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 찾기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무척 흥미롭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 속에서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을 발견하고 자신의 현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리라.
유림외사는 이전의 중국 4대기사와는 조금 다른 특색을 보인다. 먼저 저자의 신분이 분명한 점과 이야기의 배경도 사대부와 문인 사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루쉰의 의해 주목받은 이 작품은 중국 현대사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으로 인해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다가 1980년대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크게 주목받는 경우가 있다. 이는 그 뜻하는 바와 행위가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거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극과극의 대조를 보인다. 유림외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역시 부귀공명을 꿈꾸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모습이 다양하고 또한 그들 속에는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와는 별개로 사람의 본성을 아끼며 돌보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정상지와 우육덕이 그들이다. 이들은 학문이 높고 관직의 높낮이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들이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사람들 주변에는 늘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무엇 하나 걸리는 것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간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역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오는 역경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풀어가려고 한다. 결국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일 것이다.
유학이 삶의 근거가 되고 남녀가 유별하였던 시대정신이 점차 흐릿해지면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변화를 가져온다. 하지만, 명사들이 태학사를 건립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나 곽역이 평생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모습, 남편을 따라 죽은 휘주부의 열부 등에서 저자는 기본 사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유림외사는 마지막에 이르러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황제에 의해 어진 이를 천거하여 표창할 수 있게 하라는 칙령으로 시작된 천거에 그들의 삶 속에서 보여준 행동을 기준으로 등위를 매긴 것이다. 사회적 존재로써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 관계를 어떻게 엮어가는 가는 사람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비록 순위 매김이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으나 칭송받을 만한 사람을 가려 표창하고 사람들에게 모범을 세우고자 하는 것에 의의가 있으리라 짐작한다.
허위와 가식으로 살아가는 사대부들 명분이라는 것이 다소 허황되거나 겉치레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모임이라는 형태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는 점에 있어서 개별화되는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에 ‘소통’이라는 주제를 놓고 살핀다면 본받을 만한 것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긴 글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읽으며 미소 지을 수 있었던 책이다. 옛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오늘을 비출 근거와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찾는다는 점에서 훌륭한 예가 아닌가 싶다.
몇해 전에 어느 작가의 강연회에 가서 그 작가가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중국문학의 거대한 뻥은 읽으면 기가 차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당연한 이치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인데 나도 중국소설을 읽을 때면 느끼고는 한다. 현대문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런 듯하다.
이 책. 유림외사는 그런 뻥을 능수능란하게 행하는 온갖 인물 군상들의 열전이다. 옮긴이의 말대로 찬찬히 관람하면 허탈한 웃음도 나오고 와평에 언급된대로 지루할 틈이 없다. (나는 좀 지루했다..) 작품에 나오는 많은 청대의 지식인들은 사회의 '잉여인간'들이다. 어느 시대를 완벽한 시대라 할 수 있겠냐만은...여기에서도 뒤틀린 청대 지식인 사회 속에서 어리석고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곤한다. 55회에 걸쳐 등장하는 지식인은 과거 급제를 인생 최고의 진리로 신봉하는 이들과 가짜 명사. 그리고 이들은 유희를 통해 명성을 추구하며 타락한 사회에 기생하기도 한다. 55편의 열전은 이어지는 이야기인 듯 하면서도 독립적이다.
제1회에는 유림외사를 아우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귀공명. 이 네 글자는 이 글 전체의 착안점이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밝혀 놓았으되, .. 중략.. 이후로 펼쳐지는 온갖 변화들은 모두 이 네 글자로부터 변형되어 나타난 지옥의 형상들이니....'
이 문장으로 지은이 오경재가 어떤 것을 목적으로 혹은 심정으로 유림외사를 저작하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당대 지식인으로서 오경재는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이 작품에서 토로했다. 하지만 풍자소설로서 긴 내용이나 그만큼은 지루하지 않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설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중간 가족여행 중에 남원의 광한루에 들렀었다. 아~~ 온통 비릿한 냄새로 감싸는 수 백여 마리의 잉어들이 차지하고 있던 연목과 수목에 둘러싸인 광한루의 단단한 마루에서 하루에 반 나절씩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당장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풍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즐길지도 모르는 소인배이지만...그런 사치스러운 독서시간에 대한 탐욕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