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남짓 지병으로 고생하다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시동생의 기제사를 지내고 오는 길,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을 상기하던 남편은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죽은 동생이 안됐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에서 습기는 묻어나고 평소 그가 좋아하던 술 한 잔 부어 놓을 공간도 없이 사각형의 상자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생긴 대로 병이 오고 먹은 대로 병이 온다는 말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술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의사는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에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 2년에 한 번은 어김없이 검진을 해야 하는 국민 건강 복지 협회의 방침대로 근무하는 기관의 문책을 피하려면 올 연말이 되기 전에는 필히 건강 검진을 마쳐야 한다. 술을 좋아하는 딸에게 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늘 걱정 어린 표정으로,
“여자 간은 남자들 간하고 다르다. 술 엔간히 먹고 좀 줄여라.”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모임에 나서는 딸은,
“술 때문에 건강 해치는 게 아니라 엄마 잔소리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커서 아프겠네.”
웃음으로 얼버무리지만 알코올 역시 중독성 물질이기에 가급적이면 입에 대지 않는 게 좋을진대 쉽지 않은 일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을 오랫동안 지켜봐서인지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님을 알아차린다. 주말마다 친구들의 부모님 부음을 듣고 조문을 다녀오는 횟수가 늘고 지인들의 돌연한 죽음에서부터 예정된 죽음까지 음울한 기운은 도처에 자리한다.
나이 쉰을 바라보는 중년에게 학력의 높고 낮음보다는 연륜에서 풍기는 삶의 지혜에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예기치 않은 일을 겪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발휘하는 태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은 열망이 강해서인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인생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조르바는 동경하는 인물로 자리한 지 오래다. 며느리, 엄마, 아내, 딸, 누나, 선생님으로 불리는 생활에 의무에 책임을 다하느라 고군분투하며 지내던 시절은 잿빛으로 가득한 세상이었다. 부부 교사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경영자라는 말로 질시하는 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 역시 선생다운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더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절제해야 할 때가 많았고, 떠나고 싶은 곳이 있어도 쉽사리 떠나지 못한 채 일상에 매어 살아야 하는 운명은 높이 뛰어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지만 기둥에 매인 줄 때문에 다시 내려와야 하는 그네를 닮았다. 골치 아프게 앞뒤 생각지 않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세상을 배회하며 살아온 조르바는 갖가지 제약에 자신을 묶어 두고 살던 시절 막연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투자한 탄광이 무너져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에도 춤을 추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조르바에게서는 인간의 욕망조차도 붙들고 사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음을 드러냈다. 그는 산투르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빈털터리로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가벼워졌음을 춤사위에 담아 물욕에 찌들어 지내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성과를 내고 인정받기 위해 바동거리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을 냉소하는 조르바의 호탕한 웃음은 하고 싶은 일을 유예하고 가슴속에 자리하는 잠재적 소망을 이성적으로 짓누르며 살아왔던 삶에 전환점을 준 촉매로 자리한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공명함으로써 일상의 틀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일로 자유를 이뤄가고 싶은 날 생각한 대로 움직이며 살았던 조르바를 다시 만나고 싶다. 여자 나이 마흔 아홉 완경을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열이 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감정선 역시 우줄거리며 춤을 춘다.
‘사는 게 뭔가?’
생활 속에 매몰되어 본질을 잊고 살아가기 위해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길에만 빠져 지내는 게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고 여긴 순간 일상은 괴로움으로 차올라 어떤 것으로라도 상쇄해가야 했다. 지금 여행을 가지 않으면 이후 생활이 너무 힘들어질 것이라고 단언하고 다섯 살 아들과 열 살밖에 안 된 딸을 남편에게 맡기고 떠난 인도 여행이었다. 그 후로 간간이 네팔과 라오스, 뉴질랜드, 대만 등을 여행했지만 여전히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 길 위에 서고 싶은 생각이 크게 자리한다. 내년 1월 1일에 시작될 한 달 간의 인도 여행을 앞두고 갈등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으로 향한다. 어영부영하다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 구절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은 중년을 넘어 초로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어서인지 걸림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표출한 조르바의 춤사위는 미답의 공간을 찾고 싶은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책도 안 읽고 쓰는 리뷰라니...
솔직히 읽긴 읽었다. 다 읽지 않았을 뿐.
안 쓰고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일고십 온라인 독서 모임 이웃님들의 리뷰를 쭉 읽다 보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이렇게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일조함.
-
우리 일고십 이웃님들이 이렇게나 글을 잘 씁니다.
책을 안 읽어도 리뷰가 가능할 만큼, 생각도 없던 리뷰까지 쓰게 할 만큼.
-
조르바에 대한 가장 근사한 정의는 나른한오후님의 리뷰에서 발견했다.
자신에게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준 사람
이 외에도 조르바한테서 자유를 배웠다는 얘기가 공통으로 나왔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자유라면,
나는 지금까지 꽤 자유로웠고,
내 삶을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일을 사랑하고,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래서 그런가?
책을 끝까지 잡고 읽을 만큼 조르바는 내게 큰 가르침을 주거나 매력적이지 않았다.
나는 신중함보다는 행동파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했고 (때론 동시에),
행동 판단 기준은 이성보단 감정에 가까웠다.
다행히 올바른 부모님 덕에 나쁜 길에 대한 유혹은 없었지만,
자유로웠기 때문에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다.
자유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다.
중학교 친구가 얼마 전에 연차를 내고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생활디자인을 전공한 친구인데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졸업생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후배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다.
나도 고등학교 후배들을 만나고 온 지 얼마 안 된 터라 공통점이 많았다.
나 - 후배들 만나고 참 신기한 경험을 했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굳이 약점을 보이려 하지 않잖아. 잘난 점만 부풀려서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흠이 될 얘기는 딱히 안 하는데, 어린 후배들 앞에선 내 결핍이나 부족한 점을 먼저 말하게 되더라
친구 - 나도 그랬어. 발표할 내용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짜는데, '내가 이렇게 잘난 사람입니다'가 아니라 '난 이런 사람인데 이렇게 되었습니다'를 보여주니 '디자인에 자신 없었던 디자이너, 디자인을 하지 않으려 했던 디자이너'라고 나를 소개했어.
나 - 완전 공감해. 나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 큰 어려움 없이 성공했거나 쉬운 길을 선택했으면 오히려 해줄 말이 없었을 거야.
친구 - 같이 발표한 친구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부전공, 인턴, 동아리 한 걸 소개하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 것보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했던거라고 털어놨어.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조금 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해줬어. 하고 싶은 걸 알기 위해선 일단 많은 걸 경험해야 하고.
나 - 그래서 내가 절대 취업 안 된다는 전공을 선택했잖아. 남들 취업 준비한다고 마지막 학기에 최소학점만 들을 때, 난 최고로 학점 많이 들으면서 대학원 수업까지 들었고. 물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긴 했지만, 멋있어 보이는 동아리보다 내가 듣고 싶은걸 하다 보니 동아리도 다섯 개나 들고, 일하면서 봉사 활동까지 했으니... 이력서에 다 쓸 수도 없고 쓸 생각으로 한 것도 아니라 쓰지 않아도 나중에 면접 볼때나 나에 대해 말할 때 자연스럽게 할 말이 많이 생기더라. 경험이 진짜 자산이야.
친구 -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참 많지만, 내가 가장 확인하고 싶었던 건, 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 따른 온전한 삶을 꾸릴 수 있는지였어. 그래서 마음가는대로, 망설이지 말고 다 시도해보자는 마음을 가졌었고.
나 - 솔직히 후배들 만나고,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더 배우는 게 많은 거야. 그래서 동기들한테 다음엔 이런 자리 같이 오자고 말했는데, 여러 이유로 다들 거절하는 게 사실 많이 아쉬웠어. 물론 강요할 순 없는 거지만, 잘 이해가 되진 않더라.
친구 - 교수님이 처음에 강의 제안했을 때,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생각보다 꺼려했어. 이 좋은 걸 왜 안하지? 의아했는데 '내가 후배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해줄만한 사람일까?'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아. 오히려 이렇게 나서는 걸 사람들이 안 좋게 여길까봐 걱정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 - 나도 당연히 내가 조언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했지.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저도 부족하지만'이란 말을 항상 붙였거든. 근데 오히려 우리같이 어정쩡한 사람도 나타나야 하지 않아? 책이나 뉴스에 나오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이미 격차가 커서 너무 먼 이야기 같잖아. 오히려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후배들에겐 더 와닿고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친구 - 예전에 해리포터 덕질을 하면서, 친구랑 나누었던 대화야. 결국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It's amazing that so many people are going crazy over a world that came out of just one person's mind."
"Yeah, if we were half as interested in the world around us, the world would be a much better place."
-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작지만 큰 자유다.
그래서 블로그에서 내 생각을 글을 표현하는
지금 이순간,
나는 자유롭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에 가장 가까운 사진
@ California State Capitol
AB 1455 (Pupils: Bullying: Counseling)법안에 대해
주하원 의원인 Jim Frazier (Assembly District 11)에게 발표한 날
-
단 한번도 자기소개서/이력서에 쓴적 없는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값진 경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독서모임은 최근 4년 정도 품어온 나의 로망이었다. 올해 드디어 시작한다. 내가 주도했기에 첫 모임의 책도 내가 골랐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 놓은지 1년이 넘었다. 의무감에 구입한 것이었다. 책꽂이에서 발견할 때마다 못다한 숙제의 느낌이 나서 얼른 제목에서 눈을 떼곤 했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론 ‘읽어야지’하고 다시 다짐한다.
첫 독서모임 날짜가 잡히면서 내가 먼저 책을 선정했고 이미 정해놓았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토론하자고 했다. 두께에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다들 필독서로 찍어둔 책이긴 했는지, 아니면 가장 연장자인 내가 정한 책이라서인지, 아무튼 특별한 반대 없이 독서 토론할 책으로 정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많은 사람들이 손에 꼽는 이유가 있을 거라며 이번에 단단히 찾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읽어나갔다. 헉, 그런데 초반부터 막히는 거다. 한국 소설에 익숙해서인가, 아님 현대소설에 맞지 않는 패턴이라 그런 것인가, 나만 이런 건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문자는 읽겠는데 맥락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란 인물이 뜬금없이 조르바란 인물과 함께 사업하러 크레타로 떠나는 설정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계속 나아갔다. 읽다보니 서서히 적응이 되어갔다. 앞뒤 설명 없이 바로바로 직구를 날리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졌다. 읽을수록 소설 형식이나 문체에 대한 껄끄러움이 사라지고 모난 구석들이 닳아져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조르바와 나의 크레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조르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유, 해방, 방랑! 심지어 소설에서 가장 평온한 삶을 살았던 마을의 촌장 아나그로스티 영감마저 자살한 젊은 청년(파블리)의 자살을 부러워하지 않던가! 인생은 고통이라 말하던 그.
카잔차키스가 살았던 시대, 20세기 초반의 그리스를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리스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는 분명 있다. 크레타와 터키의 전쟁을 알 리가 없으며 그로 인한 여러 상흔들까지 공감하긴 힘들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학 자체를 접해본 경험이 없기에 그리스 문화를 들먹이는 용어들에 생소함부터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니만큼 소설 속 화자인 ‘나’도 카잔차키스임에 분명한데 실제 조르바 같은 인물이 존재했을 것이란 역사성에 우리는 안심하는 것이 아닐지? 조르바는 ‘나’와 완전 대조되는 인물이다. 정신세계의 정진을 추구하는 나, 고차원적 세계에 대한 이상을 품은 나, 그래서 이상적인 공동사회 건설이 목표인 나, 금욕주의의 절정을 보여주는 나, 그것을 보다 못한 조르바의 잔소리, 그의 눈엔 ‘나’가 펜대 운전자 또는 지랄병이 도진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인다. 조르바는 예순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내린 결론, 조국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고 오직 현실에 충실하고 본능과 야성에 이끌려 자유롭게 누비는 것이 최고라고 본다. 쾌락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그 어떤 명함을 갖다 부쳐도 조르바는 거부할 것 같다. 조르바란 인물에 대한 정의 따윈 내리지 말고 느낌 오는 대로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고 평가하라 할 것이다. 짐승과 인간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 얇은 막 사이로 오가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부아가 치민다. 그럴 바에 차라리 다 드러내놓고 즐기자. 여자, 음식, 술, 춤, 산투르. 그리고 자유를 즐기자. 질서, 도덕, 공동체, 사람들이 만든 구속거리(꺼리)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새로이 보이고 ‘나’도 다시 태어난다.
카잔차키스가 젊은 날, 딱 내 나이 서른다섯에 만난 조르바와의 여행. 삶은 여행이라고 그러지들 않는가. 비록 서사적 스펙터클은 없는 소설이지만 카자차키스가 고뇌했던 것들이 이 책에 함축적으로 다 담겨있는 것 같다. 철학과 사유를 뭉뚱거려 놓고 ‘나’란 화자를 독자로 치환시켜 놓는 절묘한 기술을 부린다. 내 곁에 조르바가 있는 듯한 착각. 그의 마술에 끌려 나도 어느새 부화하여 나비가 되어 훨훨 난다.
‘나’에겐 탄광 개발이 목적이 아닌 도피와 수행의 여행길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함께 한 동반자, 길동무 조르바. 그리고 ‘나’의 멘토나 다름없는 존재가 된다. 갈탄 갱도를 파가는 조르바와 정신적 갱도를 파나가는 ‘나’의 역학관계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결국 현실의 갱도와 정신의 갱도가 무너짐으로써 ‘나’는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이 책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삶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존재에 대하여, 삶의 방향에 대하여. 그게 이 책이 위대한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란 생각이 든다. 카잔차키스의 존재감이 21세기에 아직도 선명하게 통하는 이유다. 온갖 종교적 색채와 전쟁,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다 드러낸 소설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조르바의 외침에 금세 동화된다. 굉장히 마초적이고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소설이기도 해서 남자들에게 특히 잘 맞을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묻고 답하는 깊이 있는 소설임엔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직도 ‘필독서’란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이윤기
열린책들/2014.7.2.
sanbaram
친구와 헤어진 나는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 선술집에서 자기를 데려가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났다. 그는 여러 가지 일을 하였으며, 광산 일을 잘하고, 때로는 기타와 비슷한 악기 산투르를 연주하여 돈을 받기도 한단다. 올림포스 산 기슭에 살던 스무 살 때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털어 산 악기라고 한다. 조르바는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있었는데, 도자기 만들 때 걸리적거려서 잘랐다고 말했다. 그만큼 격정적인 사람이다. 내가 시작하려는 갈탄광의 십장으로 제격인 사람이었다. 크레타섬에 도착해 카페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났다. 크레타섬은 터키의 지배하에 있을 때 저항운동과 독립운동의 시기가 있었다. 여인숙에서 잠을 잘 때 여인숙 주인 오르탕스 부인은 과거 저항운동 시기에 자기 활약상을 이야기 하며 술을 마셔 취했고 조르바는 그녀를 좋아했다.
오두막집으로 옮겨 본격적인 갈탄광 개발에 착수했다. 조르바는 탄광경력이 많아 십장노릇을 잘했다. 갈탄광산에서 내가 광부들에게 친절하게 하면 조르바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권위를 세우라고 나무랐다. 탄광에서 돌아온 조르바가 저녁밥을 지으면서 자기의 결혼이야기와 여인 편력 이야기, 그리고 딸 이야길 했다. 저녁을 먹고 조르바는 춤을 추었다. 그러다가 러시아 광산에서 일할 때 알았던 러시아 친구 이야길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손과 몸으로 표현했으며 미친놈처럼 춤을 추며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육신을 붓다로 만들려고 피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르바는 정력을 몸에만 가두지 말고 오늘 밤에는 과부네 집으로 가라고 이야길 한다.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이 다 되어가니 교회나 가자고 했다.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 마을 사람들과 즐겼고 조르바를 과부와 한 방에 몰아넣고 집에 와서는 바닷가를 걸었다.
탄광의 탄맥이 발견되고 본격적인 탄광 운영을 위해서는 탄광 갱도를 만들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조르바는 탄광 뒷산의 나무가 좋고 경사가 좋아 케이블 설치를 하면 손쉽게 대량의 목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계산했다. 자금이 바닥나가고 있어서 목재 운반용 케이블 공사를 빨리 지척 시켜야 하기 때문에 물건 구입을 위해 조르바를 칸디아로 보냈다. 그러나 칸디아에 도착한 조르바는 케이블과 준비물을 사러 다니다 카페에서 어린 롤라를 만나 그녀에게 흠뻑 빠졌다는 편지를 엿새만에 보냈다. 나는 편지를 읽고 “즉시 돌아올 것” 이라는 답장을 보냈다. 조르바는 돌아오지 않고 여인숙 사장은 내가 조르바의 편지를 받은 것을 알고 오두막을 찾았다. 조르바의 소식을 묻는 그녀에게 나는 조르바가 오는대로 결혼을 하자고 한다며 화환을 준비해 올 것이라고 거짓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르탕스 부인은 감격하여 돌아갔다. 해안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더니 마을의 나이 든 총각이 과부에게 사랑 고백을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살한 시체가 바다게 떴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과부는 과수원을 하며 꽃이 화려한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과부가 나쁘다고 이야기 했지만 나는 과부편을 들어주었다.
조르바는 크레타섬을 떠난 후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조르바는 빨리 수도원에 가서 광산에 들어가는 목재를 구할 삼림개발 계약을 하자고 했다. 가는 도중에 광산에 들려 작업지시를 하였다. 수도원을 찾아가 수도원장을 만나서 조르바의 주도로 계약을 맺었다. 오두막집에 돌아왔을 때 오르탕스 부인이 와 있었다. 그러면서 결혼 이야길 했고 급기야는 손수건에 싼 약혼반지를 조르바에게 주었다. 늦게 결혼하게 된 오르탕스 부인은 행복했지만 조르바는 그렇지 못했다. 새해 첫날 아침 바닷가에 있는 나를 조르바가 찾아와서는 애저구이 먹으러 여인숙에 가자고 했다. 자기가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오르탕스 부인이 이야기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었다. 주인 여자는 식욕이 없다고 했지만 조르바의 애교작전으로 애저구이를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취해서 잠든 주인을 놔두고 오두막집으로 돌아왔다.
케비블공사를 위한 준비물은 배로 실어 왔다. 그리고 본격적인 케이블 공사와 갱도 공사가 진행되었다. 부활절을 축복해 주려고 오르탕스 부인을 기다렸다. 정오까지 기다렸으나 오지 않고 아이 하나가 달려와 아프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인숙까지 다녀온 조르바는 오르탕스 부인이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조르바의 말대로 마을에 있는 과부의 뜰에 가서 과부를 만나 밤을 지내고 새벽에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밤에 마을로 갔다. 포플러나무 밑에서는 양치기 청년 시파카스가 멋진춤으로 사람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태 경관이 과부를 찾아왔다. 그리고 과부가 교회로 꽃을 안고 갔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 갔다. 마브란도니와 시파카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쫓아들어갔다. 여자는 교회에 들어가는 중이었는데 돌을 던져 머리를 맞추었다. 조르바가 막아섰지만 아들을 잃은 마브란도니 영감이 과부의 목을 땄다. 조르바가 여인숙에 다녀왔다. 오르탕스 부인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저녁에 산책을 나섰던 조르바가 과부를 해치려는 마놀라카를 막은 것을 갚기 위해 싸움을 걸어 싸우기 직전에 내가 둘을 화해 시켰다.
조르바가 이상한 꿈을 꿨다고 했다. 부블리나가 죽어가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을 생각했다. 여인숙에 도착했을 때 조르바는 죽어가는 부블리나 곁에 있었다. 그녀는 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숨겨 두었던 십자가를 찾아내어 가슴에 품고는 헛소리를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유산목록을 작성하고 물건을 가져갔다. 조르바는 시신의 머리맡에 있는 앵무새장을 벗겨내 오두막으로 가져왔다.
케이불 공사가 왼료되어 수도원장이 오고 개통식준비가 다 되었다. 드디어 통나무 더미를 내려 보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실패하고 세 번째는 바닷물까지 닿았지만 철탑이 흔들렸다. 놀란 수도승이나 마을 사람들이 도망치고 남은 사람들은 양통구이를 나눠 먹으며 축제를 열었다. 그 후 나는 갈탄광산의 모든 것을 조르바에게 맡기고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여행하기도 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깨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다시 오지 않을 인생,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다’는 그는 자유를 찾아 일생을 여행과 함께 하였다 생각된다. 그는 ‘그리스의 업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고 말한다. 저서로 <붓다>, <오디세이아>,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