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는 생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블레즈 파스칼이 쓴 책이다. 파스칼이 죽은 1670년 그의 유족과 친척들이 파스칼의 글 묶음을 모아 종교 및 기타주제에 대한 파스칼씨의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펴낸 것이 팡세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기독교를 설명하고 전도하려는 목적에서 썼기 때문에, 예수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비교하는 등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변증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인간의 조건
변덕, 권태, 불안
에릭 로메르는 <모드집에서의 하룻밤 My Night At Maud's>(1969)에서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Pensees>(1670)의 단편들을 가지고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로메르는 파스칼을 너무나도 존경하는 나머지 아예 파스칼이 태어난 지방 프랑스 중부 산악지대이며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클레르몽페랑(을유문화사 번역본의 저자 현미애는 프랑스 끌레르몽페랑 블레즈 파스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에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 활용하였다.
여기서 로메르는 팡세의 본래 목적이었던
‘기독교를 설명하고 전도하여 모든 사람을 신앙으로 이끌기 위한 의도로 쓴 것으로, '기독교 변증론'을 쓰기 위한 재료’
의 텍스트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들을 대부분이 배재하고 그 나머지에 주목한다.
지금은 지키기 힘든 도덕이라는 개념과 혹은 당위성의 명제라는 법률이라는 체계와 그 반대편의 자리 잡고 있는 시스템의 변화을 가져올 저항권의 용어가 서로 대립되고 있는 지점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 그의 영화 속에서 ‘팡세’를 끌어온 이유였다.
블레즈 파스칼은 흔히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파스칼의 신학적 업적 중 가장 특기할만한 것이 바로 팡세이며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팡세는 그가 죽을 때 <팡세>는 아직 미완성이었다.
파스칼의 자필에 의한 판본이나, 손상된 내용이 많다. 포르오와얄 판(1670년)이 파스칼 사후 남긴 친필들을 묶어 펴낸 최초 판본이다. 이 책에는 그의 기독교적 변증이 담겨져 있는데, 그는 자신을 신학자이자 철학자의 입장으로 두고 저술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술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몽테뉴와 같은 회의주의자들과 데카르트 같은 합리주의자에 대해 자신의 변론을 펼치며 사상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첫 구절
“ 1-37 온 세상에 울려 퍼진 시편, 누가 마호메트를 증오하는가? 그자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증거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란다. 증인의 자격은 증인들이 항상 존재하고, 도처에 있으며, 그리고 비참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는 혼자다”
로부터 시작한다. 이 이상하면서도 난해한 구절을 바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책의 구성이 이렇게 바로 생각나는 듯 한 단상을 가지고 그 글귀를 정리 없이 휘갈겨 쓴 덕분인데, 이렇게 전체적인 문장의 구성이 숫자를 매긴 다음 그 뒤로 짤막한 알 수 없는 글귀들이 구성되어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 당시의 철학자들의 핫 트렌드와는 동떨어진 결과였다.
17세기 유럽은 막 인간의 존재에 묻기 시작한 이성주의의 시대였으며 회의주의의 시대였다. 철학자들은 무지한 인간에 대해서 계몽이라는 백색물질을 들고 다니면서 대중들에게 호된 채찍질을 가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파스칼은 다시 기독교에 대한 근본원리에 대해서 묻기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그가 명료하며 정확한 수치만이 존재하는 세상 즉 수학과 과학의 증명 너머의 영역이였던 불가지론의 배경이었던
‘신을 직관(直觀)하는 것은 심정(心情)이며, 이성(理性)이 아니다. 이것이 즉 신앙이다.’
라는 명제를 증명해 나가고자 하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파스칼이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프로젝트였다. 현대인들에게 도덕심의 발현의 기원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신앙, 사랑, 이성, 모더니즘을 넘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로 돌입하려는 순간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파괴와 해체의 순간을 방해하는 무의식의 정신적 세계의 도출이었다. 지금 다시 한 번 팡세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