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랑켄슈타인(열린책들)』을 읽기 전까지 ‘저자’가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의사 ‘폴리도리’,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아내 ‘메리 셸리’가 모인 자리에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우리 각자가 괴담을 쓰는 겁니다(p.12)”라는 제안으로 시작하여 ‘메리 셸리’가 완성한 소설이 『프랑켄슈타인』이란 정보와 마주쳤을 때 무척 놀랐다.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공포문학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잠재해있었나 보다. 그런데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가 「여권의 옹호」의 저자이자 근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여권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라는 점도 놀라웠고, 특히 『프랑켄슈타인』을 썼을 당시의 나이가 열아홉이었다는 사실은 ‘메리 셸리’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영화 「프랑켄슈타인(감독 케네스 브래너)」을 떠올리며 소설을 읽었다. 영화는 워낙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에 소설과 다른 점을 확실히 구분할 수 없었지만 메리 셸리의 원작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의 이름이었던 것과 달리 영화는 창조자와 창조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으로 같았던 점, 악마가 빅터에게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고, 빅터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의 파국적 운명의 차이점은 알 수 있었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였다. 메리는 생명원리의 본질에 대해서 바이런과 남편이 나누는 대화를 경청했고 갈바니의 생체전기실험에도 관심을 보였다. 『프랑켄슈타인』이 세상에 나온 시점과 달리 현대는 복제기술이 발달하고 ‘인공적인 합성 세포를 만드는 기술까지 나와 인공 생명체의 등장을 예고(p.301)’하기에 이르렀다. 인간복제가 현실이 된다면 질병치료의 용도로 쓰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200년 전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제우스의 금기를 깨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이 파 먹히는 고통을 당한 것처럼 자연의 질서를 깬 과학의 발전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도 같은 공포와 악몽이 탄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행복하게 우수한 수많은 생명이 나로 인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떤 아버지도 나만큼 자식들에게 완벽하게 감사 받을 자격은 없을 것이다.(p.77)
‘그의 팔다리를 비례가 맞도록 구성했고 아름다운 외모의 특징을 골라 짜 맞추었다. 아름답게 말이다.(p.81)’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연구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새롭게 탄생할 생명의 겉모습이 추할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존재를 탄생시키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터는 그것이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자 공포와 역겨움을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쳐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악마, 괴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단순한 괴물이 아닌 자아를 갖춘 인격체로 변모해서 창조자를 찾아온다. 창조자에게 버림받은 괴물은 홀로 생존방법을 익혀서 살아남는다. 게다가 언어와 지식을 익히며 존재에 대한 의문, 결핍을 느끼기에 이른다. 빅터를 찾아온 괴물은 이렇게 호소한다.
‘일단 끝까지 듣고 나서 당신 판단에 따라 나를 버리든 동정하든 마음대로 하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들어 주시오. 인간의 법은 아무리 잔혹한 죄인일지라도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 스스로 변론할 기회를 주는 걸로 알고 있소.(p.138)’
창조자인 빅터가 피조물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겉모습이 추했기 때문이다. 창조자에게 버림받은 후 철저히 혼자 세상에 버려진 피조물이 점점 어둡고 차가운 구석으로 내몰렸던 이유도 외모가 흉측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빅터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본 반응은 동일하다. 공포와 경악!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차별하는 이유는 정당한가. 인정받고 싶고 감정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갖추고, 존재론적 물음으로 고뇌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인격체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 할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게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가 18세에 쓴 소설입니다. 과학 기술이라는 인류 문명의 최첨단 발전이 만들어낸 크리쳐와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도, 예측하지도 못하는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에 대하여 인간은 회피하고 도망가고 분노할 수 밖에 없다.
크리처가 언어를 배우는 과정 고전을 통해 교양을 쌓는 과정이 지금 한창 언론에서 떠들썩한 챗 GPT가 생각이 났고, 챗 GPT가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모르고 사람들이 막연한 두려움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실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증오하고 (노동자들이 기계를 증오했던 것처럼) 그것은 괴물처럼 사람에게 희생과 아픔이 닥치게 하고 심지어는 인간의 종말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이 무한한 상징과 비유처럼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