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에서 유일한 3부작이라는데,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돼 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아가멤논과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 딸 엘렉트라, 아폴론, 아테나, 헤르메스 <=> 아가멤논의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 사촌이자 오촌인 아이기스토스, (죽었지만 딸 이피게네이아), 복수의 여신들로 대립돼 있다. 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인 남편 아가멤논에 대한 클뤼타이메스트라의 복수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 대한 오레스테스의 복수가 전면에 나타나 있지만 깊이 들어가보면 먼 조상 탄탈로스로부터 시작된 가문 대대로의 피의 저주(친족 살해)가 얽혀 있다. 오레스테스의 손에서 복수가 종결되고 무죄방면됨으로써 가문 대대로 내려온 저주에서도 해방된다.
이 가운데 인간세계에서 내 보기엔 모계혈통에 대한 부계혈통의 정통성이 더 부각되고 결국엔 부계혈통이 승리한다. 중재자인 아테나 여신이 캐스팅 보트로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주는데 이유는 순전히 그녀가 어머니의 자궁이 아니라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역할을 크게 인정하지 않아서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라고 신탁을 준 아폴론이 오레스테스에게 아테네로 가서 탄원하라고 한 것도 다 이런 일을 내다본 안배로 보인다). 심지어는 여자가 자식에게 유전형질을 함께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씨앗을 자궁에 품고 양육하는 존재로서만 인정하는 발언을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부장적인 사회상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특이한 것은 오레스테스와 클뤼타이메스트라에 대해 '오염'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도 나오던 표현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부정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인물에 대해 '오염'이라고 하나본데, 이 말이 소포클레스의 전유물은 아닌가 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트로이 전쟁을 재판에 비유하고, 오레스테스의 판결에 대해서도 인간의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다. 신들이 나오지만 <일리아스>처럼 인간의 전투현장에서 함께 임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라는 어떤 합리적이고 도시국가적인 장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과정이다. 신들은 거기에 변론을 더하고 부추길(신탁) 뿐이고 결국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리고 오레스테스의 무죄방면 뒤 감정적으로 폭주할 뻔했던 복수의 여신들을 이성적인 아테나 여신이 잘 설득하여 그들을 도시국가에 축복을 주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변모시킨다.
작품에서 신들의 신구갈등도 함께 나타난다. 복수의 여신들은 아주 늙은 신들이고 아폴론, 아테나 등은 젊은 신들이다. 이 두 진영 사이의 가치관의 대립이 오레스테이아의 재판을 통해 부각되는데 결국 위와 같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전체적으로는 오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가문의 저주를 끊고 새로운 후계자, 통치자로 나선 오레스테스 이야기를 통해 합리적, 이성적 가치관이 주도하는 도시국가로 나아간다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스퀼로스 - 오레스테이아 3부작(2015, 기원전 458년)
을유문화사, 272p
기원전 458년에 무대에서 공연된 오레스테이아 3부작
일리아드에서 시작된 트로이 전쟁이야기의 후일담은 지금까지 본 것만 <오디세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이 책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까지 3가지다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아가멤논 ->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 자비로운 여신들 로 구성된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 때 바람이 불지않아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이에 원한을 품은 왕비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정부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하여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이에 분노한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 딸 엘렉트라가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다. 이 과정에서 복수의 여신들의 분노를 사게되고 아폴론의 도움으로 아레스의 언덕으로 도망친다.
아레스의 언덕에서 아테나의 주재로 복수의 여신들과 오레스테스에 관한 재판이 벌어지고 심원 투표결과는 가부가 동률이었는데 아테나가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주어 무죄가 된다.
여기서 궁금했던 게 똑 같은 복수극인데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딸의 복수로 아가멤논을 살해한 것은 용서하면서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를 처벌하려는 이유였는데, 복수의 여신들에 의하면 부부간은 피가 이어지지 않아 해당되지 않지만 어머니를 죽인 건 존속살해라 자신들의 처벌 대상이라고 한다.
아가멤논와 아이기스토스는 서로 사촌간인데 아버지 대에서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에게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 튀에스테스가 당한 이력이 있다.
왕권다툼에서 승리한 아트레우스가 튀에스테스의 자식들을 죽여 튀에스테스에게 먹인 끔찍한 일이다. 중국 은나라 말기에 주문왕 희창이 상나라 임금의 수작으로 아들의 살로 만든 죽을 먹은 일화가 연관되서 생각난다.
그러고보면 아이기스토스가 아가멤논을 죽인 것도 복수이고 이들은 혈연관계인데 왜 복수의 여신들이 아이기스토스는 그냥 두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며 전개가 매우 익숙함을 느낀다. 매우 고전적인 (이 책이 고전이라 어불성설이지만) 복수극의 스토리를 따르고 있다. 원한, 귀향, 복수의 여정들이 그렇다.
이런 형식의 글들도 여러 편 읽다보니 나름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2부 시작부분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가 만나는 장면은 매우 극적으로 그려져 있어 산문으로 쓰여졌다면 그 맛이 잘 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스토리에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단어도 나왔는데 사실 엘렉트라의 역할이 그리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내용적으로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이리 분노한 이유에 공감하기 힘들다. 아가멤논이 살해 당한 원인은 자신의 딸, 그러니까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친형제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인데 얼마나 남성중심 사회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아테네의 재판에서 아폴론이 오레스테스를 지지하는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은 자가 아니라 새로 뿌려진 태아를 보살피는 자에 불과하다.
어머니 없이도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아버지 없이는 어느 부녀자도 낳을 수 없다."
이런 시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