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품 중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 라는 다소 낭만적인 제목 때문에 대중의 뇌리에 쉽게 각인되어 있지만 그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거∼있잖아. 전쟁....소설...하는 정도?
하긴 이 말 속에 작품의 모든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동북부 전선에서 자원 근무하던 의무장교 프레더릭 헨리는 포격으로 부상을 입고 후방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으며 간호사 캐서린을 다시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누다가 탈영하고 스위스 로잔의 한 병원에서 캐서린이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죽음으로 끝을 맺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실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비록 한달 남짓이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사로 근무하다 부상을 입고 후송된 병원에서 미모의 간호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한 경험을 모두 이 작품의 뼈대로 이용하였다.
거의 모든 소설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소설은 ‘사소설’이라 이름해야 마땅할 것이다.
헤밍웨이를 생각할 때는 그의 작품에 앞서 이름에 대한 묘한 끌림이 먼저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 이름을 조용히 입 안에서 굴려 발음해 보면 얼마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발음이 되는지,
처음 그의 이름을 들으면서 느꼈던 생각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생물적 덫>과 <단독 평화조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착하고 온순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죽이려 드는 <생물적 덫>에 빠져 있기 때문에 거기서 탈피하기 위해서 개인은 투쟁해야 하며,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어 탈영하는 방법으로 <단독 평화조약>을 구체화한다.
주인공 헨리는, 장교용 창녀집에서 위로를 받으며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는 허무주의자 군의관 리날디와 전쟁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언젠가 신의 구원을 의심치 않는 사제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캐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급격하게 삶의 가치 쪽으로 기울어지고 마침내 탈영으로 스스로의 <단독 평화조약>을 완성한다.
그것은 결국 사제가 말했던 <획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였다.
캐서린의 죽음으로 엄청난 사랑의 부채를 안은 헨리는 과연 이 후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의 삶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따름이지만,
헨리의 이후 삶이 헤밍웨이가 제대 후 걸어왔던 마초적인 남성성으로 완벽하게 감싸였던 삶이라고 말한다면 캐서린의 죽음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책을 읽다 보니 1부 2장의 첫 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듬해에는 승리가 잦았다.”
굉장히 낯익은 느낌에 한참을 생각하다 김훈의 칼의 노래를 펼쳤다.
그 소설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선생의 이파리와 줄기를 모두 떨어버린 저 앙상한 필체를 여기서 문득 만나다니.
주어와 서술어로 구성된 가장 단순한 문장의 아름다움에 나도 점점 매료되어 가는 것일까
전혀 뜻밖의 작은 발견이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