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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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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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발자크 평전] 천재가 보는 천재의 창작과정, 그 깊은 경탄이란...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m*****1 | 2020.10.04 리뷰제목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거장 <발자크>를 tv 프로그램'인간 극장' 다큐멘터리처럼 바로 옆에 있는 듯 그리고 있다. 음~ 한 100편 쯤 되려나. 방대하다.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저자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넣었다고나 할까. 저자의 평전 작품에서 크게 구분한 부분에서 다시 작은 장으로 구분된 작품은 없었다. 총 6부 26장의 목차로 정리된 대작이며, 저
리뷰제목

책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거장 <발자크>를 tv 프로그램'인간 극장' 다큐멘터리처럼 바로 옆에 있는 듯 그리고 있다. 음~ 한 100편 쯤 되려나. 방대하다. 덤덤하게.... 그러면서도 저자 특유의 치밀한 심리묘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넣었다고나 할까. 저자의 평전 작품에서 크게 구분한 부분에서 다시 작은 장으로 구분된 작품은 없었다. 총 6부 26장의 목차로 정리된 대작이며, 저자의 대표작이라 하겠다. 먼저 말을 꺼내자면 자살한 저자가 죽기 전까지 완전히 매듭을 짓지 못했던 이 작품을 친구 프리덴탈(전기 작가, 독일)이 그의 사후 1945년 구상만 남은 마지막 장을 고쳐 세상에 내었다.

 

말했듯이 <발자크>를 옆에서 보고 있듯 책은 생생하다. 평전이 재미가 있다. 심리묘사에 탁월한 저자인 데다가 딱딱한 연대순이라기보다는 <발자크>의 굵직한 체험의 에피소드와 그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발표한 작품과 연결해서 그를 파헤치고 있다. 무거워지기 쉬운 평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전개 속도가 역시나 빠른 것. 그의  짧고 간결한 문장에서 독서가 지루할 틈이 없다. ( 열 문장을 밤새 두 문장으로 줄여지면 전개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좋아했던 츠바이크였다.-자서전 『어제의 세계』 ) 항상 빚쟁이를 피해 도망갈 뒷문이 중요했다는 유머러스한 묘사들..... 뒤죽박죽 그의 여인들의 이야기......

 

<발자크>. 1799~1850년은 그의 생애는 막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대였고, 정치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시대였다. 격변의 프랑스였지만, 200년이 지난 우리의 또 다른 눈으로는 '다이나믹 프랑스'일 수 있다. 신흥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쥐고서 그들이 다시 부를 축적하는 시대. 돈이 곧 사회 권력이었던 시대. <발자크>도 이런 시대를 살았다. 끝없이 돈을 추구했고, 틈만 나면 사업을 벌였으며, 예외 없이 실패했다. 그래서 평생 채무자로 살았다. 그 때문에 여인을 만나면서도 제대로 된 돈 많은 과부를 만나기를 갈구했던 발자크였다. 그의 집에 뒷문은 빚쟁이를 피하는 문이었고 여인들이 드나들었던 문이기도 했다. 꾸미는 사치로 인해 돈이 궁했던 발자크는 작품 출간 전에 미리 출판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야말로 글 감옥이요 글 노동이다. 생활이 철저해야 했고 밤낮이 바뀌어야 했다. 그의 또렷한 정신을 지켜주는 것은 돈을 향한 갈망이요, 커피( 커피와 부족한 잠으로 사망 )였다. 막상 노동하게 되면 철저한 노동이었다. 작품에 대한 철저함은 7번이 넘는 교정쇄가 있을 정도였고 낮은 쓴 원문을 고치는 시간이었다.

 

츠바이크는 끝이 없는 듯 <발자크>의 많은 작품을 소개한다. 발자크를 그의 작품에서 묘사한 인물에서 찾기 때문이다. 평소 독서 방법이 '연결 독서'라고 불리는 것을 하는 나로서는 처음 몇 개의 <발자크> 작품을 검색하고 적곤 하다가 포기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평하는 츠바이크도 물리적인 시간과 그 시간에 발표한 작품 수를 나열하며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천재다. 기억력의 천재요, 상상의 천재다. 천재가 보는 천재의 머리는 파고 파고 또 파고, 가고 가고 또 가고 결국 그의 작품 전집 『인간 희극』으로 귀결된다. 

 

『인간 희극』은 발자크 작품 총서를 일컫는 이름이다. 그의 소설과 산문 97편에 등장인물만도 2천 명이 넘는다. 우리 삶이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듯이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연결과 통일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발자크는 다듬어야 했다. 다음 작품도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미완일 수밖에 없는 전집이었다. 16쪽에 이르는 『인간 희극』 긴 서문을 소개하며 발자크 속으로 들어가는 츠바이크다. 책 속에 담긴 『인간 희극』의 마지막 서문을 보자.

사회의 역사와 비판, 사회적 악의 분석과 사회적 원칙의 언급을 포함하는 이 엄청난 계획은 내 작품에 지금 주어진 『인간 희극』이라는 제목을 주기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이 제목이 주제넘은 것인가?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전집이 완결되고 나면 여론이 그것을 판정할 일이다. (563쪽)

비록 이 작품이 오늘날 더 높은 이상의, 몸통같은 의미가 더 크게 남았지만, 결코 주제넘은 것이 아니라고 츠바이크는 덧붙인다. 발자크는 죽기 전까지 『인간 희극』에 매진했다. 평소 습관처럼 미리 출간 어음을 발행하며 3, 4천명의 인물을 언급했고 137편을 담고자 했다. 오늘날 미완성으로 남은 『인간 희극』 97편에 겨우 ㅡ츠바이크는 '겨우'에 부끄러워 한다ㅡ  2천명의 인물만 담았다. 발자크의 생이 5년만 더 길었다면 그가 구상한 다양하고 구체적이었던 뛰어난 거대한 건축물을 볼 수 있었음을 안타까워한다.

 

작업의 끝을 보지 못한, 미완의 『발자크 평전』은

미완의 『인간 희곡』을 그대로 닮았다.

 

꼭 발자크( 책을 들기 전에 몰랐다)를 주목하기 위해 손에 든 책이 아니었다. 저자가 <슈테판 츠바이크>이기 때문에 이유가 없었다. 츠바이크에게 발자크가 끝판 대장이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이 끝판 대장처럼 남았다. 불과 얼마 전 까지 품절이었고 중고는 비쌌다. 그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사이 재출간 되었고 이렇게 리뷰를 쓰게 되었다. 게임 속 끝판 대장 ㅡ다양한 졸병과 온갖 방해, 때려도 때려도 줄지 않는 에너지, 며칠이고 몇 달이고 도전해서 넘어야 하는 ㅡ 처럼 수년 전부터 시작했던 발자크 작업은 깨기 힘든 상황이었을 법하다. 연구하고 연구해도 발자크의 작품과 인물은 광범위했으며 망명길 또한 이 작업을 어렵게 했겠다. 하지만 나의 끝판 대장은 너무나 쉬웠다. 천재 끝판 대장을 그를 넘을 만한 천재가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웃기고 재미있고 빠르고........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잡았을 때는 끈질기게 깊다. 자기가 경탄한 다른 작가의 창작과정의 추적, 작가가 이해한 다른 작가의 창작과정. 때가 되면 『인간 희극』이라는 몸통에서 하나둘 떼어내어 읽어보리라.

 

암울했던 시대, 길지 않은 시간, 지상에서 연약했던 츠바이크,

그의 좌절, 그럼에도 품었던 인간애와 그 따뜻한 연민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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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불멸을 꿈꾸었던 위대한 속물의 삶 - 천재가 기록한 천재의 초상 평점9점 | 2*****h | 2009.04.20 리뷰제목
불멸을 꿈꾸었던 위대한 속물의 삶 - 천재가 기록한 천재의 초상    삶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면 그 사람의 문학은 가난하다. 한 인간이 지닌 열정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 속에서 소진한 자는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자기 연민이 어린 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삶과 글은 줄곧 이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발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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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을 꿈꾸었던 위대한 속물의 삶 - 천재가 기록한 천재의 초상

 

 삶이 지나치게 문학적이면 그 사람의 문학은 가난하다. 한 인간이 지닌 열정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삶 속에서 소진한 자는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자기 연민이 어린 수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삶과 글은 줄곧 이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발자크의 삶과 문학은 이 명료한 진실을 배반한다. 발자크의 삶은 ‘치열한 모순’의 연속이었으며 치열한 모순은 극단적인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편집증은 상상을 초월하는 글쓰기로 폭발했으며 발자크에게 많은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끝내 불행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치열한 모순’과 분열, 그로인한 편집증은 바로 상처와 욕망에 기인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고 기숙사를 전전하면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했다. 연상의 여인에게 매달리는 맹목적인 연정은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발자크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아있다. 그에게는 언제나 ‘작업의 대상’이 존재했지만 그것은 대상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일그러진 결핍에서 비롯된,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스무 살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발자크는 19세기 중반 시민세력의 성장이 두드러졌던 프랑스의 사회상을 당대의 어떤 작가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해냈지만 그는 자신의 소설과는 달리 평생 귀족을 숭배했으며 자신의 이름에 귀족의 상징인 ‘드(de)'를 집어넣고자 고심했다. 오노레 발자크가 아니라 오노레 ‘드’ 발자크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언제나 귀족의 안락한 삶을 꿈꾼다. 그 뿐인가. 사실적이며 흥미 넘치는 소설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지만 발자크는 늘 무모한 사업을 벌여서 채권자들에게 평생을 쫓기며 살았다. 하찮은 미술품과 골동품을 사들이는데 엄청난 돈을 낭비하는가 하면, 귀족의 상징인 터키옥이 달린 지팡이를 고가에 구입하여 허세를 부렸고, 사업이 망하면 빚을 갚아줄 귀족부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연정이 담긴 편지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돈이 떨어지면 그것을 갚기 위해 ‘순식간에’ 소설을 써서 넘겼고, 소설의 인세들은 또다시 어이없는 낭비와 사랑놀이에 투입되는 악순환. 이런 인물에게 ‘전기’의 형식을 띤 평전이라니. 이것은 또 얼마나 어이없는 낭비인가.

 

 하지만 츠바이크의 응시는 위대한 작가의 감춰진 비리와 사생활의 추적에 머물지 않는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삶을 관통하는 모순과 분열이 글쓰기에 어떠한 도움이 되었는지를 응시한다. 실제로 발자크의 걸작들은 대부분 가장 ‘몰린’ 시기에 창작되었다.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사업이 망했을 때, 사랑에 실패했을 때, 발자크라는 전대미문의 ‘속물’은 게걸스럽게 책을 썼다. 때로는 16시간이 넘게 글에 매달리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으며 보통 작가의 10배가 넘는 원고를 단시일 내에 끝마치는 등 삶의 고비마다 천재성이 작열하며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숙원대로 귀족인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자마자 발자크는 50세를 갓 넘긴 채 사망한다. 발자크의 문학은 천재성의 절정을 보였지만 그는 결국 한 여인의 사랑도 얻지 못했으며, 평생을 결핍감과 강박증에 시달린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굴곡지고 모순된 발자크의 생애와 문학은 이 평전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삶과도 겹쳐진다. 불행한 시대를 살다가 조국을 등지고 망명해야 했으며 2차 대전의 와중에 망명지에서 자살한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 작품으로 <발자크 평전>을 남겼다. 츠바이크가 동일시했던 것은 발자크의 속물스러움이 아니라 모순과 억압, 그리고 아픈 기억이 한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이 어떻게 글쓰기로 이어지는가, 라는 통찰이었으리라. 아픈 진실이지만 문학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자양분으로 삼는다. 어쩌면 이 평전은 아픈 삶을 살았던 한 작가가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살았던 한 애정결핍증 환자(작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시이자 자신의 삶에게 보내는 처방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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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소설 그 자체인 발자크 생애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p********g | 2023.01.22 리뷰제목
슈테판 츠바이크 과도한 상상력의 천재 발자크 를 평전 하다             이건 소설이에요. 평전이라니요? 소설처럼 읽고 말았는 걸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이러저러한 발자크를 츠바이크는 그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     이상한 부모는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인가. 오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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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과도한 상상력의 천재 발자크 를 평전 하다

 

 

 


 

 

 


이건 소설이에요. 평전이라니요? 소설처럼 읽고 말았는 걸요.
왜냐고 묻지 말아요. 이러저러한 발자크를 츠바이크는 그렇게밖에 그릴 수 없었을 테니까요.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푸른숲 펴냄

 

 


이상한 부모는 어느 시대에나 있게 마련인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나는 한 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체 어느 정도여야 자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까? 결국 발자크는 나이 들어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후에도 어릴 적 어머니에게 당한 냉대를 떨쳐내지 못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그냥 나쁜 사람... 나의 어머니는 내 삶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지상에서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잔혹한 어린 시절부터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겪은 어머니로부터 기인한 수많은 은밀한 고통은 발자크를 다혈질에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갖게 했고 그로써 그는 더더욱 고통의 순간을 겪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어느 순간을 어머니에게 몹시 의존했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그는 천재... 천재였다! 진짜냐!

 

 


과도한 상상력의 힘으로 지상 세계와 나란히
또 다른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천재성을 지닌 사람, 발자크

 

 

불우한 어린 시절은 어쩌면 발자크에게 땔감이었을지 몰랐다. 불우하지 않았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고돌아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급급했을까? 그는 마치 글을 써야만 겨우 그 가치를 인정받는 노예처럼 종일 글을 써댔다. 글을 쓰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소설의 구상이 펼쳐졌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지? 아마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상하고 사고하고 다듬다가 상상하고 환상을 보고 급기야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리라는 착각과 망상에 아주 풍덩 빠져버렸기에 가능했을 테지.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

극단적인 것을 감행하고 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경고를 눈앞에 둔 채 비로소 진짜 싸움의 시작을 시작한 스물아홉의 발자크. 그는 열아홉 시절의 자신이 몰랐던 것, 즉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았고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알아챘고 동시에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 즉 의지력을 단호하게 하나의 목적 단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이전의 사업들로 깨달은 사업 실패의 오류와 원인을 딛고 정열적이고 힘찬 방식으로 문학을 시도하면 되었다. 이미 사흘이면 잉크 병이 하나씩 비고 펜이 열 개나 닳아 없어지는 노동을 해오지 않았던가! 이 수업은 끝났고 지금은 모든 의지를 다 작품에 쏟아부어 대가가 될 일만 남은 셈이었다. 여태 감추어야 했던 자신의 이름 오노레 발자크를 단 책들이 나올 것이었다. 그는 당시 역사 소설가로 가장 유명한 작가 월터 스콧을 능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싸구려 소설공장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책임감을 가지게 된 사실주의자 발자크. 그의 소설에서 뒷계단 문학의 뻔뻔스러움,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음, 심각한 감상주의는 여전했으나 타락의 한가운데서 어쨌든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자기 주변의 모든 힘을 빨아들였다.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발자크 자신이 펜으로 완성하기란 너무 쉬워 보였다.

 


하지만 인생사 그리 녹록하랴. 건방지지만 천재였기에 이해받을 수 있던 몽상가 발자크는 숱한 노동을 통해 미친 듯한 자기 희생, 광적인 포기,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빚 등을 '얻어냈다!' 이로써 약간의 명성도 얻었겠지만 시기와 역겨움이 뒤따랐다. 그리고 박하기도 하여라,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갈망하는 것, 곧 자유와 독립은 주어지지 않았으니... 서른일곱의 나이가 되어서야 발자크는 비로소 여태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적게 즐겼고, 자신의 가장 열렬한 소망도 이루지 못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배신한 것이었다. 다르게 살자!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경고하고 독촉하였다...만! 그는 정말 달라질까? 아이고... 에로틱한 발자크가 본격적으로 깨어났다!

 

 

 


 

 


발자크에게 있어서 바라보는 것은 곧 꿰뚫는 것이며,

배우지 않고도 알고, 마법을 통해 알게 된다는 사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우리가 운명이나 운명의 시련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무서울 정도의 태연함에서 나온 무관심을 보였다. 이런 무신경함이 어쩌면 그가 "인간희극"을 펴내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 싶다. "인간 희극"의 귀결을 보자면 마치 BTS의 뮤직비디오들이 모조리 연결되어 있다는 천재적 기획까지 생각이 미친다. 어쨌든 귀도 얇고 고집이 세고 상상력이 과도해 때론 망상이 아닐까 싶을 때까지 치닫는 발자크(아... 나도 그런다만 왜 나는 천재가 아닌가...). 좋게 말하면 몰입이 잘되는 스타일이 혹시 천재적 자질인가!

 


발자크의 소설을 특징짓는 것은 위대한 장면들이 아니라, 인물들이 천천히 변화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환경 및 풍경과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다. 그의 모든 일상은 소설로 탄생했으니, 오히려 소설을 쓰기 위해 그리 행보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가져본다^^ 어쨌든 이 불운한 천재는 자르디 건축, 누라의 은광산, 희곡 생산이라는 엄청난 멍청이 짓을 함으로써 세상사에는 순진하기 짝이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가 불복했을까?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 나 발자크야! 그의 멍청한 짓들은 작품과 마찬가지로 오히려 차원이 더 커지고, 더욱 환상적이고, 충동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악마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가 삶을 진행할수록, 생존이 그를 가혹하게 뒤흔들수록 발자크는 점점 사실주의자가 되어가니 하아... 발자크의 대작 "인간희극"의 탄생 과정이 이리 지난했을 줄이야! 그는 한 세계를 만들어냈지만 세상은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자연에서 동물종들이 주변 상황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듯이 인간도 사회 안에서 다양하게 발전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해내겠다는 듯 발자크는 3천에서 4천 명의 사람을 동원해 각자의 이야기들과 인물들을 아주 잘 결합시켜서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였으니 바로 "신곡"에 필적할 만한 대작이라고 스스로 일컬은 "인간희극"이다. 구상은 4천 명이었으나 2천 여 명의 이야기에서 그치고 만 "인간희극". 그것을 이룬 각각의 장이 하나의 소설이어야 했고, 각각의 소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도록 만들어야 했으니 예술가의 창의력이 얼마나 요구되었겠는가. 발자크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그의 구상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지쳤고 그의 육신은 고장을 일으켰으며 영혼은 내적으로 거의 붕괴되었다.

 

 

 


 


뚱뚱하고 못생긴 천재 발자크는 자기 인생의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저질렀고 실패했다. 평전 문학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발자크에게는 무척 불운인 그 실패들 덕분에 우리가 그의 노동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야누스적이게도 행운이라고 말한다. 발자크의 소설 속 인간들은 냉혹하고 천박하고 추악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채 '돈'만을 추구하니 이건 그 시대의 자화상이겠다. 이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그려냈으면 그에게 19세기 풍속화가라는 별칭이 붙었을까나. 발자크의 어린 시절부터 최후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멱살을 잡아 흔들어서라도 정신차리라고 소리치고 싶던 순간들. 츠바이크는 내가 이럴 걸 예상했겠지.

 

 

 


 


그 당시 작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나폴레옹 숭배자였던, 사실주의의 선구자 오노레 드 발자크.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애정 때문인지 돈 있고 계급 있는 여인들 즉 귀족들에게 끊임없이 구애했던 프랑스의 소설가. "올빼미당원" 이후의 모든 소설에서 이 작품 저 작품마다 인물들을 재등장시켜 거대한 하나의 이야기처럼 만들어낸 불세출의 천재 작가. 머릿속 사상들을 소설로 고스란히 드러낸 발자크의 일생 이야기. 소설 못지않게 흡입력 있어 쭉쭉 읽어버린 "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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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책 리뷰]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평점10점 | p*****8 | 2023.01.20 리뷰제목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 푸른숲 평전, 이 책을 통해 발자크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함께 하고 나니 애잔한 연민이 생겨났다. 발자크는 자신이 천재인지도 모르고 능력을 낭비하며 허영심에 가득차 유치한 생각으로 세속적인 출세에 쉽게 몸을 굽힌 위험한 사람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막일꾼'이 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필해 글을 쓰기도 했으며 돈
리뷰제목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 푸른숲

평전, 이 책을 통해 발자크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함께 하고 나니 애잔한 연민이 생겨났다. 발자크는 자신이 천재인지도 모르고 능력을 낭비하며 허영심에 가득차 유치한 생각으로 세속적인 출세에 쉽게 몸을 굽힌 위험한 사람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막일꾼'이 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을 대필해 글을 쓰기도 했으며 돈을 벌면 벌수록 더 벌어들이고자 하는 소설 공장의 노예 상태의 삶, 하는 일마다 참담하게 실패하는 사업까지 지독히 그는 박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의 글을 관리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허세와 속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은 훗날 슈테판 츠바이크에 의해 평전으로 탄생했고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일대기를 벗어나 소설 형식으로 그려진 서사여서 지루함 없이 잘 읽어낼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발자크

발자크는 비극적인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는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가족이라는 것은 증오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냉정했던 발자크의 어머니는 히스테리 성향을 지녔고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돈을 쓴다는 것은 범죄라 생각했으며 아들을 낳자마자 자신의 품에서 떼어 내 유모의 손에서 키우게 하였다. 집이 부유해졌음에도 발자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낯선 집에서 하숙을 하며 1주일에 한번씩만 가족을 손님처럼 만나러 올 수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 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고 동생들과 마음대로 놀수도 없었다. 이후 기숙학교로 보내져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만이 그를 살게하는 유일한 구원이었다.

 

우리가 읽었고 두뇌 속에서 삶을 지탱해준

도서관의 책들이 없었다면 이런 삶의 체제는

우리를 완전히 야만성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 외에 발자크의 외모는 정말 볼품 없었다는 설명의 구절이 많았다. 작은 눈, 뚱뚱하고 땅딸막하며 검고 기름진 갈기머리와 불거진 뼈, 커다란 입에 상한 치아, 말할때 유달리 튀는 침 등 완전 비호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여인들에게 구애하고 또 사랑을 하고 만나고 헤어진다. 부모의 사랑에 대한 결핍, 정서적 공허함 등 자신을 가족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해 줄 어떤 여자와도 결합할 각오가 되어있었고 여자의 성격, 외모, 멍청함 등은 아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로지 많은 재산을 가진 과부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이상형이었다. 그런 이유에 자신보다 연상의 여자들을 만나려고 했고 주변의 추측과 악의적인 소문따위는 염려될 것이 없었다. 특히 발자크는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의지, 곧 꺾이지 않는 마음이 강해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느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수 없었다. 발자크가 생각하는 젊은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이러했다.

"마흔살의 여자는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스무살의 여자는 아무 일도 안 한다."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아무것도 줄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같고 애인이자 친구이며 동반자인 연상의 여자에게서 사랑을 갈구했었다. 그 시대 여성들이 유행을 타는 작가들을 무조건 찬미하기도 했는데 돈문제로 늘 골머리가 아팠던 발자크는 여자복은 있었다는 생각이다. 쥘마 카로라는 여성은 일찌기 발자크의 천재성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헌신적이고 정직했으며 발자크와는 더할수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녀는 발자크의 삶이 칸탈로스의 운명(목까지 물이 찼으나 그 물을 마시지 못하는 신화 속 인물)과 같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스로에게 귀족의 호칭을 내리고 겉모습이 효력을 가지는 세상에서 더 많이 가진 것 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 자신의 글을 통해 충분히 인정 받을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멋쟁이로 보이고 싶었던 그의 계획은 불행한 일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물건이 발자크의 지팡이였다. 아직 돈도 지불하지 않은 7백 프랑짜리 헤라클레스 곤봉을 들고 사교계에 나타났을 때 모두가 경악했다. 이후에도 발자크는 몇가지 쓰라린 체험을 한 후에서야 자신이 묘사와 형상화를 통한 세계에서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 운명임을 알게 되었다. 주변인들에게는 절제를 모르는 낭비가였고 허풍선이였지만 작품을 통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었고 자신만의 노동의 법칙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작가로서의 발자크

 

책, 만나는 사람들,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상과 사건들을 꿰뜷어 보는 눈길 만으로도 발자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데 충분했다. 그의 주변에는 자신이 창조할 세상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이 없었다.

 

그는 펜이 말과 생각을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아주 빠르게 생각하고 쓸 수 있었다. 연상에서 다른 연상으로 마구 비약하는 그의 상상력은 음절을 헤아리고 격식에 맞게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발자크는 쓰고 또 썼다. 그가 하루 열 다섯 시간을 쉬지 않고 작업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커피였다. 종이와 펜 다음 글쓰는 도구로 발자크는 커피를 선택한다. 훗날 이 도구가 스스로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한다. 지독하게 강한커피 5만잔이 그의 작품 『인간희극』을 지치지 않고 써 나가도록 격려해 준 셈이었다. 교정쇄 읽기, 이것은 발자크가 행위하는 결정적 창작의 수단이었고 도취된 상태로 써 내려간 몽상가의 습작을 관찰-평가-수정-변경 하는 과정을 거친다.

 

특별히 낭비가 심하고 너그러운 이 사람은 가장 내적인 과제, 자신의 일로 여겨지는 모든 일에 있어서만큼은 폭군적이고 꼼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정쇄들은 특별한 지시에 맞게 만들어져야 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렇게 수정된 교정본은 원래의 원고보다 더 이해가 안가고 읽을수도 없어 아무도 이 난해한 문자를 해독하려고 하지 않았다. 겨우 특별한 교정자가 이를 완성하고나서 다시 발자크에게 교정본을 보이면 또다시 텍스트에 달려들어 미친듯이 수정한다고하니 누가 발자크의 원고를 교정하려고 하겠는가. 이 또한 발자크가 비용을 물어가며 하는 일이라 그의 원고료나 인쇄는 교정하는데 반 이상이 날라가버렸다고 한다. 작가로서 완벽함을 추구하고자 한 발자크의 작품은 그렇기에 값질수 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것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노동이므로 그는 스스로를 옭아맨 쇠사슬을 벗어버리기가 힘이 들었다.

 

 

 

사람이 노동을 하는데는 목적이 따른다. 의식주를 해결하거나 자신이 생각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이거나... 발자크의 노동은 빚을 갚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이 노동을 사랑했고 이는 곧 힘든 노동을 하는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발자크의 글이 그 시대 여인들을 위로했고 용서하며 공감해주는 역할을 했고 그는 '높이와 깊이를 아는 사람'이 되어 수많은 여인들의 편지를 받아 이를 또 소설의 가능성과 연결시키기도 했다. 어린시절 부모의 그릇된 양육으로 온전하지 못한 삶을 살았고 평생을 여성 그 자체보다 그녀가 가진 재산이나 신분에만 관심을 가진 사랑의 기준으로 자신의 불행을 더욱 초래하며 실패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현실의 삶과 자신의 소설속 삶의 모호한 경계에서 정돈되지 못한 삶을 살아온 발자크 ,그는 삶의 소설 속에서도 위대한 몽상가였고 확고한 현실주의자였다. 무의미한 지출과 현실감을 잃어버린 재정상식으로 낭비와 빈곤 사이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던 가련한 발자크의 삶, 강력하고 절대 지치지 않는 노동자, 철학자, 사상가, 시인이었던 발자크는 미완성의 삶을 살다가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여운을 남기며 소설같은 발자크의 평전 읽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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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발자크 작품 세계를 열어주는 키 열쇠 평점10점 | o******n | 2018.09.15 리뷰제목
발자크 작품 세계를 열어주는 키 열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푸른숲, 1998)은 세계 3대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인 츠바이크의 작품이다. 그의 평전 저술 방식은 독특하다. 생동감 넘치는 문체, 섬세한 감수성,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평전에 입체성을 주었다. 작가의 생전 의지에 따르면, 수많은 평전 중 “그의 대표작이 되어야 할 책”(p.681)이었다. 죽기 10년 전부터 저자
리뷰제목

발자크 작품 세계를 열어주는 키 열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푸른숲, 1998)은 세계 3대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인 츠바이크의 작품이다. 그의 평전 저술 방식은 독특하다. 생동감 넘치는 문체, 섬세한 감수성,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평전에 입체성을 주었다. 작가의 생전 의지에 따르면, 수많은 평전 중 그의 대표작이 되어야 할 책”(p.681)이었다. 죽기 10년 전부터 저자는 발자크 삶에 대한 저술 작업을 했는데 마무리를 못 했다. 츠바이크는 건강하고 알뜰한 작업규칙을 준수”(p.684)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이 평전을 집필할 땐 계속 새로운 구상”(p.684)을 하며 확장시키고 말았기 때문이다. “발자크 같은 거인을 완전히 파악하기란 도대체 불가능”(p.685)하다고 말하며 추가 내용을 계속 삽입했다. 마치 발자크가 작품을 집필할 때 교정쇄를 열다섯 번이나 열여섯 번"(p.251)고친 것 같은 일이 츠바이크에게도 일어났다. 감정 이입한 나머지 발자크의 과도한 완성욕구가 평전 집필에 전염된 것이라 말한다면 무리한 가정일까? 저자 사후 원고 상태의 작품은 친구인 리하르트 프리덴탈이 보완해서 출판했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의 삶과 문학을 그려낸 걸작이다. 발자크는 탐욕에 사로잡혀서 우스꽝스럽고 비참한 처지에 놓인 인물을 자신의 소설세계로 끌고 들어온 리얼리스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대중에게 익숙한 반면,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츠바이크가 쓴 평전이 발자크의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 셈이다. 발자크는 100여 편 가까운 작품 속에 2,000명의 등장인물을 만들어낸 인간희극으로 유명하다.

 

책에 따르면, 발자크는 폭풍 같이 격정적인 본성”(p 74)을 지녔고 기계처럼 하루 16시간 글을 쓴 작가다. 잠자고 먹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빼면, 발자크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발자크는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서 공기도 움직임도 자유도 없이”(p. 451) 글 쓰면서 날마다 보냈다. ‘17년간 교정쇄만 50만장을 만든 살인적인 일정에 따라 노예처럼 일하도록 발자크를 밀어붙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츠바이크는 몇 가지 동력을 찾아서 알려준다. 먼저 진한 커피다. 기계를 돌리는 데 연료가 필요한 것처럼, 발자크는 검은 석유”(p. 243)같은 커피를 하루 20잔을 마셨다. 발자크는 저녁 먹고 일찍 잔 후 밤 12시에 일어났고,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어두운 시간에 펜을 움직였다. 발자크는 선천적으로 다부지고 왕성한 체력을 가졌다. 그런 발자크라도 위장을 뒤흔들 정도로 진한 커피를 끝없이 마셔야만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발자크의 권력에의 의지”(p 131)와 속물근성이다. 발자크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얻고자 하는 소망을 놓지 않았다. 빚쟁이에 쫓겨 도망 다니면서도 존경하던 나폴레옹 흉상을 들고 다녔다. 발자크는 그가 칼로 시작한 일을 나는 펜으로 완성하련다.”(p. 163)라고 적어서 석고상 받침대에 붙여놓았다. 나폴레옹처럼 세계의 권력을 쥐는 것이 발자크의 일생일대의 목표였다.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서 명예와 부를 잡고 싶어 하던 소망도 간절했다. 발자크는 우크라이나 귀족인 한스카 부인에게 18년 동안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구애했다.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을 내세워 귀족들의 허식과 가면을 뒤집어 쓴 모습을 비웃으면서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어 했다. 글 쓰지 않고 쉬는 단 8시간 중 귀족의 살롱에 출입하기 위해 1시간을 빼냈다. 발자크는 우편요금도, 합승마차표도 내게는 엄청난 지출이다. 옷을 아끼기 위해서 나는 외출하지 않는다”(p. 181)라고 말했지만, 빚을 얻어 번쩍이는 장식을 매단 예복을 차려입고, 화려한 마차를 구입해서 나갔다. 그는 산더미 같은 빚을 어깨에 짊어진 채, 대부분 싸구려 방에 틀어박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돈벌기 위해 소설을 썼다.

 

마지막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전, 한방주의다. 발자크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불꽃처럼 한 번에 해결하고자 덤비는 힘으로 분출되었다. 발자크는 습작을 쓸 당시에도 그 작품으로 위대한 작가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는 매번 앞으로 쓸 소설 제목만 떠올라도 엄청난 원고료를 받는 모습을 상상했다. 인쇄업, 출판업, 은광투자, 부동산투자 등을 시작할 때마다 성공을 해서 벌어들인 돈의 촉감을 손가락에 먼저 느꼈다. 이번 한 번으로 성공해서 편안히 살고 싶다면서 발자크는 끝도 없이 투자했다. 불행하게도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글쓰기를 제외한 모든 사업은 그를 빚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20년간 발자크는 90편이 넘는 장편 소설,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을 썼지만 평생 빚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689 페이지 평전은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읽다 중단하기 어렵다. 츠바이크에 의해 재탄생한 발자크에게 압도당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위대한 예술가와 뛰어난 평론가의 절묘하고도 극적인 조합이다. 발자크가 살았던 격동의 시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실을 익히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시기, 이어지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이외에도 풍성한 볼거리가 많다. 부모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한 비극적 유년시절,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시킨 베로니 부인과의 만남, 돈 벌기 위해 매일 남의 작품을 표절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던 시절, 소설마다 십여 차례에 걸쳐 인쇄본을 퇴고했던 발자크의 완벽주의, 츠바이크가 분노해 마지않았던 매정한 한스카 부인과의 인연, 작가 및 사업가로서 불태웠던 투지와 상상력도 눈길을 붙잡는다. 전체 작품 이름과 분석 및 얽힌 에피소드는 훌륭한 발자크 세계로 들어가는 충실한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프랑스 고전소설, <고리오 영감같은 발자크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소설 속 주인공과 발자크의 삶에서, 집착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파멸로 향하는 부분이 비슷하다고 볼 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한 발자크의 따뜻한 본성과 애정 어린 시선도 놓칠 수 없다. 발자크가 빚쟁이에게 쫓겨 숨어 산 집, 로댕이 만든 발자크상, 발자크의 핵심 작업도구인 커피포트, 이상형 베로니 부인의 초상화 등 삽화도 흥미를 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거리두기다. 발자크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다소 과잉으로 읽힐 수도 있다. 호불호가 나뉠 지점이다. 평전이지만 소설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객관적이거나 분석적 평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작품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발자크의 독자적 궤도를 따라간 관찰자이자 증언자인 츠바이크의 영혼의 기록. 책은 인간 본성을 꿰뚫는 눈을 가졌던 발자크였지만, 자신도 알면서도 파국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간 중 한 명이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져준다. 발자크란 한 인간의 삶을 근접 촬영한 영화처럼 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평전읽기를 도전할 계획이 있다면, 첫 번째로 접할 작품으로 손색없다. 풍성한 내용과 가독성으로 평전 읽기의 즐거움에 빠질 지도 모른다. 만일 빌려서 읽었다면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킬만한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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