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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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리뷰 총점 9.7 (309건)
분야
소설 > 영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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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i******u | 2021.06.24 리뷰제목
'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머리에 나사가 박혀 있고 푸르딩딩한 얼굴과 거대한 몸, 어기적 거리며 걷는 만들어지다 만 로봇같은 형태의 피조물 일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육체를 짜집기 해서 만든 조립형 괴물, 그리고 자신을 만든 과학자(창조자)를 죽이려는 배은망덕한 존재가 기존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SF 장르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평가
리뷰제목
'프랑켄슈타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머리에 나사가 박혀 있고 푸르딩딩한 얼굴과 거대한 몸, 어기적 거리며 걷는 만들어지다 만 로봇같은 형태의 피조물 일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육체를 짜집기 해서 만든 조립형 괴물, 그리고 자신을 만든 과학자(창조자)를 죽이려는 배은망덕한 존재가 기존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미지였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SF 장르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는 19살 때 -1816년 5월, 당시 메리 고드윈 울스턴크래프트- 미래의 남편이 될 퍼시 셸리와 의붓 자매 클레어 클레어몬트와 함께 스위스를 방문했다가 당시 망명중이던 바이런 경을 제네바 호숫가의 디오다티 별장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름이었으나 연신 내리는 비와 추위로 나들이가 쉽지 않던 어느날, 바이런이 별장에 모인 이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써보자는 제안을 했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프랑켄슈타인]의 뼈대가 만들어졌다고 책 1판 서문에 적혀 있습니다. 또한 이 자리에 함께 참석했던 바이런의 주치의 폴리도리가 쓴 뱀파이어 이야기는 훗날 브램 스토커가 낸 [드라큘라]의 전신이기도 합니다.

다시 '프랑켄슈타인'으로 돌아와, 생각하고 있던 이미지의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아닌 그 괴물을 창조한 제네바 출신의 유능한 천재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을 만났을 땐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죽은 이들의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완성 된 피조물-괴물-은 자아를 가진 상태였으며 어느날 실험실을 탈출해 사라집니다. 빅토르는 그 괴물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에 만족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창조한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하지만 탈출한 '괴물'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들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언어와 글자를 익히며 점점 보통의 인간과 다른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이야기의 처음은 북극을 탐험하기 위해 항해하던 로버트 윌턴의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배가 사방으로 얼음에 포위되어 꼼짝을 못할 때 북쪽을 향해 여러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탄 거대한 존재를 목격했는데 다음날 또다른 개 썰매를 이끌다 조난 당한 남자-프랑켄슈타인-를 구조하면서 그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전날 자신들이 본 거대한 존재가 바로 창조자의 통제를 벗어난 피조물의 악행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풀려져 나옵니다. 선과 악에 대한 구분이 없던 피조물 괴물이 악으로 진화를 하며 자신을 만든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을 향해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고 끊임없이 비극이 무엇으로부터 만들어지는지, 희망이 무엇으로인해 망가지는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의 미래를 예견한 듯한 SF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직접 읽어보고 남들이(또는 미디어가) 심어 놓은 괴물의 정체, 자신이 만든 괴물을 죽이기 위해 북극까지 달려가야 했던 프랑켄슈타인의 사연을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YES24리뷰어클럽 서평단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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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8 댓글 16
종이책 인간이 만드는 또 다른 인간, 그리고 공존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k*****7 | 2021.08.11 리뷰제목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게 비슷하다. 이렇게나 오래전에 창작된 고전 소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체 나는 그저 애니메이션 속 드라큘라 친구쯤 되는 하나의 캐릭터로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프랑켄슈타인이란 영화부터 뮤지컬까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물이 꽤 많았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내가 '프랑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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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게 비슷하다. 이렇게나 오래전에 창작된 고전 소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모른체 나는 그저 애니메이션 속 드라큘라 친구쯤 되는 하나의 캐릭터로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프랑켄슈타인이란 영화부터 뮤지컬까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물이 꽤 많았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라고만 인식하고 있던 내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좀 특이하다. 몇 년 전 프리젠테이션 관련 특강을 듣다가 강사분이 특강을 준비하면서 최근 트렌드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봤다는 도서 목록에서 눈에 띄는 책 몇 권을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을 통해 그 책을 읽던 도중 '짜집기'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프랑켄슈타인'을 예로 들고 있는 부분을 접하고 나서이다.

 

사실 그 책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이 시체의 조각을 이어 만들어진 생명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왜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에 바늘로 꼬맨 자국들이 여기저기에 있는 건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이야기의 핵심이 당연하다는 듯 '짜깁기'에 맞춰져 있을 거라고 멋대로 단언하고, 그 짜깁기가 인간세상에서 뭐라고 일침을 주려나 하는 호기심을 가득 안고 책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멋대로의 이야기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짜깁기'에 대한 부분은 단 한 부분에서 주인공이 죽은 이들의 조각들을 모아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뿐이다. 다시 말하면 '짜깁기'는 프랑켄슈타인의 핵심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짝 실망한 감은 없지 않다. 아니 실망이라기 보다는 또다른 궁금증들이 많이 생겨났다.

 

내가 이 책에서 '짜깁기' 부분을 관심깊게 본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프리젠테이션 책 속에서 만났던 '프랑켄슈타인' 사례를 보고 충격을 받아 '프랑켄슈타인 짜깁기'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관련 내용들을 찾아보았다. 몇 년 전에는 그저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게시물이 몇 개 있었을 뿐이지만, 이 책이 오길 기다리며 다시 검색했을 때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프랑켄슈타인 짜깁기'라는 내용을 인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여러 기술을 짜깁기한 도구와, 이 도구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을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공격’이라 불리고 있었고, 프리젠테이션 부분에서는 여기저기 짜깁기한 나쁜 예로 인용되고 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 중에 새 경제정책을 말하며 인용되기도 했고, 우리나라 현 이재명 경기지사 조폭연루설을 다른 한 시사방송에서도 '프랑켄슈타인 짜깁기'가 인용되기도 했다. 심지어 허술하게 작업한 철물구조물의 사고에서도 인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전혀 연관없는 것 같은 분야에서까지 다양하게 인용되고 있어서 이 책의 핵심을 그렇게 생각하고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짜깁기'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생명체와 공존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하나 더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이 있다. '프랑켄슈타인'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그 캐릭터는 사실 이름이 없다.(그를 만든이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채 그저 창조물이라고만 말한다.) 키가 2미터가 넘고, 여기저기 꼬맨 자국이 가득한 네모난 큰 얼굴에 초록빛을 하고 있는 그 캐릭터를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와전되서 '프랑켄슈타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것이다. 책으로 먼저 접한 자연철학에 관심을 갖고 대학에 갔다가 화학에 관심을 갖게된 빅터 박사는 여러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어마어마한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자신이 완성한 창조물을 보기가 편치는 않다. 오히려 두려워 스스로 피하고 만다. 그렇게 혼자 방치된 창조물은 스스로 인간 세상에 대해 터득해나간다. 자신의 흉칙한 모습에 피하거나 괴롭히던 인간들 사이에서 자신을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대하는 인간을 만나 따뜻함을 느끼지만, 어떠한 계기로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후 창조물이 느꼈던 따뜻함은 복수의 화신을 바뀌게 만든다. 그 화살은 자신을 만들어낸 부모인 빅터 박사에게로 향한다.

 

외로움, 즐거움, 분노를 모두 겪었던 창조물은 빅터 박사에게 자신과 똑같은 여인을 만들어 달라고 먼저 제안한다. 그러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빅터 박사는 어렵게 그 거래를 받아들이지만, 또 다른 창조물이 생긴 후 벌어질 상황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거절을 하게 되고, 제대로 분노한 창조물은 자신을 만든 빅터 박사의 주변인들을 하나씩, 둘씩 결국에는 빅터 박사까지 제거한 후 자책하다 사라져버린다.

 

이 소설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새로운 창조물이 인간이 하는 사고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빅터 박사가 만들어낸 창조물이 그저 1을 입력하면 1을 출력해내는 아주 기초 수준의 로봇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빅터 박사가 두 번째 창조물 제작을 포기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처음엔 당장의 외로움을 잊고자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그치지만, 생각이 생각을 낳다보면 결국엔 그 선을 넘어 인간 사회를 망치는 요구가 생길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몇 세기를 넘어선 현재. 인간은 AI라는 무형의 프랑케슈타인(창조물로서의)을 만들려고 끊임없이 연구 중이다. 그리고 그들의 다른 한 편에서는 인간과 똑같은 사고를 하는 AI가 만들어 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을 연구한다. 그 연구 중에는 빅터 박사가 창조물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해 했던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AI가 열풍일 때 인간의 일자리 멸종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물만 잔뜩 내놓았던 당시 처럼 말이다. 그러나 언젠간 인간과 유사한 사고를 하는 AI는 분명이 만들어 질 것이고, 이제는 그렇게 생겨난 창조물과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이미 법학계에서는 그런 AI의 행위를 인간의 행위처럼 보고 책임을 지울 수 있느냐를 두고 연구 중인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자는 '프랑켄슈타인'이란 소설을 통해 인간이 새로이 만들어낸 창조물과(또 다른 인간이라고 말해도 될지 사실 많이 애매하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숙제를 던져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지만, 책의 1/3정도를 읽으면서 이미 전개방식이나 결론이 충분히 예측되었고, 결말 역시 예측한 그대로였다. 아마도 수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미래를 그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사한 스토리를 많이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이 창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러가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저자의 상상력은 이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빅터 박사처럼 우려에 그처 도망칠 때가 아닌 또 다른 창조물과의 공존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가장 큰 숙제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자들의 윤리 문제일 것이다. AI역시 우리 인간이 편하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 그것을 우리에게 이롭게 만들지, 소설속 창조물 처럼 괴물로 만들지 또한 우리 인간에게 달려있다. 그것이 현재 AI연구 부분에서 '윤리'를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 본 게시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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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Publisher 4. 사회적 약자를 괴물로 취급하는 우리의 자화상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z******8 | 2023.10.03 리뷰제목
고전명작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명작소설 가운데 하나다. 이 소설을 읽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법이 있는데, 바로 '괴물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십중팔구는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은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괴물은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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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명작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듯 싶다. <프랑켄슈타인>도 그런 명작소설 가운데 하나다. 이 소설을 읽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법이 있는데, 바로 '괴물의 이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십중팔구는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은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괴물은 이름이 없다. 괴물의 창조주인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직후에 너무나도 끔찍하고 혐오감을 느껴 '새 생명'을 눈앞에 놓아두고 그대로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선 소설의 중반부까지 읽어야 눈치챌 수 있고, 끝까지 읽지 않으면 '괴물'을 무어라도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좋은 질문'인 셈이다.

 

  하지만 진짜 괴물은 생김새가 끔찍하고 보기만 해도 역겨움을 느끼고마는 '새 생명'이 아니라, '새 생명'에 과학의 정수를 담아 숨결을 불어넣고서도 그대로 방치하여 수많은 이들에게 배척 당하고 사회밖으로 내몰아버리도록 원인을 제공한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인 까닭에 그가 괴물의 대명사로 불리더라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괴물도 살인과 같은 악행을 저질러 '악마'가 되기 이전에 어질고 선한 존재였다. 그토록 선한 마음씨를 가졌는데도 겉모습이 흉측하다는 이유로 선한 행위조차 '위협행위'로 오해하는 어리석은 이웃들 때문에 분한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토록 오해를 받고 분한 마음을 품었을 때 '창조주'였던 프랑켄슈타인이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고, 애초에 '반듯한 외모'로 창조했던들 그런 혐오감을 조장하기나 했겠느냔 말이다. 이제 막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뜬 존재에게 제대로된 훈육과 사회적응을 시켜주지도 않고서 그대로 방치한 결과가 끝내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불쌍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씨는 없는 듯 싶다. 시종일관 자신의 가족, 친구, 사랑하는 연인마저 죽여버린 괴물에게 복수하려는 일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살인을 저지른 괴물을 처치하는 것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최선이라는 사명감까지 부여하며 '자신의 책임'은 망각한 채, 그저 '복수의 화신'이 되는 것만이 당연한 것인 마냥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더 한심한 노릇은 자신이 무책임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살인사건'에 철저한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완벽하게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주 뻔뻔스럽기 그지 없는 '순수한 악의 화신'이라고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해도 크게 다를 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프랑켄슈타인' 같은 뻔뻔한 사람들이 참 많은 듯 싶다. 뛰어난 지식으로 우리 사회의 엘리트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였으면서도 자신들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병폐현상'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뻔뻔스레 '남탓'만 하는 무책임한 짓을 서슴지 않는 분들이 참으로 많은 것을 보니 말이다. 일찍이 메리 셀리도 진보주의 사회운동가인 남편(퍼시 셸리)과 함께 '러다이트 운동'을 목격하며 남편이 '기계파괴 운동', 즉 '폭력의 원인은 가난이다'라고 지적한 부분에 공감을 표했고, 그후 <프랑켄슈타인>에 일정부분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지지를 담았다고 해석한 이들도 꽤나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속 '괴물'이 애초에 선한 존재였으나 살인을 저지르는 악행을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것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실제로도 독자들은 괴물이 저지르는 살인행각에 '혐오감'을 내비치기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며 '동정심'을 품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괴물'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노동자'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다.

 

  이전에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니 여당과 언론에서 '노조갈등'을 강성노조 탓으로 돌리고, 정당한 집회인데도 '불법시위대'로 몰아 강경하게 탄압하기 일이 비일비재한 까닭이다. 그러고는 '낡은 이념'을 꺼내들고 '전가의 보검'마냥 휘두르며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낙인 찍고, 그렇게 낙인 찍은 자신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찍이 서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병폐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저런 강성노조와 저런 불법시위자 들 때문에 나라꼴이 엉망이라고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는 듯 하다. 정말, 어이도 유분수고, 적반하장이 없다.

 

  우리는 어쩌다 저런 '프랑켄슈타인' 같은 놈들을 엘리트로 떠받들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애꿎은 괴물, 선량한 괴물을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혐오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외모지상주의'라는 후진국형 병폐현상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듯 싶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방송에서 퇴출시키고 '소수자들의 커밍아웃'에 호들갑을 떨지 않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만 그럴 뿐, 우리 속마음까지 완전히 인식을 바꾸지는 못한 듯 싶다. 만약, 우리가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췄다면 '교통약자의 시위'로 인해 출근길 교통불편을 당했다고 해도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가 '침해' 받은 것에 공감과 응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되려 교통불편을 초래한 서울시나 담당공사 책임자에게 그러한 민원처리를 어째 했는지 살펴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관심을 표하기라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기레기 언론에서 '출근길 불편'만을 담은 인터뷰를 인용해 '교통약자'를 벽안시하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정부가 이러한 '교통약자들의 정당한 권리주장'을 불법으로 치부하고 국민불편을 초래하는 교통약자단체의 주동자를 체포해 달게 처벌받게 했다며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자랑처럼 늘어놓고 있다.

 

  어디 '교통약자'뿐이었나? 노동자들의 정당한 시위도 '불법'으로 처벌했고, 농민들의 집회도 '무산'시켰으며, 핵오염수 방류 시점에는 어민들의 우려의 목소리와 수산시장과 수산물을 취급하는 식당 관계자들이 걱정어린 의견을 내놓는 것조차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 날조라며 엄정한 법집행을 할 것이라 온국민을 상대로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당연히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보에 야권의 실력행사와 반대의견을 가진 국민들의 여론이 들끌었지만 어째 '들은척'도 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국민들은 개돼지'라는 듯 개무시전략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이에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이러한 '폭거'를 일삼는 시민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모두 싸잡아서 '괴물'을 보듯 날선 비난만 늘어놓고 말이다. 정작 누가 괴물인지 이제는 헷갈릴지경이다.

 

  소설에서는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의 끈질긴 추격이 펼쳐진다. 그리고 둘의 추격이 끝맺게 된 것도 극한 환경까지 쫓아간 프랑켄슈타인이 체력이 다해 죽고 난 뒤에 괴물이 나타나 프랑켄슈타인의 주검을 안고 북극의 빙하속으로 떠나면서 이야기를 끝맺는다. 우리도 이런 결말만 남겨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백하다. 그 누구도 '괴물'로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혐오스럽게 여기는 '괴물'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괴물'일지라도 없애버리거나 내쳐선 안 된다. 그럴 수도 없다. 실상은 '괴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괴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우리'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괴물'이 아닌 선한 존재로 태어났는데, '괴물'로 적대시하느냔 말이다. 이전에 그런 아픔이 있었다면 앞으론 절대 그래선 안 된다.

 

  나와 '다른 모습'이라 나와 '다른 생각'이라 적대시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둬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쌓인 감정이 얼마나 많은데 한순간에 스르르 녹아 없어지겠는가. 또한 그동안 당한 게 얼마나 많은데 쉽사리 '용서'하고 쉬이 '관용'이란 말이 나올 수 있겠느냔 말이다. 성인군자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내야만 한다. 극과 극의 대치상황조차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하나로 스스로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다. 우리가 지난 100여 년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데 고작 '내부분란'으로 대한민국을 망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이 망하는 일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그 싸움의 이유가 오로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첨예한 갈등속에 극한 대치를 했더라도 '대한민국'이란 이름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뭉칠 수 없는 이유로 싸우는 것들은 나라밖으로 내쳐도 좋다. '대한민국'이란 이름보다 다른 이름을 더 소중히 여긴다면 그쪽으로 내쳐도 좋다. 우리 대한민국이 보다 잘 되기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그렇지 않은 '껍데기'들은 까불어서 날려보내면 그뿐이다.

 

  끝으로 고전명작을 읽으며 줄거리만 외우려 들지 않길 바란다. 등장인물이 누구누구 나오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굳이 외우고 싶다면 등장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을 유심히 보고, 그걸 외우라. 그리고 그렇게 외운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고 '뜻'을 부여해보길 바란다. 그러면 등장인물이 하는 말이 또렷해지고, 행동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그 느낌을,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나타내는 것도 '좋은 독서법' 중에 하나다. 고전을 읽었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쓸 내용이 없다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을 떠올리긴 했는데 차마 말로 담지 못하고, 쓰긴 썼는데 누가 읽으면 쪽 팔리다고? 설령 틀렸으면 좀 어떤가. 생각을 정리해서 쓰긴 썼는데 십분의 일도 제대로 담지 못해 안타깝다면 훌륭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기는 것'이다. 기껏 떠올린 아이디어를 말로 웅얼거리고 글로 쓰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고 머릿속에선 아무 기억도 나지 않게 될 것이다. 당장은 어줍잖다고 여긴 '기록'이 훗날 번뜩이는 대박 아이템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위인전에서 읽지 않았던가 말이다. 뉴턴의 사과처럼 말이다. 중구난방으로 써내려갔는데, 훗날 더 좋은 수업재료로 쓰기 위해 남긴 기록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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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최초의 SF소설 _ 『프랑켄슈타인』를 읽고 평점10점 | b******i | 2022.10.22 리뷰제목
현대지성 1일 1쪽 30일 챌린지를 하면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천천히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액자 형식의 소설로 전개도 빠른 편에 분량도 많지 않아 맘먹으면 빨리 읽을 수 있었으나 이번 기회에 음미하며 읽어 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이자 공포영화의 소재라고 생각했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공포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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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1일 1쪽 30일 챌린지를 하면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천천히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 액자 형식의 소설로 전개도 빠른 편에 분량도 많지 않아 맘먹으면 빨리 읽을 수 있었으나 이번 기회에 음미하며 읽어 보기로 했다.

 

기껏해야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이자 공포영화의 소재라고 생각했던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공포소설로 알려져서 약간 겁(?)먹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유려하고 절제된 표현을 잘 살려서 번역했기 때문에 18세기 유럽 지식인의 고상한 예절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아름다운 유럽의 풍경 묘사까지 매우 흥미로웠다.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글을 읽으며 찾아보려 애썼다. 과학적 이슈를 담아내고 페미니즘 관점까지 담아냈다고 하니 과연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는 고전일까 싶었다. 결국 마지막에 있는 번역가 오수원님의 해제를 읽고 나서야 깊이 있는 독서를 잘 끝맺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배경지식이 이 위대한 고전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으나 훌륭한 엮은이와 출판사의 도움으로 미약하게나마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자 행복일까. <프랑켄슈타인>을 통해서 18세기 이탈리아에 사는 부유한 지식인의 삶을 엿보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탄생한 창조물의 슬픔을 경험하고, 터키 여성들의 삶이 어땠는지, 빅토르와 창조물의 설득력 있는 말솜씨는 어떠한지 모두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현대지성과 함께 30일 동안 책을 읽으면서 재미난 변화를 경험했다. 

#1일 1쪽만 읽으면 되니 부담이 없어 쉽게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출근 전 책을 읽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틈틈이 책을 읽으려고 책을 갖고 다닌다. 
#이동 중에 책을 읽으려고 지하철을 이용한다.
#같이 독서하는 멤버들의 인증을 보면 자극이 되고 응원에 힘이 난다. 

 

 

 

자서는 빠를 수 있으나 같이하면 멀리 간다고 30일 동안 혼자 책을 읽었다면 피곤한 날이나 바쁜 날엔 잊어버리거나 핑계를 대며 미뤘을 것이다. 

 

 

다음 챌린지도 11월 중에 시작한다고 한다. 즐거운 여정에 다시 한번 동참하길 기대해 본다.

 

 

#프랑켄슈타인 #메리셀리 #고전읽기 #고전 #현대지성 #현대지성클래식 #현대지성1일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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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탄생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s*******4 | 2022.10.21 리뷰제목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탄생  "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을 읽고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나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 <실낙원>, 존 밀턴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탄생-   어렸을 때부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혐오스럽고, 끔찍하게 무섭게 생긴 괴물이 떠올랐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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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탄생  "

 

메리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을 읽고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나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달라고?.”

- <실낙원>, 존 밀턴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탄생-

 

어렸을 때부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혐오스럽고, 끔찍하게 무섭게 생긴 괴물이 떠올랐다. 아마 난 이 책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이 책의 내용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의 끔찍하고 무섭고 공포스러운 몬스터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이 괴물의 이름이 아닌 그 괴물을 창조해낸 과학자의 이름을 지칭한다는 것을 이 책을 알게 되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고자 한다.

 

아마 나처럼 이 책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지 모른다. 이 책의 저자인 메리 셜리는 이 책을 19세기인 1818년에 출간했는데, 그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소설보다 영화로 더 잘 알려졌다. 1913년에 할리우드에서 처음 영화로 상영된 이후 큰 인기를 얻었다. 아마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는 이미지도 아마 영화에서 나온 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출간 이후 이 책은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지식인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필독서'라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단순히 프랑켄슈타인과 그가 만든 피조물간의 이야기 때문일까. 이야기의 구조는 어찌보면 단순하다. 소설의 배경은 북극이며 그 당시 북극은 19세기 사람들에게 미개척지였다. 또한 그 당시 생명 과학 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이 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 시대 상황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시체를 조합하여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하고 놀라운 발견이다. 아마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도 이 책 속 괴물처럼 시체를 조합해서 하나의 또 다른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지 모른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과학자가 인조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보았을 때 획기적인 놀라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더군다나 쥘 베른의 공상과학소설이 『프랑켄슈타인』 출간 후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저자인 메리 셜리는 SF 소설의 선두 주자로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녀의 저서인  『프랑켄슈타인』이 그 시작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물론 괴물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결국 괴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운명이 나오긴 하지만,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창조자가 통제하지 못하는 피조물'인 그 괴물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그 괴물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떻게 보면 프랑켄슈타인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창조주와 비슷하고 프랑켄슈타인은 아담과 같은 피조물이라 볼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생명을 불어넣어서 '괴물'이라는 인간과 같은 존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해서 '괴물'이라고 부르지만, 괴물은 사실은 인간이 되고 싶었고,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괴물의 인간적인 모습이 2부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괴물의 끔찍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 괴물도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왜 프랑켄슈타인은 무책임하게 괴물을 탄생시킨 것일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왜 책임을 지지 못하고 무책임하게 도망을 가버린 것일까. 물론 그런 끔찍한 괴물이 실제로 태어날 줄은 몰랐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그는 생명 창조라는 그 과학적 업적의 달성에 생각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저자인 메리 셜리는 과학적 발견과 업적에는 이와 같은 막중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그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졌을지 모른다. 결국 무책임한 행동과 괴물에 대한 증오는 괴물로 하여금 인간을 죽이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진짜 '괴물'로 만든 것이다. 괴물로 태어났지만, 마음 만은 괴물이 아닌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괴물이 끝내는 괴물로 밖에 남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을 인간이 아닌 끔찍한 괴물로만 보는 프랑켄슈타인을 포함한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인 괴물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프랑켄슈타인과 그 슬픔과 괴로움으로 끝내 죽음을 택하는 괴물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떻게 보면 프랑켄슈타인이 그 괴물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부터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그 죄로 인해 신으로부터 끊임없는 고통을 당한 프로메테우스와 인간의 관계처럼 어쩌면 프랑켄슈타인과 그 괴물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또한 인간의 모습을 했다고 해서 진정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세상에는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으로서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인간이지만 인간답지 못한 사람과 괴물 중에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괴물이 사랑스럽고 힘없는 이들을 무참히 죽이고 자신의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조차도 불행으로 몰아넣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괴물의 말대로 괴물은 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도 안 되는 그런 존재인 것인가. 괴물의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마음만은 괴물이 아니고 인간이 되고 싶었던 괴물이 진짜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실낙원에서 창조주에게 말하는 아담의 모습을 보면서 아마 그 괴물도 프랑켄슈타인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반드시 한번 쯤 읽어야하는 필독서인 이유이다.

 


<제임스 웨일의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모습>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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