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니키다 돗포라는 이름은 꽤 낯설다. 실제 이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 한두편의 단편이 일본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구니키다 돗포라는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인물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듯하여 읽게 되었다. 책의 제목인 <무사시노>는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중 하나이며, 이 책에는 1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돗포'라는 이름은 한자어로 독보(獨步)로서 필명이며, 그를 자연주의라고 분류하지만, 그는 필명처럼 그만의 글쓰기에 몰입하여 오히려 다양한 일본의 문학 유파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와 거의 동시대에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와 비교해보면서 읽어보면 괜찮으리라 생각된다.
첫번째 작품인 <겐 노인>은 주인공이 지역이 교사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뱃사공인 겐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로 손님들을 섬으로 태워주면서 노래를 불렀던 겐 노인은 아내와 결혼후 아들을 얻어 행복하게 살게 되지만, 곧바로 둘째를 출산하던 도중에 아내와 아이가 모두 사망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아들도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사고로 사망을 하게 된다. 그 이후 겐 노인은 예전처럼 배에서 노래를 하지 않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지내다가 동네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기슈를 데려와서 서로 정을 붙이려고 하지만, 이미 정이라는 것 자체를 잃어버린 기슈와 맺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결국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단편이기에 적은 분량이지만, 한 노인의 외로운 삶과 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기슈의 모습은 왠지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무사시노>는 무사시노라는 지역에 대한 작가의 예찬록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무사시노는 도쿄 근교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주인공이 무사시노에서 초가을에서부터 초봄까지 느낀 정취를 자연스럽고도 사실적으로 묘사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말하려는 무사시노의 아름다움에 동화되는 느낌을 주게 된다. 실제 돗포도 무사시노에서 기거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글로써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주인공이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그곳의 풍경과 함께 보게된 잊지 못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분명 지나가면서 보게 된 풍경 속의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본 적도 없음에도 주인공의 기억에 남는 모습들을 묘사하면서 그가 바라보는 일상의 서민들에 대한 시각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작품으로 읽혀졌다.
<쇠고기와 감자>라는 작품은 현실을 뜻하는 쇠고기와 이상을 뜻하는 감자라는 소재로 하여 젊은이들의 현실과 이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나쓰메 소세키의 지식인의 방황과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고, <소년의 비애>는 동생을 잃은 한 창부의 이야기를 주인공의 과거의 경험으로 풀어나가고 있으며, <그림의 슬픔>은 목가적인 풍경으로서 과거 그림을 그리면서 벌어진 유년기의 일과 함께 나중에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의 죽음을 통해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면을 끝으로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가마쿠라 부인>은 실제 돗포가 결혼하였던 첫번째 부인인 노부코의 이야기이다. 돗포는 노부코와 열렬한 사랑으로 결혼을 하였으나, 반년만에 헤어졌다. 이후 노부코는 여러 남자와 염문을 뿌리게 되고, 이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을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본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비범한 범인>은 무사 집안의 아들로서 가문의 몰락 이후에 오히려 자신의 분야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쳐 꾸준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써 역시 서민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운명론자>는 근친상간을 다룬 소설인데, 그렇다고 적나라한 성의 묘사가 아닌 한 남자의 믿기 힘든 경험을 운명론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풀어쓰고 있다.
<정직자>와 <여난(女亂)>은 일본 비평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육(肉)욕을 소재로 한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수치스럽거나 감추어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솔직하게 쓴 작품이다. 그렇다고 노골적인 성에 대한 묘사라기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글로써 표현하기 애매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작품으로 쓴 것으로 생각된다. <봄 새>는 한 백치 소년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로서 백치 소년의 죽음에 대한 애틋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궁사(窮死)>와 <대나무쪽문>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빈자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이며, 마지막 <거짓없는 기록>은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일기로 나타낸 작품으로서 바로 첫 부인인 노부코를 알게 된 시점의 그들의 열렬한 사랑을 소재로 한 짧은 작품이다.
15개의 단편이 있기 때문에 각 작품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위와 같이 단순하게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나름의 감동과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또한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구니키다 돗포이지만, 실제 춘원 이광수나 김동인에게도 영향을 준 작가이기에 관심을 가져볼만한 작품이다. 그의 단편에서는 화려하거나 우아한 소재보다는 진솔한 서민들이나 빈자들의 삶,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등을 소재로 하였기에 읽기에 큰 불편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간결한 문장이라든지 <무사시노>에소 보여준 풍경에 대한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는 직접 풍경을 보는 듯한 느낌마져도 준다. 일본 근대 문학의 작가인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사마자키 도손, 이즈미 교카와 같이 비슷한 시대에 홀약했던 이들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된다.
"일본 근대 문학은 구니키다 돗포에 의해 처음으로 쓰기의 자유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자유는 '내면성'이나 '자기 표현'이라는 것의 자명성과 연관되어 있다." - 가라타니 고진
"일본인 작품으로는 나쓰메 소세키와 구니키다 돗포의 작품을 애독하는데, 지금도 나쓰메는 그렇게 재독하고 싶지 않으나 돗포의 예술만은 늘 보고 싶다." - 춘원 이광수
오늘 같은 밤 나 홀로 밤늦게 등불을 마주하고 있으면, 인생의 고독을 느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애상을 불러일으키지. 그때 내 이기심의 뿔은 뚝 부러져 왠지 사람이 그리워지네. 옛날 일과 친구가 생각나지. 그때 강하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네. 아니, 그때 그 광경 속에 서 있던 그 사람들이네. 아와타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모두 다 이승의 어느 한르 어뜨 땅 한구석에서 태어나 머나먼 행로를 헤매다가 서로 손잡고 영원한 하늘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좋은 작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