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불편한 소설이다. 내용과 형식이 다 그렇다. 그런데 소설 읽기의 불편함은 다분히 소설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혹은 불편함을 뚫고서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불편함을 견뎌냈을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화자가 있다.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화자에게 전달한다. 화자는 이야기에 거의 개입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거의 아우스터리츠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문다. 그래서 소설에서 반복되는 문구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이다.
아우스터리츠는 1939년 가을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던 시기, 체코 프라하에서 네 살의 나이로 영국 구조 단체의 유대 어린이 호송 작전으로 영국으로 보내졌다. 웨일스 지방의 목사 집안에서 자란 그는 자신을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고 알고 지내다, 열 네 살 학교 교장 선생님에 의해 자신의 본명을 알게 된다. 집안에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양부모가 돌아가시고,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과거를 찾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가 화자에게 간헐적으로 전달하는, 하지만 장황한 이야기다.
네 살 적 일어난 일을 기억할 수 있는가? 나는 뭔가 기억나는 것 같지만, 그 기억을 믿을 순 없다. 그게 과연 그때의 일인지 분명하지도 않으며, 정말 있었던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아우스터리츠는 어느 순간 그 장면을 기억해낸다. 리버풀의 어느 대합실에서 가슴에 배낭을 안고 있는 한 소년을 보고 난 이후다.
“내가 회상할 수 있는 한 처음으로 그 순간에 나 자신을, 반 세기도 더 전에 영국에 도착해서 내가 이 대합실에 분명히 와 본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어요. 이것을 통해 내가 빠진 상황이란 많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기술할 수 없는, 내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강탈이고, 수치와 염려, 혹은 당시 그 낯선 두 사람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던 것처럼 그것에 대한 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어요.”
아우스터리츠는 륙색을 매고 다니며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결국 프라하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리고 희미하게 드러나는 비극을 확인한다. 예상했던 바다. 그 당시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처했던 보통의 삶이 그러했던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프랑스로 갔고, 배우였던 어머니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기차에 태워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거와 그 과거에 대한 기억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를 폭로한다. 거의 그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이제 이 소설의 불편함을 얘기할 때다.
우선은 형식의 불편함이다. 문단이 없다. 320쪽의 소설이 단 서너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서 잠깐 숨을 돌려야 할지 난감하다. 문장들도 길다. 어떤 문장은 마침표 없이 여러 페이지로 이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기억, 아우스터리츠의 기억을 표상하는 것일까? 그 긴 문장들, 단락지어지지 않는 글을 읽으며 자꾸 앞뒤를 헤매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곱씹을 수밖에 없다.
아우스터리츠는 공간을 헤맨다. 건축과 거리, 장치들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담긴 상징성에 대해 쏟아놓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데려다 놓고 이야기를 하다,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정에 낯섦을 강요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경한 공간에서, 생경한 이미지를 가지고 다시 그 얘기를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공간을 이용하고, 기억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했다.
제발트는 독일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살았고, 독일 문학을 가르치며,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기록을 보면 영문 시집도 냈다). 그래서 자신의 독일어가 어떤 독일인도 쓰지 않는 언어라고 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그런 독일어로 쓰인 소설을 읽는 독일인은 어떤 낯섦 속에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제발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뒤로 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을 거라고 한다.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설 읽기란, 묘한 느낌을 준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속에서, 현실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떨어져있고, 허구와 사실은 서로 혼재되어 혼란스럽게 한다. 시간마저 겹쳐 흐르며 외부는 모호해진다. 어쩌면 현대 소설이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치 <<아우스터리츠>>처럼.
제발트는 소설 중간중간 사진들이 인용하는데, 마치 이 소설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문장의 호흡은 길고 묘사는 서정적이면서 치밀하고 마음은 슬프기만 하다. 과거는 추억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던 내 마음의 상처를, 가족의 상처를, 현대의 비극을 다시 꺼내어 보듬고 어루만진다. 대화는 끊어지지만, 기억은 이어지고 소설은 챕터도 없이 그냥 하나다. 시간은 끊김이 없고 끊어져 있던 기억들도 하나로 이어지듯, 소설은 허구와 사실을 이어 하나로 만든다.
아직도 2차 대전의 상처를 드러내며, 정면으로 응시하며 나아가는 <<아우스터리츠>>를 보며, 요즘 한국 문학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미국의 이창래도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작가들만 무관심한 듯 싶기도 하고...
<<아우스터리츠>>의 명성은 이 작품을 향하고 있는 문제 의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 작법에서부터 전혀 다른 글쓰기를 보여주며, 현대 소설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 스스로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이야기하듯, 이 소설은 사건 중심이라기 보다는 사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개의 중요한 사실들과 이를 연결하여 소설의 중심 뼈대(내러티브)를 만들고 그 뼈대는 다시 사진들, (건축)공간에 대한 서술, 인물들에 대한 탐구와 인터뷰 등으로 형체를 이룬다.
그런데 이 작법은 소설 감상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 않으며, 도리어 전쟁에의 상처, 가족의 비극, 그리고 쓸쓸한 회상 속으로 빨려들게 하며,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설적 완성도를 지닌다.
Bigsby(*) suggests that it was out of frustration with the strictures of academic publication that Sebald turned to creative writing (a vague and ungainly term that, by default, winds up being the most accurate generic description of his work). "He'd originally taught German literature," says Bigsby, "and had published the kind of books that academics do. But he got increasingly frustrated, and began to write in what he called an 'elliptical' way, breaching the supposed boundaries between fast and fiction - not what you're supposed to do as an academic." Sebald himself sometimes described his work as "documentary fiction," which goes some way toward capturing its integration of apparently irreconcilable elements.
제발트는 학술 서적들의 심한 비난들에 대한 불만으로 문학창작(자연스레, 그의 작품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포괄적인 설명이 될 수 있는, 다소 모호하고 어색한 단어인)의 길로 들었다고 빅스비는 말한다. "그는 원래 독일 문학을 가르쳤어요"라고 빅스비는 말하며, "그는 학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하듯 몇 종의 책들을 출판했죠. 그러나 그의 불만은 계속 늘어났으며, 그가 말하는 '생략된(elliptical) 방식'으로, 이미 가정되어 있던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발트에게 대학 연구자처럼 하라고 제시되어져 있던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제발트는 그 스스로 그의 작품을 종종 명백하게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의 결합을 포착하기 위한 어떤 방식들을 향해 가는, "다큐멘터리 픽션"이라고 표현했다.
- Why You Should Read W. G. Sebald BY MARK O’CONNELL
THE NEW YORKER, DECEMBER 14, 2011
http://www.newyorker.com/books/page-turner/why-you-should-read-w-g-sebald
* Christopher Bigsby(1941~): 소설가, 비평가, 제발트가 있었던 University of East Anglia의 Colleague.
'Elliptical'라는 단어에 대한 번역어를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예전에도 한 번 언급했듯이 현대 소설, 아니 현대 예술가들은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작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해롤드 블룸은 이를 '시적 영향에의 불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우리 시대는 새로운 방식, 일종의 혁신을 추구해야만 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W.G.제발트는 그 나름의 방식으로 여기에 성공하고 있다.
* 번역된 제발트의 책들을 몇 권 더 챙겨 읽고 자세한 리뷰를 적어볼 생각이다. 그만큼 중요한 작가이기도 하다.
저자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1944-2001)는 기호학적 상상력과 시각적 관찰능력이 뛰어나고 상징과 이미지를 즐기는 기호학자처럼 보인다. 난생처음 접하는 작가지만 이제 좋아하는 독일소설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서슴없이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괴테와 더불어 나란히 언급될 이름이다. 《아우스터리츠》는 무척 지적인 기사체 소설이다. 건축과 역사 그리고 근대성에 대한 전문지식이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구조와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탄탄한 거미줄처럼 개인과 역사가 중첩되고 기억과 공간이 날줄과 씨줄로 갈무리된다. 《아우스터리츠》를 읽으면서 우선적으로 떠오른 텍스트들이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프레데릭 제임슨의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다. 아마도 독일계 유대인, 이주민적 정체성, 홀로코스트, 역사적 상징물, 근대적 공간, 박물학적 지식 같은 특성들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아우스터리츠는 금발 곱슬머리를 한 67세 건축가이다. 화자 「나」는 아우스터리츠의 성격이나 외양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닮았다고 묘사한다. 잃어버린 개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다니는 개인은 예리한 철학자를 닮게 되는 법이 아닐까 싶다.
박식한 건축가답게 아우스터리츠는 건축을 통해 근대성과 자본주의 논리를 사유한다. 건축의 역사도 힘의 역사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안트베르펜 정거장의 생성사는 19세기 벨기에 역사의 작은 축소판이며, 근대화의 시공간압축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델이기도 하다. 1905년 완공된 중앙역의 구조는 로마의 판테온처럼 세계무역과 세계경제의 중심이기를 희망하는 제국주의적 욕망과 의지를 보여준다. 광산, 공장, 교통, 무역과 자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춘 중앙역은 시계라는 화룡점정의 의식에 의해 근대성의 상징적 지표가 된다. 안트베르펜 정거장을 언급하는 아우스터리츠의 모습에서 나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적인 텍스트로 미국의 보나밴추어 호텔을 분석했던 프레데릭 제임슨의 글이 떠올랐다. 한편, 브렌동크 요새나 별모양의 12각형 요새는 반근대적인 지표로 등장한다. 대포와 전술의 가공할 발전속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요새와 방어술의 전근대적 특성은 단지 편집병적인 완벽성과 맹목적인 야만성으로 인해 지체되며 전근대성의 지표로 자리매김한다.
아우스터리츠는 역사적 유적지와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정거장 마니아」로 독일의 유명한 만유객 벤야민을 닮았다. 여기저기 역사적 건축물과 상징물을 탐사하고 다닌다는 점에서 건축가는 방랑객과 닮아 있다. 방랑객에게 중요한 것은 필연적 우연이 마련한 장소와 인물이다. 아우스터리츠에 의하면, 우연이란 「모든 통계학적인 가능성과는 상반되지만, 놀라우면서도 뭔가 피할 수 없는 내적인 논리」다. 안트베르펜 녹투라마 동물원과 정거장, 그레이트 이스턴 호텔 등 화자와 아우스터리츠가 마주치는 우연의 장소들도 매우 다양한 공간성과 풍부한 화제성을 지닌다.
유대인과 독일하면 떠오르는 문학의 주제가 기억과 트라우마다. 아우스터리츠는 나폴레옹 시대의 격전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유대인포로수용소 아우슈비츠(Auschwitz)를 연상시키는 묵시적인 기호다.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 쓴다는 것이고, 집단적 기억이 역사의 내용이 되는 법이다. 좋은 기억이면 누구나 흐뭇한 웃음을 떠올리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제공한다. 시인 워즈워스도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고는 내 안에 영원한 축복을 불러일으킨다」고 섰다. 그런데 기억하기 싫은 참담한 기억도 다시 꺼내어 햇볕을 쏘여야 할까. 잃어버렸거나 모호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매체가 사진이다. 여행 시에 자주 하는 말이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이를 잘 형용한다. 사실적인 기표로서 소설본문에 수록되어 있는 흑백 사진 이미지는 특이한 독서 체험을 선사한다. 저자의 의도는 이 흑백사진들을 기억의 촉매이자 증거물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 안미현은 해제에서 문학은 기억의 형식임을 강조하고, 그 기제로써 구어적 기억(구전과 구술), 수사학적 기억(공간 이미지), 고고학적 기억(탐사와 문헌) 세가지를 언급한다.
기억과 트라우마는 적극적으로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의 동반자이다. 네 살 때 혼자 영국으로 보내진 프라하 출신의 유대 소년이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와 부모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미로에 유폐된 자아는 혼란스런 기억의 발자취를 더듬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이 점에서 추리소설의 구성을 취한다. 유년 시절 영국 웨일스 발라의 한 칼뱅파 감리교회 목사집에 입양된 아우스터리츠는 발라에서의 생활에 대한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본 이름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운 점을 고통스러워하고 자신이 객지에서 일종의 포로상태가 되어버린 이주민임을 자각한다. 1946년 12살 사립학교에 보내지고 그 곳의 동양적인 전제주의적 시스템에 반감을 갖는다. 옥스포드 학창시절이 소개되고 아우스터리츠는 체코 프라하의 카르멜리츠카 문헌보관소를 통해 어머니의 옛 집주소를 찾아내고, 이웃 베라에게서 아버지 막시밀리안 아이헨발트와 어머니 아가타 아우스터리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체코의 강제수용소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다.
이야기는 형식적으로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식의 자유간접화법으로 전개되지만 실은 아우스터리츠 개인의 독백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인용하는 화자는 단지 이야기를 옮겨주는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는 아우스터리츠의 개인사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증폭시켜주는 그런 확성기적 존재이며, 아우스터리츠의 단편적인 기억의 퍼즐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스크린 역할을 한다. 저자는 주인공의 기나긴 회상을 자유간접화법이라는 교묘한 형식 속에 숨기는데, 이런 방법은 근대성이라는 괴물 앞에 놓인 한 자아의 감정을 은폐하면서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적인 문학장치가 된다. 소설은 화자—아우스터리츠—베라—아가타들의 자유간접화법이 등장한다. 만연체로 짜여진 자유간접화법은 남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화자의 자유로운 첨삭이나 편집이 가능한 방식으로, 이런 독백의 방식은 근대성이 야기한 어두운 그림자를 조명하는 기교가 된다. 또한 화자의 일인칭 관찰자시점 때문에 아우스터리츠의 심리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근대성이라는 괴물 앞에 놓인 한 자아의 감정을 무담담하게 보여준다. 이런 문학적 스타일은 이 책을 매우 느리게 정독하며 읽을 것을 요구하며, 만연체와 간접인용과 기록사진을 포함한 흑백의 기표들은 유머와 쾌활함을 잃어버린 근대 역사의 묵직한 무게감을 가중시킨다.
들판에 서서 자아의 퍼즐을 맞추다
W.G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는 어린 시절 죽음을 피해 외국에 보내진 소년의 기억을 퍼즐 맞추듯 짜여져 있다. 기억은 단지 회상을 넘어 공간으로 전이 된다. 소년이 갔던 공간은 어른이 되어 흑백 사진처럼 여러 겹 겹쳐서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려 운 부분은 문장이 가진 독특한 구조이다. 그러나 장문의 설명하는 듯한 긴 문장 안에는 소년이 겪었던 시대적 암울함이 그대로 깔려 있다. 히틀러가 유럽을 장악했을 때 유대인 어린 아이를 영국으로 피신시키는 구조 운동이 있었다.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영국은 약 1만 명의 유대 어린이를 받아 주었는데, 네 살이었던 아우스터리츠 역시 그때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영국으로 오면서 자신의 이름과 출신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 해 주지 않았다. 그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목사의 입양아로 살아가다. 그러던 그는 학교 기숙사 생활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사춘기를 책을 탐닉하는데 몰두한다.
역사적인 사건의 격변기와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을 알게 되는 사춘기의 맞물림 속에 그는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말이다. 뒷날 건축사가 된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공간 속에서 유년의 기억을 찾는다. 건물의 모양, 쓰임, 만들어진 시대, 독특한 구조 하나 하나가 그의 유년 시절을 되돌려 놓는다.
또 하나의 특징은 소설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사진이다. 삽화처럼 불쑥 나타나는 사진은 책을 읽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읽는 이야기와 보이는 그대로의 사진이 만나 이야기의 사실성을 부각 시킨다.
작가의 이러한 기법(긴 문장, 사진, 그림 삽입 등)은 의도된 연출이 아닐까 한다. 소설의 형식을 무시하고 이야기의 스토리의 억지성을 보이며 그가 하고자 한 말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소설로 그려진 이야기는 현실이다. 우리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몱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역사를 뛰어넘어 완벽한 작품도 될 수 없고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밖에는.
아우스터리츠에게 어린 시절의 단절 된 기억은 아픔은 아픔 그대로, 상처는 상처 그대로 남아 있다가 일상을 파고드는 무기가 된다. 역사의 한 중심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이어주는 그의 공간은 꼭 그의 나쁜 기억을 환기 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장소를 알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추억도 될 수 있고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다. 많은 가능성을 주는 장소이자 공간은 시각적인 이미지 혹은 감각적인 이미지를 이끌고 와 기억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렇게 기억은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양지와 그림자 사이를 오간다.
아우스터리츠는 낯선 나라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한 개인이자 역사적 아픔을 지닌 사람이지만 어느 시대에나 존재라는 방황하는 이방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제 꿈을 펼치지 못하는 날개 잃은 사람, 가부장적인 사회에 도전하는 여자, 정의를 위해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 정의를 위해 펜을 드는 사람 그리고 늘 낯선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수집한 많은 양의 자료와 수많은 지식과 자료에 많은 것을 배웠다. 철저히 계산된 소설 구조와 난해한 퍼즐 찾기는 소설의 묘한 재미가 아닌가 한다.
당신 방황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의 기억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리고 당신의 유년의 기억과 맞물려 ‘괜찮다’고 말한다. 그리고 ‘힘내’라고 속삭인다. 당신이 누구든, 어느 시대에 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