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와 제목에 느낌>
그저 야쿠비얀 빌딩인가 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아랍소설이라는 것만 알고 호기심이 동했다.
<이책은>
텍스터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저자는>
저자 : 알라 알아스와니 Alaa Al Aswany ---발췌하다 알라 알아스와니는 1957년 이집트 카이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글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소설 쓰기를 하되 본업으로 삼지 말라는 부친의 권유에 따라 치과 의사를 지망했다. 1980년 카이로 대학교 치의대를 졸업하고 1985년 시카고로 건너가 치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시카고에서 개업했다. 1980년대 말 귀국하여 카이로에서 치과를 개업하는 동시에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첫 소설 『이삼 압둘 아티의 보고서』를 정부 산하 출판부인 ‘도서청’에서 출판하려 했으나 작품의 사회비판적 성격에 대한 도서청의 검열과 비합리적 절차에 환멸을 느끼고 이 소설과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 『가까이 가서 보았다』를 사비로 출판했다. 이후 몇 권의 작품을 더 발표했으나, 이집트 사회 체제의 비합리성과 부당함에 대한 깊은 절망감으로 해외 이민을 결심하고 뉴질랜드를 택해 이민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 2년 걸리는 이민 수속 기간 동안 소설 한편을 쓰기로 결심하고 1998년 말부터 『야쿠비얀 빌딩』 집필을 시작했다. 2002년에 완성된 장편소설 『야쿠비얀 빌딩』은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세계와 해외 여러 나라들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모았다. 『야쿠비얀 빌딩』은 2002년~2007년간 아랍 세계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이후 영화 및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전 세계적인 반응을 얻은 이 소설은 여러 나라의 문학상을 휩쓸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후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을 위한 이집트 국민운동인 ‘키파야(Kif?yah)’ 운동 발족 회원이 되었다. 중략. 2011년 1월 카이로의 중심지 ‘마이단 알타흐리르’(자유광장)에서 이집트 시민들과 함께 민주혁명에 참여했고, 지금도 문필 작업과 언론 활동을 통해 혁명의 지속과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책 소개 ---발췌하다
21세기에 들어 아랍어로 쓰인 소설 중 비평적,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다. 이슬람 테러 단체, 동성애 등 아랍 문학에서 금기시되어 온 주제들을 대담하게 다루었고, 국가를 사금고처럼 운영하는 권력자들 아래서 나날이 쇠퇴해 가는 이집트 사회의 실상을 박진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은?
문학은 사회의 반영이 수밖에 없다. 문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작가의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라도 본다면 굳이 순수문학이냐 참여문학이냐를 따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에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강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면 분명 참여문학이 될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라는 장르에서 작가가 가지는 소명의식일 것이다. 더불어 문학 작품은 잘 알지 못하는 나라의 역사나 한 사회의 문화와 문화권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 역시 문학이 가지는 소중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야쿠비얀 빌딩’의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작품으로 다가선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슬람문화권의 작품이기에 다소 생경함도 있지만 다분히 흥미로운 점이 많아 기대감이 앞서는 작품이다. 특히, 2011년 초 이 작품의 무대가 된 나라 이집트에서 사회적 변혁이 있었기에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야쿠비얀 빌딩은 실재하는 빌딩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 빌딩은 이집트라는 나라의 한 시대를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표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 테러 공격의 목표가 되었던 미국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처럼 1950대 이집트의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담아내는 기능을 한 빌딩이 바로 야쿠비얀 빌딩이다. 부와 권력을 향해 질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지만 사회가 변화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빈부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한 건물에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바로 그 빌딩에 담겨진 것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빌딩이 상징하는 이집트의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놓은 작품이다. 빈부의 차, 권력, 정경유착 등의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 이야기를 모함하여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가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여색을 탐닉하는 늙은이,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 속에서 경험한 동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권력과 사회적 편견에 의해 꿈이 좌절된 젊은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미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때문에 몸을 팔게 되는 여자와 이를 부추기는 부모 등 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낯선 이슬람 문화권의 이야기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단지, 무대만 옮겨놓은 것처럼 우리도 익히 가슴 아프게 경험했고 또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너무도 많은 제약을 동반하게 된다. 그 많은 제약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사람마다 제 각각이기 마련일 것이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일까?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기에 오히려 낯선 풍경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강요하지는 않고 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작가 자신이 경험한 현실이 반영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과 2011년 1월 카이로의 중심지 ‘마이단 알타흐리르’(자유광장)에서 이집트 시민들과 함께 민주혁명에 참여했고, 지금도 문필 작업과 언론 활동을 통해 혁명의 지속과 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으로부터 유추해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야쿠비얀 빌딩’은 우리에게 문학작품이 가지는 힘과 작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문득, 우리 문학의 거대한 산맥인 조정래 작가 생각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집트에 시민 혁명이 일어나 민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야쿠비얀 빌딩>은 이집트의 권력층의 부패와 사회의 온갖 모순과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이집트의 서민층 몰락과 젊은 층의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따라서 이집트에 시민 혁명이 일어난 것이 이집트 사회에 꼭 필요한 혁명이었음에 역자는 2011년 아랍 시민혁명의 예언서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몇년전부터 아랍권에도 슬슬 자본주의의 물결이 흘러들어가며 아랍여성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나라를 버리고 프랑스나 캐나다등 자유를 찾아 가는 것을 언론을 통해 본 적이 있었는데 이집트의 사회를 이렇게 실감있게 소설로 접해 본 느낌은 마치 우리나라의 1930년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권력계층의 부패와 사회의 혼란으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 빈민층이 삶을 위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단 한가지 ... 몸을 파는 일로 삶을 연명해 나가는 것을 보며 김동인의 <감자>에서 복녀가 자꾸 떠오르기도 했다.
소설에서 부사이나는 꽃다운 처녀이며 어렸을 적부터 야쿠비얀 빌딩에서 같이 자란 타하와 사랑하는 사이로 둘은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고 자식을 낳고 알콩달콩사는 행복한 미래를 설계했지만 부사이나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 부사이나는 더이상 순수하게 그리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부사이나가 가는 곳마다 남자들이 부사이나의 몸을 원하지만 그때마다 직장을 그만두자 부사이나의 엄마는 부사이나에게 몸을 지키는 일보다 동전 한닢이 더 소중하다는 식의 말을 한다. 결국 탈랄의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고 탈랄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자 일이 점점 수월해지고 월급도 점점 올라가는 것을 보며 타하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야쿠비얀 빌딩의 문지기의 아들 타하는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며 경찰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지만 아버지의 직업이 문지기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지자 좌절한다. 야쿠비얀 빌딩 사람들의 차별은 경찰이라는 꿈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경찰대학 면접에서조차 차별과 냉대를 받게 되자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경찰대학은 이미 좌절된 상태고 일반대학에 들어가게 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그 곳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무장 이슬람 단체에 들어가게 된다.
하팀은 이집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 신문사 편집장을 하고 있다. 바쁜 부모님들에 의해 방치되다시피 한 하팀은 하인 이드리스가 유일한 친구였고 이드리스로 인해 동성에 눈을 뜬다. 이드리스가 떠나고 성인이 된 후에도 동성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 남자를 찾아 다니다가 눈에 띈 것이 압두라는 군인이다. 압두는 철저한 이슬람교인으로서 하팀에게 몸을 팔지만 늘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먹고 살 돈이 없었던 데다가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는 하팀의 돈이 필요했기에 압두는 하팀이 주는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되자 하팀을 떠난다.
핫즈 앗잠은 환갑의 나이에 백만장자이다. 과거 앗잠은 시골에서 구두딱이를 하고 도서관 심부름을 하며 생활하였는데 몇년사이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카이로에 나타났다. 점잖고 독실한 무슬림처럼 행동하지만 속에는 능구렁이 수백마리는 들어가 있는 타고난 협상가이자 모략꾼이다. 갑작스런 성적욕구의 증가로 수이나를 두번재 아내로 맞지만 수이나가 계약을 어기고 임신을 하자 잔인한 방법으로 이혼한다.
야쿠비얀 빌딩에 사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이집트 사회를 그대로 보여준다. 야쿠비얀 빌딩은 대대로 고위층의 사람들이 살았고 옥상에서는 빈민층이 살았는데 그것은 당시 카이로의 도시화와 더불어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도시 집중 현상을 보여준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 1차 걸프전 시기이다. 미국에 대한 반감과 국민의 90%이상이 이슬람교라 종교적인 색채는 강하지만 아무래도 독실한 신자들은 없는것 같다. 모두들 주님을 외치지만 말뿐이고 뒤로는 부패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앗잠이나 카말과 같은 부패한 권력층의 등장뿐이다. 야쿠비얀 빌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끈임없는 충동과 사건과 사고로 보여지는 이집트 사회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고질적인 문제들을 꼬집고 헤쳐낸다. 고위 권력자가 개입하는 정치부패와 동성애자의 비극,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젊은 처녀를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결국 2011년에 이집트 시민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30년의 독재정치는 막을 내리고 시민혁명은 일단은 성공했다. 민주화의 물결이 흘러들어간 이집트의 변화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북한은 긴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설이 주는 현실사회의 반영이란 몫을 톡톡히 해낸 <야쿠비얀 빌딩>으로 당시 이집트 사회를 엿볼수 있었으며 이집트의 민주화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야쿠비얀 빌딩>
럴수 럴수 이럴수~ 이집트 책을 내가 읽게되다니~ 참 묘한 기분. 그것도 카이로 출신 작가라니.. 이집트를 접할 수 있던건 다큐나 미술관련책에 그림만으로만 듣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소설로 접하게 되다니 신기하고 괜히 뿌듯해진다. 요즘 서점에 가면 그리스 그림들과 이집트 그림들을 비교해가면서 보곤 하는데 온전히 그리스 예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내가 이집트 그림에도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면서 킁킁거리며 다가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로 이집트가 조용히 나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더 반가운건 요새 좋아하게 된 을유문화사 작품이라는거... 특히 을유문화사의 주석을 좋아한다. 나같이 모르는게 많은 사람은 주석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 주석 필요없이 읽는 사람은 상관없겠찌~~~ 부러운 사람들!
쪼끔쪼끔씩 읽다가 새벽에 피곤한데 잠이 안와서 한번에 다 읽어버렸다. 피곤한데 잠이 안온단 말이지 ㅜㅜ 만성피로 ㅜㅜ 그런데 역쉬 이집트 문학을 처음 접해서인지 이름들이 무척 어려웠다. 중간까지는 막 헤매이면서 앞장을 뒤적뒤적 거리며 얘가 얘인가 하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을 정도였다.. 좀 낯선 단어가 나오면 대충 읽는 습관도 있어서 더 앞을 뒤져야 했나보다..
이 책에 나오는 중심부 야쿠비얀 빌딩에는 이집트를 축약해 놓은듯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공부를 잘하고 모든면에서 뛰어나나 아버지의 직업이 수위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한테 멸시를 받고 그렇게 되고싶었던 학교에 입학조차 못하는 타하, 정직하게 땀을 흘려 돈을 벌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자신을 넘겼던 부사이나, 동성애에 빠진 사람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동성애에 응한 압두, 돈으로 정치인이 되더니 썩을대로 썩은 행동을 일삼는 늙은 앗잠등 각양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야쿠비얀빌딩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죽어간다. ..
작가가 그려낸 사랑에 관한 이야기부분은 정열적이고 로맨틱한게 아닌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먼가 허전하고 밍밍한거 같지만 가장 숭고한 사랑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너무나 먼 나라 이집트지만,, 인간이 사는곳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다 똑같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다. 야비한 사람은 야비한짓거리들을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투쟁을 하는 삶을.. 돈많은 사람들은 여기저기 돈을 뿌리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과식욕의 인생을.. 한편에선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현실앞에 절망하는 사람들..
난, 야쿠비얀 빌딩에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와 닮았을까..라고 생각해봤다. 부분적으로 주인공들의 모습속에 나를 볼 수 있었지만,, 그 중 타하와 그의 연인이었던 부사이나와 가장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난 아직 내 고집대로 산다는것이 아주 마니 다른 부분이었다.
생각해 볼것도 많고 한동안은 이집트 문학이 머가 있나 하며 찾아다닐 거 같다..
예스24 덕분에 읽게 된 아랍소설입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4996577). 중동에 관해서는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계기가 된 걸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등이 기억나는 정도입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같은 실험실에 팔레스타인출신 친구가 있어 조금 소개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았던 것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안 빌딩>을 통하여 근대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요약해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역자의 해설대로 저자는 야쿠비안 빌딩에 이집트사회의 상층으로부터 하층을 구성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담아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쿠비안 빌딩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들 사이에 혹은 이들이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는 곧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그리 멀지 않던 과거의 우리 모습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역자가 해제에서 밝혀둔 것처럼 이 소설은 1990년 제1차 걸프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쫓아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끈 군사혁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사회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야쿠비안 빌딩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엮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특히 자키 베 알두수키, 타하 알샤들리, 부사이나 알사이드, 야바스카룬과 말라크 형제 등이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상류층 사람들은 혁명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에 있고, 하층 사람들은 보다 나은 기회를 붙들려 애를 쓰지만 결국은 붙잡을 밧줄은 없더라는 절망감에 대부분 희망을 포기한 삶에 머물기 마련입니다만, 그래도 곪아가는 곳에는 과감하게 메스를 넣어 도려내야 한다는 깨어있는 젊은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당연히 이런 젊은이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궁극적인 타겟은 부패한 상층부가 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않았던지 1991년 이라크를 타격한 미국의 개입을 비난하면서 지하드를 외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형제여러분, 오늘 우리는 형제국 이라크의 무슬림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였습니다. (…)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불신자들의 미사일은 형제국 이라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 형제여러분, 지금 매 순간 수천명의 이라크 무슬림들이 미국의 폭탄에 살점이 뜯어져 나간 채 순교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치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이미 비극은 일어났습니다. 무슬림 군대가 팔레스타인을 유린하고 알아크사원을 더럽힌 시온주의자들에게 무기를 겨누는 대신, 우리 통치자들은 이집트 군인들에게 이라크의 무슬림 형제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208쪽)“ 하지만 이들이 지하드를 통하여 지켜야 한다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단지 이슬람의 불신자일 따름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이라크에 통합한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라가 몰락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야. 만약 진정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집트는 강국이 될거야. 이집트이 폐해는 독재 정부야. 독재는 결국 가난과 부패 그리고 모든 분야의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어.(290쪽)”라고 자키 베가 부사이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정작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민초들의 결집된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을 부사이나의 대답에 담아둔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창한 말이네요. 전 제 분수에 맞는 꿈을 꿔요.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남편이 저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제가 아이들을 돌보는 거요. 옥탑이 아닌 작고 예쁜 안락한 집에서요.(290쪽)”
한편 자키 베와 누이 다울라트의 다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나이든 형제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갈등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노인 사이에는 노년과 더불어 생기는 짜증과 인내심 부족, 외고집이 있고, 게다가 두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서로 가까이 있는 데서 늘 생겨나는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었다.(104쪽)”
독특한 아랍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집트 문화에 관한 용어가 후주로 처리되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놓칠 수 있다는 말씀과 뒤쪽에 있는 후주를 먼저 읽으신 다음에 본문을 읽으시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