느낌이 든다거나 소위 말해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냐면 '성을 테마화 한 것'이지 성행위를 테마화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직접적인 성행위에 있어서는 묘사되지 않고 있다. 작가가 성행위를 표현하는 부분은 ----------------------------------- 이렇게 긴 점선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특히나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은 파트너로 하여금 이렇게 묻는다. '말해봐. 나를 정말 사랑해?' 그리고 남자들은 행위가 끝난 후에는 여자들에게 전과 같이 다정하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여성들은 건전한 여성들은 아니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사랑하는 우뷰녀, 창녀, 십대소녀등이다. 물론 상대남성 또한 건전하지는 않겠지만 백작, 군인, 하녀를 거느리는 주인등 사회적 권위가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들은 대개 남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여성들은 비교적 수동적인데 당대의 분위기가 희곡 속에 녹아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아나톨' 테마의 8작품이 인상 깊었다. 아나톨은 신경쇠약증 환자 같았다. 극도로 민감하고 신경질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는 심지어 그 동안 만나왔던 여자들에게 각 각의 이미지에 맞는 짧은 문장들이나 단어를 부여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물건들을(머리카락, 먼지도 있음) 비닐팩에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자 친구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지만 여자친구에게는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든지 이별통보를 하러 나선 자리에서 이별 통보를 당하고는 억울해 하기도 한다. 뭐랄까. 이 책은 절대, 절대 줄거리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작가의 문장들을 직접 맛보지 않고서는 미치광이 이야기들처럼 느껴질 뿐이다. '읽는' 다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 없이 다른 어떤 걸로도 이해할 수 없는(이해하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마지막 '구스틀 소위' 이 작품은 오로지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혼자 하는 생각을 글로 옮겨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구스틀 소위는 오페라를 보러갔으나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어지러운 상태다. 그는 제빵사와 사소한 다툼을 하게 되고 그 다툼으로 인해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죽음을 실행에 앞두고 그 제빵사가 뇌졸증으로 급작스레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고 자살을 포기하고 기쁜 마음에 열심히 살기를 결심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책은 난해하다. 하지만 희곡의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나 구스틀 소위의 속말들을 읽으며 그들의 심리상태나 관계, 감정들을 쫓아가는 재미가 있다. 희곡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그러할 뿐 극적인 요소도 없고 대개 잔잔하게 이어진다. 병적일 정도로 불안정하고 감정의 폭이 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이 작품을 '문학 작품이라기 보다 병원 검사 기록에 가깝다' 고 할까. 그러나 나에게는 그들 간의 대화에서 독자만이 찾아낼 수 있는 공간을 즐기며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아나톨'의 서곡에서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말한 문장들. 나는 마치 그것들이 이 작품을 요악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것들을 여기 옮기며 마친다.
....(상략).... 자 우리 연극을 하자, 우리 자신의 작품들을 공연하자,
일찍 성숙했고 부드러우며 비극적인, 우리 영혼의 비극, 우리 감정의 오늘과 어제,
사악한 것들의 아름다운 형식, 매끄러운 말들, 화려한 그림들, 절반의, 비밀스러운 느낌,
죽기 전에 몸부림, 에피소크...... 몇몇 사람은 귀를 기울인다, 모두는 아니리......
몇몇 사람은 꿈을 꾸고, 몇몇은 웃는다. 몇몇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리고 또 몇몇은 매우 도색적인 것들을 이야기 한다.....(하략).... p.123, 124
이슬람 국가들의 여성들은 노출을 막기 위해 히잡, 부르카, 니캅 등을 착용한다. 이들 중 부르카는 눈 부분조차도 망사로 숨긴다. 요즈음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이 공공 장소에서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을 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아프카니스탄 출신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에서 작가는 여자 얼굴은 오직 남편만 볼 수 있다며 부인에게 부르카를 입혀놓고 자신은 금발 미인이 가득한 누드 잡지를 보는 수많은 카불 남자들의 이중성을 폭로하기도 했다. 여성의 노출을 죄악시 하는 이슬람국가. 하지만 옷으로 감출수록 남성들의 에로틱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혹자는 말한다. 가린다고 다 능사는 아닌 듯.
욕망. 성에 대한 욕망. 목이 마를 때의 갈증과 같은 성에 대한 욕망.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이러한 욕망이 그저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말하는 욕망. 즉 물길을 막으면 홍수가 나는 것처럼 욕망을 감추고 막으면 오히려 욕망은 한꺼번에 터져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성적 욕망은 간단하게 벌할 수 없는 자연적인 본능이라는 것이다. 부인은 부르카로 돌돌 말아 감춰 놓으면서 자기 자신은 도색 잡지를 보는 카불 남자들의 모습처럼 자신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묘사됨을 보고 그 당시 찔림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라이겐이란 유럽의 춤 형태를 빌려 열 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함이 묘한 기분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읽었다. 나의 배우자님께서는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책을 읽느냐며 발끈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잘 모르고 하는 말씀이다.
<라이겐>, <아나톨>도 흥미로웠지만 나는 <구스틀 소위>도 정말 큰 웃음을 터트리며 읽었다. 머릿속으로 구스톨 소위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말이다.
왠지 허풍쟁이에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경솔하기 짝이 없는 구스톨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보다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전전긍긍하며 쉽게 자살까지 결심하는 모습. 이 모습을 통해 슈니츨러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하여튼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그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에 이 작품 때문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 중 제국의 군대는 군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슈니츨러에게서 장교 직위를 박탈했으니 말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뭐랄까? 이 작가 참 마음에 든다.
라이겐(reigen)은 슈니츨러가 쓴 희곡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reigen을 번역한 윤무(輪舞)라고 제목을 달았으나 이 책은 특이하게 독일어 그대로 라이겐으로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의 내용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10쌍의 남녀가 차례로 성적인 대화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0년에 출판될 당시에는 신분에 관계없이 남녀가 정욕을 탐하는 것을 직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나 지금 보면 크게 선정적인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시대가 많이 변했다.
이 책과의 만남은 표지그림 때문이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 '앉아있는 소녀'. 에곤 쉴레의 그림은 전부터 참 좋아했는데 작년 여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을 하며 더욱 관심을 갖게 된 화가이기도 하다. 때마침 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가는 곳곳마다 그의 그림으로 만든 포스터와 플랜카드가 펄럭여 한참을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여행 일정상 그의 전시회는 갈 수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의 그림을 더 찾아보게 되었고 그 그림들은 하나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이야기거리를 가진 듯한 인물들. 아무튼 나는 이 책의 표지에 눈길을 빼앗겼고 그것이 이 책을 좀 더 살펴본 계기가 되었다.
[출처] 아르투어 슈니츨러 <라이겐>|작성자 매우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