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 쓴 머리의 환영에게서 조언을 듣는 맥베스(1793), 헨리 퓨슬리(1741~1825) 작,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이 왕궁으로 찾아 들었기에 시녀들은 왕을 위하여 정성껏 부채질을 하며 찬바람을 일으킨다. 다윗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이 들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잔 다윗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따라 왕궁의 옥상을 거닐고 있다. 이때 최전방에서 암몬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하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적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왕이란 자는 편안한 삶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양심이 찔렸다. 다윗은 이 밤이 지나면 내일은 전쟁터로 나가 부하들을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땅거미가 막 하늘을 덮고 시원한 바람이 다윗의 머릿결을 스칠 때 석양의 햇살을 받아 빛나는 한 여인의 나신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다윗의 눈동자가 커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목덜미로 군침이 넘어간다. 자신의 나신을 볼 것이라고 상상도 못한 여인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목욕을 즐기고 있다. 그녀의 하얀 맨살은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아름다웠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인의 나신은 다윗의 눈동자에 찍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다윗은 당장 그 여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게 했다. 신하들은 “그 아름다운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입니다.”라고 일러주었다.
“우리아의 아내라니!”다윗은 나지막이 신음하며 말했다. 그는 수없이 자신에게 안 된다고 말했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그녀의 나신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 다윗은 그녀의 남편 우리아가 이스라엘의 용장으로 암몬 전선에 나아가 싸우는 틈을 이용해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날 밤 다윗은 밧세바를 품었다. 그녀는 다윗과 동침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임신하게 된 것을 알았고 밧세바는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렸다.
다윗은 두려웠다. 밧세바 와의 불륜을 숨기기 위하여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있는 우리아를 불러 특별 휴가를 주었다. 많은 선물을 하사하며 “오늘 밤은 집에 가서 편히 쉬라!”고 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는 “내 부하들이 지금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어찌 저 혼자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라며 왕궁의 문간에서 문지기들과 밤을 새운다. 다윗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밧세바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었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하여 다윗은 한 번도 간교한 꾀를 부린다.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아만 남겨 놓은 채 퇴각명령을 내려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이 일에 진노하셨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네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간음과 살인으로 모든 사람을 속이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 이제부터는 앞으로 영영 네 집안에서 칼에 맞아 죽는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내가 네 생전에 내릴 재앙을 똑똑히 들어라. 네가 낳은 자식들이 끊임없이 네게 재앙을 일으키도록 하겠다. 네 생전에 너의 아내들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면 그가 대낮에 네 아내들을 데리고 잘 것이다.” (사무엘하 12:10-11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흐느껴 울다가 울다가 지쳤습니다. 밤이 되면 밤마다 흘러넘치는 제 눈물로 침상이 뜨고 이부자리는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제 뼈는 녹아 내렸고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눈에는 진물이 흐르고 원수들의 저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한 순간의 참을 수 없는 욕망은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왔다. 다윗의 배다른 아들은 여동생을 강간하고, 오빠는 분노를 일으키며 동생을 죽인다.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왕위를 탐해 반란을 일으키고 아버지의 첩을 아내로 삼는다.
맥베스를 읽으며 다윗 왕을 생각한 것은 두 사람 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죄속에서 서 고통 당하는 공통점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마귀의 꼬임에 빠져 인류 최초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간은 욕망의 포로가 되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바라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갈구할 때 욕망은 생겨난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잡목들로 뒤덮인 황량한 들판과, 무너진 옛 성의 괴괴함을 통해 아픈 역사를 생각나게 하는 스코틀랜드가 맥베스의 배경이다. 이 배경처럼 맥베스의 분위기는 어둡고 기궤하고 피로 물들어 간다. 노르웨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맥베스는 포레스 부근의 황야에서 세 마녀를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 만세! 왕이 되실 맥베스 만세”라며 맥베스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권력욕을 자극한다. “왕이 된다.”는 한 마디의 말이 맥베스의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지만 그는 갈등한다.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맥베스도 이 순간만큼은 햄릿처럼 갈등한다. 도덕적 양심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맥베스는 던컨 왕을 죽일 수 없었다. 연약한 맥베스의 마음을 읽은 아내가 충동질 한다.
맥베스 부인 : ‘이제껏 당신 몸에 지니고 있던 야망은 그저 술에 취한 희망이었나요. 그 마음은 영원히 깊은 잠에 빠져버린 건가요? 그전에는 대담하게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이 잠에서 깨어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 말씀인가요? 마음으로는 열렬히 희망하면서도 그 일을 용감히 실행하기에는 겁이 안다고요? 일생일대의 귀중한 장식품이 될 왕관을 소망하면서도 스스로 겁쟁이가 되어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것은 결국 ‘발을 적시지 않고 물고기는 먹고 싶다’는 고양이의 심보와 다를 게 무엇인가요?‘ - 1막 7장 -
맥베스 부인은 왕관을 눈앞에 둔 맥베스가 못 마땅하다. 남편은 갈등하며 점점 더 도덕적인 인간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보다 더 남성적이고 냉철했다. 두려움에 떨며. 왕을 시해하는 일에 갈등하고 있는 남편을 대신해 모든 일을 주도하며 던컨왕은 암살한다. 맥베스는 자신이 원했던 왕이 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권력과 부귀영화를 손에 넣었고 그의 욕망은 완벽하게 충족이 되었다. 이제 맥베스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누리면 된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안락과 평화가 아니라 죄를 저지른 인간이 겪은 마음의 갈등과 죄의식이다. 그도 다윗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도덕적 양심 때문에 괴로웠다.
맥베스 : 불안감에 떨며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고, 밤마다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잠을 이루느니, 차라리 이 세상이 산산조각이 나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버리면 좋겠소. 차라리 죽은 덩컨과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것이요. 우리가 평안을 얻기 위해 그자를 안식의 세계로 보낸 것이건만, 오히려 내 마음은 끝없는 고문에 시달리고 있구려.
-3막 2장 -
욕망은 맥베스 부부에게 평안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 왕권은 손에 넣어보니 온기가 없다. 욕망의 그림자는 한 겨울의 차가운 바람처럼 그들을 끝없는 불안과 괴로움으로 몰아넣었다. 맥베스의 아내는 미쳐서 죽고 맥베스는 목이 잘려 죽는다.
책을 덮으면서 맥베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인 후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괴로워하는 다윗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침대가 뜰 정도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손가락질 하며 조롱하는 반대파의 비난 때문에 뼈가 녹는 다윗은 왕이 아니라 죄의 영향력에 완전히 사로잡힌 초라한 인간에 불과하다. 권력에 대한 야망 때문에 왕을 시해하고 왕권을 찬탈한 맥베스도 다윗이 당했던 고통의 길을 갈 때 그는 악인이 아니라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결핍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불안을 낳는다.
수십 명의 부인을 두고 있었던 다윗은 여자가 부족했을까?
장군과 작위의 지위를 누린 맥베스는 더 높은 명예와 권세가 필요했을까?
자신이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인간은 욕망을 꿈꾼다. 책 한권을 선물 받을 때, 누군가의 칭찬을 들을 때, 자신이 돈을 많이 벌 때 등 외부적인 것으로 자신을 채울 때 행복해한다. 그러나 그 행복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금방 새로운 결핍을 느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부당한 방법으로 욕망을 채울 때 비극은 시작된다. 맥베스를 보며 연민을 느끼는 것은 죄 아래에서 고통 받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과 맥베스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지 못했기에 비극적인 인물로 전락이 되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삶은 재미없고 지루하고 견디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자아실현을 삶의 가장 아름다운 목표로 두고 그것을 완성해 가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도 욕망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초월한 욕망의 아름다움의 결과는 감동이다. 이때 내 안에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 흐른다. 한 권의 책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모자란 게 현대인의 삶이다. 자투리 시간 그냥 버리지 않고 오면 가며 잠시 쉬거나 누구를 기다릴 때마다 책을 가까이 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살갑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지치지 않게 하는 보석이다. 속도의 풍경을 함께 누리는 그런 삶을 가져다주는 책탐은 그래서 행복하다.
- 김경집의 책탐 중에서 -
한 권의 책으로 행복해 하는 삶. 맥베드가 나에게 주는 교훈이다.
셰익스피어가 탐구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는 인간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특히 본질을 규정하는 성격에 탐닉했다. 그가 맥베스를 쓴지 약 4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전 세계에서 그의 작품이 무대 위에 오르는 이유는 자신이 맥베스임을 보기 때문이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시간의 촛불이여!
인생은 다만 걸어가는 그림자.
제시간이 오면 흥이 나서 덩실거리지만
얼마 안 가서 잊혀지는 가련한 배우일 뿐이다.
바보들의 소란스럽고 무의미한 이야기에 불과하단 말이다.
- 맥베스의 절규 5막 5장 -
‘아름다운 것을 추한 것’으로 만든 맥베스의 마지막 절규.
그 삶의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나 또한 내 인생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한다.
17세기에 쓰여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재해석되고 각색되어 영화로 상연되고, 공연으로 무대에 올라오고, 여러 문학작품의 모티프로 영감을 주는 있다. 과연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연극의 4대요소라고 불리는 배우, 무대, 관객, 희곡이라는 측면에서 간단히 생각해 보자. 배우, 무대라는 두 요소는 각 시대의 구체적 상황을 반영해 구성되어야 할 요소로 보인다. 하지만 희곡(story)측면에서 보면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인간내면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어 예나 지금이나 관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늘날까지 관객과 공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셰익스피어는 한 시대가 아닌 영원에 속하는 작가로 불리울 수 있다고 보인다.
<리어왕>의 비극은 1막1장, 늙은 리어왕의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된다. 딸들의 효심을 저울질해서 왕국을 물려주려는 그의 생각은 두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 오류를 가지게 된다. 첫째는 딸들의 달콤한 말에만 의존해 효심을 판단하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아버지로서 딸들의 진심을 읽는 눈을 키우지 못한 점이다. 왕으로서 평생 달콤한 아첨의 말들에 둘러쌓여 있었기에 그는 가식적이고 욕심많은 고너릴과 리건의 말은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에, 달콤하게 말하지 않은 코딜리아의 진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둘째는 딸들에게 모든 실권과 재산을 물려주고서 왕으로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은 정치적 실수의 문제이다. 왕의 권한을 버리고도 자연인으로서 존경과 권위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어디 시대를 보더라도 정치적으로 통용될 수 명제였다. 권력은 나눌 수 없으며 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은 두 딸의 비극적 결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고프게 하는 소스같은 것이었다. 결국 이야기는 리어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고난, 반성, 깨달음, 죽음이라는 슬픈 스토리로 완성된다. 리어의 비극은 혼자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의 비극, 국가의 위기로 확대되어 모든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채 비극적인 막을 내리게 된다.
<맥베스>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탐욕과 잔인함으로 가득찬 맥베스와 아내의 야망이 비극을 초래한 경우이다. 원래부터 야망이 많던 사람이라 마녀들이 왕이 될 것이라는 암시에 쉽게 넘어갔지만 그는 악행을 하면서도 망설이고 고민하는 햄릿형 인물이다. 그가 악인이면서도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관객들로부터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그도 우리와 같이 고뇌하는 존재이고,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인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탐욕과 욕망과 잔인한 목표달성욕등을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략 줄거리만 알고 있었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전부 읽어봤다는 점이 무엇보다 뿌듯하게 느껴진다. 풍부한 은유와 상징을 통해 인간내면의 고뇌, 갈등, 절망, 복수, 야심, 질투, 죽음과 같은 문제를 절묘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책에 소개된 <리어왕>과 <맥베스>의 두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공통적 교훈은 개인의 탐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자신나름의 조절 매케니즘을 키워가야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표현을 빌리면 '탐욕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배고프게 하는 소스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수 년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리어 왕. 그리고 맥베스. (다음엔 희극도 읽어야겠다. 너무 비극스러워서....ㅡ.ㅡ)
그 때도 느낀것이지만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오래 되었다. 영국 르네상스의 정점기인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와 제임스 1세 시대. 년도로는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하지만 그 때의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이나 권력에 대한 인간의 지나치고도 헛된 욕망은 다르지 않나보다. 특히 정치적인 색채가 짙은 맥베스는 스코틀랜드 국왕 덩컨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그 또한 죽음으로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다.
리어 왕 역시 왕위를 놓고 딸들에게 버림받는 리어가 주인공이다. 더 정확히는 첫째, 둘째딸에게 거짓으로서 속아넘어가고, 정직한 셋째 딸, 코딜리아에게는 저주를 내린다. 리어 왕의 운명은 자신이 자초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딸들의 심리를 간파하지 못한 탓이다. 어리석은 왕이자 아버지였던 것이다. 아내에게 동조하면서도 많은 고뇌를 하고 끝내는 선을 택한 둘째 딸 리건의 남편 올버니 공작 등 많은 인간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극작품인만큼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활기차다.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그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명언들이 셀 수도 없이 나온다. 인간의 악한 마음을 꿰뚫는 그의 필력에 섬찟섬찍 놀란다. 작품을 읽는 내내 연극이나 뮤지컬 생각이 간절했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과 1년 정액권을 구입하여 좋은 뮤지컬들을 관람하곤 했는데... 역동적이면서도 인간의 악의 심리를 다양한 인물을 통해서 나타낸 이 두 작품으로 나의 삶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더 많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을유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표지에서 맞닥뜨리는 셰익스피어는 시공을 초월해서 문학을 좋아하는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어오는 듯한 모습이어서 다시 읽어보는 그의 명작에 고개가 숙여지며 설레는 기분이었습니다. <리어 왕>와 <맥베스>를 고즈넉함에 긴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이 겨울날에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설레고 기뻤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마주하면 마치 주인공으로 제 감정이 그대로 투영되어 인간적인, 가장 인간적인 고뇌에 함께 빠져들게 되면서 수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점이 작품에 빠져든 저를 발견하는 매력이자 기쁨이 되지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따라가며 늘 많은 물음들과 대답들을 던지고 하게 만드는 시간을 선사합니다. 그 매력에 빠져서 한 번을 읽고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시 책을 펴들고 다시 빠져들기를 저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게 되지요. 세계적인 대문호가 후세에도 남긴 귀한 정신적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고전이라는 말이 주는 의미와 상징성처럼 셰익스피어의 작품 안에서 역자가 당시의 색깔이 담긴 말들을 귀하고 맛깔스럽게 풀어낸 부분도 마음에 들지만 그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며 인간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온 마음을 모아서 그 고민들과 질문들에 숱한 의문과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매력은 언제 맞닥뜨려도 신선한 내적 환기가 되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시간을 선물합니다.
이와 함께 이번 을유문화사에서 50년만에 야심을 가지고 펴낸 셰익스피어의 고전 안에는 셰익스피어 문학이 그의 문학에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의미들, 그리고 그것이 시공을 초월해서 후세들에게 주는 감동과 교훈들을 이야기하는 해설 부분에서 셰익스피어는 현재에도 살아숨쉬는 지성이라는 감탄을 하게 되고 앞으로도 계속 후대까지 이어질 세계의 자랑스러운 대문호로 인간적인 고뇌에 대한 의문과 진지한 답을 유도하며 끊임없이 후손들과 대화를 이어갈 상징성을 가지는 존재라는데 동감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학 작품에는 작가의 개인적 배경, 사회적 배경이 모두 녹아들기 마련이어서 셰익스피어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연보까지 제시해주는 배려에 고전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정보와 배경을 놓치지 않는 을유문화사의 섬세함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전을 만나서 오늘의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더욱 자극을 줄 수 있다는 행복을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실현할 수 있어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전으로 정서와 양식이 점점 풍성하게 키워진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며 행복하게 셰익스피어의 고뇌들에 공감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고전들을 만나고 현재를 살아가는 해답을 얻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