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G. 웰스의 <투명인간>을 받아 들고 보니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본 만화 <도깨비감투>가 떠오른다. 이 만화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19금’이 될 수도 있었으나, 소년소녀만화답게 도깨비감투의 스텔스 기능을 한껏 활용해 장난을 치거나, 악당을 물리치는 조신한 내용이었다.
머리가 굵어져서 ‘여탕’ 굴뚝에서 올라오는 하얀 연기에 목이 메기 시작할 즈음, 시험 전날 당최 배운 기억이 나지 않는 시험범위의 압박에 몸서리를 칠 때도 교무실 서랍을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얼마나 고대했던가. 허나 ‘투명에 가까운 몸’에 대한 욕구가 불투명한 미래와 혼탁해지는 정신세계에 비례하여 그 ‘부질없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실에 찌들어 살면서 가끔 음료수 CF에서 비스무리한 카피를 내걸었는데, 난 그제나 지금이나 블랙커피 애호가였다.
만약 지금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은행 털기? 세계정복? 세계평화? 하나같이 탐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정말 투명인간이 된다면 분명히 실컷 다 해보고 나서 후회하겠지만, 아무튼 이건 나의 욕구가 아니라 세상의 욕구가 아닌가? 투명하게 변한 나는 과학과 권력의 상징으로 비춰질 것인가? 아니면 신의 사자로 추앙받을 것인가? 이러나저러나 나만 빼고 지구인 모두를 ‘시각장애인’으로 만들고 사는 게 과연 행복할까?
<투명인간>처럼 철저하게 타자화된 인간을 다룬 작품으로, 좀비바이러스가 휩쓴 뒤에 홀로 인간으로 남겨진 리차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을 들 수 있는데, 주인공 네빌 역시 투명인간인 그리핀처럼 거의 맞아죽는다.
우리의 상상 혹은 기대와 다르게 이들이 허무하게 죽는 이유는 ‘도깨비감투’나 ‘절대반지’처럼 불투명인간으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설정 때문이다. 이는 인간과 좀비를 넘나들 수 없는 설정과 일치한다. 내 존재 자체가 완전히 변하거나 혹은 나를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변한 상황에서 양각이나, 음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어서 그리핀의 몸이 보이자 마을(사회)가 안정을 찾듯 좀비들이 온전한 사회가 구성하려면 네빌의 죽음, 즉 자신들과 동일성을 회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기본으로 하는 타자와의 갈등은 과연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기껏해야 할리우드영화에서나 화해(엑스맨3-최후의 전쟁)가 가능할까….
찾아보면 타자화된 인간을 다룬 작품이 많지만 우선 두 작품을 선상에 놓으면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 사람들은 과학적(과학자), 도덕적(목사), 생물학적(의사)으로 세운 ‘인간’이라 구별되는 정체성에서 어긋난다는 이유로 투명인간을 제거했으나 바로 그 ‘인간’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제거되고 ‘전설’로 남고 마는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망막에 상이 맺히는 원리 등등의 이유로 작품에서처럼 화학처리를 한다고 해서 투명인간이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지만 1897년 출간 당시, 과학지식이 동원된 <투명인간>은 인간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 타자화의 관계 설정, 파시즘에 대한 경계 등 다양한 변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처럼 <투명인간>은 문예출판사에서 완역으로 출간하기 전까지 그동안 “아동판으로만 출간”되었다.
이는 아마도 소설 전개상 허점으로 지적될만한 부분, 즉 그리핀의 서툴고 무모한 행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생체 실험에 성공했다면 당연히 물질 실험도 성공했어야 한다거나, -그랬다면 벌거벗은 채로 추위에 떨면서 맨발로 고생할 필요가 전혀 없다.- 권력과 손을 잡는다거나, 특허를 낸다거나 하는 등의 준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핀은 오로지 투명인간에서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려고 발버둥치거나 투명인간으로서 공포정치를 펼치려는 야망을 내보인다.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극단의 선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핀의 이런 자세는, 당연한 얘기지만, 작가의 의도로 봐야 한다. 작품에서 가장 쓸모없고 멍청한 인물로 그려지는 마블조차도 “내가 그 모든 비밀을 풀 수만 있다면…. 그 자가 범했던 실수를 하지 않을 텐데. 정말 잘 이용할 텐데!”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리핀의 유아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식욕, 수면욕 등 본능에 충실한 행위가 자세히 묘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는 투명인간이 되어 인간으로 규정되는 모든 통제에서 벗어난 이상 동물화되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일까? 그보다는 새장 밖으로 내쫓긴 새처럼, 통제에서 벗어남으로써 따라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감시카메라 난립에 따른 찬반 대립에서 보듯이 인간은 자신이 ‘보인다는 행위’에 사생활 침해를 내세우면서도 반대로 누군가를 계속 보고 있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책의 표지에서 보듯이 ‘나’를 규정해주는 것들은 내 자신이 아닌 우스꽝스럽게도 사회의 거름망을 위에 나설 무대 의상과 분장인 것이다.
“나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분을 바르고, 나를 보이게 할 만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나를 다시 보이게 하려 했어. … 마스크를 선택했어. 좀 기괴해 보였지만 세상에는 그보다도 더 기괴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 검은색 안경과 희끄무레한 수염과 가발도 골랐어. 속옷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건 나중에 사면 되니까.” (191P)
결국 과학이라는 화려해 보이는 잣대를 앞세워 인간 위의 선 초인으로 거듭났으나,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더러운 파리똥이 덕지덕지 붙은” 철지난 연극의상 가게의 낡은 짐 더미를 뒤지는 아이러니. 그러나 거울을 보면 사실 나라고 투명인간과 다르겠는가? 단지 남들보다 열심히 분첩으로 찍어바르는 수밖에.*
인상깊은 구절
“나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분을 바르고, 나를 보이게 할 만한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서 나를 다시 보이게 하려 했어. … 마스크를 선택했어. 좀 기괴해 보였지만 세상에는 그보다도 더 기괴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 검은색 안경과 희끄무레한 수염과 가발도 골랐어. 속옷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건 나중에 사면 되니까.” -p19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면서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한 번씩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막연하게 상상해 온 투명인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꿈 속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을 좀 더 현실적으로 상상해본다
당연하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은 어느 한 여관에 투숙하여 연구를 계속한다. 아마 다시 보이게 하기 위한 연구이리라. 보이지 않는 몸을 보이게 하기 위해 붕대를 칭칭 감은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신경질적이고, 뭔가를 숨기려는 투명인간을 아니꼬워하던 여관 주인을 비롯한 주민들은 어떠한 계기로 투숙객이 투명인간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마을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궁지에 몰린 투명인간은 다른 마을로 몸을 옮겼다. 협박하여 자신을 도우라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들어간 집이 대학 시절 친구였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친구는 투명인간을 도우는 척하면서 신고를 한다. 또 다시 그 마을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투명인간은 그 친구에게 보복을 하다가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상상을 마치고 돌아와 현실에서 투명인간은 누구일까. 저자가 이 책을 쓸 때는 아마 흑인과 같이 유색인종인으로 불리던 이들이 아니였을까. 겉모습이 자신의 무리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알 수 없는 겁을 느꼈고, 그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핍박했을 것 같다.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라고 생각했을 것만 같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걸 말한다고 상기하는 것이 아닐까. 때때로 그들이 폭력적이게 된 건 우월집단의 정신적 폭행이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제 나에게 투명인간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본다. 나는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맺더라도 내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해 오해와 갈등이 자주 생긴다. 오해가 생겨도 '그렇게 생각하라지'라는 마음이 먼저 들어 그냥 회피해버리고 만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쌓여 때때로 큰 사건이 생겨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다. 그때그때 내 마음을 숨기지 않고 직접 마주했더라면 그렇게 큰 갈등을 겪을 일이 없지 않았을까.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니 얻는 것도 없었고, 심지어 내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잃어갔다. 결말을 조금 기이하게 해석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죽은 투명인간의 의미는 내가 죽어야만 다시 태어난다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여태까지 고수했던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놓아주면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정말이다. 그래야 내 마음이 내게 보이지 않을까.
변명이겠지만 좀 피곤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이렇게 이런 상태이니 잘 써지지 않아 약간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변명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항상 이렇게 변명해왔다. 이러한 습관을 버릴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투명인간이 자유로워보였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내 마음 속 투명인간이 다시 눈에 보이도록 하겠다.
제목 :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A Grotesque Romance, 1897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즈
역자 : 임종기
출판 : 문예출판사
작성 : 2012.11.21.
“만약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과연 어떨 것 같습니까?”
-즉흥 감상-
아마도 SF라는 장르에 눈을 뜬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로 기억합니다. 산책삼아 헌책방에 들른 저의 시야에 ‘투명인간의 사랑 Memoirs of an Invisible Man, 1987’이 들어오자 ‘이것이 그 유명한 ‘투명인간’이라는 책이란 말인가!’라며 당장 품에 안았는데요. 뭐가 그리 바빴는지 책장 한 구석에 봉인시켜두고는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허버트 조지 웰즈 이어달리기’를 통해 그동안 착각의 여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매섭게 추운 2월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작은 마을에 낮선 이가 도착해 여관방을 하나 잡습니다. 그런데 어딘가 크게 다쳤는지 전신을 붕대로 감싼 것은 기본으로, 반질반질한 코를 제외하고는 옷과 장신구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요. 그런 그의 등장과 함께 작은 마을에서는 기이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증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에게 집중되자,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마을을 혼란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어버리고 마는데…….
어린 시절. ‘만약 초능력을 가지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어?’라는 질문에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슈퍼맨이나 배트맨과 같은 슈퍼히어로가 가진 능력을 말하셨다는 분들도 있겠지만, 일단은 ‘투명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니 조금 참아주셨으면 하는군요. 아무튼, 그 이유에 대해 당시의 친구들과 오만가지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이야기꽃을 피웠었는데요. 세월이 흘러 원작을 만나보니, 으흠. 평범함을 벗어난다는 것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영화 ‘젠틀맨 리그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2003’에도 ‘투명인간’이 등장해 농담하듯 자신의 웃기지도 않는 일상에 대해 말한 적은 있었지만, 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네? 영화 ‘할로우 맨 Hollow Man, 2000’과 비교하면 어떻냐구요? 음~ 죄송합니다. 그 작품도 ‘언젠가는 봐야지~’하고 있다가 망각의 창고에 넣어두고 있었음을 방금 알게 되었는데요. 대신 영화 소개 글을 옮겨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그의 욕망과 과대망상이 분출되며, 이 새로운 힘에 급속도로 취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전지전능하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원작에서의 투명인간은 투명화 되면서부터 도망자가 되었는데, 영화에서는 ‘악에 물든 슈퍼 히어로’처럼 표현되는 것 같은데요. 직접 뚜껑을 열지 않고는 뭐라고 할 순 없지만, 단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지 물리적인 투명성은 확보할 순 없다는 것을 우린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투명인간은 그들 자신의 시력까지 상실되어버린다는 유명한 오류 또한 말이지요! 크핫핫핫핫핫핫!!
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상한 쪽으로 가지를 뻗었군요. 아무튼, 이번 작품은 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가능성’만을 남겨두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는데요. 낯선 이의 방문과 그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불러일으키는 사건 사고들은 물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처절히 묵살되는 투명인간 등 ‘관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듯 했는데요. 음~ 감상문을 통해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에는 제 글 솜씨가 부족하니, 직접 책과 만나시어 생각과 감상의 시간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감상문을 작성하며 떠오른 추억의 연속극 ‘투명 인간 The Invisible Man, 2000~2002’을 한번 찾아보고 싶어졌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칠까 하는군요.
TEXT No. 1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