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국민소설로 일컬어지는 볼레스와프 프루스의 『인형』이 출간되었다. 사실 폴란드 문학은 낯설다. 쇼팽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츠키에비츠 등의 이름은 알게 되었지만 영 멀게 느껴진다. 곰브로비치 정도가 그래도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닌가 한다. 어찌 되었든 을유세계문학으로 만나게 된 『인형』은 너무 재미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소설의 세계로 푹 빠지게 되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소설의 배경은 1877년에서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있던 시기의 폴란드 바르샤바이다. 서유럽에서 불어오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운은 폴란드 사회 공고하였던 계급적인 위계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중이다. ‘출생과 재산’이 작품의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죽은 아내가 남긴 상점을 가진 보쿨스키는 충분히 부자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서 큰 돈을 벌어온다. 40대 중반, 부자에다 미혼인 그를 노리는 사람은 많지만 보쿨스키의 마음은 웽츠키 집안의 아름다운 이자벨라에게 향해있다. 살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오만한 이자벨라는 보쿨스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이 사업가의 마음을 알아챈 사람들은 충고하곤 한다. 그런 식으로는 아가씨의 마음을 살 수 없어요. 덫을 놓으려면 확실히 강제해야 해요. 이에 보쿨스키는 대답하곤 한다. 지배하지 못한다면 절대적인 자유를 허용하고 싶습니다. 보쿨스키는 이자벨라를 숭배하고, 그녀의 무심함에 가슴을 끓이면서도 감정을 끊지 못한다.
보쿨스키의 어설픈 계략, 아니 구애는 이자벨라에게 닿지 않는다. 첫째, 보쿨스키는 귀족이 아니며 둘째, 그는 대토지를 소유한 것이 아닌 상점을 가진 사업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쿨스키가 이자벨라를 위해 벌이는 구애는 그녀에게 그를 ‘짝’이 아닌 집사나 어떤 기계의 부속품 정도로 인식하게 할 뿐이다. 소설은 보쿨스키가 뛰어드는 귀족의 세계에 도사린 허영과 무지, 특권의식 등을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 백작이 폴란드 사교계에서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다. 푸른 피는 별 것 아니오, 그냥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것이지. 시대는 변하고 있다네. 폴란드 귀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고 이해도 하지 못한다.
보쿨스키를 돕는 변호사는 그를 처량하게 생각하여 이렇게 말한다. 귀족들에게는 의지의 병이 있다네... 추진력이라곤 없는 그들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렇다면 보쿨스키라는 인물은 어쩌다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된 것일까. 젊을 적부터 보쿨스키는 의지가 대단한 인물로, 모두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당당히 과학을 탐구하였다. 1963년 러시아에 대항한 봉기에 참여하여 시베리아 유형을 당하였고, 그 곳에서 사업을 벌여 재산을 좀 모은다. 바르샤바로 돌아와서는 오랜 친구 제츠키의 조언으로 상점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를 눈여겨본 여사장의 유혹을 거절하였으나 끝내는 혼인하게 된다. 이는 자신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젊음과 사랑을 돈과 바꾸었다는 죄책감은 의부증에 가까운 아내의 집착과 함께 서서히 그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아내가 죽고, 재산을 상속받았지만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그를 구원한 것은 바로 이자벨라였다. 순전한 아름다움, 순수한 오만. 이자벨라의 주변을 맴돌지만 존재조차도 인식당하지 못하시를 오랜 시간, 보쿨스키는 그녀에게 구애하겠노라 다짐하며 전쟁터에서 큰 돈을 벌어온다. 이자벨라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벌이기도 하고, 그녀의 집을 크게 손해보며 구입하기도 하지만... 이는 계략조차 되지 못하는, 사랑에 발로한 어리석음일 뿐이었고 이자벨라의 변덕에 어울리느라 보쿨스키의 사업도 위태로워진다.
경제관념이 없는 귀족들은 그를 돈줄로만 여겼기에, 보쿨스키가 이자벨라를 위해 벌인 일들은 일종의 계급투쟁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자벨라의 행동들은 허영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그녀가 허영 그 자체로 느껴진다. 그런 세계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언젠가 영어를 못한다고 그를 무시했기에 보쿨스키는 영어 과외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이자벨라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똑똑히 알게 된다. 오랜 친구 제츠키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쿨스키를 염려한다. 보쿨스키는 소리친다. 나도 살고 싶어, 나도 살고 싶단 말이야. 나는 왜 사랑을 하면 안 돼? 이 많은 재산이 무슨 소용이야. 나를 태우면 한 줌의 재만 남겠지...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서! 라는 보쿨스키의 외침은 얼마나 공허한가. 돈 쓰는 자신을 경멸하는 보쿨스키, 비스와 강 언덕 너머의 비참을 보고 마음 아파하는 보쿨스키, 사회는 개인의 힘으로 구제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타인을 도우려는 보쿨스키를 보며 참 가슴이 저려왔다. 돌아보지 않는 상대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알기에. 눈길 닿는 곳들을 질투하다가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현타를 맞는 보쿨스키. 나이에 맞지 않은 순수한 감정을 보노라면 이자벨라와의 나이 차이도 잊게 된다. 두 사람은 거의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자벨라가 상대의 면면을 따지는 동안 보쿨스키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도 그녀의 속성을 꿰뚫어 보았는지도 모른다. 보쿨스키가 보는 이자벨라는 뭔가 신비로운 존재로, 그 아름다움과 기품은 성상화에서 빠져 나온 듯한 분위기처럼 느껴진다. 좋은 교육을 받은 지성은 또 어떠한가. 언젠가 어떤 동화에서 진정한 공주는 일곱 겹 매트리스 아래 콩 한 알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쇠락한 저택의 기운에도 아랑곳 않는 보쿨스키... 그를 단순히 계급이라는 어떤 트로피를 얻기 위한 야망있는 사내로 볼 수는 없다. 세라 워터스의 『리틀 스트레인저』는 헌드레즈 홀로 상징되는 계급을 손에 넣으려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2차대전 이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계급이라는 선이 느껴진다.
사실 보쿨스키는 귀족이다. 어릴 적부터 명철했던 그는 계급에 매달리는 아버지를 어리석다 생각하고 상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가 대토지, 장원을 가진 귀족이 아닌 다음에야 이자벨라가 눈 하나 깜짝 할까. 그를 보며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큰 돈을 벌어 온 인물들을 떠올렸다. 에밀리 브론테의 히스클리프, 제인 오스틴의 웬트워스 대령, 피츠제럴드의 개츠비까지... 이들이 보쿨스키와 다른 점은 여자 주인공의 사랑과 애정을 한때나마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이유로 그들을 배신하였고, 그에 상처를 입어 전쟁이나 불법에 손을 담가 재산을 모아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해 돌아온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적절하게 여주인공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보쿨스키는 이도 저도 아니다. 그는 잘생기지도 젊지도 않다. 계급도 보잘 것 없고 재산은 많지만 시내에 있는 상점을 운영하는 사업가이다. 대학에 다녔지만 중퇴했고, 귀족들이 중요시하는 교양도 갖추지 못했다. 이자벨라를 위해 벌인 일들은 그녀의 자존심을 다치게 했고, 첫 단추를 잘 못 꿴 탓인지 인상도 좋지 않았다. 그가 연애에 빠삭하거나 아니면 교묘하기라도 해서 이자벨라를 빠져 나올 수 없는 덫에 빠뜨리기라도 했다면 좀 나았을까.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 과정은 정말 비참하기까지 해서, 이자벨라와 이루어지기보다는 그녀를 깨끗이 잊고 새출발하기를 바랐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랬다.
보쿨스키의 로맨스가 그려지는 동안 과거와 현재 사회는 제츠키의 회고로 메워진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며 1848년 헝가리 혁명에서 혁명군 측에 입대하여 전장을 다녀온 이야기, 보쿨스키의 과거 및 현재 상점이 어떻게 운영되며 사장의 평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귀족들의 반응은 어떠한지와 같은 내용들이다. 집안에서 이자벨라의 좋은 짝이 될 것이라 여겨지던 오호츠키는 젊을 적 보쿨스키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인데, 과학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 이야기가 제츠키와 보쿨스키로 흘러가는 걸 보면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오호츠키가 아닐까 한다. 위인의 헛된 희망은 그를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마음이 아프다.
표지에서부터 안나카레리나 나 오만과 편견같은 고전이 연상되는 바로 읽고 싶은 생각을
내는 책이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지? 이 여인을 중심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증을 자아내며 그렇게 시작되는 책이다.
폴.란.드.
한번도 가 본적 없고 그렇게 익숙하게 알고 있지 않은 나라이지만 작품속에서 묘사되는 폴란드는 다른 유럽국가보다 오히려 정서상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인지 다른 영국이나 러시아의 소설처럼 딱딱하거나 너무 깊거나 무겁지 않고
단순하면서 그렇다고 무작정 가볍지만은 않았다. 번역이 잘 되어서 그런가 몇 번인가 책의
앞뒤를 들춰볼 정도로 세부적이지만 에두름이 없고 그래서 더욱더 등장인물들의 관계에서 사람의 욕망과 각자가 추구하는 세계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여인 이자벨라의 무심함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저 연심으로 앞뒤 안재고 달려드는 보쿨스키의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그런 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의 백미는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을 둘러싼 관계와 배경속에 때론 그들의 화려함을 담보로 한 여러가지 형태의 아픔과 절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지금의 세태와도 전혀 동떨어져 있지 않아서 깊이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이 다양한 색깔로 섬세하게 보여주는 새로움으로 왜 폴란드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 이 인형이 손꼽히는지 알 것 같다. .
한 남자의 모든 걸 건 사랑이 시작된다.
보쿨스키는 이자벨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하고 위험한 일로 큰돈을 벌어 돌아온다.
하지만 대귀족의 틀 속에서 사랑보다 그 틀을 지켜줄 보호자를 찾는 여자에겐 그는 어떤 존재일까?
사랑 안에서 신분과 재산은 어떤 의미인가?
도대체 보쿨스키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읽는 내내 "위대한 캣츠비"도 떠오르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도 떠올라 안타까웠다.
두 권으로 총 1,200쪽에 달했지만 수많은 등장인물과 그 시대가 잘 묘사되어있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자기 환상이 만든 상대를 사랑하는 건 아닐까 !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향해 매진하는 여러 인물을 보며 내 사랑을 비춰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