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외 - 을유세계문학전집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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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외 - 을유세계문학전집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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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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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테로와 나 - 을유세계문학전집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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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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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재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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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희곡선 - 을유세계문학전집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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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벤구르 - 을유세계문학전집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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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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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 존 니컬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저/윤혜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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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혼
니콜라이 고골 저/이경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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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
너새니엘 호손 저/양석원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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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하 - 을유세계문학전집 5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김희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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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상 - 을유세계문학전집 55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저/김희숙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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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 전원교향악
앙드레 지드 저/이동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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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플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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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 을유세계문학전집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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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베르터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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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불가코프 저/이병훈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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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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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외 - 을유세계문학전집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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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후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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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을유세계문학전집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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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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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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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의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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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저/이동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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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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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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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테아 2.2
1984년 - 을유세계문학전집 48
조지 오웰 저/권진아 역
1984년 - 을유세계문학전집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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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뭐 아버지인 줄 알고 죽였나 평점8점 | g******1 | 2016.10.19 리뷰제목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가 특정한 형식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뒤편에 설명되어 있지만, 그 부분은 크게 관심이 없어서 꼼꼼히 읽지 않았다. 다만, 여기 나온 세 개의 비극에서 코러스가 차지하는 역할이 상당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예술의 전당 매거진 2005년 2월호 유재원 교수가 쓴 글에 그리스 비극의 기원에 대해 간략하게 나와있었다. 기원전
리뷰제목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희곡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가 특정한 형식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뒤편에 설명되어 있지만, 그 부분은 크게 관심이 없어서 꼼꼼히 읽지 않았다. 다만, 여기 나온 세 개의 비극에서 코러스가 차지하는 역할이 상당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예술의 전당 매거진 2005년 2월호 유재원 교수가 쓴 글에 그리스 비극의 기원에 대해 간략하게 나와있었다. 기원전 7세기 정권을 잡은 페이시스트라토는 민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민중 축제를 대대적으로 지원했는데, 이 때 생긴 놀이마당에 음유 시인이 디오니소스의 전설을 읊고 음유시인의 지위에 따라 코러스들이 춤과 노래를 도맡아 하면서 점점 연극적인 형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 후 배우의 수는 아이스킬로스 대에 이르러 한명에서 두명으로 늘어났고, 그 다음 세대인 소포클레스에는 배우의 수를 셋으로 바꾸어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완성했다고 한다. 


특히 부자간의 갈등을 설명하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스토리이지만 막상 작품으로 읽었을 때 기대하지 못했던 디테일 속에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희로애락은 물론 먼 시대의 낯선 문화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당시에도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온 신화로서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그들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TV 앞에 앉아 비슷비슷한 내용의 막장 드라마를 매일 들여다보며 울고 웃는 것처럼 그들도 이미 알고 있는 신화의 이야기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모여들어 울고 울었을 것이다. 


같은 것은 내용이고, 다른 것은 이야기의 흐름, 구성, 순서다. 알고 있는 것은 내용이고, 모르고 있던 것은 오이디푸스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청중(독자)은 그가 태어나서 아버지를 죽인다는 신탁을 받아 버려지는 시간상의 처음이 아닌, 이미 (우리가 알고 있고, 그들이 알고 있던) 신탁이 실현되어 테베의 왕이 되어 있는 오이디푸스 왕을 만난다. 이미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모든 서사는 처음으로 관객을 맞은 오이디푸스 왕의 과거 속에 모르는 채로 있고, 독자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은 어릴 때부터 주워들은 이야기에서 이미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지만 오이디푸스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오이디푸스가 통치하는 테베에는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코러스는 왕에게 테베의 시민들을 역병에서 구해달라고 노래한다. 신탁을 구한 오이디푸스 왕은 역병이 그 전의 테베 왕 라이오스의 살인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고대 그리스 관객들은 이미 오이디푸스가 찾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연극은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그의 왕비 이오카스테가 아이를 낳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리라는 예언을 듣고 그 아이를 하인에게 버리라고 시키고, 그 버려진 아이가 코린트의 왕 폴리버스에 의해 양육되고,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부모를 죽이고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고 그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부모를 떠나 테베로 가는 길, 친부인 라이오스와 사소한 시비끝에 살해하게 되는 전 과정이 차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정보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꿰어맞춰,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의 끝에서 범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엄청난 사실이 반전으로 밝혀진다는 데 위대함이 있다. 모든 추리 소설의 원형, 모든 심리극의 기원을 이렇게나 잘 알려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자아 혹은 본질을 찾아가기 위한 수많은 문학작품의 원형과 심지어는 잊어버린 과거, 기억상실을 딛고 자신을 찾고자 하는 작품들을 이 작품의 연속성 상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읽어도 여전히 매혹적인 것은, 


이 작품은 당시 비극 각본인가 하는 대회에서 2등으로 수상했다고 한다. 이 때 수상한 1등이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수천년이 넘도록 전해내려오는 작품은 1등이 아닌 2등의 작품이다. 2등도 3등도 심지어는 꼴등이라 할지라도, 후대에 이르러 위대함이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다. 이 작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안티고네>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도 함께 실려있는데, 시간 순으로 되어 있지 않고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그의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돌아와서 죽은 오빠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한 크레온의 명을 어기고 매장의 관습을 지키고 벌을 받는 내용인 <안티고네>가 맨 처음에 있고, 그 다음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 그리고 오이디푸스 왕이 장님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맨 마지막에 실려있다.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6 댓글 8
eBook 운명이란. 비극이란. 평점10점 | n*****7 | 2017.02.13 리뷰제목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비극의 서사적 조건에 부합하는 요소가 많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영웅적 주인공과 그 영웅이 자신의 실수, 그리고 운명에 의해 몰락하는 이야기.그런데 이 작품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그런 형식적인 부분 때문만이 아니다.운명과 인간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겠다.생각거리를 던져준
리뷰제목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작품이 오이디푸스 왕이다.

비극의 서사적 조건에 부합하는 요소가 많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적 주인공과 그 영웅이 자신의 실수, 그리고 운명에 의해 몰락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 작품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그런 형식적인 부분 때문만이 아니다.

운명과 인간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겠다.

생각거리를 던져준다는 건 운명이라는 것에 대한 메시지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운명은 결정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운명이란 것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의 삶이 인간이고, 실존인 것처럼.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명에 대항하는 존재다.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댓글 0
종이책 오이디푸스 왕 외 평점10점 | y*******o | 2015.08.06 리뷰제목
도대체 그런 걸 왜 읽어?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면, 혹은 다른 고전들을 읽게 될 때면, 그게 아니면 여러 난해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면 저런 질문을 받게 될 때가 곧잘 있다.그 럴 때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귀찮으니까 간단하게) 재미나서 읽는다고 대답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를 느끼는 것-방법이 각자 다르기 마련이니까. 대부분은 그런 대답에 그냥 대충은 수긍하
리뷰제목

도대체 그런 걸 왜 읽어?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면, 혹은 다른 고전들을 읽게 될 때면, 그게 아니면 여러 난해한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을 때면 저런 질문을 받게 될 때가 곧잘 있다.


그 럴 때마다 (길게 설명하고 싶지만 귀찮으니까 간단하게) 재미나서 읽는다고 대답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를 느끼는 것-방법이 각자 다르기 마련이니까. 대부분은 그런 대답에 그냥 대충은 수긍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그런 식의 대답을 들으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표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나도 그런 질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서로 그런 것으로 피곤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기분으로 적당하게 이해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괜한 것에 열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았고, 우선은 어머니부터 내가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열심인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낳아준 어머니도 이해해주질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했을 때, 어디서 그런 한심한 질문을 하느냐고 말대답해서 한참을 다툰 적도 있어서 경험상 그런 질문은 가볍게 들어주고 그 사람과 되도록 (책과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무언가를 읽는 것에 어떤 식으로 재미를 느끼는지는 각자가 다 다른 것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니까.


이 런 말을 꺼낸 다음에 굳이 그리스 비극을 왜 읽는지를 설명한다면, 그리스 비극을 읽게 되는 이유는 그 비극을 경험하는 과정과 그 비극을 직접적으로 경험했을 때의 반응에 대해서 큰 호기심을 느끼기 때문이고 비극, 비참, 괴로움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때의 반응의 원형을 혹은 그 비극을 경험하는 가장 원초적인 순간을 그리스 비극은 무척 극적으로 만들고 있고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읽게 되는 것 같다.


다른 작가들 중에서 특히 소포클레스의 경우 등장인물들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에 집요하게 몰두하면서 비극을 피할 수 있는 혹은 비극이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서도 그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있고, 그러면서 더욱 비극성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반복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만들어낸 비극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혹은 경험할 것을 예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그의 비극이 유난히 인상적으로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소 포클레스의 대표작이면서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고 있는 (거기에 프로이트 덕분에 좀 더 복잡한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한) ‘오이디푸스 왕’과 그 비극 이후의 이야기들을 모은 ‘오이드푸스 왕 외’는 오이디푸스가 겪은 비극과 함께 그가 겪은 비극과 그 비극 이후의 또다른 비극들을 알 수 있으면서 그 비극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알 수 있으며 혹은 깨달을 무언가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렇게 진지하고 지나치게 열중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다.

그 비극 자체를 경험하면 각자가 각자에게 맞는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조 금은 느슨하고 약간은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어쩐지 길고 긴 후일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보다는 ‘안티고네’가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결국에는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가와 선택을 바꾸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반복해서 읽어도 여전히 재미나게 읽혀지게 되고 있고, 그 비극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격렬한 감정과

우연하게 알게 되는 진실의 실마리들

감정적이고 고집스럽게 굴면서 진실을 알고자 혹은 자신의 감정과 고집에 집중하고 노력하다가 결국에 밝혀지게 되는 혹은 폭로되고 파국으로 향하게 되는 과정이

어째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관심을 갖게 되고 재미를 느끼게 되는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하게 되기만 한다.


현명함과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할 뿐인 인간의 오만함과 아둔함을 알면서도 모르게 되는 내 무지에 혹은 한심함에 대한 최소한의 (깨달음을 위한)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벗어나려고 하고 있고 용감하게 맞서려고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신들이 만들어낸 비극에 끼워 맞춰지고 그 비극의 운명에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운명을 나는 모르면서도 혹은 모르기 때문에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걸 왜 알려고 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고, 그게 결국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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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부정한다 평점8점 | c*********p | 2015.11.24 리뷰제목
이 책은 모두 세 편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두 편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한 편의 안티고네 이야기다.<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세 편의 이야기의 제목이자 실린 순서대로 써 본 것이다.<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난 후, 그의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성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다. 대략 상황을 적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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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세 편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확히는 두 편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한 편의 안티고네 이야기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세 편의 이야기의 제목이자 실린 순서대로 써 본 것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이 죽고 난 후, 그의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성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다. 대략 상황을 적어보면 이렇다.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광야로 떠돌아 다니다 콜로노스에서 숨진다. 그 직전에 그의 두 아들 가운데 장자인 폴뤼네이케스가 자신의 동생이 자신을 몰아냈다며 아버지를 찾아온다. 물론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폴뤼네이케스를 냉정하게 내쳤을 뿐 아니라 저주까지 더해 돌려보낸다. 그 저주란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를 죽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저주대로 두 아들은 서로 다투다 서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문제는 왕이 된 크레온이 동생인 에테오클레스는 장례를 치러준 반면 폴뤼네이케스는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도록 시체를 방치하도록 명령했을 뿐 아니라 누구도 그 시신을 장례 지내지도 묻지도 못하게 한데서 생겨났다. 여동생 안티고네는 오빠인 폴뤼네이케스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결국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르다 파수꾼에게 붙잡혀 동굴에 갇혀 죽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비극이다. 소포클레스는 셰익스피어만큼 혹은 셰익스피어보다 먼저 비극을 쓴 것으로 따지면 셰익스피어보다 더 단호하게 비극을 완성해버린다. 주요 등장 인물이 모두 죽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비극적인 것은 '신의 의지'가 개입해서 그들을 죽이거나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신 앞에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하며 무력했다. 그 무력함이 그 어떤 비극보다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면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일 것 같은 <안티고네>는 이렇게 거의 모두가 죽는 것으로 끝난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의 시작인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냄으로써 테바이를 구해낸 영웅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살을 섞어 자식까지 낳은 패륜아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란 잘 알려진 것으로 "아침에는 네 발로 다니고, 점심에는 두 발로 다니며, 저녁에는 세 발로 다니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정답이 '인간'인 그 수수께끼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나라에 '오염'이 생겨나 희생자가 늘어가고 피해가 커지자 이 오염을 없애기 위해 원인을 캐 나가는 과정에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이 밝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이 한 실수를 알아챈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자결로 생을 마친다.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머리장식으로 눈을 멀게 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추방할 것을 크레온에게 부탁하지만 그 결말은 보여주지 않고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 이야기인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가 복수의 여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다. 오랜 방황으로 저주가 풀린 것인지 오이디푸스의 안식이 가까워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기 전에 아테나이의 왕인 테세우스에게 나라의 번영을 약속하며 그 땅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테세우스 외에는 누구도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오이디푸스의 축복의 조건이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죽은 이후의 이야기는 <안티고네>에서 알 수 있다. 


 세 이야기에 대한 설명을 적는데 너무 많은 지면을 써버렸다. 그래도 하려던 말은 적어야겠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에게 어떤 악감정을 가졌기에 자신의 어머니를 향한 성적 욕구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누명이다. 이 책 속의 세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오이디푸스는 모든 행위를 자신의 의지로 행했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신의 의지'가 개입해 있었다. 

 처음에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오이디푸스를 버리게 만든 것도 '신탁'이었다. 버림받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고향인 줄도 모르고 고향으로 향하게 된 계기도 역시 '신탁'이었다. 이 신탁의 내용은 '오이디푸스가 자라면 그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일 것이며,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그 신탁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모두가 그 신탁을 피했다고 믿었던 생각을 비웃듯이 완전하게 말이다. 

 오이디푸스가 과격하게 굴었던 것은 사실일지 모르지만, 오이디푸스도 언급하듯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를 향해 "당신이 내 아버지입니까?"하고 묻지는 않는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니란 말이다. "아임 유어 파더"같은 식의 대사는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수 있는 대사인 거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죽이고,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었던 것도 전적으로 왕이 되려는 속셈에서라고 볼 수 없다. 이제 막 나라의 관문을 지나려는 자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 스핑크스가 자살할지 어떨지 어떻게 알았겠으며 그 나라의 왕비가 왕을 잃고 과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계산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신들이 꾸민 음모였다는 것 말고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런 선량한 오이디푸스를 어머니를 범하려는 욕망의 이름으로 삼아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부정한다. 


 오이디푸스는 비겁한 자가 아니다. 몰상식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극히 선량하며 공정한 인간이다. 그런 공정한 인간이 신이 보기에는 좋은 놀잇감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축복해줄 테니 실컷 골탕 먹어봐." 하는 식인 것도 같다.

어떤 의미에서 오이디푸스는 성경 속 인물인 '욥'과도 닮아 있다. 

악마의 손에 넘겨져 온갖 시험을 겪는 동안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잃어갔던 욥은 결국 신을 원망하기에 이르렀을 거였다. 물론, 성경 속에서는 악마의 시험을 이겨내고 새로이 재산과 가족과 건강을 얻게 된다. 그러나 재산과 달리 가족은 '보상'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은 무시되었다. 그들이 천국에 갔을 거라고? 천국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이고 지상에서의 삶은 지상에서의 삶이다. 둘은 하나라고 하지만 하나가 아니다. 하나를 빼앗으면서 다른 것을 주겠다고 하다니, 갓난아기도 그런 행위의 부당함을 알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던가.


 오이디푸스 왕은 마지막 순간에 마치 수호신처럼 위상이 회복되지만 자식들조차 그의 임종을 볼 수 없게 된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 삶이 과연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장치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저주받아 태어나 축복받은 죽음에 이른다는 게 가능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왠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더라도 내게는 그러지 말아주기를 꼭 부탁하고 싶어 진다. 


오이디푸스, 이 가련한 사람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꼬리표를 달아 두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라도 그의 이름에서 콤플렉스를 떼어내 주고 싶다. 


 

 선량한 오이디푸스여, 편안히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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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인간의 불행에 대한 엄포 평점8점 | s********d | 2015.10.21 리뷰제목
<이야기의 힘>을 주제로 오이디푸스 왕을 다룬 강연이 있어 일체의 망설임 없이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삶을 사유하고 철학에 관심 있는 남성 독자들은 이 비극에 전율하는 듯하다. 여성 독자가 캐치 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밀스런 성애가 그들을 장악하는 건지, 서구 남성의 에고가 투영된 영웅서사에 열광하는 건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어서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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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을 주제로 오이디푸스 왕을 다룬 강연이 있어 일체의 망설임 없이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볼 때 삶을 사유하고 철학에 관심 있는 남성 독자들은 이 비극에 전율하는 듯하다. 여성 독자가 캐치 못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비밀스런 성애가 그들을 장악하는 건지, 서구 남성의 에고가 투영된 영웅서사에 열광하는 건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어서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다른 자리에서 토론해보고 싶다.

 

 강연을 듣고 다시 펼친 오이디푸스 왕은 왕의 면모보다는 지극히 독선적이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성격장애를 보였다. 진정 내가 누구인지, 그 본질적인 정체와 근원적인 뿌리를 파헤쳐가는 여정이 그리 이상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늘은 이전의 그(최고의 행운아)가 사망처리되고 불운아로 태어나는 이중의 날이다. 전락과 파멸의 날이자 처형의 날인 것이다.

 

아아, 아아, 지금 모든 게 분명해졌구나. 오 빛이여, 내가 널 바라보는 게 마지막이 되기를. 나란 인간은 태어나선 안 되는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함께 결혼해선 안 되는 사람과 결혼했으며, 죽여서는 안 되는 사람을 죽였구나. (1182-1185)

 

 예전에 읽을 때도 그랬지만 한 나라와 역사의 관점에서 오염된 땅과 (왕위계승) 계보를 정화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고 있다. 과거가 청산되고 새시대를 여는 것으로 극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두 딸이 불모에 처할 운명이 통탄스럽게 논해진다. 마치 새 역사의 지평을 열고 지난 시절의 그릇됨을 바로잡고자 펼쳐지는 제물 의식 같다. 오이디푸스 왕의 두 눈에서 흐르는 피와 아내이자 어머니의 죽음을 제물로 오염된 역사를 정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비극은 나는 누구인지를 골똘히, 심연까지 파고들어 진정한 앎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상화되기도 한다. 또 위인의 운명적인 전락을 통해 그 누구도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감과 연민을 일으키며 인생사에 걸친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개인의 운명을 담보로 국가적 시대적인 분쟁을 해소하고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정치성이 밑바탕에 진하게 깔려있다. 이보다 더 절망적인 몰락은 없다고 보여줌으로써 각자의 삶에 안도하고 심지어 만족하고 감사하도록 이끄는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날을 볼 때까지 기다리고, 인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오. 그가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지나갈 때까지는. (1528-1530)

 

 고대 그리스인의 정서와 가치관에 대해 문외한인 관계로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없지만, 이 텍스트는 분명 개인이 처한 환경 넘어 정치적이고 성공적인 야망을 움켜쥐려는 욕망과 집착으로 들끓는다. 성으로 무언가를 가르는 게 구태의연한 처치가 되는 현재이지만 여성 역사학자나 신화학자가 비극사를 쓴다면 오이디푸스 왕은 관외로 치거나 새로이 조명될 게 분명하다. 끝으로, 강연자였던 김수영 교수님이 마지막 자료화면에 띄운 Good Luck이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여진을 일으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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