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악이 공존하는 자아를 지킨다는 것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접했다.
결론도 알고 있는 터지만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
순수한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느낌과 세상 풍파를 조금 겪은 불혹의 나이에 읽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인간은 진실로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진실로 이중적 존재라는 것
인간에게 내린 저주는, 서로 맞지 않는 이 두 막대기들이 한 단에 묶여 있다는 것-의식의 고뇌하는 자궁 안에서
극과 극으로 갈린 두 쌍둥이가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이 둘을 서로 떼어 놓는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삶 속에 분명히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즉, 내 안에 선과 악이 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자아를 인식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그것이 바로 인간 삶의 숙명이 아닐까?...
악을 자행하고, 그 저지름에 대한 어떠한 가책과 죄스러움없이 일상을 살 수 있다면, 그 경험을 한 번 해본다면, 다시 또 경험하고 싶을까? 쾌감이 느껴질까? 그에 익숙해질까? 이런 생각은 여지껏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을유문화사에서 처음으로 세계문학을 접한 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존 니컬슨>을 읽고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정말 지킬처럼 끝내는 그 악이 나를 삼켜버리고,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나를 제압할까? 그렇다면 정말로 소름돋고 무섭다. 가끔씩 드러나는 나의 추함과 고함소리, 양심을 저버리는 일상의 몇몇 선택들이 어쩌면 나스럽고 무한히 악에 가까워지지만은 않는 조금은 이중적이고 중립적인 내가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의사가 그의 계획대로 약을 조제하여 마신 후, 철저히 추앙받고 존경받는 박사의 모습과 혐오스러운 하이드라는 운명을 번갈아 산다는 작가의 상상에 꽤 호기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자의를 벗어난 두 분열된 자아 모습에서 심히 괴로워하다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지킬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애처롭고 안타깝다. 친구에게 말 못했던 그의 상황, 그의 고뇌, 그의 고통 등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비교적 가볍게 읽기 시작한 것이 꽤 고민스러운 사색거리를 안겨준다. 이 책.
1800년대에 씌여진 책이 현대사회의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의 모습과 자녀의 모습을 많이 담고 있어
읽는내내 깜짝 놀라게 된 책.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영특하지 못한 맏아들의 계속되는 실수투성이들 그리고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고지식한 아버지를 피해 멀리 떠나버리기로한 주인공 니컬슨.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 했다. 이러다가 주인공 정말 어떻게 되버릴것같기도 하고 여러가지 수렁에서 과연 헤쳐 나올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똑똑한 동생의 기지로 무사히 문제를 해결하고 아버지와도 화해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누군가는 그랬다.
고지식한 부모의 자녀들은 힘들다고~
아이들의 일탈행동 뒤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고 부모로서 적어도 이유정도라도 들어줄수있는 포용력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스티븐스의 두 가지 작품을 한 권이 실었다.
대조되는 주인공이 나와 마치 한 권을 읽은 것 처럼 재미있었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
지킬박사는 착한 사람인데 난 그 이름이 더 괴기스럽다.
이 이야기는 해리지킬의 친구인 변호사 어터슨이 지킬의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식이다.
(내용인즉)
체구가 크고 얼굴이 둥글고 능력 있고 친철한 오십대 남성인 지킬과
불쾌하고 혐오스럽고 무슨 기형의 느낌과 싫은 느낌을 짙게 풍기는 눈에 띄게 작고 눈에 띄게 사악한 인상인 젊은 하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해리 지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름할 수 없는 형벌과 위험을 나 스스로 초래해서 받고 있어 ~ 이 숙명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은 내 침묵을 존중해 주는 것"
"나의 약점 중 가장 나쁜 건 조급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뿐이며 자신의 쾌락을 숨기기 위해 심각한 이중생활이 습성으로 굳어졌다. 대다수의 사람보다 훨씬 깊게 사람의 속성인 선과 악의 영역을 내 안에서 갈라놓았다"
"인간은 진실로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이중적(선과 악) 존재다."
"인간에게 내린 저주는, 서로 맞지 않는 이 두 가지를 한 단에 묶은 것이다."
'이 둘을 서로 떼어 놓는다면?'
이 의문에 답을 찾아 스스로 위험을 초래했다. 그리고 두 가지 결과를 얻었다.
하나는 그 저주와 짐은 인간 평생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연구가 실패해 자신이 순수 악이 되어간다는 것이었다.
지킬의 본성에서 덜 발달한 새로운 힘인 악은 점점 커져 그를 지배해 약도 먹지 않았는데 하이드로 변했고 이제 약을 먹어야 지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자기 기분에 맞춰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니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독하고 악랄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양심이 잠들다", "양심을 무시해 볼까?" 하면서
약물의 즉각적인 효과에서만 지킬의 외관을 지탱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사형당할 두려움이 아니라 하이드가 될 공포에 더 괴로워했다.
하이드는 지킬이 자살을 통해 그와 인연을 끊을 힘이 있음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리고 끝내 누군가는 자살을 하고 만다.
그게 누구였을까 ?
지킬인가? 하이든가?
(깨달은 것)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질문"과 선과 악의 분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선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지킬의 친한 친구중 래니언은 호기심 때문에 죽고 어터슨은 살았다.
사실 양심에 가책 없이 쾌락을 즐기길 바랐던 지킬도 호기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책에선 질문을 "뭘 함부로 캐묻는 영 꺼려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질문은 호기심이기도 하며 목적이 있어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왜 ~ 알고 싶은 것일까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목적인가?
우리 사회엔 날 위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목적을 숨기고 뭘 캐묻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런 사람과 얘기하고 나면 왠지 사기당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만을 위한 목적을 숨기고 함부로 캐묻는 행위"
나 래이언이 그랬기 때문에 죽었다고 본다.
그런 행위한 날 위한것 같지만 결국 날 죽이는 행위인것 같다.
두번째는 내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선할 수 만도 악할 수 만도 없다.
기준을 정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고 내 안에 두 가지가 공존함을 인정해야할것 같다.
(적용할 것)
나를 위한 목적을 숨기는 질문은 피하자
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맞춰 착한행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착하게 대하고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한텐 악하게 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