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라 셀레스티나>를 완성했다. 그 그림이 바로 본 책의 표지모델로 등장한다. 한쪽 눈이 백내장을 앓은 듯 몽롱하고 특이한 수염을 길렀으며 속을 알기 힘든 엷은 미소의 기괴한 노파가 바로 이 희곡의 주인공 셀레스티나이다. 15세기말 16세기 초 중세 스페인의 대표적 희곡으로 곧 붕괴될 중세의 낡은 신분제도와 새로이 다가올 근세의 정신세계를 예고하는 작품속 캐릭터들의 면밀함이 돋보이는 명작이라 하겠다.
가진 자의 운명을 타고난 봉건귀족의 자제 칼리스토는 남부러울게 없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번개 맞은 듯 아름다운 멜리베아를 보고 정복욕에 휩싸인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지만 칼리스토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인 샘프로니오와 마을의 소문난 매파 셀레스티나의 활약에 기대게 된다. 하인 샘프로니오는 욕망과 정념에 이성을 잃고 감성에 휘둘린 주인 칼리스토를 내심 비꼬고 얕잡아 보면서 마녀와 인간의 중간쯤 되는 셀레스티나와 합심하여 멜리베아와의 사랑놀음을 열심히 조작한다. 간교한 셀레스티나는 칼리스토의 다른 하인 파르메노를 데리고 있던 창녀와 결탁시키며 영악하게 매수하고 멜리베아의 순진한 영혼을 건드리는데..
당연히 멜리베아는 교활한 노파 셀레스티나에게 유혹당하고 온 힘을 다해 칼리스토와 정념에 빠진다. 중세의 사랑에도 역시나 돈이 든다. 멜리베아의 사랑을 얻은 칼리스토는 셀레스티나에게 황금목걸이로 그 댓가를 치루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셀레스티나가 일을 성사시키기에 온 정성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샘프로니오와 파르메노의 당연한 바램과 다 차린 밥상에 그들이 숟가락만 얻었다고 자만하는 셀레스티나의 물욕이 충돌하면서 결국 두 하인은 셀레스티나를 살해하고 만다.
조금 있을 때는 조금 주다가 많이 생기니까 아무것도 없더라. p.260
이렇게 말도 잘한다. 하지만 제도적 정치에 위배되는 죄를 범한 두 하인은 바로 참수를 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념없이 정념에 타오르는 두 연인은 밤마다 월담을 하며 과수원 으슥한 나무밑에서 경솔한 속삭임을 나누다가 운명의 그 밤,칼리스토는 헛발짓으로 사다리에서 낙상하여 어처구니없이 죽는다. 이제 멜리베아의 남은 의무는 바로 따라 죽는 것, 어디서 많이 봤던 시나리오 같지 않은가. 아버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하고 마는 패륜녀가 된다.
희곡의 전체적 분위기는 우스꽝스럽지만 결과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해학적인 풍자를 책임지는 두 하인 샘프로니오와 파르메노의 대사는 물 흐르듯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셀레스티나의 교활하지만 의미심장한 대사들은 읽는 내내 심장속에 깊이 박히는 어록들이 되고 만다. 종교와 신화가 뒤범벅이 된 시대적 모순을 신랄하게 꼬집는 언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의 속성은 별반 다를게 없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 인간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중세를 뒤흔든 신분제도의 상징인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중세의 스캔들을 조장하며 시대에 빌붙어 사는 셀레스티나, 중세의 가진 자인 귀족도, 다스림을 받을 만한 기사도 아닌 힘없고 빽없는 신분의 샘프로니오와 파르메노는 제도적 모순앞에 소리없이 죽음을 당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근세 정신의 파란을 예고하는 문제적 캐릭터들이다. 이처럼 청산유수의 대사를 본 적이 없다. 어려움 없이 쉽게 읽혀지며 깨알같은 대사마다 물밀 듯 공감되는 이유는 세상의 상식에 의거한 속담과 격언들의 절묘한 조화와 색깔있는 캐릭터들의 압도적인 매력때문이다. 이에 자연스러운 번역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쉽게 읽히게 하려는 번역자의 노력이 보인다.
스페인 문학 읽기의 출발에 불을 당긴 작품이기도 해서 내심 읽는동안 행복했다.
괜찮은 출발이다. 역량있는 고전을 선뜻 선물로 주신 예스블로거 권년님께 감사를 드리며....
상사병에 빠지다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를 읽고
세계 문학사의 원형 중 하나이면서 후대 문화에 많은 영감을 준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라 셀레스티나는 스페인 문학 중 돈키호테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귀족 명문가의 자식인 칼리스토와 여자 주인공인 멜리베아의 죽음을 불사한 사랑과 이들의 두 하인 그리고 간교한 늙은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정신과 물질, 개인 가치와 사회 제도, 주인과 하인, 인간 존재와 그 본질 사이의 투쟁과 갈등이 당시 스페인 하층 문화를 배경으로 생생하고 화려하게 펼쳐진다. 이는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시기의 정신적 흐름과도 같은 맥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을 이끄는 세 사람의 중심인물이 있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잇는 뚜쟁이 셀레스티나이다.
남자 주인공인 칼리스토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늘 무엇이든 수동적인 자세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멜리베아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지만 직접 나설 용기가 없어 뚜쟁이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의 조급함과 상사병의 사이에는 진실이 무엇인지 조차 가늠할 판단력 역시 결여되어 있다.
여자 주인공인 멜리베아는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이다. 자신의 믿음과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며 순수한 사랑으로 죽음까지 불사한다. 그리고 사랑 그 자체가 그녀의 존재 이유가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칼리스토에 대한 강경한 태도와 체면주의를 보여주지만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는 순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셀레스티나는 돈에 그녀의 모든 노력과 꿈이 귀결된다. 그녀의 삶은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시한다. 도덕과 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로우며 성적 도덕 개념도 타락한 그녀의 모든 행동은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녀가 입을 열면 사람들은 능청스러운 그녀의 말솜씨에 빠져버린다. 모든 사랑에서 기인되는 쾌락은 악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젊은이란 그저 한 낮에 스쳐지나가는 바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그녀는 돈을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 낸다.
당신은 상사병에 걸린 적이 있는가.
라 셀레스티나의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상사병은 외적인 면이 많다. 잠을 못자거나 헛소리를 하거나 그녀를 찾아 상상의 나래를 편다. 반면 여자 주인공의 상사병은 사랑은 정신적인 것에 치우친다. 내 모든 마음을 다해 사랑한 그 남자를 위해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 그리고 또 한사람, 셀레스티나의 상사병은 돈이다. 그녀에게 사랑은 돈이고 돈은 곧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혹은 한 평생을 살면서 우리의 삶과 상사병에 걸린다. 동경, 이상, 꿈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일들 앞에서 괴성도 지르고 행복한 웃음도 짓고 명예나 권력을 바라기도 한다. 열병처럼 혹은 약간의 미열을 가지고 내 자신의 삶과 사랑에 빠지다 보면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나누고 더하고 함께할 것이다.
라 셀레스티나는 우리 인생의 많은 이야기를 단적으로 담고 있다.
조금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고 극단적일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우리의 자화상을 비춰준다.
당신 지금은 무엇과 상사병에 빠져있는가.
욕망의 굴레에 선 사람들
사람들이 가슴속에 담아둔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게 되는 때는 언제일까? 늘 가지고 살지만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의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깊숙이 숨겨두어야 만하는 욕망이라는 것이 눈앞의 현실로 손에 잡을 가능성이 대두될 때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욕망은 일상에서는 차분하게 다독이면서도 특정한 계기를 통해 현실화 되었을 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제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망설이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동조자를 찾아 나서고 또 어떤 사람은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이렇게 각기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모습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는 문학작품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가상의 현실이라는 장치가 있기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감정이 표출될만한 상황에선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특정한 가치관에 의해 억눌러왔던 대표적인 시대가 중세로 봉건제라는 신분제도와 종교적 이념에 의해 인간의 삶을 철저히 규정한 시대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강압적이던 신분제도와 종교이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억눌려왔던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 표출되던 때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문학작품이 있다. ‘라 셀레스티나’가 그것이며 그 시대 스페인의 일면을 통해 인간의 근본 욕망에 대해 깊은 통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라 셀레스티나’는 이 작품은 만들어지는 과정이 특이하다. 초기 원고의 작성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페르난도 데 로하�’라는 저자에 의해 이어쓰기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회 변혁기의 혼란스러움이 사회 구성원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저자 역시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의 반영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이야기의 기본 흐름은 청춘 남녀가 만나 첫눈에 반한 남자가 뚜쟁이를 동원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드디어 사랑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뚜쟁이가 일을 도모한 일당에 의해 죽고 한 달간의 뜨거웠던 사랑을 나누던 연인도 결국 죽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중심적 인물로 주인공 남녀 칼리스토와 멜리베아 그리고 뚜쟁이 셀레스티나와 칼리스토의 하인 둘이 주인공들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보는 아슬아슬함이 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던 뚜쟁이 셀레스티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동네 남자와 여자의 기본 감정에 대한 욕망의 분출을 충동질하며 구 사이에 떨어지는 이득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편에 붙어 조그마한 이득이라도 챙겨보려는 칼리스토의 하인 두 명은 결국 뚜쟁이 셀레스티나를 죽이고 자신들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종교적 가치관, 집안의 분위기와 여자라는 굴레에 갇혀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왔던 여주인공 멜리베아는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아버지 앞에서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한다.
인간의 기본적 감정, 그 중에서 이성에 대한 욕망의 표출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념에 의해 나타나는 모습은 달라지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은 늘 한결같을 덕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욕망의 굴레에 갇혀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데 방해요소로 방치한다면 개인과 사회에 좋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해도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가 보다.
스페인 중세 문학의 걸작으로, 돈키호테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했지만
그때의 문화라든지를 생각하고 읽지 않으면 동의하기는 힘들다.
작품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는 문장이나 단어의 뜻 풀이를
각각 페이지에 게재해줬으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좀 더 쉬웠을텐데
따로 만들어 놓았던 부분이 제일 아쉽다.
귀족 명문가 집안의 자재 칼리스토와 멜리베아의 사랑은 셀레스티나라는 뚜쟁이가 존재함으로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칼리스토에게 강하게 끌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이목땜에 억눌러왔던 욕망을
셀리스티나의 언변으로 인해 더이상 억누르지 못하게 되는데...
그렇게 둘의 사랑을 연결시켜주면서 칼리스토에게서 받아낸 재물들을
혼자서 독차지 하려 욕심을 부리다가
같이 일을 꾸몄던 칼리스토의 하인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다 읽고나면 본문 맨 뒤에 있는 해설부분을 꼭 읽어야만
읽는동안 이 책이 이런이야기를 하고 싶은건가?싶었던건가?라는 의문을
그나마 해소할 수 있다.
왜 이런 식의 말이 나오지? 왜 이렇게 얘기하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드는 생각은
너무 번역에 충실했나 보다.
좀더 매끄럽게 다듬어 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든다.
분명히 좋은 작품인 건 알겠지만 사전 지식 없이 읽기엔
좀 부족하지 않았나...내가 이해를 못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