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독서회에서 9월 모임에서는 지난달에 이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2』의 내용을 두고 논의하였습니다. 모임을 주제하실 달밤텔러님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죄와 벌1』을 읽고 나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2시간에 논의하기에는 과제가 다소 많아 보이는 듯합니다.
Q1. <죄와 벌 2>에서는 고리대금업자인 노파와 그 여동생을 죽인 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못 느낀 라스콜니코프가 점차 자신의 죄에 대해 인식하고 결국 자수하기에 이릅니다. 무엇이 이러한 그의 행동과 생각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살인을 저지른 뒤에 라스콜니코프가 보인 일련의 행동은 자신의 범행을 누군가 알고 있을까 두려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어린아이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음을 고백한 것을 보면,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는 것도 충동적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과정에서 범행동기를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횡설수설하는 수준입니다. 처음에는 ‘돈을 훔치기 위해서’, 이어서 ‘나폴레옹이 되고 싶어서’, ‘그냥 죽였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죽였어’라고 말합니다.
라스콜니코프의 고백을 듣게 된 소냐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속죄하라면서 자수를 권합니다. 하지만 거절합니다. 체포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증거가 없을 것이므로 감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라스콜니코프에게 자수를 권한 것은 소냐만은 아닙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포르피리 역시 그를 찾아와 자수할 것을 권합니다. 또한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는 순간을 엿들은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자수하거나 미국으로 달아나라고 권합니다.
여동생 두냐와 어머니까지도 그가 살인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오고, 결국은 소냐가 자수를 권할 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네거리에 가서 사람들ㅇ에게 절을 하고 대지에 키스하세요. 당신은 대지 앞에 죄를 지었으니까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말하세요.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하지만 니콜라이라는 사람이 범인이라고 자수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찰에 출두하여 범행을 자수하게 된 것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그의 범행으로 인하여 받았을 충격과 고통을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Q2.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를 비롯한 두냐, 라주마힌, 소피야 세표노브나, 포르피리, 스비드리가일로프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1권과 비교해서 말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죄와 벌1』에서는 라주마힌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았습니다만, 『죄와 벌2』에서는 라주마힌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어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인상적인 인물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를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구체적인 이유와 범행 후의 행적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법원에서는 그의 범죄 행위가 일종의 일시적인 정신착락, 즉 차후의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과 의도 없이, 살인강도라는 병적인 편집광 증세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였고, 그가 행한 이타적 행동을 감형요소로 보아 8년이라는 제2급 징역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됩니다.
Q3. 1권과 달리 2권에서는 소피아 세표노브나가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죄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던 라스콜니코프로 하여금 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하라고 합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받은 인상이 본문에서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새롭고 이상한, 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면서, 이 창백하고 영뒨 균형 잡히지 않은 모난 얼굴과 준엄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불타오를 수 있는 그 온순한 푸른 눈동자,. 분노와 분개로 인해서 아직까지도 떨고 있는 그녀의 작은 몸을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더더욱 이상하게 여겨졌고, 불가사의하게 생각되었다. <유로디비다! 유로디비야!>그는 속으로 단언했다.
-p. 474~475, <죄와 벌 2, 열린책들>
여기에서 라스콜니코프가 말한 ‘유로디비’ 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는 소냐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주석에 나오는 유로디비의 정의를 보면 동방정교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하여 상식을 벗어난 기묘한 생활태도를 취하거나 미친 짓을 하는 수도자를 이른다고 합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소냐에게 ‘하느님에게 간절히 기도한 대가로 하느님이 어떤 일을 해주지?’하고 물었을 때 분개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이거로구나!, 여기에 결론이 있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Q4. “왜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잡아가지 않는 겁니까? 라고요” (p. 502)
그러나 면전에서 나를 비웃고 괴롭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p. 503, <죄와 벌 2, 열린책들>
이라고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면서 자신을 비웃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의 행동에 분개하는데요. 여러분들은 이런 포르피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왜 포르피리는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자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한 걸까요?
이 대목은 포르피리가 라스콜니코프에게 심문할 내용이 있으니 출두하라고 하여 찾아갔을 때의 상황입니다. 소냐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뒤의 일입니다. 하지만 예심판사인 포르피리가 라스콜니코프를 용의자로 보고 심문하는 상황이 우리의 사법체계와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뒤에 포르피라가 라스콜니코프를 찾아와 모든 정황이 당신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수를 권하게 됩니다만, 이 당시에는 범인으로 특정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용의자를 자극하여 범행을 입증할만한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던 것 아닐까요
Q5. “우리 함께 고통을 짊어지러 가요,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요......!!!
-p. 621, <죄와 벌 2, 열린책들>
죄를 고백한 라스콜니코프에게 이렇게 말하며 소냐는 십자가의 고통을 지듯, 함께 그 죄를
감내하고 그 고통을 이겨나가자고 하는데요. 소냐는 왜 라스콜니코프에게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일까요? 구원일까요
그리고 왜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만은 살인에 대해 고백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지 함께 이야기 나누어봅시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가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은전을 베푼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터이나,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였다고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그녀는 하느님에게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인이라는 중대한 죄를 범한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라스콜니코프 역시 그녀의 굳건한 신앙이 자신을 구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범행을 고백한 것으로 보입니다.
Q6. 라스콜니코프의 노파 살인에 대해 알게 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그의 죄를 폭로할거라 생각했지만, 소냐에게 돈을 주며 그녀의 어머니 장례식도 치르게 하고, 자신의 약혼자에게도 찾아가 돈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권총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는데요.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그는 자살을 택할 것일까요
『죄와 벌2』에서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만 이해되지 않은 구석도 여전히 많습니다. 그의 아내 마르파 페트로브나 스비드리가일로바는 빚에 몰린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도와주고 결혼까지 하였고, 그의 난봉기까지도 인정해주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분명치 않습니다. 심지어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아내를 살해했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런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아내 사후에 페테르부르그에 나타나 두냐에게 1만 루블을 주겠다고 제안한다거나 소냐에게 3천 루블을 주어 라스콜니코프를 도와줄 수 있도록 하는 이유 등은 여전히 모호합니다.
작가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설정이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니코프가 선택할 수도 있는 속죄의 형태를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내 마르파를 살해했거나 주변인물들의 죽음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암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라스콜니코프와 비슷한 심리상태에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Q7.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 유형을 가서도 여전히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뉘우치지 않았고 소냐에 대한 사랑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를 무심하게 대했는데요.
마지막 부분에 그는 드디어 소냐에 대한 그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가 그녀를 무한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했다는 것을...“
-p. 808, <죄와 벌 2, 열린책들>
소냐에 대한 사랑을 이 책 <죄와 벌 2>의 주제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봅시다.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의 유형지에서도 동료 수감자들 속에서 외톨이로 지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 역시 이런 상황에 무심합니다. 반면 수감자들은 라스콜니코프를 면회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소냐와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수감자들이 부탁하는 일을 들어주기도 했습니다.
수감생활 초기에 소냐를 거칠게 대한 것은 자신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굳은 양심은 자신이 저지른 지난 사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이외에는 다른 어떤 특별한 범죄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비범하지 않다는 점에 수치감을 느꼈다고 보아야 할까요?
수감생활을 하던 중에 열병에 걸려 입원해 있는 동안,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번진 전염병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류는 결국 몇 명이 구원을 받아 대지를 복구하고 정화하게 된다는 예지몽을 꾸게 됩니다. 악몽의 여운으로 고통을 받던 라스콜니코프는 소냐가 병으로 면회를 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자신이 그녀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기를 앓던 그녀가 쾌차하여 찾아왔을 때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의 발에 몸을 던지고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안았습니다. 마침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앞으로 소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예감합니다.
Q8. 두 달에 걸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1, 2권을 읽으며 함께 이야기 나누었는데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소감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달 동안 여러분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나 소중하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죄와 벌』은 두 권으로 810쪽에 이르는 대작입니다. 상황에 대한 묘사가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무위키를 보면 당시 러시아의 출판업계에서는 원고분량에 따라 고료를 지불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들은 라스콜니코프가 노파를 죽인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凡人)과 평범하지 않은 사람(非凡人)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가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한 것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보는 비범한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설사 비범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하더라고 스스로를 나폴레옹과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정성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라스콜니코프가 알료나와 그녀의 여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쳐서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허황될 뿐 아니라, 범행 후에 정신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져든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범행을 소냐에게 고백하는 까닭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또한 경찰에 출두하고 자신의 범행을 자백하게 되는 이유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사건이 이렇게 전개되는 것을 보면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모방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9월 모임에서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1』을 읽었습니다. 『죄와벌』은 러시아제국의 작가 도스또옙스키가 1866년 발표한 것으로 5대 장편소설 가운데 첫 작품입니다. 19세기 초반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1세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해온 것을 격퇴시킨 뒤에 러시아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빠르게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역동적인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퇴폐와 문란함으로 혼동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죄와벌』은 19세기 중반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으로 꼽힙니다.
두 권으로 나뉘어 있는 작품을 한 번에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작품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터이나, 『죄와 벌1』에서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주인 알료나와 그녀의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살해하는 범행 동기는 물론 범행 전후의 행적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독후감은 『죄와 벌2』까지 읽고 나서 써볼 생각입니다. 고전독서회에서 나온 달밤텔러님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죄와 벌1』을 읽고 나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Q1.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더불어 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읽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은 전체적인 느낌과 평가는 어떤지 이야기해봅시다.
부담이 되었겠지만 『죄와 벌』을 한 번에 읽고 이야기해보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입니다. 『죄와 벌1』만을 읽은 상태에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일단은 요즈음 우리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떠올렸습니다. 특별하게 인과관계로 엮이지 않은 불특정 다수를 해치는 그런 범죄가 수시로 발생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 휴학생으로 복학하는데 필요한 금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범행을 저지르기로 한 듯 느끼게 만들지만,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의 범죄가 편향된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범행의 목표를 미리 정하고 예행연습까지 마치는 치밀한 듯 허술한 범행을 저지른 것만으로는 이 책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죄와 벌2』를 읽어봐야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Q2. 이 소설에는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를 비롯한 마르엘라도프, 라주미힌, 소피야 세표노브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또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작품 속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죄와 벌2』까지 읽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죄와 벌1』을 읽은 시점에서 본다면 저는 라주미힌을 꼽겠습니다. 아직은 라스콜리니코프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대학친구로서 그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친구를 하나만 둘 수 있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해설을 보면 라주미힌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 라줌(разум)에서 왔다고 하는데, 라줌은 ‘이성, 지성, 합리성’ 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역할이라고도 합니다.
Q3. “그럼 지금은 대체 왜 가고 있는 걸까? 과연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과연 진지하게 그것을 하려는 걸까? 진지는 무슨 진지. 그냥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환상에 불과하다. 장난감이랄까. 그래, 딱 장난감 정도 되겠군!” (p. 13)이라고 생각하며 실제 노파를 죽이기 전에 사전에 은시계를 맡기며 노파의 집에 방문하게 되는데 이런 라스콜리니코프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대목을 곱씹어보면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 동기가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가 아닐 수 있겠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에 앞서 여주인의 눈을 피해 하숙집을 빠져나오면서 “그런 일을 저지르려고 하면서, 이토록 하찮은 일을 두려워하다니!”하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어 더욱 그러합니다. 돈이 필요해서 범행을 저지른 그가 은시계를 맡기고 빌린 돈으로 선술집에 들어가 맥주를 시켜 마시는 대목에서 범행동기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Q4. “본질적으로 별로 특이하지는 않으나 나중에는 계속 그의 운명에 있어 어떤 계시처럼 여겨진 정황이 하나 있었다. (중략) 인생에서 이런 순간을 맞이하고 또 이런 정신 상태일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 즉 그 만남이 그의 운명에 그야말로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런 정황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꼭 일부러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p. 114)”라고 말하며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동셍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우연히 광장에서 만나게 되고, 그 다음 날 저녁 7시에 노파 혼자 집에 있을거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론 인해 노파를 죽이는 사건이 좀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는데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한 여러분들의 인생에서도 이렇게 우연적이면서도 운명적이었던 순간이 있었나요
살다보면 우연한 기회에 얻어들은 이야기로 삶의 행로가 바뀌는 순간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 황당한 이유로 퇴직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몰린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 참석한 학회의 이사회에서 솔깃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지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되었습니다.)에서 국장급의 개방형 직위인 병리부장을 공모하고 있다는 공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당면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응모를 했고, 채용이 되어 4년 동안 공무원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공무원 세계를 이해하는 기회였습니다. 그때 전공을 살려 종합병원에서 병리과장으로 근무를 했더라면 평범한 삶이 되고 말았을 것인데, 식약청을 그만두고도 의사협회를 거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색다른 일을 10년 넘게 하는 역동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Q5. 노파를 죽이는 것을 구체화시킨 원인 중 하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로부터의 편지에 있기도 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이고자 하는 행동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는데 여러분은 이 편지의 내용이 그 살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편지의 말미에 적힌 “로쟈야, 너는 우리의 전부이자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며, 기쁨이란다.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우리도 행복하단다.”라는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여동생 두냐가 자신이 보기에 형편없어 보이는 루쥔과 결혼하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안락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기 위해서라면 너는 자신을 팔지 않을 테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판다는 거다! 사랑하고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판다는 거다! (…) 오빠와 어머니를 위해서는 판다는 거다! 모든 것을 파는 것이다!” 그래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두냐, 그리고 어머니, 난 당신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런 일은 없어요, 없어! 내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Q6. 라스콜리니코프는 노파를 죽인 후에도 여전히 그 살인 자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파는 아무것도 아니야! 노파는 실수였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노파가 아니다! 노파는 그저 병에 불과했고..나는 차라리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다. 원칙을 죽인 것이다! 원칙은 죽였지만 정작 넘어서는 건 아예 넘어서질 못하고 이편에 남게 됐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이는 것뿐이었지.(p. 495)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말하는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대목에 앞서 예심판사 포르피리 페트로비치가 「정기논단」에 발표된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문의 내용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범죄는 항상 병을 수반한다는 주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순종하며 살아야만 하며 법률을 어길 권리를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과,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난 <비범한> 사람들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물론 라스콜리니코프의 설명으로는 <비범한> 사람들의 권리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알료나를 사회의 장애로 보아 제거할 권리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알료나를 살해하는 현장에 나타난 그녀의 동생 리자베타까지 장애라고 여겼던 것 같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범행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살해한 것입니다. 굳이 그런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라스콜리니코프가 스스로를 비범한 인간이라는 생각하는 것이 병적일 수도 있고,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죽음을 안길 권리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주장하는 원칙은 자신의 살인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하려는 변명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전이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사람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정의한다면, '죄와 벌'은 그 정의에 꼭 부합하는 소설이다. 100여년 전, 지금과는 풍경이 사뭇 달라진 러시아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찬 책이 500페이지씩 두 권, 쉽게 읽기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게다가 이름 하나만으로도 복잡한데 같은 인물을 두고 읽는 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통에 인물관계도만 파악하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러시아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현대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심리학자보다 더 자세히 인간 내면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강렬한 문장으로 던지는 대문호의 통찰이 들어있어서가 아닐까.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대학생이다. 그 시절의 대학생은 지금과는 달리 엘리트 중 엘리트였기에 집안의 기대를 받고 공부를 하지만, 당장 생활비조차 없어 그는 건강을 해칠 지경에 이른다. 이런 음울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것이 페테르부르크의 풍경이다. 지금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기념관으로 자리하고 있다는데, 더럽고 어두컴컴한 방과, 우중충한 날씨에 사람들만 북적이는 도시의 모습은 풍경과 사람의 모습이 하나로 보일만큼 똑같아 보인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와 흥겨움에 넘치는 삶은 지중해의 쏟아지는 햇빛이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죄와 벌'의 등장인물들은 가뜩이나 우중충한 도시, 그 중에서도 비좁고 더러운 방들이 연결되어 서로의 삶이 얽히고 설킨 이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라스꼴리니코프는 가난으로 고통받던 와중에, 주점에서 우연히 전당포 노파를 욕하는 이야기를 듣고 막연히 생각해 오던 증오가 실체로 점점 굳혀진다. 전당포 노파가 사회에 생산적인 가치를 주지 못하고 남들에게 붙어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그는 치밀한 계획 끝에 노파를 살해하고 노파의 여동생인 리자베트마저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그 후 우연과 운이 겹쳐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쓰고 붙들려가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그는 급격히 쇠약해진다.
처음에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의 악을 대신 제거하는 단죄에 가까웠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마찬가지로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하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는 '소냐'를 만난 후 그는 고민 끝에 자수를 한다. 이후 시베리아 감옥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다가 소냐의 헌신적인 마음에 그는 양심의 벌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 것이 전체 줄거리이다.
'죄와 벌'은 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줄거리는 물론, 등장인물이 무척 개성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병약한 인텔리 청년 라스꼴리니코프를 통해서는 '목적이 무엇이든 죄는 정당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인 질문을 고민할 수 있다. 목적이 선하다면, 행위나 결과가 악하든 그것은 인정받을 수 있는가. 과연 그 목적이 선하다는 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인간이 인간을 벌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페테르부르크의 사법판사를 맡은 인물을 통해서는 결코 성급하게 증거 없이 범죄자를 단죄하지 않지만, 그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게 옥죄어오는 과정을 그려냈다. 그의 인물됨이나 성격은 소설 속에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라스꼴리니코프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워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그의 말과 언행 하나하나는 라스꼴리니코프에게는 '벌'의 다른 형태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작가는 결말을 통해 그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치는 죄는 옳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얘기하는 듯 보인다.
한편, 소설에는 '소냐'를 비롯하여 라스꼴리니코프의 헌신적인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두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고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 가득하다. 수입은 없는데도 알콜에 중독되어 거의 자살에 가깝게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두냐'를 가정교사로 고용한 고용주는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삼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린 끝에 유부남임에도 부인을 살해하고 (어디까지나 의심이지만) 두냐를 쫓아 페테르부르크까지 달려온다. 한편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와 두냐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돈이 많다는 이유로 고급 관리와 결혼을 하고자 하는데, 그 관리도 무척이나 속물적인데다 '돈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비인간적인 인물이다.
각 등장인물은 매우 희화화되어 있지만, 그들의 발언이나 행동은 전혀 낯설지가 않다. 여성을 소유물이나 성적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남성들은 현재에도 매우 흔하게 만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맡기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역시 늘상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그런 와중에 비록 직업이 비천함에도 신을 믿고 삶의 희망을 놓지 않는 '소냐'의 존재가치는 두드러지는데, 결국 라스꼴리니코프도 소냐 덕분에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데, 죄를 저지르고 벌을 받던 그에게 소냐는 구원 그 자체였던 것으로 보인다. 라스꼴리니코프에게 소냐는 구원과 성녀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장대한 분량이지만, 극적인 캐릭터와 사건 변화, 그리고 삶과 죄에 대해 너무나 현실적이고도 촘촘하게 문장을 써내려간 대문호의 고전을 읽는 기쁨은 시간이 가도 변치 않을 듯 하다.
가난한 대학생(정확히는 대학생이었던) 라스콜니코프는 탐욕스런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술집에서 장교와 대학생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그들과 '똑같은 생각'이 라스콜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노파가 살 가치가 없다는 데 동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뿐이었다.
"그 허약하고 어리석고 사악한 노파의 삶이 사회 전체의 무게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 노파의 삶은 바퀴벌레와 이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 (124쪽)
그 후로 라스콜니코프는 열병에 시달린다. 이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인지, 아니면 죄에 대한 자연스러운 '벌'인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그가 전당포노파를 살해한 이유 역시 충동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그게 그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임이 상권이 끝날 무렵 드러난다. 그가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썼던 글을 예심 판사인 포르피리 페트로비치가 읽었고, 그에 관해서 라스콜니코프와 논쟁하는 것이다.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정기 논단』에 실린 <범죄에 관하여>란 라스콜니코프가 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암시를 파악해낸다.
“세상에는 어떤 부류들이 있는데, 그들은 온갖 종류의 폭력과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기보다는, 그런 짓을 행할 완전한 권리를 지니고 있고, 또 그들에게는 어떤 법률도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그런 암시" (473쪽)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는 이를 "비범한 사람들은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권리와 법률을 위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라스콜니코프는 이에 대해 자신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고 설명한다.
"공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양심상.....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그것도 만일 그의 신념(때로는 모든 인류에 대한 구원적인 신념일 수도 있지요)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요구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말입니다.“
말하자면 인류를 위한 일이라면 얼마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케플러와 뉴턴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 예가 적절한 지는 의문스러럽다. 오히려 이어지는 리쿠르고스 솔로몬, 마호메트, 나폴레옹의 예가 오히려 더 적절하다. 이런 라스콜니코프의 견해는 자신의 전당포 노파 살인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인간을 두 부류로 분류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말>을 할 줄 아는 재능 혹은 천분을 부여받은 사람들“
"자기 사상을 위해 시체와 피를 건너뛰어야 한다면, 자기 내면의 양심에 따라서 피를 뛰어넘는 걸 스스로에게 허용 (477쪽)
평범한 사람들은 "현재의 사람들"이며, "세계를 보존하고 그 수를 늘리는 데 반해, 비범한 사람들은 "미래의 사람들"이며, "세계를 움직여서 그 목적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생각임에는 분명하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이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에 관해 비판할 여러 인물을 상권에서 설정해 놓았다. 이들의 행동과 논쟁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도스토옙스키의 의도라는 게 상권에서 이미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