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완역본)
미리보기 공유하기

걸리버 여행기 (완역본)

리뷰 총점 9.6 (357건)
분야
소설 > 영미소설
파일정보
EPUB(DRM) 32.55MB
지원기기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 PC(Mac)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257건) 회원리뷰 이동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걸리버 여행기 평점8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t****s | 2021.11.22 리뷰제목
코로나로인한 펜데믹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요즘 문득 여행이 가고싶어 집어든 책. "걸리버 여행기" 뜬금 없긴 하지만, "여행"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읽은 책이다. 참고로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여행이 이 여행이 아니라는 점은 꼭 명심하시길. 걸리버여행기는 어렸을적 만화 속 우리모두가 기억하는 소인국에서 머리카락이 묶여 누워있는 거인 걸리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책이
리뷰제목

코로나로인한 펜데믹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요즘 문득 여행이 가고싶어 집어든 책.

"걸리버 여행기" 뜬금 없긴 하지만, "여행"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읽은 책이다. 참고로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여행이 이 여행이 아니라는 점은 꼭 명심하시길.

걸리버여행기는 어렸을적 만화 속 우리모두가 기억하는 소인국에서 머리카락이 묶여 누워있는 거인 걸리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물론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 그냥 그 장면 만을 기억할뿐. 그래서 드디어 읽은 이책은 대체 왜,,, 만화였는가..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말만 여행기이지,, 책의 소개 글 그대로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차있는 내용이기에 왜 어린이 만화로 나왔는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였다.

 

첫번째 여행 릴리펏. 우리가 아는 소인국 이야기. 소인국에 떨어진 그는 그 소인국에서 나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그곳의 이야기를 한다. 그냥 작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겠구나했지만, 두번째 여행 브롭딩낵 이야기(거인국)를 읽고 있다보면, 소인국의 사람이 걸리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에게서 어떤 위협을 느낄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책속의 걸리버는 타국에서 젠틀한 사람이였지만, 그는 소인국에서는 언제든 나라에 큰 위협이 되는 사람이였을 것이고, 거인국에서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소인국을 떠났고, 거인국에서는 도망(?)아닌 도망으로 벗어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은 개인적으로는 럭낵의 스트럴드브럭이라는 존재이다. 스트럴드브럭은 죽지않으나, 늙고, 늙기에 모든 활력과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불사를 사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어느순간 나라에서도, 가족에게서도 잊혀지는, 그 자신을 기억하지도, 말하는 방법도 잊어 누군가와 삶을 함께하지도 못하는 그저 불사를 사는 존재. 

우리가 말하는 영생. 그 영생을 사는 사람이면서, 사람이지 않은, 태어나는것이 불길한 징조인 사람들. 저자 스위프트는 왜 이런 사람을 그린 것일까?! 불사나 불멸을 꿈꾸는 이들에 대한 조롱인 것일까? 어느 시대든 죽지 않는 삶을 그리는 이들은 존재했으니까. 책속의 영생은 말그대로 끔찍했다.

 개인적으로 불멸의 삶을 꿈꾸지 않는다. 유한함이 있어야 소중한 것도 있고, 지금이라는 시간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니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나,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으나, 스트럴드브럭의 불멸과 달리 영화 인타임속에서 그려지는 불사도 내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냥 사는동안 아푸지만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ㅠ

 

그리고 후이늠국. 개인적으로 영화 혹성탈출이 생각나는 나라였다. (그냥 먹이사슬 꼭대기에서 먹이사슬 2-3단계로 내려간 느낌이 드는 챕터라..)

거짓말이라는 것이 없고, 인간이 가지는 모든 '악'으로 판명되는 감정이 없는,  완전한 이성으로써 다스려지는 나라. 그리고 그 이성이라는 것을 탑재한 이는 인간이 아닌 <말>이다. 그 나라에서는 야후라는 미개동물이 살고, 그 미개동물은 <인간>이다. 그러기에 걸리버는 야후 취급을 받았으나, 그를 구해준 그의 주인은 그를 야후이면서도 야후와 다른 이로 취급한다. 그에게 말을 가르치고, 다른 후이넘을 만나게 해주고, 걸리버가 살아온 세계의 문명에 대해 대화한다. 하지만 그 대화를 듣고 있다보면, 서로의 입장차, 내가 바라보는  내 문명속에서의 말, 그리고 후이넘이 바라보는 그들의 문명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 우리가 생명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아마도 저자 스위프트는 당시 가장 인간과 가까웠으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동물인 말의 입을 통해 우리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 아닐까?!

 인간으로써 우리가 가진 이성이라고 믿는 것이 각자의 욕심 안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으로 바뀌는지를. 보편적 진리를 우리 스스로 말하고 있음에도 내 욕심과 이기심에 눈 감아버리는 우리의 이성이 얼마나 얄팍한지 말하고 있었다. 스위프트가 살았던 당시가 근세 초반, 유럽이라는 복잡한 상황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든 상황들을 후이넘이라는 또다른 존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후이넘이 완전한 존재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신'은 아닌 것이다. 그저 유기체로써 존재하는 동물의 이상향이랄까. 뭐 그정도?! 결국 자신 생각의 범위를 넘어가지 못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수용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점도 신선했다.  아마도 스위프트 본인이 사제서품을 받은 종교인이다보니,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는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여러 여행기를 통해,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 제 3자의 시선과 의견이 그려지고, 우리눈에 비친 그들의 문명이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를 그래서 무엇이 더 옳고 그른지, 더 나은 방향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는 책 같았다.

 주인공은 후이늠에서 돌아와 인간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소 황당한 모습을 보였으나, 개인적으로 그가 그길로 나아가 이상향을 위한 정치를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기도했다.(현실에 치여 좌절했을려나..... 개인적이 사견을 덧붙이자면 주인공은 후이늠을 떠난것을 슬퍼했으나, 나는 그 나라에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감정적인 사람이라, 너무 이성적인 그들이 재미가 없었다....그냥 이건 내생각.)

재밌었다. 제3자가 바라본 인간 문명이.

결국 인간이 바라본 인간문명의 '악'한 측면을 인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벗어날수 없었다는 것이 슬프지만.

Good!

 

"후이늠들에게 우정과 박애는 두 가지 주된 미덕이다. 이런 미덕은 특정 대상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종족 전체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아주 먼 곳에서 온 후이늠도 가장 가까운 이웃과 다를바 없는 대접을 받으며, 여행 온 후이늠도 고향에 있는 것과 똑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극도로 정중하며 품위 있지만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식을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이성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신경을 써 가며 자식을 교육한다. 또한 나는 주인이 이웃의 자식을 자기 자식과 다를 바 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자연의 가르침에 따라 후이늠이라는 종족 전체를 사랑하고, 이성에 의해서만 탁월한 미덕을 지닌 자를 구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p.328

 

3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0 댓글 50
종이책 걸리버 여행기 평점10점 | s****i | 2019.09.11 리뷰제목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이미 영화나 만화로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꿈과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는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만난 영화나 동화는 주로 소인국 이야기 위주였고, 내용이 길어봤자 거인국에서의 이야기 였는데, 1726년에 쓰여진 이 작
리뷰제목

 

영국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는 이미 영화나 만화로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꿈과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는 동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만난 영화나 동화는 주로 소인국 이야기 위주였고, 내용이 길어봤자 거인국에서의 이야기 였는데, 1726년에 쓰여진 이 작품은 단순히 소인국에서의 모험담인 릴리펏 여행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인의 나라인 브롭딩낵, 하늘을 나는 섬인 라퓨타, 말의 나라 휴이넘(Houyhnhnm)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릴리펏(소인국) 여행기

 

주인공 걸리버는 베이츠 선생님 밑에서 2년 7개월간 의학을 공부해서 선상의사가 되었고, 몇 년 동안 배를 타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 했으며 부두 가까운 지역에 의원을 개업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다시 앤틸로프 호를 타고 항해를 하던 중, 배가 좌초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6명의 선원들과 보트를 타고 간신히 탈출했는데 그 배가 뒤집혀서 모두 실종되고 혼자만 살아남는다. 운명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긴 그는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대로 잠을 잤다. 몇 시간 자고 일어나려는데 두 팔과 두 다리가 땅에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비록 몸은 15cm로 작았으나 창의적인 재주를 가진 국민들과 신중하면서도 정확한 경제를 파악하는 위대한 군주를 만났다. 그런 군주와 국민들은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사는 것 같았는데, 그들도 나름 힘든 점이 있었다. 하나는 본국에 있는 난폭당 파당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의 가장 강력한 적국이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다. 

 

여기서 난폭한 파당은 두 개의 서로 싸우는 파당으로 실제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을 가리킨다. 두 당의 싸움 외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과, 사소한 이유로 전쟁하는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앤 여왕이 작가인 스위프트의 논문을 종교에 적대적이라 하여 사제의 보직을 받는 것에 반대했고, 스위프트는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기에 소인국의 왕후가 걸리버에 대해서 괘씸하게 여기는 것으로 빗대어 적기도 했다. 어디든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에서는 우호적인 사람들과 적대적인 사람들이 공존한다. 걸리버도 의도치 않게 장군과의 대립으로 탄핵이 되었고, 이웃나라로 탈출했다. 이웃나라에서는 큰 대접을 받지 못했고 결국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보트 한 척으로 소인국을 떠나고, 무사히 귀국을 했다. 거기서 준 선물로 걸리버는 재산이 풍족하게 되었다. 

 

2부.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떠난 여행에서 거인들을 만났다. 농장에 도착한 걸리버는 농부의 가족과 함께 지내며 장터에서 공연을 하여 농부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 돈을 많이 벌수록 걸리버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고, 결국 농부는 죽을 것 같은 걸리버를 궁에 팔아버린다. 걸리버는 친절한 왕비와 생활하게 되었고, 거기서 자신을 괴롭히는 난쟁이와 파리, 벌, 개, 원숭이와 싸우면서 거인국에서의 삶에 적응해나간다. 

 

거인국에서는 작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걸리버는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거인국 사람들에게 맞춰가면서 나름대로 생활을 잘한다. 거인국의 왕은 다른 나라에 대해서 상당히 배타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정치에 대해서 무지하며 학문은 아주 불완전하고 제한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걸리버는 거인국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다. 나름 훌륭한 대접을 받으면서 잘 보냈다. 다만 걸리버는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거인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한동안 자신이 거인이고 가족은 피그미 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 

 

3부. 라퓨타(날아다니는 섬),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여행기

 

걸리버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윌리엄 로빈슨 선장의 배로 다시 항해를 떠난다. 항해 열흘째 되는 날 해적선에 붙잡혔고 특히 한 네덜란드인은 이유없이 걸리버에게 적개심을 보였다. 그래서 결국 해적들은 걸리버를 죽이는 대신 노와 돛을 가진 카누를 타고 정처없이 바다를 표류하도록 벌을 줬고 이 섬, 저 섬 떠돌다가 어느 섬에 도착을 했다. 그 섬에서 공중에 떠 있는 섬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라퓨타' 라는 섬인데 천연 자석으로 어느 방향이든 이동이 가능하고, 주민들은 대개 지식층으로 수학, 음악, 천문학 등에는 관심이 있으나 그 외에 분야는 전혀 무관심했다. 걸리버는 라퓨타 섬 주민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겉돌다가 결국 작별 인사를 하고 공중의 섬에서 내려와 왕이 통치하는 땅, 수도 발니바비에서 머문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천공의 섬 라퓨타'만 들어봤는데, 걸리버 여행기에서 시작됐을 줄이야. 실제 검색해보니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했다. 스위프트는 친구였던 애터버리 주교가 반역죄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사건을 똥에 빗대어 풍자하기도 했다. 럭낵 섬을 거쳐 글럽덥드립으로 짧은 여행을 한 후 일본에 도착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간다. 럭낵의 국왕을 만나는 자리에서 궁중의 고유 경례방식인 '바닥을 핥기' 행사는 색다르고 충격적이었다.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 앞으로 기어가면서 바닥을 핥는 형식인데, 만일 국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입 안에 들어온 먼지를 뱉거나 입을 닦아내는 행위는 사형감이기 때문에 주의해야한다. 

 

4부.  후이늠국(말의 나라)

 

5개월 정도 가족들과 보낸 걸리버는 선상 의사가 아니라 선장으로 항해를 떠난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서 말이다. 선원을 보충하려다 악당을 잘못 고용해서 자신은 어느 섬에 버려지게 되었다. 거기서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의 '야후'라는 야만인들을 만나고 난 후에 그 곳을 지배하는 말들을 보게 된다. 후이늠국은 말들이 지배하는 나라였고, 그들의 말을 배우며 걸리버는 3년을 살게 된다. 후이늠국의 주인에게 유럽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하는 원인과 앤 여왕이 지배하는 영국의 헌법과 국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4년 마다 나라를 대표하는 회의를 하는데 회의의 주제는 단 하나, 자연이 창조한 동물 중 가장 추악하고 해가 되고 반항적이고 악의적인 '야후'를 세상에서 몰살하는가의 여부다. 문제는 말들이 걸리버를 야후로 생각하고 죽일 수도 있다는 것. 걸리버는 살기 위해 6주만에 카누를 만들어 섬을 떠난다. 걸리버는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후이늠국에서의 3년 간의 생활은 걸리버에게 야후=인간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들처럼 인간을 싫어하게 되어서 걸리버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가족 조차도 거부하며 말을 몇 마리 사서 그들과 대화하며 지내게 된다. 물론, 서서히 가족을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게 되지만 말이다.

 

<걸리버 여행기 초판본>

 

걸리버 여행기는 그 당시 시대를 풍자한 풍자 소설이다. 특히 4부는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성모독 등의 이유로 삭제 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이후에 무삭제판이 재출간 됨으로 제대로 완결된 걸리버 여행기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참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어릴 때 봤던 내용과 지금, 무삭제 완역본을 읽어보니 그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모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실제로는 모험과 재미보다는 시대에 대한 비난, 풍자가 주를 이루는 소설이었다. 약간의 혼란을 겪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떤 시대든  'NO'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걸리버 여행기가 순수하게 모험심과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상상의 나라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랬다면 과연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출간했을까 의문이 들지만. 어찌됐든 나는 "걸리버 여행기는 모험 소설이다" 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읽고 싶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읽게 해주신 리뷰어 클럽과 현대지성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 이 리뷰는 리뷰어 클럽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

 

 

 

1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2 댓글 22
종이책 걸리버 여행기 - 조너선 스위프트 평점10점 | g*******7 | 2019.09.19 리뷰제목
어렸을 적에 그림책으로 만났던 [걸리버 여행기]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 책이었다. 소인국에 도착하여 온 몸에 수많은 줄로 꼼꼼하게 묶여 있던 걸리버의 모습이라든지 그들의 군함을 줄로 묶어서 유유히 바다를 걸어서 건너오던 장면들은 확실히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소인국에서 거인으로 취급당하는
리뷰제목

 어렸을 적에 그림책으로 만났던 [걸리버 여행기]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재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 책이었다. 소인국에 도착하여 온 몸에 수많은 줄로 꼼꼼하게 묶여 있던 걸리버의 모습이라든지 그들의 군함을 줄로 묶어서 유유히 바다를 걸어서 건너오던 장면들은 확실히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소인국에서 거인으로 취급당하는 설정 자체가 확실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러한 설정 덕분에 [걸리버 여행기]는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만 생각했지만, 최근에야 이 작품이 풍자문학의 진수로서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가 당시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스위프트의 평만 보더라도 내가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는 원전의 극히 일부라는 점과 또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한 것이 전부였음을 깨닫게 된다.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는 그동안 거친 표현과 풍자 등을 삭제하여 발행된 판본과 달리 원전을 그대로 번역하여 출간한 책이다. 실제로 책의 내용은 걸리버가 약 16년 동안 4번의 항해를 통하여 '릴리펏(소인국) - 브롭딩냇(거인국) - 라퓨타(날아다니는 섬)를 중심으로 한 세계 - 후이늠국(말의 나라)'이라는 곳의 경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만 보더라도 우리가 어렸을 때, 읽었던 내용은 원전의 극히 일부분이며, 그마저도 단순히 모험이라는 측면만 부각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1726년에 출간된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서 우선적으로 그보다 훨씬 전에 출간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게 된다. 당시 유럽인이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던 몽골 제국의 곳곳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동방견문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비록 마르코 폴로의 상상과 허풍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어쨌든 유럽인 입장에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 간 적이 없는 그곳의 이야기가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동방에 대한 이들의 동경은 훗날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여는 데 일조한 것도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마치 실제의 모험처럼 서술[걸리버 여행기]는 역시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는 어렸을 때, 축약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책에 열광하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성인이 된 이 시점에 만나는 [걸리버 여행기]는 확실히 재미있다. 처음 읽었던 흥미로운 대목들을 보다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로서는 '릴리펏'이라는 소인국에서의 경험담을 읽은 것이 전부였기에 전혀 정반대의 세계인 '브롭딩냇(거인국)'을 포함하여 움직이는 섬(라퓨타)과 말들의 나라(후이늠국)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통의 인간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곳에서 말을 배우고 적응하는 걸리버를 통하여 우리는 그 상상의 세계를 모험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기존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걸리버의 모험은 확실히 눈길을 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스위프트의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흥미진진한 스토리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를 찾아보는 것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우선 '릴리펏(소인국)'의 온갖 설정이 스위프트의 상상과 함께 당시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이 작품이 출간된 1726년을 전후로 한 당시의 역사에 대한 배경은 물론 스위프트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된다. 이는 [걸리버 여행기]단순히 문학이라는 장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든다면 '릴리펏'의 양대 정치 세력인 트라멕산슬라멕산을 그들이 신는 신발의 굽 높이에 따라 분류하고 있지만, 이는 당시 영국의 보수적인 토리당과 진보적인 휘그당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릴리펏'의 적국으로 등장하는 '블레푸스쿠'는 당시 영국의 라이벌인 프랑스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모험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모험을 가장한 당시의 시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엿볼 수 있는 풍자 문학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 제국은 그들 언어의 유수한 전통, 아름다움, 활기찬 표현 능력 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상대 제국의 언어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했다."(p.64)라는 걸리버의 묘사는 끊임없이 경쟁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세계관을 자신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그들의 종교 갈등을 삶은 달걀을 위쪽 또는 아래쪽부터 깨는 방법에 따라서 묘사하는 부분 역시 유럽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은 물론 영국 내부의 국교회에 빗대어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걸리버 여행기]에서 스위프트의 상상의 소산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부분들이 실제로는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비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풍자를 통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예의 관심을 끌게 된다. "군주들에게 해 준 커다란 봉사는, 군주들의 야심을 충족시키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견주어 볼 때 아주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p. 62)라는 문구는 비록 걸리버가 '릴리펏'의 군주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것이지만, 실제로 스위프트에 대한 영국의 '앤 여왕'의 차가운 시선 내지는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군주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임을 알 수 있다.

 

 '릴리펏'에서의 걸리버의 경험담을 통하여 우리는 [걸리버 여행기]가 단순히 모험에 관한 책이 아님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위프트가 이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후의 모험에서 더욱 상세히 묘사된다.

 "(중략) 무지, 나태, 악덕이 입법자 자격을 얻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아주 명확하게 입증했어. 법률은 그 법률을 왜곡하고 혼란을 주고 회피하려는 자들의 개인적 이익과 능력에 의하여, 임의로 설명되고 해석되고 적용되었지. (중략) 공직을 얻기 위해 완벽한 자질은 필요 없는 것 같아. 사람들은 미덕의 힘으로 귀족 작위를 얻는게 아니고, 사제는 종교적 경건이나 학문으로 승진하는게 아니야. 군인들은 행동과 용기, 법관들은 성실성, 상원의원은 애국심, 고문관은 지혜로 인해 그 자리에 보임되는 것 같지 않다."

 - p. 162 中에서 -

 '브롭딩냇(거인국)'의 왕이 걸리버로부터 그의 조국인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위와 같이 평가하는 부분은 스위프트가 바로 거인국 왕의 입을 빌어 당시 영국의 문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현재에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법률에 근거하여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설명되고 해석되어 판결이 내려지는 의혹을 우리 역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것도 그러한 공감의 한 원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서 걸리버가 자랑스럽게 영국의 기술을 과시하기 위하여 화약과 대포를 이용한다는 설명에 대하여 '브롭딩냇'의 왕이 그런 파괴적인 무기가 가져오는 유혈과 살육을 당연하다는 듯이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부분은 인간의 끔찍한 살육에 대한 스위프트의 우회적인 비판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인간보다 거대한 존재로서만 묘사되던 '브롭딩냇'의 국왕에 대한 걸리버의 평가는 당시 유럽의 절대왕권을 신봉하던 군주들에 대한 쓴소리는 물론 갖춰야 할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눈에 띈다.

 "그('브롭딩냇' 국왕)는 탁월한 통치 능력을 갖추었고 모든 국민들로부터 추앙을 받는다. 그런 군주가 국민들의 목숨, 자유, 재산을 한 손에 거머쥐는 절대 군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다니! 유럽에는 그 개념조차 희미한, 선량하지만 불필요한 양심이라는 문제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중략) 이 양심의 가책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의 성품은 영국 독자들의 견해로는 다소 시원치 않은 것으로 보이리라."

 - p. 166 中에서 -

 

 걸리버를 통한 스위프트의 비판과 풍자는 정치와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다. '라퓨타(날아다니는 섬)'를 포함한 몇몇 도시에서 만난 학자들과의 만남은 스위프트가 다루려는 대상이 학문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영국이 '영국 왕립 협회'를 설립하고 과학을 중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분은 과학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속내를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이 추구하는 과학 기술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햇빛 추출 계획이라든지 배설물을 원래 음식 성분으로 되돌리는 연구, 얼음을 태워 재로 만들어 화약으로 만드는 연구, 지붕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만들어지는 건축술, 돼지를 이용한 경작 방법, 거미줄로 비단을 짜려는 계획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흥미로운 연구 과제라 생각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구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들이기에 영국에서 일고 있는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그의 입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그가 종교인인 사제로 활동한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훗날 유럽에서 유행하게 된 강령술을 통하여 다양한 역사적인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철학, 과학, 역사에 대한 내용들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게 다가오게 된다. 이는 마치 단테의 [신곡]에서 이미 죽음을 맞이한 역사적인 인물과의 만남을 연상케 하는 부분인데, 강령술로 소환된 인물들이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설정을 전제로 하여 그들로부터 자신들의 학문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잘못 알려진 역사에 대한 지적을 이끌어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그의 추종자와 비판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동안 유럽의 학문적 기반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라든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이 독살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술을 마시고 과로사한 것이라는 스스로의 진술,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기 위하여 식초를 사용하여 바위를 녹인 대목을 당시에는 식초가 없었다는 본인의 진술을 소개함으로써 당시 학문에 대한 그의 의심을 잘 이야기를 통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스위프트의 비판과 풍자는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경험한 '후이늠국(말의 나라)'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사실 이곳은 앞선 나라들과는 달리 동물인 '말'이 주체이고, 오히려 걸리버를 그곳에서 짐승처럼 취급되는 '야후'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이전에는 비록 신체적인 부분 또는 관심사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인간과 같은 존재의 입을 빌어서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아예 동물의 관점에서 인간을 논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후이늠(말)'과의 대화를 통하여 걸리버는 이전의 모험과 달리 커다란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경험하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동안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 스스로에 대하여 들여다 봤지만, 이제는 '말'을 통하여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바라보기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걸리버는 '후이늠'과의 관계를 인간인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존재가 더욱 작아지고 있음을 이내 깨닫게 된다. 인간이 왜 자연 스스로가 준 것을 숨기라고 가르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하면서 타고난 야만성보다 정신적 능력의 타락이 더 나쁘다고 지적하는 '후이늠'에게 오히려 걸리버가 감화된 것이다.

 '타락한 인간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저 훌륭한 네발 동물의 많은 미덕으로 인해 나는 진정한 지혜에 눈을 떴고 이해력도 넓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무척 다른 관점으로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보기 시작했고, 동족의 명예는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p. 315 中에서 -

 걸리버의 이러한 심경 변화는 기존과 달리 '후이늠국'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됨은 물론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그가 인간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말을 구입하여 그들을 애지중지하는 인간 기준에서는 지극히 이상한 모습으로 간주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는 그간 모르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걸리버 여행기]의 원전 역시 그러한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마주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서, 또 새롭게 알게 된 이 책의 의미를 통하여 당시는 물론 현재에도 곱씹어 볼 수 있는 스위프트가 말하고자 한 다양한 의미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그러한 것을 깨우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린달리노(Lindalino)'라는 작품 속의 지명이 그 안에 '린(Lin)'이라는 단어가 두 번 들어감으로써 실제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Dublin)'을 상징하고 있음을 주석없이 쉽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대부분의 풍자가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도 [걸리버 여행기]를 마냥 이야기로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도 그렇다.

 

 따라서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풍부한 주석과 함께 조너선 스위프트 본인의 삶에 대한 내용은 물론 그의 삶의 전후에 대한 영국과 유럽의 역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원전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야기만으로도 분명 재미는 있겠지만, 조너선 스위프트는 이 책이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고 한 것이라는 말처럼 이야기에 가려진 그 본질의 이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에 담겨져 있는 인간 사회에 대한 부조리는 물론 인간 자체에 대한 비판의 요소는 지금 다시 보아도 그의 말처럼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백년이 지난 이 시점에 조너선 스위프트가 비판하고자 한 부분이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은 우리로서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기에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와닿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0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0 댓글 18
종이책 구매 걸리버 여행기 평점9점 | o********o | 2020.07.21 리뷰제목
"... 자네 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일세. 자연이 일찍이 땅 위에 기어 다니도록 허용한 벌레들 중에서 말이야."(162쪽)잔혹 동화가 유행을 했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알고 보면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릴적 TV에서 본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요정처럼 작은 사람과 사는 이야기로 환상적이고 멋진 이야기였다. 커
리뷰제목

"... 자네 나라의 국민들 대부분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일세. 자연이 일찍이 땅 위에 기어 다니도록 허용한 벌레들 중에서 말이야."(162쪽)


잔혹 동화가 유행을 했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도 알고 보면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릴적 TV에서 본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에 간 걸리버가 요정처럼 작은 사람과 사는 이야기로 환상적이고 멋진 이야기였다. 커서 <걸리버 여행기>는 저자 당시의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풍자문학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이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지독한 염세주의자라는 말에서 짐작했어야 했는데 '염세주의자'라는 말을 이 완역본을 읽고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표지 뒷장에 "이 작품의 의도는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적혀있는데 화까지는 아니고 역한 감정까지는 들었으므로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아무튼 <걸리버 여행기>를 다 읽고서 재밌고 즐거웠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1726년 출판 당시 인기와 논란을 일으켰고 신랄한 묘사로 내용이 삭제되거나 금서까지 되었다는 뒷표지의 글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19세기 초 <걸리버 여행기>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를 삭제해 아동문학으로 발표했다는데, 그 아동문학을 접하고 만화영화를 보며 걸리버와 소인국을 사랑했던 독자이자 시청자로서 소감을 말하자면, 아동문학으로 내놓은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신감과 실망감이 가득하다고나 할까.(이정도면 화가 난건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자신과 걸리버를 동일시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책에서 각 나라를 여행하며 왕에게 걸리버가 전하는 말과 각 나라의 교육과 사회, 정치제도를 이상적으로 그리는 것을 보며 작가의 의사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걸리버가 전하는 온갖 부정적인 인간 세상의 모습에 맞장구치며 대단한 풍자라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공감하고 동의할 수가 없다. 왜 그렇게까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가?! 왜 그렇게 불만이 많은가?! 라고 생각하는 쪽이랄까. 그리고 조너선이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걸리버는 냄새에 굉장히 민감해서 사람의 냄새를 못견뎌한다. 후이늠국에서 돌아와서 아내나 자식들의 냄새까지도 견디지 못한다. 작가의 독설 중 가장 끔찍한 것은 인간을 풍자한 야후에 대한 묘사였다. 나는 야후를 다룰 때는 역겹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이 참 싫었다. 그 다음에는 노인에 대한 독설이었는데 인간인 것이 비극인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부모가 계신데 노인을 모두가 작가의 독설처럼 생각한다면 사람인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사람인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있다. 제 1부는 우리가 잘 아는 릴리펏(소인국) 여행기로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고, 이곳의 교육에 대한 묘사는 스위프트의 이상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은 귀족과 고관대작의 남자아이, 여자아이, 신분이 낮은 남자아이, 여자아이, 그리고 농부와 노동자들의 자녀의 교육으로 나누어 묘사를 하는데 남녀의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하지 않는 것이 인산적이었고, 신분에 따른 차별적 교육은 당시 사회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제 2부는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로 거인이기 때문에 걸리버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거인국의 왕은 지적이고 호기심이 많아서 걸리버와 대화를 즐기는데 걸리버는 영국의 사회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거인국의 왕은 '가장 해로운 자그마한 벌레 같은 족속'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제 3부는 라퓨타(날아다니는 섬), 발비나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여행기로 이름도 아름다운 라퓨타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역주를 보니 스페인어로는 '창녀'라는 뜻이란다. 어디가서 라퓨타 참 아름다운 말이라고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변적인 사람을 풍자하는 나라로 이 나라의 왕을 비롯 귀족들과는 대화조차 하기가 힘들다. 너무 자신들의 생각에 빠져서 대화가 끊기기 마련이고 이 때마다 시종들이 깨워줘야 한다. 글럽덥드립은 '마법의 섬'인데 망자를 불러낼 수가 있고 죽은 자는 진실만을 말한다. 그리고 럭낵 왕국을 방문하는데 이곳의 스트럴드브럭에 대한 묘사로 노인을 풍자하는데 나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제 4부는 후이늠국(말의 나라) 여행기로 인간에 대한 풍자로 야후가 등장한다. 선장 자격으로 출항을 하게 된 걸리버는 중간에 브리스 출신의 포콕 선장을 만나는 데 '그는 정직한 사람이고 훌륭한 뱃사람이었지만, 다소 지나치게 자신의 의견을 확신했다.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이 그가 파멸한 원인이 되었다."(271~272쪽)라는 말이 나온다. 왠지 나의 파멸의 원인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지나치게 내 의견을 확신하는 일'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말의 나라에 도착해서 말들과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야후(인간의 풍자)라는 짐승을 부리는데 야하우에 대한 묘사는 역겹기 그지 없다. 그 외에도 말과 영국의 사람들에 대한 대화는 당시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그 것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해도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 이 책을 읽은 보람을 갖는다.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댓글 0
종이책 사회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아내다 평점8점 | YES마니아 : 로얄 l*****6 | 2023.01.29 리뷰제목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 하면 소인국과 거인국에 간 걸리버의 모험담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의 완역본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걸리버여행기는 원작의 일부만 아동용 모험담으로 만든 것에 불과했다. 걸리버가 겪은 믿기 힘든 환상적인 모험에 인간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었기에 1726년 출판되
리뷰제목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하면 소인국과 거인국에 간 걸리버의 모험담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번에 현대지성 클래식의 완역본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니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걸리버여행기는 원작의 일부만 아동용 모험담으로 만든 것에 불과했다. 걸리버가 겪은 믿기 힘든 환상적인 모험에 인간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었기에 1726년 출판되었을 때 엄청난 인기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신랄한 묘사로 인해 내용이 삭제되거나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선상 의사로 무역선에 승선한 걸리버는 첫 번째 조난에서 소인국에 도착하고 두 번째 승선에선 거인국에 도착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걸리버의 모험담이다. 하지만 세 번째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이성적 존재로 후이늠()이 주체가 되는 유토피아가 그려지는데 여기서 인간은 야후라는 비이성적 원숭이로 그려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작가의 일생과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를 알아야 이 작품을 더 이해할 수 있기에 작품의 해설이 큰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모험담이라고만 생각하고 이 책을 읽으면 풍자와 유머로 담아낸 이야기는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3부에서 지상 세계를 착취하는 라퓨다는 아일랜드 착취하는 영국을 풍자한 것이다. 4부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가 비이성적인 임을 풍자하기 위해 후이늠을 등장시킨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얼마 안 되는 이성조차 사악한 짓을 하는 데 쓴다며 비판한다.

 

사람들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황제의 자비를 칭송하는 그 장황한 언사이다. 왜냐하면 그런 찬양이 길면 길수록 그 처벌은 더욱 비인간적이고 또 처형을 당하는 자는 더욱더 무고하기 때문이다. (p.85)

 

야후 쉰 마리가 족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다섯 마리에게 던지면 그들은 평화롭게 음식을 먹기보다 음식을 모조리 차지하려고 조바심을 내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네. (p.317)

 

어린 시절 알던 이야기의 원작을 읽고 싶었던 걸리버 여행기가 이렇게 심오할 줄이야. 이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이 작품이 발표되기 전후 100년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풍자 작가로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진가를 내가 알기엔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비판한 모든 것을 수긍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비이성적인 행위와 스위프트를 싫어했던 앤 여왕에 비판은 이해하겠으나 여성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표현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에 불편한 점 또한 있었다. 이 또한 작가의 개인사와 연관이 되었다고 하나 이런 여성비하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작가를 이해해주고 싶진 않다. 하지만 18세기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풍자와 유머는 사실 현재를 비추어도 어색함이 없기도 하다. 이번에 전혀 예상치 못한 걸리버 여행기의 완역본을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

 
5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5 댓글 0

한줄평 (100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9.7점 9.7 / 1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