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통행증, 사람들과 상황』-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나는 예전부터 러시아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심취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이다. 이번에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 『안전 통행증』과 『사람들과 상황』을 통해 『닥터 지바고』와는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된 상황에 놓여 있는 곳은 전선이었다. 심지어 애써 일부러 허위를 키우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후방은 거짓된 상황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당시 아직 아무도 도둑을 잡으려 하지 않았지만, 후방 도시는 궁지에 몰린 도둑처럼 번지르르한 말 뒤로 숨었다. 모스크바는 모든 위선자들처럼 한층 더 외면적인 삶을 살았으며, 겨울 꽃가게의 진열장과 같이 부자연스러운 활기를 띠었다.”(p.140)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격변기의 러시아에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한 작가의 고뇌를 되짚어 보며 또한 나를 되돌아 본 귀중한 시간이었다.
러시아 문학사를 넘어 문학사에서 내가 존경해오는 분은 톨스토이다. 그 분이 가진 인간에 대한 통찰과 스스로의 실천은 놀라울 정도로 철저했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본'이 되실 수 있는 분이라 여기며 아직은 작은 그릇과 모자라는 식견으로 아웅다웅 살고 있지만 그분과의 만남을 감사히 그리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 여기 또 한 분, 그 분과의 인연에 감사하는 분을 만났다. '닥타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르테르나크!
20대의 내게 '닥터지바고'라는 영화로 '감동'과 '사색'을 선물주었던 보리스 파르테크, 그가 어떻게 지성을 갖추고, 혼란한 정치적 상황속에서 흔들리며 꽃이 되어 그를 만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에 뜨겁게 혹은 서서히, 강렬하게 또는 오랫동안 데워주는 불씨를 안겨주는 문학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가 존경했고, 혹은 스치듯 만났으나 강렬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었고 감동을 받아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등등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정말, '사람'이 있고, '상황'이 있는 녹아 있는 책이다.
보리스파르테크의 자전적 소설 혹은 에세이인 이 책을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짧고 솔직하고 거침없이 쓰여진 문체도 있었지만 그가 만난 사람에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릴케'와 '톨스토이'가 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겨울 날, 서로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이야기 나누며 내가 몰랐던 그 분들의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보리스파르테그를 알아간다는 것. 미소가 지어지는 일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
왜 제목이 안전 통행증일까? 안전 통행증이라는 말이 낯설다. 책을 펴자마자 해설을 찾았다.
p. 299 ‘안전 통행증’ 이란 과거에 출입 금지 구역을 통행하도록 허용하는 증서였다.~ 따라서 불신과 신분의 위협이 날로 커지던 당시 소련 사회에서 『안전 통행증』은 작가에게 예술가로서의 신분을 보장해 주는 증서를 뜻한다고 하겠다.
제목의 의미를 알고 보니 책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안전 통행증: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기념하며라는 부제도 달려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작곡가 스크랴빈에 빠져 작곡 공부를 하다가 그가 철학 공부를 추천하자 바로 과를 바꾼다. 그러면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여행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자세히 묘사한다. 파스테르나크의 묘사는 읽는 동안 상상을 하게 해 준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글을 읽고 있으면 그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파스테르나크의 에세이를 통해 볼 수 있다. 만약 스크라빈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파스테르나크는 작곡가로서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과 만남, 사람과 자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어떠한 경험을 줄 수 있을까? 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경험들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면서 사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안전 통행증과 사람들과 상황을 다시 한 번 더 읽으면 어떨지 기대가 된다.
<안전 통행증·사람들과 상황>을 읽고
나는 <닥터 지바고>를 아직 읽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독서력이 약하다. 이번에 읽게 된, <안전 통행증·사람들과 상황>을 보고, 위 소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 졌다. 자전적 에세이 2편이 한 권에 있다. 전편은 30대에 쓴 것, 후편은60대에 보완의 의미로 쓴 것. 나는 그 뒤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으려 한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의 세 친구를 언급한다. 이 부분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내면의 힘과 창조적 잠재력을 흠모하면서도 친하지 않았다고 표현한 마야콥스키가 그 첫 번째 인물. 이 인물의 정신과 외모를 묘사한 부분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이끌렸다.
두 번째 시인 친구 예세닌. 허물없이 너, 나하고 지낸 사이였지만 때때로 감정이 격해져 헤어지기도 했단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진실한 친구가 되기로 맹세했다가도 피 튀길 때까지 싸우기도 했다는데. 순간 나는 나의 절친한 친구 한 명이 떠올랐다. 이 대목에서.
그리고 츠베타예바. 처음 그녀를 과소평가했음을 시인하고, 놀랍도록 극찬하기도 한다. ‘그녀는 확고하고 분명한 것에 도달하기 위해 저돌적이고, 간절하게, 또 거의 탐스럽게 애를 썼고, 그리하여 멀리까지 나아갔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앞지르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 명의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 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테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이나 선택에 가장 많이 아파했을 것 같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조금 어릴 적, 저자는 스크랴빈의 음악에 빠져 6년간 음악 속에 살았지만, 절대음감과 표현 기술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음악과 이별한다. 그는 이 능력들이 그에게 음악인으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대로 그것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아가 그를 괴롭혔을 테지...... 음악에서 문학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사람은 ‘세이게이 니콜라예비치 두릴린’이라고 한다. 유명인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던 화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를 둔 그는 그로 인하여 더 쉽게, 더 자연스럽게 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 등의 예술인들을 벗으로, 스승으로 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왠지 이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천재들의 삶을 살짝 씩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도 톨스토이, 츠베타예바, 마야 콥스키, 예세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또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싶다. 스크랴빈의 음악까지. 그리고, 이 저자의 삶의 무대였던 러시아에 대한 지식을 갖고 이 작품을 접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