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는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하나님과 자연의 섭리이다.
숙명은 받아들이고 건강장수행복이 목표이다.
저자 엘렌 랭어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교수이다.
1981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종신 교수직에 임용됐다.
저자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노화와 인간의 한계를 연구한다.
저자는 요양원에 거주하는 노인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저번에 읽은 책에서도 저자가 언급되었던 것 같다.
화분을 주도적으로 키우게 한 노인들이 오래 살았다는 얘기말이다.
그 실험을 한 사람이 저자였다.
저자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실험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생물학이 숙명이라는 믿음을 멀리하라고 한다.
건강에 관해 스스로 한계를 만들지 말고 좀 더 의식을 집중해 건강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불가능이 없는 가능성의 심리학을 강조한다.
질병이나 질환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현 상태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다.
가능성의 심리학은 단순히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그 해답을 찾는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시력이 감퇴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실제 연구 결과, 시력 손실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확률을 아무 생각 없이 절대적인 사실로 여길 필요는 없다.
글자 읽기에 문제를 겪기 시작하면 대부분 눈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안경을 써서 나빠진 시력에 적응한다.
만성적으로 나빠지리라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시력이 나빠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시력이 좋아질 수 있다고 최상의 상태였을 때보다 더 좋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그런 결과를 얻을 방법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훨씬 어린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이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사는 반면,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시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고 했다.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믿음이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믿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건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언제나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리가 옳다면 통제 불가능한 일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 자체에서 다른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믿지 않기로 선택하면 손해만 커진다.
그런 경우 시도해 보았다는 최소한의 보상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통제하고자 하는 의미심장한 노력의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건강을 배운다는 자세로 의식을 집중하고 자신의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을 학습하려면 세상 모든 가르침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큰 것뿐만 아니라 작은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변화도 중요해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낙천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회복에 남들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러한 과정은 회복에 도울 뿐만 아니라 합병증 대비에도 도움이 된다.
낙천주의는 의식의 집중과도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병이 위중한 사람이 중요한 행사가 끝날 때까지 버티거나 노부부 가운데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배우자 역시 바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
우리 셋째 이모도 이모부가 돌아가신 1년 후에 바로 돌아가셨다.
포기의 결과는 현실적이다.
상관관계가 있는 결과를 알게 되었는데 필연적인 진실로 받아들여서 암에 걸리면 죽는다고 믿는 사람은 자기 충족적 예언의 희생양이 된다.
심리적 요인으로 유발된 죽음은 원래의 상관관계가 실제 들어맞는다기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해당된다.
건강에 의식을 집중하려면 자신의 몸이 전하는 메시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관심이 필요한 증상과 무시해도 좋을 증상을 구분하는 태도에 따라 의식을 집중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건강 염려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스스로 증상을 인지하는 방법과 의료계가 증상을 다루는 방법을 모두 감안해 좀 더 조심스럽게 증상을 관찰해야 한다.
의사가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자신의 증상은 자신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우리는 연속성 안에서 끓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과정에 철저히 의식을 집중해 가변성에 더욱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유사성과 차이점, 한 가지 문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다른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만한 요인을 파악해야 한다.
저자의 친구는 남편이 의사인데 친구가 운전을 하다가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의사인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을 아주 잘 알 뿐만 아니라 의대에서 배운 과학적인 근거로도 심장 발작의 가능성은 거의 없었으므로 의사인 배우자는 소화 불량일 거라고 했다.
그러나 통증을 느낀 저자의 친구는 너무도 겁에 질려 직접 병원으로 차를 몰았고 결과적으로 심장 발작이었다.
자신 몸의 변화는 자신이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가변성에 주목하면 인식할 수 있는 통제력도 향상되므로 결과적으로 상황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의식을 집중하면 건강이 향상되며 증상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 또한 높아진다.
가능한 주변의 모든 일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몸의 변화와 건강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과 싸운다는 생각은 우리 건강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질병의 힘을 북돋기만 한다.
싸운다 대신 장기간에 걸쳐 우리 몸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는 의미에서 우리 몸 상태에 통달한다 같은 은유를 사용하면 질병에 대응하기 훨씬 나을 수 있다.
비타민은 알약 형태로 나오고 관절염과 피로감 같은 문제의 완화를 위해 섭취할 수도 있다.
비타민은 건강을 유지하려고 먹고 약은 아플 때 먹는다.
건강해지는 것은 병들지 않는 것과 같지 않다.
누군가 비타민을 먹는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건강함에 대한 그들 스스로의 인식은 올라간다.
대조적으로 약을 먹는다고 말하면 병들었다는 인식이 강화된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암, 알코올 의존증,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고칠 수 없는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부추긴다.
대조적으로 감기와 두통은 우리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정 시간에 우리가 어떠한지 묘사한다.
만약 지난번에 앓은 증상과의 차이점을 근거로 우리가 질병의 이름을 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어떠한지, 우리의 상태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건강이 결부되어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본인의 상태를 악화로 볼지 완치로 볼지, 알코올 의종증을 알레르기로 부를지 병으로 부를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직접 이름표를 붙일 수 있다.
젊을 때는 누구나 매우 길고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라 상상한다.
그럴 때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에 관한 정보를 무심코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그런 질병과 맞닥뜨리면 우리가 붙여 놓은 이름표는 어느새 우리를 따라잡아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인도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상황에 좀 더 맞추면 건강에 대한 통제력이 더 커진다.
의학적인 사실은 사실상 변화하는 상이한 조건 아래 사람들이 내린 결정이다.
의학적인 결정이 불확실성을 근거로 삼는다.
언어는 우리에게 이롭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과 사고 , 감정을 미묘하게 유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언어를 선택해 의도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견이 있고 노화는 변화를 의미하지만 변화가 퇴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조건에서 사전자극된 고정관념은 성취, 조언, 경계, 기민함, 창의성, 통달, 인내, 향상, 통찰력, 현자, 지혜등의 낱말이다.
부정적인 조건에서 사전자극된 고정관념은 알츠하이머, 혼동, 쇠퇴, 노쇠, 치매, 의존, 질병, 망각, 무능함, 부적절함, 노년등이다.
다양한 수학 및 구술 시험을 치르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부정적인 고정 관념에 노출된 참가자들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축기 및 확장기 혈압 상승과 심박수 증가를 포함해 심혈관계의 반응이 고조되었다.
점화 효과가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건강과 능력을 사전자극하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나약함을 일부 되돌릴 수 있다.
노인들이 고정 관념에 맞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때 부정적인 영향이 줄어든다.
시간을 초월해 산다는 건 의문을 제기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말아야 하고 지나친 배려가 노인들의 삶을 악화시킨다.
노인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다수의 관리 체계는 의존성과 통제력 상실의 느낌을 지속시킨다.
지나친 도움은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무기력과 무능함을 암시함으로써 이전에는 해낼 수 있던 과제의 성취도마저 형편없이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화가로서 정체성이 강한 노인의 손에 붓을 잡기 어려울 만큼 관절염이 진행되었다고 상상해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이 상황을 평가하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에게 더 이상 화가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도움을 받아 새로운 취미를 개발할 수도 있고 젊은 시절에 창작한 예술 작품 전체를 반추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수도 있는 데 말이다.
화가로서 경력이 끝장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이로 붓을 물거나 손가락 채색 기법, 스프레이형 물감을 실험할 수도 있다.
캔버스에 물감을 쏟는 등 그림 그리는 방법을 달리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새로운 그림 화법에 관심이 없거나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능력에 의식을 집중한다면 여전히 탁월한 솜씨를 보일 수 있는 여러 행동의 주인으로서 화가라는 개념을 확장할 수 있다.
화가란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방식, 예술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 색깔을 맞추고 의미를 부여하는 재능을 의미할 수 있다.
이 사람은 그런 측면의 자아를 포기할 필요가 없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에도 언제나 화가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라도 관절염을 앓기 전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라는 점이다.
변화를 열등함이 아닌 차이로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새로운 화법을 개발할지도 모른다.
자아를 정의하는 범주에 이해와 행동을 구체화하는 환경적, 동기적 영향의 다양성을 확장시킨다면 나이 든 사람들도 단순히 상실감을 느끼는 대신 일생에 걸친 연속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개념의 확장은 하향 비교를 권장하는 사회적인 경향과는 차이가 있고 노인도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자아 정의의 틀을 사회적인 비교에 의존하지 않으면 더 흡족하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노화가 쇠락이 아닌 변화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자율성을 부추기고 적극적으로 분별력을 키우며 자신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나이를 근거로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우리 몸은 끓임없이 변한다.
의식을 집중해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언급하면 무심한 관찰자에게는 사라져 갈 부분인 심신의 기능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의 몸 구석구석은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변하는 중이다.
우리 문화도 서로 다르게 나이 먹어 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관찰은 의식의 집중을 높인다.
노인들은 우리가 의식을 집중해 대하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의 얘기를 요약해보면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을 집중하고 건강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늙는다는 건 착각이었다.
저자때문에 나에게 늙는다는 건 하나님을 더 찾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