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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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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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SF/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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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어둠의 속도 - 네뷸러상 수상 작가 엘리자베스 문의 SF과학소설 평점10점 | s*****0 | 2021.11.13 리뷰제목
그해 가장 뛰어난 SF소설에 쥐어지는 네뷸러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는 SF소설가 정소연 작가가 다시 한번 번역을 맡아 국내에서 절판된 지 12년 만에 복간되었다.     임신 중 진단한 자폐를 모두 치료할 수 있게 된 근미래, 루 애런데일은 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난 마지막 남은 자폐인 세대다.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한 거대기업의
리뷰제목


 

그해 가장 뛰어난 SF소설에 쥐어지는 네뷸러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문의 대표작 <어둠의 속도>는 SF소설가 정소연 작가가 다시 한번 번역을 맡아 국내에서 절판된 지 12년 만에 복간되었다.

 

 

임신 중 진단한 자폐를 모두 치료할 수 있게 된 근미래, 루 애런데일은 치료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태어난 마지막 남은 자폐인 세대다.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한 거대기업의 특수분과 ‘A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루와 A 부서 직원들은 사회 능력이 결여되어 정상인들과 같은 소통은 불가하지만, 패턴을 발견해내는 천재적인 수학 능력을 통해 회사에 크나큰 이익을 안기고 있다. 덕분에 그들은 심신 안정에 필요한 전용 주차장, 전용 체육관, 전용 음악시설 등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받고 있다.

 

 

하지만 이 안정적 기반은 새로운 상사 진 크렌쇼가 부임하며 크게 흔들린다. 크렌쇼는 자폐인들만을 위한 혜택 일체를 부정하고, 급기야 그들을 사내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 중인 ‘정상화 수술’의 모르모트로 사용하려 든다. 정상이 된다면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것.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를 일자리를 볼모로 잡힌 A 부서 직원 전원은 정상화 수술 강요 앞에서 혼란에 빠진다. 자폐가 사라지더라도 과연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루는 자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그거 들었어?" 조 리가 묻더니, 답을 기다리지 않고 조급히 말을 잇는다. "자폐증을 역진(逆進)시키는 방법에 대해 누가 연구하고 있대. 쥐인지 뭔지에 실험했을 땐 성공했어. 이제 영장류에 실험한다더라. 틀림없이, 곧 너희들도 나처럼 정상이 될 거야."

조 리는 늘 그가 우리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음이 이 말로 분명해졌다. 우리는 ‘너희’이고 정상은 ‘나처럼’이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도 우리와 같지만 더 운이 좋았다는 뜻으로 그도 우리 같다고 말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즐겁게 하려고 했던 건지 궁금하다."

 


 

자폐인 루는 "신, 하나님 아버지는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신이 일을 현재보다 더 어렵게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신이 우리 부모님이나 나에게 시험이 필요하다고 여겨 자폐증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기라면. 내게 바위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간에, 원인은 우연한 사고였다. 신은 사고를 막지 않았지만, 사고를 일으키지도 않았다."라고 이야기한다. 루의 자폐증은 사고였지만, 자폐인인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일이라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이 책에서 자폐인 루를 통해 자폐인이 자폐가 없는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문학적 시선이 눈길을 끈다. 또한 사람들이 자폐인들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던지는 말들이 자폐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름대로 무척 매혹적이다. 무질서계 안에서, 거의 패턴에 가까운 것을 지켜보는 것 같다. 용액의 균형이 이리저리 움직임에 따라, 분자들이 분리되고 재결합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다. 거의 이해한다고 느끼는 순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에 참여하는 동시에 대화를 따라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슬프다.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안 된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는다. 같은 때 같은 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 잘 지내요, 괜찮아요, 잘 자요, 부탁합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아뇨, 사양할게요, 당장은 아니에요. 교통 법규를 지킨다. 규칙을 따른다. 아파트에 평범한 가구를 놓고, 내 별난 음악은 아주 조용히 틀거나 헤드폰으로 듣는다. 그래도 부족하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데도, 진짜 사람들은 내가 변화하기를, 그들과 같아지기를 바란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변화하기를 바란다. 내 머릿속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내 뇌를 바꾸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그렇다."

 

 

""뭘요.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타이어를 이렇게 금세 돌려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내가 답한다. 그가 나를 돕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천만에요"라고 말하니 옳지 않은 느낌이 들지만, 다른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나를 응시하며 서 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윽고 "그럼, 얼굴 보며 지내요"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물론 우리는 얼굴을 보며 지낼 것이다. 같은 건물에 산다. 나는 이 말이, 그가 나와 함께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왜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차로 몸을 돌리고 아파트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치료를 받는다면, 이 일을 이해하게 될까? 집에 있는 여자 때문일까? 만약 마저리가 우리 집에 와 있다면, 나는 대니와 함께 아파트에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을까? 나는 모른다. 정상인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는 가끔은 명백하고, 가끔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자폐인들이 '어둠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라고 생각했던 돈의 습격을 받고 총구에서 급히 나와 자신을 그 속으로 끌어들이는, 빛의 속도를 넘어선 영원한 어둠을 보는 루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공간일 뿐이야." 에릭이 말한다.

"만약 누가 중력이 1 이상인 세상에서 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린다가 묻는다.

"몰라." 데일이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무지(無知)의 속도야." 린다가 말한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해한다. "무지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

 

 

"나는 살아 있다. 빛 속에 있다. 어둠은, 이 순간에는 빛보다 빠르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는 어둠에 쫓기든이 동요한다."

 

 

이 책에서 자폐인 루가 패턴을 읽어내며 회사를 다니고, 펜싱을 배우며 톰과 루시아 부부를 만나고 마저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변화하는 과정과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고 싶은 강렬한 의지를 보여주어 인상적이다. 루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루는 세상에 대해 이해할수록 두려움이 커지지만, 타인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를 발견한다. 루는 삶은 변화구를 던지지만, 그래도 그 공을 잡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라는 돌아가인 어머니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 자폐인들은 인간 행동과 선호 지표의 한쪽 끝에 있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마저리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정상적인 감정이지, 이상한 감정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그녀의 머리카락이나 눈의 다른 색들을 더 잘 알아볼지도 모르지만, 그녀 가까이에 있고 싶다는 갈망은 정상적인 갈망이다."

 

 

"나는 마저리가 무엇을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듣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음악을 생각하고 있다면, 같은 식으로 들을까? 일치할까, 일치하지 않을까? 나는 소리를 어둠에 입혀진 색깔로 듣는다. 마저리는 소리를 빛 위에 악보처럼 그려진 어두운 선들로 듣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 둘을 합친다면, 빛에 입혀진 어둠과 어둠에 입혀진 빛은 서로 상쇄되어 보이지 않게 될까?"

 

 

"나는 이미 변하고 있다. 몇 달 전에, 나는 내가 마저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토너먼트에 나가서 낯선 사람들과 겨룰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 만큼, 생물학과 화학을 익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많이 변할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나는 공항에 있을 때나 가끔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말문이 막혀서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기를 바라지 않아. 나는 여기저기에 가 보고, 내가 배울 수 있는 줄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싶어."

 

 

책 <어둠의 속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정상화 수술'을 받은 루가 7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전하는 이야기는 작가 엘리자베스 문이 독자에게 건내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어둠은 빛보다 빠르지만, 빛이라는 희망을 쫓아가는 동안 우리는 생생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저 밖에는 어둠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예전의 루는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는 것을 불편해했다. 지금의 나는 그 사실을 기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은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란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질문을 던질 차례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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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둠의 속도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m****h | 2021.11.13 리뷰제목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책, <<어둠의 속도>>의 에필로그, 저 밖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는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른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기뻐한다.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소설의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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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책, <<어둠의 속도>>의 에필로그, 저 밖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둠이 있다. 어둠은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둠은 언제나 빛보다 앞선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는 어둠의 속도가 빛보다 빠른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기뻐한다. 빛을 쫓는 한 나는 영원이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 소설의 피날레는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말이다. 이 책의 꼬리에 예전에 읽었던 “장애학의 도전”(김도현,오월의봄,2019)의 한 대목,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 소설의 지은이는 다소 특이한 경험과 경력을 지녔다. 역사학을 공부하다가 해병대 기술병으로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생물학을 전공, 직업으로 응급의료원, 교사, 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SF소설가로 작품을 쓰고, 이 책으로 2004년 네뷸러상을 받았다. 그는 소수자(장애인, 성소수자)의 권리보호와 신장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실천가이도 하다. 이 소설은 자폐아를 입양 20여 년간 함께 살면서 어머니로서의 개인적인 경험과 사랑이 주인공 루의 세밀한 감정묘사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현실 세계의 차별과 장벽을 SF세계에서는 이를 극복한 자유로운 세계,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옮긴이의 말 중에 책의 제목이자 전체를 관통하는 <어둠의 속도>는 지은이와 그의 아들 마이클의 사이의 대화에서 온 것이다.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물었어요.

"빛의 속도가 1초에 30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일상적인 답을 했죠.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505쪽)

 

이 책은 2007년 국내에서 출간, 절판, 푸른숲에서 다시 다듬어 낸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임신 중의 자폐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진 근미래. 하지만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은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자폐인으로, 대기업의 특수 부서에서 근무한다. 'A 분과'라고 불리는 특수 부서에서는 자폐인의 특별한 패턴 분석 능력을 살려 제품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을 맡고 있다.

 

'A 분과'의 특성상 부서의 직원들에게는 독립된 사무실과 주방 시설, 운동 기구와 음향 장치 등이 제공된다. 이에 들어가는 비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루의 상관 크렌쇼는, 새로운 자폐증 치료 실험에 대한 소식을 듣고 'A 분과'에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그의 목적은 그들의 능력은 고스란히 살린 채 그들을 정상인으로 만들면 특수 복지혜택은 필요가 없게 되고, 회사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고 한다. ‘정상화 수술’의 실험대상으로삼으려고 하고, 루와 동료들은 유일한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자폐가 사라지더라도 과연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루는 자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김초엽 작가는 이 소설을 추천하면서 비정상은 정상으로 교정되어야만 하는 상태일까? 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구원할까? 장애는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강력한 정체성일까? 라고 묻는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어떻게 우리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공간일 뿐이야.” 에릭이 말한다.

“만약 누가 중력이 1 이상인 세상에서 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린다가 묻는다.

“몰라.” 데일이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무지(無知)의 속도야.” 린다가 말한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해한다. “무지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22쪽)

“자폐증을 역진(逆進)시키는 방법에 대해 누가 연구하고 있대. 쥐인지 뭔지에 실험했을 땐 성공했어. 이제 영장류에 실험한다더라. 틀림없이, 곧 너희들도 나처럼 정상이 될 거야.” 조 리는 늘 그가 우리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한 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음이 이 말로 분명해졌다. 우리는 ‘너희’이고 정상은 ‘나처럼’이다. (23쪽)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그러니―우리가 자폐증을 없애도 당신은 같은 사람일 겁니다. 그저 자폐인이 아닐 뿐이죠.”(394쪽)

 

소설 속 연구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폐의 정체성을 부정한다. 자폐가 사라져도 정체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임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공포의 순간은 연구자의 말에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소설의 설정은 간단하다. 자폐인이 수술로 정상인, 아니 비자폐인이 된다. 그렇다면, 자폐인의 특성은 정체성이 될 수 없나,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구별이 왜 필요한가? 장애라는 말은 200년 적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애인차별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장애, 비정상, 결핍은 우생학적 논의를 통해서 차별을 강조했다(한때, 아예 씨를 말려버려야 한다고, 그래서 이들 열등한 존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엄연히 통했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우생학을 파는 시장과 세련된 이들의 논리가 통용된다. 우생주의적 욕망이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경영적 주체들에게 내면화될 때, 신자유주의적 권력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유전학적 서비스와 생명공학 상품을 통해 우생주의적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된다. 굳이 강압적 정책을 펴지 않더라도 말이다(장애학의 도전,152쪽), 즉, 장애를 미리 발견, 예방 혹은 이의 실패 시 원천적인 배제, 제거나 장애 증상의 완화, 악화방지 현상유지 등을 위한 약품 등을 모두 포함한다.

 

장애인은 "차별받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손상은 손상일뿐이나,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이때 특정한 관계란 다름 아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이며,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장애인중심사고에 따른 행동의 사회적 결과이기도 하다. (선량한 차별??-본의 아니게 그럴 수도 있다. 모르는 게 죄인가?,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여기서는 별론으로 한다. 하지만 선량한 차별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선량과 차별은 품고 있는 뜻이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자폐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비장애인 중심적 사고는 당연히 비장애인은 정상, 장애인은 비정상, 결핍과 완전, 완성의 구도로 보게 된다. 이 사회는 비장애인중심시스템이다. 장애인은 아예 그 존재 부정이 전제돼 있다. 얼마나 무서운 차별인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장애인의 관점이 아닌, 시좌를 통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뭔가를 만들거나 구축해야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중심사고"에서 "차별없는 사고"로 전환(패러다임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동물과 장애인에 대한 접근(피터 싱어, '동물해방', 연암서가 2012)과, 수나우라 테일러의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잇는 사유(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 오월의 봄, 2020) 낸시 프레이저의 정의론(분배와 인정)에서 장애와 인권적 시각 등에 대한 공부 또한 필요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는 자폐(발달장애)이지만, 지적,지체장애 등 모든 장애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사고가 달라져야 함을 제기하고 있다. 자폐, 비자폐의 구분이 왜 중요해,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이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데...

 

 

<출판사에서 도서를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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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둠의 속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평점10점 | r*******n | 2021.11.10 리뷰제목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공간일 뿐이야.” 에릭이 말한다. “만약 누가 중력이 1 이상인 세상에서 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린다가 묻는다. “몰라.” 데일이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무지(無知)의 속도야.” 린다가 말한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해한다. “무지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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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어둠이란 빛이 없는 공간일 뿐이야.” 에릭이 말한다.
“만약 누가 중력이 1 이상인 세상에서 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린다가 묻는다.
“몰라.” 데일이 걱정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무지(無知)의 속도야.” 린다가 말한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다가 이해한다. “무지는 지(知)보다 빨리 확산하지.” 린다가 씩 웃고 고개를 꾸벅인다.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     p.22

 

2004년 네뷸러 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이 나왔다. 제목인 '어둠의 속도'는 엘리자베스 문이 자폐인 자신의 아들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아들이 '빛의 속도가 1초에 30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냐는 질문을 한 것이다. '어둠에는 속도가 없다'고 대답한 그녀에게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라고. 이 작품의 주인공인 루 애런데일 역시 어둠의 속도에 대해서 고민한다. 자폐인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 놀라운 작품의 세심함과 깊이는 실제로 자폐증을 수십 년간 바로 옆에서 지켜 보아온 시간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자폐를 비롯한 모든 신체적 장애를 완전히 치료하는 것이 가능해진 근미래이다. 하지만 해당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 이미 성인된 사람들은 그 상태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장애인으로, 자폐인으로,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상태로 말이다. 장애를 '다름'이 아니라 '결핍'으로 보는 시선때문에 그들은 정상화 수술을 통해 '정상'이 될 지, 혹은 '비정상'으로 남을 지 선택해야만 한다.

 

 

“나 자신이 누구인가는 저에게 중요합니다.” 내가 말한다.
“그러니까, 자폐증을 앓는 게 좋다고요?” 의사의 목소리에 꾸중하는 듯한 어조가 섞인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p.394

 

루는 전원 자폐인으로 구성된 한 거대기업의 특수분과 ‘A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검색 알고리즘과 패턴 분석에 뛰어난 그들의 특수한 능력으로 인해 생산성 면에서는 뛰어 났지만, 정상인들과는 다른 그들을 위해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상사도 있었다. 새로운 상사는 사내 연구소에서 새로 개발 중인 ‘정상화 수술’을 통해서 그들이 정상이 된다면 특별 복지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A 부서 직원 전원은 정상화 수술 강요를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었고, 치료받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물론 상사는 병들고 손상된 상태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과연 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구원하는 것일까.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자폐증이나 그외 모든 장애를 완전히 뿌리 뽑기를 원하는 것일까. 자폐증은 의료 전문가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도록 치료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결핍인 것일가. 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하다고, 정상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대로 잘 살고 있는데, 왜 바꿔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자폐가 사라지더라도 과연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을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이 작품은 경계 바깥에 선 소수자의 시선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루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자폐인을 동정이 아니라 공감하고 다름에 대해 이해하도록 만들어 준다. 정상’은 정체성이 될 수 없는 것일까. 이 작품은 신체적 장애가 사회적 장애로 이어지는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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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용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g********m | 2022.05.23 리뷰제목
가끔 SF소설을 읽는다. 좋은 소설만 읽어서 그런 지 실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40년 가까이 자폐아로 살았다. 그 삶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있다. 특히 사람들의 편견.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어느날 회사에서 불법적으로 자폐증을 치료하라고 한다. 자폐 자체가 생산성이 낮다고. 회사 사장도 모르게 진
리뷰제목

가끔 SF소설을 읽는다. 좋은 소설만 읽어서 그런 지 실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40년 가까이 자폐아로 살았다. 그 삶에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일상에서의 불편함은 있다. 특히 사람들의 편견. 하지만,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더 많다. 어느날 회사에서 불법적으로 자폐증을 치료하라고 한다. 자폐 자체가 생산성이 낮다고. 회사 사장도 모르게 진행되던 이 일은 나중에 회사 사장이 알고 폐기하지만, 주인공과 친구들은 그 회사의 불법적 치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주인공이 치료에 참여한다는 결정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나는 당연히 주인공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고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치료 받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자폐라는 지금의 상태가 싫어서가 아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 지 모르겠다.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의 이유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장애'를 바라보는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 주는 소설을 넘어선다.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 지 얘기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자폐와 그로 인한 고뇌들을 배경을 이룰 뿐이다. 누구에 의한 선택이든 선택은 어렵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선택의 고뇌가 자신의 삶을 지탱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기꺼이 그 선택에 뛰어든다. 

 

차분하게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가 마지막 장까지 읽는 재미를 유지시킨다. 좋은 소설이다.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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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푸른숲)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c*****0 | 2021.12.02 리뷰제목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어둠의 속도>라는 제목은 너무 판타지스럽지 않은가? 어슐러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이 떠올랐다. 표지와 첫장을 넘기면서도 선입견은 달라지지 않았다. 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고서야 이 책의 장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루. 그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 증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
리뷰제목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어둠의 속도>라는 제목은 너무 판타지스럽지 않은가?

어슐러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이 떠올랐다.

표지와 첫장을 넘기면서도 선입견은 달라지지 않았다. 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읽고서야 이 책의 장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루. 그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거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 증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본인의 특정한 방식(패턴이나 수학적 방식)을 통해 지각한다. 정상인이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있다.

책의 제목에 대한 힌트는 책의 여러 곳에 등장하는데, 장르에 대한 의심을 끝내 버리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어둠의 속도에 궁리하고 있었어." 22쪽

"어둠에는 속도가 없어." "그저 빛이 없는 곳일 뿐이지 - 부재에 붙인 명칭일 뿐이야." 130쪽

"어둠은 빛이 없는 곳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 - 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131쪽

내게는 너무 많은 일들이 너무 빨리 일어나서 보이지 않는 것같이 느껴진다. 사건들이 인식에 앞서, 먼저 도달하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어둠 속에서 일어난다. 230쪽

그는 직장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업무를 하고, 펜싱을 배우고 대회에 나가기도 한다.

그가 마저리라는 여성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기도 하고,

책을 통해 정상인이 사고하는 방식이나 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음은 그가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이다.

책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생각했엇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른다. 332쪽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좋아합니다. 자폐증은 나 자신의 한 부분입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내 말이 사실이기를, 내가 내 진단명 이상이기를 바란다. 394쪽

"저는 하나님이 부여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이건 사고였다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이렇게 태어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부여하셨다면, 바꾸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409쪽

"나는 내가 더 오래 살고 싶은지 살고 싶지 않은지 알지 못해."

"만약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되어서, 그 상태로 더 오래 살아야 한다면 어떻겠어? 나는 내가 더 오래 살고 싶은지 결정하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먼저 알고 싶어." 432쪽

그가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는(의학적 관점인지 세속적인 관점인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대한 판단기준인지는 모호하지만) '돈'의 계속되는 악의와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그는 '정상인'이라는 개념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기준이 세워진 듯 하다.

편견을 깨준다는 점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책이다. 표지에 속았다.

이것은 내용이 주는 반전에 자신이 있는 출판사의 승부수였을까? 부디 의도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결국 순전히 본인의 판단 하에 치료를 택한 '루'. 그 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여전히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자폐증'이라는 판에 박힌 클리셰를 벗어던지게 해 준 책.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다를 뿐이다.

책의 본문 전에 쓰여있는 서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을 얼마남지 않은 올해의 책으로 혼자 정해본다.

읽길 잘 했어!!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의견이나 느낌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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