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권)로 구성된 소설에서 1부는 제인 에어가 게이츠헤드에서의 천덕꾸러기로 지낼 때와 로우드에서 성장하던 시기, 2부는 손필드 저택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시기, 그리고 3부는 손필드를 떠나와 무어 하우스에서 독립적인 여성이 되고, 나중에는 펀딘으로 돌아와 로체스터와 다시 만나 결혼에 이르는 시기로 이루어져 있다. 제인 에어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 순서로 깔끔하게 전개되는 소설인 셈이다. 소설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지만, 나는 다음의 몇 가지 관점에서 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우선은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다. 제인 에어는 남성에게 종속된 삶을 거부한다. 성공에 대한 욕구도 강하지만, 그 성공을 남에게 의지하여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욕구도 강하지만, 그것이 부도덕한 상황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돌아가신 삼촌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더라도 제인에어는 세인트존의 결혼 요구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로체스터에게 돌아간 것도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임을 확실해 준 후였다. 그는 로체스터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저 자신의 주인은 저예요.”
물론 불완전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감안해야 할 것은 이 소설이 1800년대 중반에 나왔다는 것이다. 왜 이 소설이 그때도 읽히고 지금도 읽히는지 충분히 납득이 간다.
두 번째는 버사 메이슨에 관한 것이다. 버사 메이슨은 소설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오는 인물이지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몇 차례의 소동의 주인공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감추어져 있다. 로체스터의 고백에도 그녀는 고백 속 마녀일 뿐이다. 손필드 저택의 화재에서도 그녀는 다른 사람의 전언으로 등장하고 죽는다. 그런데 그넌 왜 그곳에 갇혔을까? 그녀는 왜 미쳤을까? 그녀는 서인도 제도의 혼혈인이다. 로체스터의 고백에서는 그가 거짓말에 속아 결혼했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서인도 제도를 점령하고 착취한 유럽인의 오만과 정복욕, 부도덕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결혼을 했으되 그것을 공개할 수도 없는 식민지 모국의 귀족은 그녀를 자신의 저택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미친 것은, 그 이전이 아니라 그 이후라 봐야 맞다. 이 소설은 영국 작가가 썼다. 이 부분에 대해 하등의 도덕적 반성을 내비치지 않고, 버사 메이슨에 대한 동정도 없지만, 은연 중에 당시의 영국 제국주의의 실상 한 단면을 내비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다양한 종교적 인물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대해 역자 해설에서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뭔가 결점을 가지고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타락하지 않았다. 가장 부정적인 인물인 브로클허스트 역시 학교를 지원하는 신사이며, 다만 지나치게 엄격하고, 또 위선적일 뿐이다. 종교적으로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만큼은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샬럿 브론테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끝으로는 적지 않은 통속 드라마적 요소다. 느닷없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삼촌이 거액의 재산을 남겨주고, 또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 “너는 내 누이”가 되었다. 며칠은 걸려야 하는 거리에서 로체스터의 부르짖음을 제인이 듣는 초자연적인 우연도 있다. 당대에 이 소설을 읽는 여인들이 “어머! 어머!” 하며 읽었을 거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제인에어 (하)권
상권은 사흘 동안 읽었는데
이건 하권은 몇 시간만에 다 읽었네요
어릴 때 축약본으로 읽었는데
열린책들 판으로 원본을 읽으니
기분이 정말 다릅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원본을 읽었어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듯 ^^
괜히 고전이 아니네요
양장이라 소장 가치도 있고
책 넘기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요 ㅎㅎ
좋은 부분 밑에 적습니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을 듣고 나를 비난하고 싶은 비난해도 좋다. 이따금씩 정원에서 혼자 산책을 할 때, 대문으로 걸어내려 가서 그 사이로 도로를 바라볼 때, 아니면 아델이 보모와 놀고 있고 페어팩스 부인이 저장실에서 젤리를 만들고 있는 동안, 혹은 세 개의 계단을 올라가 다락방의 들창문을 열고 지붕에 이르러 멀리 외딴 들판과 언덕을 내다보고 흐릿한 지평선을 바라보다 보면 그 너머까지 볼 수 있는, 들어 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본 적 없는 활기로 가득 찬 번잡한 세상과 도시들이나 지역들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겪은 것보다 더 많은 실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다양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과 더 많이 교제하고 싶었다. 페어팩스 부인의 좋은 점과 아델이 지닌 좋은 점을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더 활기찬 다른 종류의 선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었고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 pp.175-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