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고 느낄 때 삶은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된다. 모든 것은 허무하고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헤아린다. 죽음을 염려하지 않았지만 몇 차례 긴 수술을 받았던 장면을 생각하면 나 역시 그 순간 지난 삶을 돌아봤다.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사히 수술이 끝난다면 다른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카렐 차페크의 장편소설 『평범한 인생』 속 화자처럼 자서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기록으로 남기고 싶을까. 나에 대한 기록이라니, 객관적일 수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인 기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평범한 인생』 은 그런 이야기다. 화자인 ‘나’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제목처럼 평범한 인생에 대한 기록. ‘나’는 아내와 사별한 철도 공무원으로 일흔이 되기 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은 우연하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친구가 그를 진료한 의사에게 전해 받은 자서전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는다. 유년 시절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와 걱정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모범생.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모두가 바라는 성공한 삶으로의 진입을 곁에 두었다. 하지만 시를 만난 방황하다 스물두 살에 철도청 공무원으로 단조롭고 조용한 인생을 산다. 철도청 공무원의 삶을 나쁘지 않았다. 시골의 철도역에서 나빴던 건강은 회복되고 역장의 딸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새로 발령받은 곳을 자신만의 역을 만들었고 사회 유지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랑하는 아내는 자신이 위해 모든 걸 아낌없이 내주었다. 넘치는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평범한 인생이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조용한 삶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어느 곳에도 모험이나 투쟁 같은 것은 없으며, 예외적이거나 비극적인 면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바라보는 것같이 흐뭇한 눈길로 되돌아볼 수 있다. 나의 삶은 소리도 내지 않고 멈출 것이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조용하고 묵묵히 움직임을 끝낼 것이다. 또한 그래야 한다. (19쪽)
그의 안내를 따라 그의 생을 듣노라면 수줍던 한 소년의 성장과정이 그려진다. 묵묵히 일만 하던 아버지, 형의 죽음으로 자신을 각별하게 여긴 어머니. 첫사랑이라 할 수 없지만 묘한 감정을 불러온 누더기 차림의 소녀와의 만남. 학교에 들어가면서 알게 된 자신의 위치. 공부라는 권력을 일찍 깨우친 소년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생에 있어 유년 시절이 중요한 이유는 그때 경험했던 것들의 자아를 형성하고 내면 깊숙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그는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때에 알았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한 수많은 자아가 그의 평범한 인생을 헤집어 놓는다. 인생의 주요 시기에 내린 선택에 대해 그의 욕망을 어떤 자아가 지배했는지 알려준다. 평범한 인간과 억척이와 우울증 환자가 서로 연합했다는 사실. 아내와의 결혼에도 그의 철저한 계획이 있었다고 자아는 말한다. 그녀가 역장의 딸이 접근한 거 아니냐고. 철도청 공무원이라는 성공에도 억척스럽게 공부하던 자아가 있고 한적한 역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우울증 자아가 있는 것이다. 그의 자아(성격)은 부모로 거슬러 오른다. 우울증은 어머니로 인한 것이며 억척이는 아버지의 것이었다.
과거 누더기 차림의 소녀와의 만남에서 발현된 욕구는 시인의 자아와 연결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자아에 억눌려 짧은 시기에 소멸된다. 자아가 서로 충돌하며 격렬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내 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모든 이에게 해당될 것이다.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옷을 입어야 하고 부모 앞에서는 자식의 옷을 입어야 하고 혼자만의 시간에야 그 모든 옷을 벗을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것은 소설 초반에 등장한 각자의 세계와 같다. 다른 무언가가 되고자 끊임없이 욕망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명예든 어떤 것이든 간에. 직업이라 표현했지만 그건 인생이며 삶이 아닐까. 그가 유년 시절 함께 지내온 이들의 삶을 통해 알았던 세계는 성장하면서 다른 세계로 확장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경험한 것들이 다른 삶으로 이끄는 계기다. 소목장이었던 아버지가 그에게 성공을 바랐던 것처럼.
그들 모두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세계 속에서 각자의 신비스러운 일과를 영위해 나갔다. 모든 직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고, 다른 소재와 다른 의식(儀式)을 가지고 있었다. (27쪽)
차분하고 아름답게 흐르던 이야기는 격정의 소용돌이를 선사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인생이며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정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판단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자신뿐이므로. 어떠한 인생을 살든 말이다.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중략)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도록 나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가능성이기만 했던 것은 현실이 된다. 나를 제한하는 이 자아가 내가 아니면 아닐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가 된다. (239쪽)
어떤 인생을 살면 평범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목이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마음이 갔던 책이었는데 의외의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러한 전개 덕분에 이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많은 작품들로 만났던 작가인데, 카렐 차페크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싶다. 왜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을까?
노신사 포펠이 의사로부터 친구가 동맥경화로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어릴 때 같은 학교에 다녔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프라하 교통부에서 함께 일했던, 처신이 아주 분명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 친구였다. 친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글을 남겼고,의사는 포펠씨에게 그 자서전을 주었다. 의사와 포펠의 만남(책을 받음, 읽고 돌려줌) 사이에 자서전이 배치되어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퇴직을 하고 정원을 가꾸며 노후를 보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온 죽음을 직감했고, 주변 정리를 해나갔다. 더 이상 정리할 것이 없다고 느꼈을때, 자신의 삶을 짧고 간결하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생각은 처음에는 거의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그걸 가지고 뭘 하려는 건가? 누굴 위해 그걸 쓰려는 건가? 이런 평범한 삶에 대해 쓸거리가 있을까? (중략) 사실, 아주 평범한 삶에 대한 전기를 쓰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어쨌든 이는 나의 사적인 일이다. -p16 ~p 18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느긋한 맘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소목장이었던 아버지의 강인한 모습을 좋아했고, 따뜻한 어머니로부터 보호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짧지만 첫사랑도 경험했다. 외로움을 타고 붙임성 없는 성격이었지만 대신 책을 좋아했고 공부를 잘했기에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시를 쓰는 친구를 만나 특별한 체험을 했다. 역 발송계로 수습직 발령을 받아 일을 시작한 그는 역장의 딸과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프라하 철도청에 합류해 직업적으로도 만족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은 평탄했다고 느껴졌다. 커다란 굴곡도 느껴지지 않았고, 살아가면서 조금씩은 겪게 되는 문제 정도? 아주 평범한 사람에 대해서도 이렇게 전기를 쓸 수도 있구나, 이렇게 인생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을 할즈음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만났던 그의 삶은 그의 인생의 아주 일부분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 진실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혼란스러워졌다. 여덟 개의 자아가 나타나서 다투기 시작했고, 어떤 자아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앞선 상황들은 다른 모습으로 비춰졌다. 어린 시절 평범한 행복을 위한 구석 장소는 다른 아이들과 견주기에는 힘도 능력도 모자라는 아이의 저항이자 도피처였고, 사랑과 신뢰와 충실함뿐이었다고 생각했던 결혼 생활은 허상이었다. 평범하게 보였던 그의 일상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공감되기도 했다.
모두가 진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속에, 이 평범한 인생 속에도 여러가지 동기가 존재할 수 있지 않은가? 아주 단순한 일이야. 인간은 이기적이고 태생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생각하기 마련이지. 잠시 그걸 잊고, 자신마저 잊은 채 자기가 몰두하는 일만이 존재할 때가 있는거야. 가만있어 봐. 그처럼 단순한 게 아니지. 그건 전혀 다른 두 개의 삶이야. 그게 문제라고! 뭐가 문제란 말인가? 둘 중 어느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게 -p 151
평범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로 딱 정의할 수는 없을 것같다. 매 순간이 진실이 아니었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같다. 카렐 차페크는 여러 개의 자아를 등장시켜 한 인간의 인생을 다각도로 바라보았다. 서로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지만 모두가 한 사람의 인생을 규정하는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조상, 가족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단 하나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는 것도 어렵고, 하나의 잣대를 가지고 규정지을 수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은 미완성이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여러 개의 자아가 있어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내 인생을 완성해나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인생의 모습일지도.
회상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현재하는 자신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며, 그 내면에 있는 자아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럼으로써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도 이해하게 된다는 함의를 담아내며,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는 차페크 문학의 본질인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 (책 날개 중에서)
카렐 차페크는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의 길을 낸 국민작가로, <평범한 인생>은 1934년에 출간되었는데 <호르두발>,<별똥별> 과 함께 철학 소설의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라고 한다. '로봇'이라는 신조어를 세상에 알린 작가라고도 한다. 책의 진가를 제대로 말하기에는 내 언어가 부족하여 책 날개 내용을 인용했다. 카렐 차페크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지 궁금하다. 벌써 장바구니에 두 권의 책을 담아두었는데 빨리 만나봐야지.
ps ) 의사와 포펠씨는 여섯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야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책 표지 속에 숨겨진 선명한 파란색이 너무 예뻤다. 양장본인 것도 맘에 들고.>
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장편소설
열린책들
소설 속 '평범한' 인생의 과정이 계속 이어진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한다. 결혼한 후의 생활이 서술된다. 힘차고 건강하던 신혼 시절에는 서로를 소유하는 것으로 족했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자 공동의 세계를 위해 물건들을 소유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이어서 자연스럽게 재산에 애착을 가지기 시작하고, 직장에서 출세하기 위해 애를 쓴다. 주인공이 직장에서 바빠지자 아내는 그렇게 일을 <너무 많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일에 몰두한다. '남자에게는 자신의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곳이 가정처럼 느껴지는 법이다'(p116)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시대와 장소가 다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구나 싶었다.
주인공의 아내는 아기가 생기면 남편이 일에 파묻히지 않고 좀 더 집에 머무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자신과 타협을 하고, 대신 다른 사명을 발견했다고...
그녀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 남편은 자신의 일을 가지고 있고, 나는 남편을 가지고 있지. 그가 세상의 한 부분을 유지하고 있다면 나는 그의 세계를 유지해야 해.> 그녀는 수많은 일들을 찾아내어 알게 모르게 나의 습관이나 권리로 만들었다. (...)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즉각 나의 좀스러운 습관들이 나를 에워쌌다. 그것들은 아내가 고안해 낸 것이었고, 내가 그런 것을 원하리라는 아내의 상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에 순응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나를 위해 준비된 습관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나는 아내가 나의 습관들을 통해 나를 소유하고 점점 더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나의 자존심을 부추겨 주었기 때문에 순응하고 있었다.
- p118
아내가 죽고 난 후 주인공은 '얼마나 커다란 사랑과 배려가 그 질서 속에, 그 모든 것 속에 담겨 있었는지를 깨닫는다.'(p122) 라며 서러운 고아가 된 느낌이 들어 목이 멘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주인공이 '평범하고 건강한' 인생을 회고하며 그 시선으로만 적어보는 인생이었던 것. 주인공의 내면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같은 사실에 대해 반박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표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표상에 들어맞는 사건들을 선별하거나, 심지어는 약간의 수정을 가한다.
- p213
시선에 따라 주인공에게 얼마나 많은 경우의 인생이 생겨나는지! 소설의 후반부로 갈 수록 더욱 흥미롭다. 문득 내가 떠올리고 있는 내 지나온 삶은 어떻게 미화되어 기억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