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드라큘라는 근현대 문학에 편입시키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고양시켜 영화 등 다른 매체로의 전이를 이뤄낸 작품에 대해서는 아마 잘 모를 것 같다. 그 작품의 주인공 브램 스토커는 더욱 그렇다. 드라큘라가 어느 지역, 어떤 전승 설화에서 유래했는지를 잔뜩 설명하는 글에서도 브램 스토커와 그의 소설에 대해서는 거의 지나가듯 소개한다.
비로소 읽게 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당대(1800년대 말)의 이야기로 변화시켰다. 말하자면 매우 현대적인 옷을 입힌 작품이다. 따라서 이후에도 이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권을 읽고 소설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그 방식도 독특하다. 어떤 한 인물의 기록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기록, 그것도 다양한 방식의 기록을 짜깁기했다. 물론 그 기록들이 원래 그 기록의 형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긴 하지만 형식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또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드라큘라는 토착 설화에 기독교 신앙이 혼재된 존재다. 출중한 인물이 죽었지만 피를 빨아먹으며 영생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설정은 전래된 것일 테지만, 예수의 그것과 상당히 일맥상통하며, 그것을 물리치는 방식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십자가 같은 것과 함께 마늘 등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그러한 토착 설화와 기독교 신앙의 혼재는 이 소설에서도 아주 당연한 듯이 이뤄지고 있다.
소설의 제목도 그렇고, 중심 소재도 드라큘라 백작이다. 그렇지만 드라큘라 백은 초반 초보 변호사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성에서 만나 벌어지는 몇 가지 일을 제외하고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반 헬싱을 비롯한 드라큘라를 없애는 데 동참한 여러 인물들 저 건너편에 있으며, 그 흔적만 남길 뿐이다. 어쩌면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상태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가장 공포스럽다는 것을 브램 스토커는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이야기는 두 여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친구 사이인 루시 웨스텐라와 미나 하커가 그들이다. 둘 다 드라큘라 백작에게 물린다. 그런데 한 여인은 죽은 후 흡혈귀가 되고, 한 여인은 그 끔찍한 운명에서 탈출한다. 한 여인의 운명은 드라큘라의 정체와 수법을, 반 헬싱이 청년들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여인이 그런 운명에 처할 위기에서 단합하여 그녀를 구출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루시는 물론이고 미나 하커가 지혜로우며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소설 속 여성들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드라큘라 백작의 주술에 걸려드는 것은 여성들이며, 그 여성들을 구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닌 것은 ‘용감한 신사들’이다. 남성만도 아니고, 품격과 기사도 정신을 갖춘 상층의 인물들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한껏 내포하고 있는 셈이며,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빅토리아 시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시대적 분위기에는, 어떤 여성성이 인정받는지도 포함된다. 루시나 미나가 괴물로 변해가는 조짐을 표현할 때 표독스런 인상과 함께 늘 ‘관능적’이라는 단어를 쓴다. 드라큘라 성에서 드라큘라의 여인이 된 세 명의 여성도 마찬가지다. 마치 그들의 부정성은 관능성에서 오는 듯하다. 남성을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이다. 이는 드라큘라 백작에게서도 드러난다. 그가 여성의 목을 노리는 것은 분명 성적 갈망이다. 입에다 하는 키스보다 더 유혹적인 키스가 목에다 하는 키스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드라큘라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성적 관능의 표상이 되며, 이후의 뱀파이어 영화에서도 매혹적인 남성이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브램 스토커는 그런 관능적인 인물, 성적 갈망을 부정적으로 봤으며, 그것은 다분히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가 흥미로운 작가이긴 하지만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들지 못한 것은 그런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상권의 이야기가 전반부는 조너선에 관한 내용이고 후반부는 루시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하권에서는 드라큘라와 반헬싱을 비롯한 친구들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진다. 루시는 죽었으되 죽은 것이 아니고 이미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혈색이 돈다. 반헬싱이 무덤에 도착을 해서 관을 열어보니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 이후 다시 열어보니 그녀는 다시 돌아와있었다. 그녀는 밤새 어디를 어떻게 갔다 온 것일까.
그녀를 사랑했던 아서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또한 그녀에게 못을 박고 목을 잘라서 죽여야 한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당하고 난 이후 그는 이해한다. 자신이 사랑했떤 루시를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어쩔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드라큘라는 일반 사람 같지 않다. 일반 남자들의 스무배나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아서를 비롯한 친구들이 모여 있다고 하더라도 힘을 합했다 하더라도 그 한 명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루시를 죽은 상태로 만들 수 있을까.
드라큘라 처치법으로 나왔던 방법들이 그대로 다 나온다. 마늘을 이용해서 목걸이를 만든다던지 십자가를 내밀면 효험이 있다던지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 심장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던지 하는 그런 방법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방법 중에서 목을 자르는 것은 없었는데 그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나 보다. 시체의 목을 자르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나마 의사가 두 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려나.
루시가 해결되면 끝이려나 했는데 드라큘라 백작과의 사투는 끝도 없고 거기에 더해서 미나까지 시름시름 앓기 시작을 한다. 사실 미나를 어디선가 물린 적도 없는데 그렇게 아프기 시작을 하더니 드라큘라의 표적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조너선이 그의 반대 입장에 서서 그를 죽이려고 덤비나까 하나의 인질처럼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루시와 미나 두 명의 여자들을 통해서 드라큘라 백작과의 싸움을 벌이는 이 이야기가 처음에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고전이었다. 단지 그저 일기와 편지글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것이 이 드라큘라를 지금 시간까지도 인기있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브램 스토커가 극장 경영자이자 당대 최고의 명배우였던 헨리 어빙의 매니저로 활동했다기에 그 둘을 검색하던 중, 브램의 성(性), 스토커(Stoker)가 ‘증기기관에 석탄을 퍼 넣는 화부를 뜻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소설 속에도 드라큘라를 처단하기 위해 이동수단으로 이용한 기차 증기관에 석탄을 넣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증기기관을 이용한 놀라운 과학 혁명으로 증기선과 기차를 들 수 있는데, 드라큘라와 그를 무찌르기 위해 뭉친 반 헬싱 무리들도 그 둘을 이용하는 게 나온다.
브램이 51세인 1897년에 쓴 이 소설은 ‘흡혈귀를 다룬 모든 소설은 어떻게 해도 이 소설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할 만큼 흡혈귀 문학 사상 최대의 걸작이라고 평해진단다. 더욱 반가웠던 건, 이 소설에 무려 ‘조선’이 딱 한 번 언급된다는 점이다. 아래 [나무위키]의 문장은 그에 대한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스토커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흡혈귀에 대한 연구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 하면, 작중 반 헬싱이 중국에도 흡혈귀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순히 흡혈귀에 의해 벌어진 소동이 아니라, 흡혈귀란 존재 자체를 해부 분석했다고 볼 수 있다.”
검색한 내용 중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브램 스토커의 미망인인 플로렌스 스토커(1858~1937)가 남편의 허락 없이 영화화된 것을 가지고 남편 사후 ‘저작권 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를 흥밋거리로 본다는 자체가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참 부끄러운 한편 부인의 처사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미국 유니버셜에 판권을 팔았다는 데에는 납득이 잘 안되지만 그 덕에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걸 감안하면 잘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들인 제작비의 거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얻었다니. 이후 한 유명 배우의 매니저이자 무명작가로 사장될 뻔했던 드라큘라의 작가는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명예를 얻게 되는데, 1987년부터 호러 작가협회에서 그의 이름을 딴 ‘브램 스토커상’이 제정되었다고.
반 헬싱 무리들을 보자니 문득 소설 『삼총사』가 떠올랐다. 사실 그들이 하려는 드라큘라 처단은 미나의 영혼을 되살리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두머리인 그를 죽여 인류가 드라큘라의 세상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바로 이것이 그 일의 대의라고 할 수 있겠다. 하편은 그에 이르기 위한 인물들의 행적이 담긴 일기를 통해 찬찬히 따라가는 형식이다.
상편에 비해 하편은 몰입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이 불필요하게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많이 지루했다. 결말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으나, 확실히 덜어내기의 미덕이 아쉬웠다. 차라리 상편에 결말을 추가해 단권으로 깔끔하게 끝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완독 후 여러 버전의 드랴큘라 영화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연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점은 큰 수확이라 할만하다.
뱀파이어만큼 수많은 영화, 연극, 공연 등의 소재로 쓰인 것도 드물 것이다. 뱀파이어라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면서도 터부의 대상이었다. 브램 스토커라는 이름만 알고 작품을 접하지 못하던 차에 열린책들에서 이세욱 번역으로 나와 행복하게 읽을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최고의 홍보대사다. 루마니아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드라큘라가 거주했던 트란실바니아를 찾는다. 또한 익히 알려진 악명과 달리 루마니아 역사에서 드라큘라는 나라를 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브램 스토커는 드라큘라에게 불멸의 명성을 안겨주었지만 과장도 다소 섞였다는 것은 드라큘라에게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성은 주인공들의 일기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상권 절반 정도 읽기 전에는, 제대로 재미 붙이기 전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나 한번만 탄력 받으면 손을 놓기 힘들 정도니 꼭 참고 보기 바란다. 반 헬싱은 흡혈귀 관련 컨텐츠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인데 잊고 있다가 책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여러 인물들이 비슷한 어조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대화나 심리 묘사가 사람마다 개성적으로 변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은 확실히 아쉽다. 어느 지점 이후부터는 (스토커가 의도했던 대로) 개별 인물들의 관점에서라기 보단 스토커의 관점에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단순히 작품이나 이름이 기억되는 차원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창조했는데 말이다.(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나 도스토예프스키의 라스콜리니코프보다 유명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역설적이긴 하다.)
드라큘라를 제대로 음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한 번 더 읽는 것이지만 여건 상 힘든 사람들은 각종 영화나 공연, 만화 등을 보며 브램 스토커의 작품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푸엔테스의 ‘블라드’ 또한 같이 읽어보기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