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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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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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희곡/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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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저/김영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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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 문예 세계문학선 114
게르트루트 - 문예 세계문학선 067
헤르만 헤세 저/송영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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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 저/박용수 역
걸리버 여행기 - 문예 세계문학선 079
1984 - 문예 세계문학선 07
조지 오웰 저/김승욱 역
1984 - 문예 세계문학선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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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그리스 비극, 슬픔에 대처하는 '정석'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 2024.09.07 리뷰제목
[My Review MDCCCXII / 문예출판사 6번째 리뷰] 이 책에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모두 4편 실려 있다. 실려있는 순서대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코에포로이>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다. 모두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맞서 고뇌하고 고통받는
리뷰제목
[My Review MDCCCXII / 문예출판사 6번째 리뷰] 이 책에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가운데 '아이스킬로스'와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모두 4편 실려 있다. 실려있는 순서대로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코에포로이>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다. 모두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비극적인 소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맞서 고뇌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아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 그리스에서 유행한 것일까? 이에 대해 많은 문학가들은 '인간의 위대함과 존엄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논한다. 신이 정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또한 그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지만, 그 절망적이고 가망 없는 투쟁 속에서도 인간은 타협을 거부하고 파멸을 자초하면서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찾아내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정해진 운명'에 맞서 싸우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인간다움'을 보여준다 하겠다.

그렇다면 뭐가 '인간다움'이란 말인가? 그리스 비극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그야말로 '참담함, 그 자체'다. <아가멤논>에서는 아내가 내연남과 짜고서 남편을 독살하고, <코에포로이>에서는 아들이 어머니와 내연남을 죽이며 아버지의 복수를 대신한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더 심하다.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는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안티고네>는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하겠다. 꼭 지켜야 마땅할 '국법 vs 도덕'의 갈등을 최고조로 보여주며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고뇌케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느 작품이나 비극적 상황을 묘사하지만 후대로 갈수록 '비극적 주제'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수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이런 까닭에 많은 문학가들은 아이스킬로스를 '비극의 창시자'라고 부르고, 소포클레스를 '비극의 완성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비극의 매력'은 갈등양상을 벌이는 양쪽 모두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 한 쪽의 편을 쉽사리 들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비극에 푹 빠지게 만드는 이유라고 하겠다. <아가멤논>에서 아내(클리타이메스트라)가 남편(아가멤논)을 죽이기 위해 내연남(아이기스토스)까지 끌어들이는 '부정적인 일면'만 소개하는 일이 많은데, 사실 아내가 마땅히 사랑하고 존경해야할 남편이라는 작자가 '딸(이피게네이아)'을 전쟁 출정식의 산 제물로 갖다 바친 것에 대한 복수였던 것이다. 이는 어머니라면 당연히 가졌다고 보는 '모성애'를 공격한 남편의 천인공로할 만행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아니겠냔 말이다. 그러나 전쟁영웅이기도 한 남편을 죽이기에 힘이 모자랐던 아내는 남편을 죽이기 위해 '내연남'을 꼬드겼고, 이러한 '아내의 불륜(?)'은 예나 지금이나 금기시 되고 동정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코에포로이>는 <아가멤논>의 뒷이야기에 해당한다. 남편을 살해하고 내연남과 함께 국가를 통치한 클리타이메스트라의 친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아가멤논)의 복수'를 위해 고국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들은 부정한 짓(!)을 저지른 어머니와 내연남을 처지하며 복수에 성공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국가의 백성들은 행복한가? 아무리 '왕족의 운명'과 공동운명체(?)인 백성들이라고해도 민주정치의 원조라 자랑하던 그리스국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더구나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영웅들이 살아 숨쉬던 시절을 배경으로 삼았는데, 그런 영웅들이 고국으로 되돌아와 통치에 참여한 모습은 전혀 비춰지지 않는다. 이것이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의 한계점이다. 비록 '비극의 창시자'라는 칭송을 아낌없이 받고 있지만, '비극,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그냥 '한 가문(왕족)의 몰락'만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그에 반해 소포클레스는 좀더 심오한 내용을 담았다. 비록 '오이디푸스 왕'이 겪은 불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오이디푸스가 다스리는 '테바이'라는 나라가 겪는 풍파와 테바이 민중들이 겪는 고난까지 작품내용의 전개에 중요한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오이디푸스 왕>은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오이디푸스가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결혼을 한 것에만 초점을 맞춰 '성도착증'이라는 성욕구만 해석을 해버리는 편파적인 결과만 부추긴 점이 아쉽다. 사실 오이디푸스 왕은 테바이를 아주 잘 다스리던 훌륭한 군주였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점은 싹 가려지고 그저 비이성적인 성욕구에 대한 그럴듯한(?) 분석만 남겨놓았으니 억울할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군주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었는데, 테바이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면서 테바이는 '판데믹의 위기'로 빠져버리고 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델포이 신전으로 신탁을 받아 오지만, '도덕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이'가 테바이에 몰려온 위기의 원인이라는 애매한 말만 돌아왔을 뿐이다. 지혜로운 오이디푸스 왕도 이 수수께끼 같은 신탁을 해석하지 못해 고민하게 된다.

오이디푸스 왕이 지혜로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테바이의 왕이 되기 전에 괴물 '스핑크스'가 테바이를 공포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는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고서 풀지 못한 나그네들을 잡아먹기로 유명한 괴물이었는데, 이 괴물이 낸 수수께끼를 이방인이었던 오이디푸스가 답을 맞추고 스핑크스를 처지해서 때마침 테바이의 왕이었던 라이오스가 의문의 죽음(!)을 맞아 자리가 빈 임금자리를 오이디푸스가 차지하게 되었고, 살아있는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을 해서 '테바이 왕가의 혈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오이디푸스의 등장은 테바이로서는 국난극복을 해낸 영웅의 등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고, 그런 오이디푸스 왕이 테바이를 다스리는 동안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평화로운 테바이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돌면서 테바이를 '죽음의 나라'에 버금갈 정도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받아온 신탁이 '부도덕한 인물을 추방해야 한다'는 내용이니 지혜로운 오이디푸스마저도 풀지 못한 숙제가 되어 버린 셈이다.

이렇게나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이란 것이 '부도덕한 인물'을 색출하여 마땅한 벌을 받게 하고 테바이에서 추방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최고통치자인 자신부터 이를 실천하겠노라고 엄숙한 맹세까지 한다. 그 부도덕한 인물을 추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두 눈을 찔러' 장님으로 만들겠노라고 말이다. 어찌 이렇게나 무서운 맹세가 자기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부도덕한 인물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인해 결국 그 장본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진실을 보지 못한 죄'를 씻고,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맹인거지가 되어 테바이를 떠난다. 자신이 왕이었을 때 그 '부도덕한 인물'을 아무도 도와주지 말라 명했던 탓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인간에게 내려진 무서운 운명에 벌벌 떠는 나약한 인간이 아닌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불운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멋진 인간에게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내지 않느냔 말이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면 당당히 벌을 받고 철저히 속죄하는 모습이 얼마나 '인간다운 행동'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그처럼 '인간다움'을 갖춘 인격이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힘들 뿐이다. 죄를 짓고도 비겁하게 '무죄'를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고도 '과거의 영예'를 끌어들여 오물을 덮고 고약한 냄새를 감추려 애를 쓰는 비겁자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고 있다. 심지어 비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비윤리적인 행동'마저 정상이라고 떠벌리는 비정상적인 세태까지 펼쳐질 지경이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리 부끄러운 짓을 떳떳하게 밝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인간을 방치하고 부도덕한 짓을 저지르는데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는 국민들도 '비정상'인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오이디푸스 왕>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비극'에 맞서 피하거나 굽히거나 굴하지 않는 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다. 오이디푸스의 행보 하나하나를 눈여겨 보아야 할 '시대적 위기'가 우리에게 닥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안티고네>는 무엇을 '지키고 따라야'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귀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오이디푸스 왕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고 테바이를 통치할 자리에 올라야 할 '마땅한 권리'는 당연히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에게 있었다. 바로 장자 폴리네이케스와 차남 에테오클레스다. 하지만 왕의 자리는 하나였기에 두 형제는 '선택'해야만 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합의'를 할 것인지, '싸울' 것인지 말이다. 비극적 운명은 이 둘에게 '싸움'을 종용했고, 둘은 못나게도 싸웠다. 물론 처음엔 장자에게 왕위가 돌아갔다. 하지만 외삼촌인 크레온의 야욕(?)에 의해 둘은 왕위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장자가 내쫓기고 차남이 왕위에 오르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억울했던 장자는 이웃나라에 '구원병'을 청하고 고국 테바이를 향해 창을 꼬나쥐게 된다. 이렇게 벌인 싸움에서 두 사람은 목숨을 잃어버리는 치명상을 당하여 죽고, 비어 있는 왕위는 크레온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왕의 자리에 올라 오랫동안 고난을 겪은 테바이를 바로 잡고자 '국법'을 내세웠으니, 조국을 위해 싸운 자에게는 명예롭게 하고 조국을 배신한 자에게는 불명예를 내리겠다는 모두가 이해할 만한 '합당한 법'을 공표한다. 이처럼 크레온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똑똑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극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불명예를 받아 마땅한 테바이의 배신자 '폴리네이케스'는 외국의 군대까지 끌여들여 조국을 공격했으니 그의 시체는 그 누구도 장례를 치루지 말 것이며, 들짐승과 날짐승의 먹잇감으로 방치해 둘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 명령을 어긴다면 '국법의 이름'으로 엄히 다스릴 것이라 함께 공지한다.

그런데 이를 어기는 사람이 등장하고 만다. 바로 폴리네이케스의 살아남은 혈육인 여동생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다. 안티고네는 아무리 국법으로 금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친오빠를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하는 국법을 지킬 순 없다면서 오빠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는 '도덕적인 행위'이며 누가 탓할 수도 없는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상식이 '국법'에 위배된다면서 안티고네는 스스로 죽을 운명을 지게 된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현명한 임금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까? 스스로 제정한 '국법'의 지엄함을 증명하기 위해 손수 사형을 해야 할까? 아니면, 비록 법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지켜야 마땅할 '도덕적 가치'를 위해 한 발 물러서서 '예외'를 두어야 할까? 허나 꼭 지켜야 할 '국법'에 예외를 둔다면 국법이 제대로 지켜질 리 없다. 누구라도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게 뻔하고, 그렇게 흔들린 '사법정의'는 끝내 무너져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정의구현'을 내세운다 한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꼭 지켜져야할 도덕적 윤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법으로 금한다 하더라도 '핏줄로 이어진 가족'이 지켜야 할 윤리가치가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가족 간에 치뤄야 할 '윤리규정'이 있다면 그것마저 금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비인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안티고네는 국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오빠의 장례'를 치룬 것이다. 세상엔 '국법'보다 더 소중히 지키고 따라야 할 '윤리가치'가 있다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중요하고, 우선 되어야 마땅할까? 나라를 바로 세우는 '사법정의'가 중요할까? 인간답게 살아갈 '윤리가치'가 더 우선해야 할까?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듯한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선 꼭 따져보고 현명한 대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소포클레스는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이 안티고네를 사랑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엄격한 국법'을 시행한 대가로 크레온은 아들과 아내를 동시에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한마디로 멋진 나라를 만드는데 성공했으나 사랑하는 가족은 잃어버린 셈이다. 허나 사랑하는 가족마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만든 '인간'이 만든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우리네 인생은 '비극'으로 얼룩져 있다. 한마디로 아름답기만 한 인생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 비극'은 인간들이 겪고 있는 비극보다 더한 슬픔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눈물의 정화)'라고 표현하며 슬픔을 겪으며 한바탕 울음과 눈물을 쏟고 난 뒤에 '마음의 찌꺼기'를 걸러내어 슬픔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극'을 예찬했다. 한편의 비극이 우리네 삶보다 더욱 슬픈데도 '비극적 주인공'이 슬픈 운명에 맞서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현실에서 맛볼 '평범한 비극' 따위는 가볍게 이겨낼 수 있다고 말이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한 오늘날에는 '비극'보다 더한 '막장 드라마'가 현실로 펼쳐지고 있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운명에 맞서는 당당한 주인공의 모습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그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현실이 우리네 삶을 시험케 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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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오이디푸스 왕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v*****7 | 2016.08.19 리뷰제목
어렸을 때 읽은 책 중 이처럼이나 상세한 역주가 달려 있는 텍스트는 처음 접했습니다. 고전 아니라 그저 시사 칼럼을 읽어도, 본론으로 접어 들면 독자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나 논리 체계가 많이 눈에 띄게 마련인데요. 어떤 저자, 논자, 작가도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 설명을 달아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텍스트 소통은 그처럼이나 일방적인 것이 많았음이 다시 환기되는
리뷰제목

어렸을 때 읽은 책 중 이처럼이나 상세한 역주가 달려 있는 텍스트는 처음 접했습니다. 고전 아니라 그저 시사 칼럼을 읽어도, 본론으로 접어 들면 독자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나 논리 체계가 많이 눈에 띄게 마련인데요. 어떤 저자, 논자, 작가도 그저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 설명을 달아 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텍스트 소통은 그처럼이나 일방적인 것이 많았음이 다시 환기되는 기억입니다. 이번 올림픽도 코치진과 선수 사이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그저 상명하달식으로 훈련이나 기술 수련이 이뤄지다 보니 이처럼이나 나쁜 결과가 나온 것 아니겠나 생각이 들고요.

설명이 상세하지 않고 그저 이런 줄 알아야 한다고 넘어가는 건, 그만큼 말하는 사람이 자신의 이론에 확신이 부족하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나이에 천병희 선생님의 저작을 접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죠. 사람이 자신의 머리 속에 정리된 지식이 많을수록 오류(자신의 것도 포함)가 눈에 자주 띄고, 글 한 줄을 설명해도 뭔가 환기되는 연관 지식 사항이 많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서양 고전(헬라어, 라틴어)을 두고 이 정도 경지에 이르기란 특히 지난 시절 척박한 교육 환경을 고려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되는데요. 언제나 이처럼 예외적 존재는 출현하게 마련이죠. 어느 분야에서나 말입니다.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사실상 주인공인 <아가멤논>에서 제가 처음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건, 역자께서 이 이름에 대해 "클뤼타이네스트라"라고 자음 하나가 빠진 채 표기된 판본도 있다고 역주를 통해 가르쳐 주는 대목에서였습니다. 후와, 벌써 바른 텍스트를 확정하는 작업 자체가 어려운 거구나, 그렇다고 이의 진위를 다수결에 기댈 수도 없는 일 아닐까 등등 더운 여름날 고전을 읽는 중학생의 머리 속에 온갖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체험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군요. 전장에서 갓 귀환하여 욕조에 피곤한 몸을 누이던 남편을 살해한 아내, 고귀한 출신에도 불구하고 한갓 천박한 욕정에 눈이 멀어 남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물에 마음과 몸을 준 이 캐릭터의 속내는 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 이름도 없이 주변에서 노래만 부르는 "코러스"들의 정체는 무엇이길래 이처럼 폐부를 찌르는 지적만 골라서 하고 있는지, 처음 접하는 고전 희곡 포맷의 생경함도 어린 독자의 흥미를 구석구석 찔러가며 자극했던 추억이고요.

어린 시절에는 감정적으로 선동이 잘 되죠. 아버지를 비열한 음모에 의해 희생당한 딸이 곧바로 격정에 휩싸이는 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낳아 준 친어머니에 응징하려는 계획까지 바로 독자 입장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코에포로이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을 가리킨다." -oi라는 어미(ending)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면서, 역자의 주가 워낙 상세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통째로 다가와 머리 속에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보다 역주를 읽는 맛이 이처럼이나 상쾌하고 미약한 정신을 송두리째 일깨우는 체험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고 이윤기 선생도 <뮈토스>에서 상당히 장렬한(그리고 독창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 편입니다만, 역시 오이디푸스의 최후에 대해 제대로 비감을 느끼려면 소포클레스의 원전을 접하는 게 정석이죠. 이게 작품의 정확한 번역에 그치지 않고, 예컨대 아테네의 황금 시절 누구는 사회의 원로였고 누구는 코러스에서 노래를 부르는 미소년이었다는 등 시대상에 대해 생생한 묘사(비록 정확성에는 의문이 들망정)를 곁들이는 천병희 선생의 서술은, 광범하고도 디테일까지 정확히 통달한 대가의 역량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그 자체로 하나의 문예 작품이라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분을 척박한 한국에 내려 준 어떤 섭리(그런 게 혹 있다면)에 감사하고 싶을 뿐입니다(그 수제자분을 대학에 가서 뜻하지 않게 스승으로 맞이하게 될 줄이야 저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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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오이디푸스, 그는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a | 2004.07.14 리뷰제목
얼마 전 연극 '루"를 보고 오이디푸스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극 '루'는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왕, 그리고 안티고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서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소포클레스가 쓴 희랍어 본으로 역자가 번역을 했다고 하여 많은 오이디푸스 번역본 중 가장 신뢰가 가서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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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연극 '루"를 보고 오이디푸스에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연극 '루'는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왕, 그리고 안티고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서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소포클레스가 쓴 희랍어 본으로 역자가 번역을 했다고 하여 많은 오이디푸스 번역본 중 가장 신뢰가 가서 읽게 되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의 테베이 왕국에 역벙이 돌자 신탁을 받아 온다. 바로 자신이 오기 전 테베이 왕이었던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색출해 징치하라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그 살해범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듯 자신을 둘러싼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엄청난 비극이 몰려오면서 오이디푸스를 읽는 독자도 함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과연 인간의 의지나 이성은 신들이 좌우하는 운명에 의해 휘둘리는 걸까.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은 의문점이 들었다. 인간의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의 위대한 승리라는 것에도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운명에 스스로 책임을 지며 설사 그 운명이 자신을 파멸시키고 주변 사람들까지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일지라도 진실을 드러내 자신의 선택을 힘겹게 지탱해나가는 오이디푸스가 가슴으로부터 이해되기 시작했다. 수천년도 더 지난 이 작품이 끊임없이 현재에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아마도 인간의 운명과 이성에 대한 소포클레스의 생각이 보편성을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아마 미래에도 이러한 고민을 떠안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입을 빌려 아마도 이러한 '인간의 굴레'에 대해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현명해지려 점점 더 이성을 믿지만, 그 이성이 인간을 더욱 현명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파멸로 이끌 사건을 기억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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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오이디푸스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평점8점 | s*****1 | 2005.05.27 리뷰제목
햇살 따사로운 창가에서 책장에서 손에 잡히는 데로 선택된 소포클레스의 과 밀란 쿤데라의 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BC400년 경, 서양문학사에 길이 기록된 ‘비극’을 주제로 희곡을 창작했던 소포클레스가 만약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다면? 쇼펜하우어를 계승한 실존주의자 니체가 읽었다면 어떨까? 라는 쓸데없지만 진지한(?)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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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따사로운 창가에서 책장에서 손에 잡히는 데로 선택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BC400년 경, 서양문학사에 길이 기록된 ‘비극’을 주제로 희곡을 창작했던 소포클레스가 만약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읽었다면? 쇼펜하우어를 계승한 실존주의자 니체가 읽었다면 어떨까? 라는 쓸데없지만 진지한(?)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 비극의 모티브뿐만 아니라 니체의 영원회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독서를 할 때 역사와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욱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포클레스나 니체의 발자국을 밀란 쿤데라에서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만나서 반가움을 넘어 희열까지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오이디푸스를 먼저 만나본다면,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사이의 한계선을 다룬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숭고하고 장엄한 인간성의 비극적 승리를 주로 그렸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특성은 주로 비장미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비장미란 실패하지 않는 현실적 인간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갈등을 겪고 또한 장엄하게 패배함으로써 그것을 초월하는 용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소포클레스는 진리를 위해 항거하는 사람의 비극적 용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영웅적 행위의 근원이 타인에 대한 의무인 덕(Virtue)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의무인 아레테(Arete:탁월성)를 강조하여 오이디푸스 왕 역시 아레테를 위해 싸우다가 자기파멸을 맞게 되는 최고의 비극적 인간이 된다.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는 테베 왕국에 무서운 전염병이 유행하여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하여 시민 모두가 괴로워할 때 신탁을 받고 온 처남이며 외삼촌인 신하 크레온이 등장하여 이 땅에서 생기고 키워진 더러운 피가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 않도록 씻어 없애라는 것이 아폴로 신의 분부였고 바로 이것이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이며 또한 알 수 없는 역병은 이 나라에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사람이 있는데 그를 찾아내어 벌해야 한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 미스터리를 끝까지 추적하고 수사하여 벌하겠다고 하고 신하들과 예언자들을 동원해 알아본다. 특히 예언자 테레시우스를 불러 물어볼 때, "물어 보지 말고 돌려 보내주십시오. 왕께서는 당신의 운명을, 나는 내 운명을 지고 가는 게 좋은 길 입니다. 진실은 내 힘입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살인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라고 하자 왕은 크레온과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하자 예언자 테레시우스는 왕이라고 함부로 신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왕국은 왕인 당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신하인 나의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자기가 범인인 것을 깨닫게 되자 왕비이며 친어머니인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무지에 분노하고 수치스러워 두 눈을 후벼 파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왕으로서 신하와 시민들 앞에 자기 말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주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이며 신이 정한 운명의 힘을 인간은 피할 수 없고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신의 권위 앞에서 죽는 날까지 미약한 존재인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참 자아의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 오이디푸스의 자세와 등장인물들이 비록 왕 앞이라도 진실이라면 굽히지 않고 말하는 자세와 이를 높이 평가하는 그리스 고대민주주의 정신과 함께 훗날 지그문트 프로이드가 개념화 발전시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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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희랍비극의 정수 평점8점 | i****4 | 2001.12.03 리뷰제목
희랍비극의 정수라고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어머니와 근친상간..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자 아이가 자기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고 반대로 동성인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는 적대적인-_-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바로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는 네편의 비극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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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비극의 정수라고 불리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어머니와 근친상간..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자 아이가 자기 어머니에게 애착을 느끼고 반대로 동성인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는 적대적인-_-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고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바로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는 네편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아가멤논', '코에포로이'가 실려있다. 그 시대에 이렇게 치밀한 구성양식을 가진 비극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낀다. 음..... 읽으면서 썩 재미있지는 않았다. 사용된 단어도 낯설었지만 고전적인 분위기가 너무 강해서 딱딱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인상깊은구절]
흔히 희랍비극을 가리켜 '운명의 비극'이라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의 단순한 제몰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맹목적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포기할 수만 있다면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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