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병은 스페인의 역사 소설이자 작가의 투영인 주인공 마누엘의 개인사, 가족사의 결합이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1975년 프랑코의 죽음 이후 독재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어느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그것은 곧 예술에도 그대로 녹아난다. 하지만 스페인 국민들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는 그 이름조차 부끄러운 수준이 되어버리고 쿠바 전쟁을 계기로 1492년부터 대제국을 이루고 있던 스페인은 1898년에 유럽의 약소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스페인 국민들에게 치욕스러운, 잊기힘든, 그래서 이렇게 소설로 숱하게 회자되는 상처를 주었다. 이러한 스페인의 과거는 우리에게도 있음을 잘 알것이다. 그러기에 주인공 마누엘이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상상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사춘기 시절 한때 스치고 지났던 나디아를 다시 만나면서,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유품 (폴란드 기병 - 그림)을 보면서 마누엘은 자신이 도망쳤던 스페인과 독재 정권 시절을 회상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대부분은 과거의 회상이다. 마누엘이 선망했던 이가 나디아의 아버지였음을 모른채로 나디아와 만나며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아~ 이 책은 어렵다. 스페인이란 나라가 낯설기도 하거니와 담담한 문체, 넘치게 풍부한 작가의 묘사기법은 가속을 내기 어렵게했다.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씁쓸한 기분으로 마누엘을 연민하게 되는 것은 스페인의 그같은 역사가 사실이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도 정말 매끄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등학교 이후엔 거의 소설을 통해 접해 문학의 힘을 잘 알지만 뭇 사람들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싼 값에 팔아먹는다고 어떤 한 작가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것을 이 작가에게도 똑같이 씌울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한 세대를 넘어 한 가족의 가족사와 역사가 치밀하게 얽혀있어 좀 어렵기는 했지만 작가의 어조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느낌이다.
"기병은 곧 날이 밝아 오거나, 아니면 곧 해가 질 풍경을 배경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 기병은 외롭고, 침착하고, 경계심 많고, 자존심 강한 나그네였다. 그 기병은 미소를 머금은 듯한 모습으로 성의 그림자가 보이는 언덕을 등지고 있었다.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목적도 없이 말을 달리는 것 같았다. 기병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기병이 말을 몰아 달려가는 나라의 크기와 위치 역시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23쪽)
책 표지 램브란트의 그림 [폴란드 기병]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어떤 남자의 정체성을 캐묻게 된다. 1991년에 발표된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대표작 [폴란드 기병]이 주인공 마누엘의 정체성과 집단적 기억을 캐묻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답게 이 소설은 역사적 비극과 4대에 걸친 가족사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포스트모더니즘적 터치로 건드린다. 그러나 일반적인 드라마 수법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 책의 서술방식에 낯설음이나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 인물의 개성이나 사건의 긴박성을 즐기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의 장점을 오히려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주인공들의 만남과 성애 장면을 제외하면 소설의 화법은 기본적으로 드라마적 기법을 자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인물도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습관도 부각시키지 않는다.
소설은 언제나 개인의 이야기를 기초로 한다. 만약 집단의 역사를 드러내고 싶다면 전쟁과 같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개인의 삶과 엮는 방법이 보편적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회고의 장면이 주종을 이루는데 집단적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방법으로 '기억'이란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가령 한국인에게 있어서 집단적 트라우마는 일제식민통치시대,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테마와 엮이고, 스페인인에게는 역시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가 집단적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문학적 소재로 활용된다.
"나 자신의 애정과 그리움을 위하여, 지금 가짜 기억 한두 개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진실성이 없거나, 임의적인 기억들은 아니다. 진정으로 내게 속한 기억들은 내가 그 기억들을 선택했거나, 그 기억들 속에 내 미래의 씨앗이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억들이 망각이라는 거대하고 시커먼 호수 위에 떠 있는 기름얼룩처럼, 우연히 조수에 떠밀려 바닷가까지 오게 된 쓰레기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부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275쪽)
주인공 마누엘과 나디아의 회상신은 사진사 라미로가 갈라스 소령에게 맡긴 사진함들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가령 마누엘은 라미오가 찍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가족사를 재구성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진실이란 기억을 토대로 자라나는 법. 주인공 유년시절을 환기시키는 것은 마주치는 사람보다도 바로 라미로의 사진과 렘브란트의 그림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찾아가려는 뒤늦은 성장통은 가족에 대한 뿌리의식과 조국의 역사를 통해서 한층더 성숙해지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상을 받은 이유는 개인적인 진실과 사회적 진실간의 조화를 이루어냈기 때문이고, 기억과 대화를 통해서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사 라미로. 그는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그 사진의 카피를 모두 한 장씩 보관해 두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사진들을 모두 봤는데, 그가 나온 사진은 한 장도 없어요. 그는 자기 스튜디오에서, 카메라라는 물체 뒤에서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술집에서, 마히나의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을 감시했어요.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 그들이 과거에 어땠는지, 젊었을 때는 어땠는지 보았어요. 그리고 미래를 예지하는 전문가의 시선으로, 세월이 흐르면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를 추측했어요. 성장과 노화에 대해 연속으로 이어진 에피소드들과, 얼굴의 느린 변화를 자연주의자처럼 연구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거의 모든 삶들은 대략 비슷하고,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확실한 모습이 없으며, 물이나 모래 위에 비친 모습처럼 너무 쉽게 변하고 망가진다는 사실을 서글프게, 그리고 약간 두려워하며 발견했어요. 그래서 그는 자기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 그리고 설령 찍었다 해도 보관하지 않았어요."(737쪽)
주인공의 고향인 마히나는 스페인 지도에 나오지 않는 상상의 도시다. 먼저 허구적 공간 마히나를 배경으로 4대에 걸친 마누엘 가족사가 펼쳐진다. 외증조부 페드로 엑스포시토는 1898년 쿠바전쟁(1895-1898) 세대를, 외할아버지는 스페인 내전(1936-1939) 세대를, 아버지는 내전 종식 이후 세대를, 마누엘은 1975년 프랑코 사후 민주화 이행기를 대표하는 세대다. 그리고 틈틈히 마누엘의 첫사랑 마리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음 나디아의 입으로 아버지 갈라스 소령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스페인 군인 가문 출신의 소령은 어릴 때 마누엘이 존경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책은 주인공 마누엘이 숙명과도 같은 나디아를 만남으로써 그녀에게 남겨진 유품 중 라미로의 사진들을 통해
그를 둘러쌓던 과거의 기억과 상처들을 돌아보고 회상하며 자신의 정체성 또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가족사인 외증조부를 비롯해 외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경우는 스페인의 비극적인 역사와 시대상황이 맞물려 표현되고 있다.
쿠바전쟁과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기간 등 전후 세대의 삶의 모습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 사랑,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그저 먹고사는 것에 급급한 삶을 살수 밖에 없다.
즉 전쟁과 혼돈의 역사는 국민들에게 자기주도 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불행한 삶의 낙오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불우한 시대 상황은 우상시 되고 영웅의 삶을 사는 듯 보였던 갈라스 소령의 삶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자기에게 다른 운명은 존재하지 않은 듯 전쟁과 조국에대한 자신의 충성을 다하지만
가족을 등지게 하고, 사랑치 않은 여자와의 사이에 나디아의 탄생 등 굴곡진 삶을 살고 그에 대한 자책감과 회한을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마히나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삶 속에서 벌어진 하나의 미스터리 사건..
카사 테라스 토레스의 벽속에 생매장된 채 발견된 부패하지 않은 미라 여인의 발견과 사라진 시신..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에 다뤄진 그에 대한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채 등장인물의 설명 속에 간간히 들추어내기만 하여
갑갑증을 느끼기도 했고, 왜 저자가 사실적인 묘사와 내용속에 뜬금없이 그런 사건을 개입시켜 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그 실체를 드러내긴 했지만, 어찌보면 그 여자 미라의 모습은
스페인의 비극적 역사 속에 많은 것을 박탈당하고 빼앗긴 전후 세대들의 삶과 꿈들이 고스란히 생매장 당한 것을 상징하는 듯 생각되기도 한다.
사건의 사실과 전모를 알면서도 침묵한채 죽은 마누엘 외증조부의 모습은
스페인 역사의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않은 국민들의 심정과 마지막 자존심의 모습은 아닐런지...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낸 주인공 마누엘은 그러한 앞선세대들의 삶을 닮고 싶지 않고
청년이되자 도망치듯 고향 마히나를 떠나 동시통역사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지만..
그의 삶은 결국 이방인처럼 행동하는데 익숙하고, 인스턴트적인 사랑에 허망함을 느끼며, 삶에 대한 확신이 서있지 않아
자취 없는 그림자처럼 부유하며 정신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한 마누엘의 삶의 모습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도시인들의 고독과 고뇌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 생각되기도 한다.
자기 자신과 욕망 감정에 대한 불안.. 현실에 끌려다녔던 성급함.. 점점 커져만 가는 맹목적인 조급함..
그런 인생의 두려움의 골격만 남아 있는 있는 마누엘은
나디아를 다시 조우함으로써 그녀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비로서 그의 방황은 정리된다.
그런 마누엘의 삶의 모습은 마치 나디아와 함께 하는 삶과 그 이전의 삶으로 나눠지는 듯 보여지며
도망치려 했던 선조세대의 모습과 고향 마히나가 그동안 살면서 자신에게 속해 있었던
복잡한 상황들에 대한 이유와 소중함을 발견하며 아팠던 상처를 치유하며 정체성을 회복한다.
폴란드 기병의 그림에서 묘한 기운을 느껴 영인본을 구입하여 바라보던 갈라스 소령..
어찌보면 오로지 결정된 한가지 삶만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그는
늘 두려움을 안겨주었던 얼음장 같이 차거운 도전과 외로운 결심으로 일관했던 자신의 삶의 모습을
기병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자신의 정신적인 자화상에 한줄기 위안을 받듯 산 듯하다.
마찬가지로 마누엘 역시 상황은 다르더라도 삶에 대한 정신적인 고뇌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폴란드 기병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신비스러운 기운을 경험한다.
마치 그림 속의 폴란드 기병은 그들에게 어떤 정신적인 위안과 구원과도 같은 느낌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 내용 중 저자는 패잔병처럼 늙어가는 초라한 노년의 삶의 모습에 대해 상세하게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다.
그 모습들은 삶을 저당잡힐 수 밖에 없었던 전쟁 전후 세대들의 말로가 음울하게 만들기도 했고,
청춘이 영원하지 않듯, 언젠가 우리 인생에서도 닥쳐 올 노화와 죽음 모습을 일깨워 주고 있는 듯 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그래서 찰나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어쩌면 그 영원같은 순간들의 사진들은 우리가 다시 보고 기억하고 회상하여야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묻혀져 버린 종이에 불과 할지도..
그런 의미에서 책 속에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스페인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삶의 모습들을 재조명한 것은 아닐지..
불완전한 사랑으로 형체는 사라지고 밀랍인형으로 남은 미라가 된 여인.. 라미로가 찍어 보관한 수많은 사진의 기록들..
무시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와 진실, 처참한 기억의 상처를 보듬고, 그 숨어있는 상처를 극복하고 화해하여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 과정을 통하여 완전한 사랑과 삶을 꿈꾸는 마누엘 개인사와 스페인 역사의 앞날의 다짐과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스페인하면 정열의나라, 투우의 나라, 플라멩고, 레알 마드리드(축구).. 등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는데,
이책을 통해 스페인의 현대사와 4세대를 아우르는 그들의 삶에 대해 알게하는 기회가 되었고,
한편 한국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충돌을 경험한 우리나라 시대상황과도 비슷한 부분도 많아
역사와 세대간의 상황을 다양하게 접목시켜 생각해 보게하는 책으로 생각된다.
<폴란드 기병>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 을유문화사
평소에 자주 접하지 못했던 나라의 문학작품들을 을유세계문학전집을 통해 가까이 하게 되는 재미가 내게 바쁘고 지친 그리고 더운 여름을 이겨나가게 하는 힘을 선사한다. 문학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 등을 알아가는 일 또한 흥미로운 일 중 하나이다.
스페인, 내게는 무지의 나라였다. 무턱대고 <폴란드 기병>을 읽어나가다 안되겠다 싶어서 여러 자료들을 검색하며 때아닌 역사공부를 좀 하게 되었다.
중학교시절 <태백산맥>을 읽으며 느꼈던 그 감정.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없음을 생각하니 스페인의 역사 또한 궁금했다. 같은 민족 내에서 일어난 씻을 수 없는 상처 스페인 내전, 그 후 40년 동안 프랑코 독재기간, 1975년 프랑코의 죽음 후의 여러 사회 혼란의 모습들,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과거 우리 나라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엔 지방의 마히나 산맥에 위치한 ‘마히나’는 이 글의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흩어진 그들 모두를 연결해주는 가장 소중한 연결고리이다.
과거를 들추어내다 더 큰 상처를 안게 될까봐 침묵하는 마누엘의 외증조부, 공화파와 국민군 사이의 내전의 무모한 희생자인 공화파 성향의 마누엘의 외조부 또한 모든 것을 조용히 자신의 깊숙한 곳에 감추어야만 했다. 마누엘의 아버지, 마누엘, 나디아의 아버지 공화파의 한 사람이었던 갈라스 또한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나하나의 개인들이다. 주인공 마누엘과 나디아, 약하고 지친 개인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고 아픈 과거를 청산해가며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가는 모습들을 통해 스페인의 민주화와 이를 위한 여러 과거청산은 단시간 내에,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아님을 안다.
누군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마치 거대한 퍼즐조각을 맞추어나가는 느낌. 사진사 라미로의 사진들, 여러 그림들, 마누엘과 나디아의 기억을 통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스페인 역사 속의 수많은 마누엘과 나디아에 의해 지금의 스페인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스페인’하면 투우와 투우사, 민속무용 플라멩코, 축제와 투우가 열렸던 소코도베르 광장,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생각나지만 스페인은 내전과 독재를 겪었던 나라로 국민들은 가난과 상처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스페인 작가들 중엔 독재와 맞서 싸우다가 투옥되고 망명한 작가들이 많고 작품들은 환상과 현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을유세계문학전집 29·30번째 이야기는 현대 스페인 문학의 대표작가인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폴란드 기병] 상·하권으로 렘브란트의 그림 ‘폴란드 기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책의 표지는 렘브란트의 ‘폴란드 기병’이다. 그림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고 책의 작가 소개에 나온 설명을 보면 ‘화면에 말을 타고 있는 남자가 후대인들이 붙인 제목처럼 폴란드 귀족인지, 네덜란드 평민인지, 렘브란트의 상상의 인물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으며,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문제작’이라고 한다.
[폴란드 기병]은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의 독재정권, 프랑코 사후 민주화 이행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마누엘과 나디아의 회상으로 그들의 사랑과 부모와 이웃의 불행한 삶, 스페인의 역사로 짐작되는 고향 마히나의 역사가 펼쳐진다.
군인으로서의 소명감 없이 군인이 되고 동료를 죽이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신을 괴롭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다. 자신을 닮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은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불행이 반복되는 삶이고 국가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책 표지의 그림 렘브란트의 ‘폴란드 기병’을 들여다봤다. 젊은 남자는 백마를 타고 달리고 있다. 남자와 백마의 그림이 선명한데 비해 배경의 그림은 모호하다. 그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고향 마히나를 떠나 뉴욕에서 동시 통역사로 일하던 마누엘은 사춘기 시절 한 페이지를 기록되었던 나디아를 만나게 되고 군인이었던 나디아의 아버지의 유품 ‘폴란드 기병’의 그림을 보게 된다. 전쟁과 가난 속에선 정체성도 길을 잃는다. ‘폴란드 기병’은 살아있지만 죽은 삶을 살아야했던,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야했던, 그럼에도 달려야했던 나디아의 아버지를 비롯한 스페인 국민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는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스페인 국민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사진엔 추억이 담겨 있지만 사진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은 아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것은 기억하기 위해서, 혹은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다. 의도적으로 혹은 뇌의 문제로 가감되고 왜곡된다. 오랜 시간 믿었던 것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사진은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아주는 수단일 수 있고 죽은 사람이 영원히 사는 방법일 수 있다. 누군가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누군가는 사진 속에서 영원히 산다. 어쨌거나 우린 살아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2부의 제목은 ‘폭우 속의 기병’이다. 마누엘이 사춘기 방황의 시절 즐겨 듣던 노래로 짐 모리슨의 노래 제목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혹은 폭우 속에서 어딘가를 향해 더디게 달려야했던 기병의 심정이었다.
이 책은 내게 어려웠다. 등장인물의 과거와 현재, 상상이 수시로 오가고 반복된다. 개인의 역사와 집단의 역사가 얽혀 있지만 날줄과 씨줄로 촘촘히 얽혀 있는 소설도 아니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새로운 소설이 많이 만났는데 이 책 역시 새로웠다. 책을 읽은 내내 비슷한 조각이 많은 직소퍼즐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퍼즐 맞추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