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예로페예프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출판의 통제를 받던 구 소련 시대에 자비를 들여서 출판한 소련 지하 출판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제목에서 언급된 페투슈키는 실제 러시아에서 약 125km(책의 내용에서 125km이라고 언급)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와 페투슈키라는 두 도시를 언급한 제목을 통하여 이 작품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또한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페투슈키를 도착지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두 가지 의문은 이 책을 읽게 된 시발점이었다고 생각된다.
저자를 떠올릴 수 있는 주인공인 베니치카 예로페예프는 알콜 중독자로 생각된다. 눈을 떠보니 모스크바의 한 주택가의 계단 앞에서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베니치카. 그는 얼마전 일하던 직장에서 작업 반장이었으나, 우연히 업무 시간에 먹은 술의 양을 표시한 그래프 문서가 상부에 보고가 되면서 해고가 된다. 이 시점에서 그는 자신의 애인과 아들(실제 작가의 아들과 매치가 된다.)이 있는 페투슈키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모스크바 시내의 쿠르스크 역에서 페투슈키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 시점에서 두 도시에 관련한 의미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모스크바를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크렘린궁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베니치카. 그는 모스크바에서 분명 살아왔지만, 크렘린궁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페투슈키행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날때가지도 크렘린궁을 본적이 없다는 베니치카의 설명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으로 다가온다. 책의 마지막에서 다시 모스크바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죽기 직전에야 크렘린궁을 인식하는 베니치카의 이야기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구 소련의 극심한 개인에 대한 통제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을 해본다. 모스크바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크렘린궁을 죽기 직전까지 보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통제로 인하여 희생된 개인의 삶을 비유하고 있으며, 죽기 직전에야 크렘린 궁을 볼 수 있는 것은 비로소 죽음이 그러한 강력한 개인에 대한 통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가 페투슈키로 떠나는 것은 그러한 통제된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의도는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페투슈키로 떠나는 그의 여정은 어땠을까? 베니치카는 각종 보드카와 주류를 담아서 열차에 탑승한다. 그는 바로 술을 마시면서 열차에 탑승한 승객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러시아의 대문호와 작가들을 술과 연관지어 이야기를 꺼내면서 탑승객들과 술을 같이 마시면서 모두들 술에 취한 상태가 되버린다. 베니치카 뿐만 아니라 다른 여행객들도 베니치카의 이야기에 끼어들면서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서부터 괴테의 파우스트, 헤겔의 철학까지 러시아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의 철학과 사상을 논하기도 하고, 베니치카가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의 경험담(실제 방문을 한 것인지 상상속의 이야기를 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도 등장한다. 이 부분은 저자인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지적인 수준을 반영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그의 지적 내용을 다루기에는 이 소설의 분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술에 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등장을시켜 언뜻 횡설수설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을 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정식으로 설명을 해줘도 이해하기 힘든 유럽의 다양한 문학, 철학, 정치 상황을 취객들의 입을 벌여서 논쟁을 하는 부분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여정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장치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쉽게 공감하기란 어려워보인다.
책의 구성은 모스크바에서 페투슈키로 가는 역들을 통과하면서 진행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페투슈키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이러한 환상적인 분위기가 더욱 강화된다. 심지어 오이디푸스에게 수수께끼를 냈던 스핑크스를 등장시켜 베니치카에게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내는 모습은 이러한 분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는 장치로 쓰고 있다. 갑자기 열차에 혼자 있음을 알게 된 베니치카. 심지어 현재 열차가 페투슈키에 도착했다가 다시 모스크바로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베니치카는 혼란을 겪게 된다. 페투슈키는 베니치카의 애인과 아들이 있는 곳이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네 명의 동료들과도 갈등을 겪었던 베니치카에게 페투슈키는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크렘린궁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모스크바를 혼란스러운 곳으로 묘사했던 반면, 페투슈키는 재스민의 향이 나고 종달새가 지저귀는 곳으로 표현을 함으로써 그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설정한 대상이었으리라 보여진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꿈꿔왔던 페투슈키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호한 분위기와 열차에 혼자 남아 있다는 설정은 쉽사리 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추측된다.
가까스로 열차에 내려서 페투슈키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향하는 베니치카. 그러나, 실제 그곳은 크렘린궁이 있는 모스크바였다. 이렇게되면 과연 그가 한 주택가에서 깨어나서 실제로 페투슈키행 열차를 탔는지조차 의심이되는 지경이다. 여기에 정체모를 네 사람이 베니치카를 폭행하면서 추격을 하고, 결국 베니치카는 이 사람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마지막 장면은 끝끝내 우리에게 명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지막에서 베니치카를 살해하는 네 사람은 책의 앞부분에서 자신을 쫓아낸 동료 네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네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라면 왜 베니치카를 살해하였을까? 애초에 베니치카는 이들 네 사람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숙소에서 쫓겨난 바가 있다. 이번에는 모스크바를 떠나려고 한 베니치카를 아예 살해를 하였다. 이 또한 구 소련의 강력한 통제 정책을 의미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한 통제를 벗어나기 위하여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일탈 행위를 한 베니치카는 결국 모스크바(구 소련)에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리라 보여진다.
이 책을 읽었지만, 솔직히 얼마나 내가 이해하였는지 모를 정도로 어려운 책이 아니었나라고 생각된다. 출판 당시의 소련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개인적으로 위와 같이 해석하였지만, 이 또한 과연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알코올 중독자의 환상을 그려낸 작품인지 아니면 그러한 상황에서 술의 힘을 통하여 지적 유희를 즐기고자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것인지는 바라보는 관점에서 다양하게 유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내용 자체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이 책의 뒷 부분을 보면 거의 이야기의 내용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막대한 주석의 양을 보더라도 만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주석을 읽다보면 성서와 연관된 부분의 내용도 이 책에서 많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에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책이었다.
나의 짧은 견문으로 베네딕트 예로페예프라는 작가를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이 책은 추천을 받아서 읽게 된 책이다. 한번 읽은 지금의 상태에서 재미로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유럽의 다양한 문학, 사상과 철학에 익숙하거나 성서와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주 못읽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생소한 작가의 생소한 구성과 표현으로 인하여 다소 애먹을 수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술 이름이 잔뜩 등장하고 주인공은 술 취한 채 등장해서 이야기 내내 취한 것 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잘 읽힘... 러시아문학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라서, 주석을 열심히 확인해야 했지만요. 소비에트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그러면서도 당 공식 문학이 아니라 자기/지하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받은 작품이라는데 예로페예프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을유세계문학전집은 처음으로 구매했는데 본문 주석 처리가 참... 첫 소제목 쿠르스크 역부터 별표*가 붙어 있는데 (사벨롭스크 역*, 주브롭카*, 코리안드로바야*등...) 이 별포에는 링크가 걸려 있지 않습니다. 팝업까진 아니어도 링크도 없으니 양이 적잖은 이 주석을 확인하려면 문단 끝도 챕터 끝도 아닌 본편이 끝난 다음에 실린 '주' 라는 챕터에 가서 궁금한 주석을 찾아서 읽어보고 그 다음 문장을 확인하기 위해 본문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은 상태바를 움직여 책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게 쉽지 않아서 불편해요... 출판사에서 수정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베네딕트 예로페예프 저 / 박종소 역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 리뷰입니다. 전화 케이블공인 주인공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작업반장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어 아들과 애인이 사는 페투슈키로 향하는 이야기 인데 예상외로 재미있고 술술 읽힙니다. 하지만 잊혀졌다, 택도 없다 등 맞춤법이 엉망이라 맨정신으로 읽기에는 너무 거슬립니다. 교정을 전혀 안하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