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사랑에 대하여 말 한마디 안 할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그것을 숨 죽이고 사는 듯한 기분이 되어 죄책감으로 현재의 사람에게 더 헌신한다면, 그 지나간 사랑의 사연이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로 애뜻할지 공감하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타티아나'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해설을 읽으니 도스토예프스키도 그런 지적을 했었다고 한다.
오네긴의 지나간 애가이다.
아주 슬프지는 않지만 씁쓸한 사랑의 시. 시로 쓴 소설이다.
푸슈킨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녹아들어간 오네긴은 이미 잊을 수 없는 사랑, 유희적 사랑을 (갖가지 유희들로 인생의 많은 것을 망쳐 버렸다!) 겪고 시골에서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마음에 담아버린 시골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타티아나. 그 두근거리는 마음을 나도 느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예의바른 당당한 거절과 충고. 훗날 오네긴이 떠나고 떠난 그의 집에서 다소 머문 그녀는 도시로 떠난다. 그 곳에서 '화려하고 위풍당당한 ..범접할 수 없는 여신, 저 냉담한 공작 부인 타티아나'가 된다. 오네긴은 그런 그녀에게 숨길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며 고백의 편지를 보낸다.
오네긴에게 냉담했지만 결국 우연히 보게 된 타티아나의 편지를 품은 눈물. 오네긴은 그녀의 충고대로 떠나고, 타티아나는 예전처럼 가면을 쓴다.
그것이 '가면'이라고만 한다면 현재의 사랑을 무시해버리는 것이기에 조심스럽지만, 남편의 존재와는 별개로 그녀의 옛 사랑은 그렇게 흘러갔고, 추억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랑은 시간이 안 맞는 것 같다. 너와 내가 통하는 시간이 맞지 않아, 단지 그것만 제대로 되었다면 해피앤딩이 될 수 있었을텐데....하는 사연들이 많은 것 같다.
이별함으로 성숙한다면 나는 평생 이십대에 머무르리라...(지금은 마음 뿐이지만...)
푸슈킨이 러시아에서 어떤 인물이였고, 그의 문학적 깊이와 위치를 가늠하는 것은 해석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이 작품에서의 작가는 순수하게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오만과 편견 스타일의 영화나 이른바 '문학드라마'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푸슈킨의 이 책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풋풋한 떨림을 다시 체험할 수도 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러시아 귀족 예브게니 오네긴과 타치아나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과 애수이고, 부수적 내용은 시인 블라디미르 렌스키와 오네긴의 우정, 반목, 그리고 결투라 할 수 있다. 푸슈킨이 1823년부터 써내려간 이 작품은 1831년에야 완성되었는데 천재작가로 하여금 이토록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 데에는 '시로 쓴 소설'이란 형식을 선보이려는 작가로서의 야심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오만한 세상을 즐겁게 할 의도는 없이,
다만 우정어린 관심을 구하는 마음에서
그대보다도 더 훌륭한,
신성한 꿈과 생생하고 명료한 시와
숭고한 정신과 단순함에 가득 찬
그 아름다운 영혼보다도 더 훌륭한
증표를 바치고 싶었노라."
공교롭게도 독일문호 괴테가 60여년에 걸쳐 공들여 집필한 [파우스트]를 완성한 바로 그 해에 푸슈킨 역시 9년의 집필기간을 소비한 [예브게니 오네긴]을 완성한다. 푸슈킨은 자신의 평론과 편지글에 괴테를 자주 언급했고 그의 파우스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다. 두 작품 모두 기나긴 집필시간이 이야기의 전반적인 내구성을 갉아먹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대, 애정어린 손으로
받아 달라.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슬픈,
서민적이고 이상적인,
다채로운 장들의 이 모음을.
내 유희와
불면증과 경쾌한 영감과
미숙한 채 시들어 버린 세월과
냉정한 관찰력과
애달픈 기억의 이 부실한 열매를."
어쩌면 국내독자들에게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슈킨(1799-1837)은 잊혀진 작가가 아닐까 싶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절명한 푸슈킨의 일기나 서간집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푸슈킨은 빚을 갚기 위해 펜을 들었던 여러 가난한 러시아작가들처럼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도박적 기질이 있었으며 아울러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댄디 기질이 있었던 듯 싶다.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결투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한 푸슈킨은 세기말적 데카당스를 살다 간 '경계인' 그 자체인 셈이다.
"극장의 잔혹한 법관이자
매혹적인 여배우의 변덕스러운 열성 팬이자
분장실의 명에시민인
오네긴은 극장으로 날아간다"
"자신의 옷에 대해 까다롭게 굴었으며
이른바 멋쟁이라 일컫는 부류였으니
적어도 세 시간은 거울 앞에서 보낸 후
흡사 남장 차림으로
가면무도회 가는
경박한 비너스 마냥
분장실을 나오는 것이었다"
무수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편집증적 지식욕을 구비한 많은 열혈독자들도 분명 이 책에 큰 호감을 보일 것이다. 문청들은 푸슈킨이 제기한 시와 산문간의 관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일 것이다. 젊은 시인들은 푸슈킨에게서 서사적 재미의 완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렌스키가 시적 낭만을 대표하고, 주인공 오네긴은 산문정신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푸슈킨의 은밀한 욕망은 렌스키를 닮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만 덧붙이면, 시인이란 누구나
몽상적인 사랑의 친구이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의
꿈을 꾸었고, 가슴속에
비밀스러운 그 형상을 간직해 두면,
그다음엔 뮤즈가 그것을 되살려,
난 아무 걱정없이
산 지방의 아가씨를, 나의 이상형을,
살기르 강가의 노예들을 노래하곤 했었다."
숙부의 유산문제로 시골로 내려가게 된 예브게니 오네긴은 그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시골에서 시인 블라디미르 렌스키라는 친구를 알게 되고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렌스키를 통해 그의 연인인 올가와 그녀의 언니인 타티아나와도 점차 가까워진다.
타티아나는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되고 결국 그에게 사랑고백을 하지만 오네긴은 정중한 설교조의 말들로 그녀의 사랑을 거절한다.
어느 날 어느 연회에서 올가와 오네긴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블라디미르 렌스키는 오해를 하게 되고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그 결투에서 결국 렌스키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당시 남자들의 결투란 어떤 것이었을까? 솔직히 현대를 사는 나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동양에서 ‘결투’는 낯선게 사실이다. 이 부분은 푸슈킨의 실제 이야기가 녹아있다. 푸슈킨 또한 당테스와의 결투로 중상을 입고 얼마 후 사망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다시 재회하는 오네긴과 타티아나. 더 이상 오네긴에게 모든 열정을 쏟던 처녀가 아닌 냉담한 공작부인이 되어있는 타티아나. 변해버린 타티아나를 향해 그녀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뒤늦은 사랑을 고백하는 오네긴. 그리고 이에 답하는 타티아나.
나에게 이 화려함이
이 역겨운 삶의 허식이,
사교계의 소용돌이 안에서 일으킨 성공이,
이 세련된 집과 파티가
무슨 의미겠어요?
가면무도회의 이 모든 고물 따위,
이 모든 광휘와 소음과 악취 따위,
지금 당장 기꺼이 버리겠어요. 책 꽂힌 서가와 야생의 정원,
우리의 초라한 집
당신을 처음 보았던 그 장소들
그리고 지금은 십자가와 나뭇가지 그림자 아래
내 가엾은 유모가 잠들어 있는
그 평온한 묘지를 위해서라면.... p.282
초라하지만 오네긴을 처음 보았던 그 집과 그 때, 행복이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린 타티아나는 오네긴의 곁을 떠난다. 그녀가 오네긴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랑도, 그리고 젊은 날도 모두 역자가 말한 ‘지나가 버리는 것’ 으로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면이 분명 존재하리라. 첫사랑에 대한 가슴 속 깊은 곳의 설레임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이 글 읽으면서 지나간 첫사랑 여러 번 떠올렸다면 현재의 사람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 될까?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지나간 것이기에 가슴 떨림으로 지금까지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푸슈킨은 오네긴과 타티아나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라진 것들 다시는 오지 않을 것들 그래서 잡지 않으니 놓을 일도 없을 그런.
푸슈킨 당시의 푸슈킨이 살아간 세상에 존재하는 사회, 역사, 사교문화 등 여러 면들을 엿볼 수 있었다. 더 많은 지식이 있었더라면 더 크게 더 넓게 더 깊게 읽을 수도 있었겠지만.
역자가 말한 대로 ‘회상’ 그래서 가능한 과거에서 현재로의 약간의 연결고리.
그렇다. ‘지나가 버리는 것’. 오네긴을 향한 타티아나의 마지막 말들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애틋한 마음
삶에서 ‘만약에’라는 가정이 존재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직업, 학교, 여행길 등 사람에 따라 수 만 가지가 되지만 그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고 암송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이러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은 현실에서 오는 온갖 불안 요소로부터 위안 삼아 보는 하나의 꺼리가 될 수 있기에 여전히 유효한 가정이 아닐까?
이렇게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러시아의 시인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시 소설‘예브게니 오네긴’은 뜨거운 청춘으로 한때를 살았던 모든 이들에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저자 푸슈킨이었기에 이 소설 속 테마인 사랑, 청춘이 주는 의미는 더 가깝게 느껴지는 듯하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귀족의 삶을 살아가는 예브게니 오네긴과 순수하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시골 처녀 타티아나와 사이의 안타까운 사랑의 사연을 시로 엮은 작품이다. 권태롭기만 한 생활을 하던 예브게니 오네긴은 친척의 사망으로 남겨진 유산을 받기 위해 시골로 간다. 그곳에서 순수하기만 한 시골 처녀의 순박한 사랑고백을 받지만 이를 거절하고 만다. 한편 타티아나는 모스크바로 와 전쟁 상이군인과 결혼하고 우아한 귀부인이 되어 사교계를 주름잡는다. 한 사교장에서 타티아나를 만난 예브게니 오네긴은 변한 모습에 옛 일을 생각하며 사랑을 호소하지만 역시 거절당하고 만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두 편의 편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편지는 시골 처녀 타티아나가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절절하게 담아 예브게니 오네긴에게 보낸 것이다. 청춘 시절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설렘과 부끄러움, 두려움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상황이 변하여 우아한 귀부인 타티아나에게 보낸 예브게니 오네긴의 편지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그 사랑을 새롭게 알게 되면서 느끼는 후회, 아쉬움, 어쩌지 못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 등이 담겨있다.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이해부족, 시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오는 생소함이 있지만 읽어가는 동안 느끼는 시가 갖는 운율이 있어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곳곳에 말줄임표가 등장하여 이것이 뭔가 싶기도 하다. 또한 자주 등장하는 문학인들에 대해서도 막연히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는 생각에 머물게 된다. 푸슈킨이 살았던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황에서 가능했을 다양한 인간의 생활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이해를 돕는 작품해설을 보면 긴 시간이 걸렸다는 역자의 고뇌가 알만하다는 생각되 든다. ‘낭만적 꿈에서 현실로 그 이행을 노래한 긴 애가(哀歌)’라는 작품 소개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싶어 공감하는 바가 많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예브기니 오네긴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얄궂은 것이라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절대로 서로 마주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푸슈킨의 예브기니 오네긴은 당대 로시아의 젊은이들의 망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로 쓴 소설이라는 평에 걸맞게 문장이 매우 울림이 있어 이 아름다운 글을 드라마 보듯이 보는 제 자신에게 약간은 죄책감 비스무리한 것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