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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EBS 자본주의 제작팀 저/EBS MEDIA 기획
중국사람들은 루쉰의 새 소설이 나올때마다 걱정을 했다고 한다.이번에는 자신들의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고. 조지 오웰의 1984년 속에 등장하는 윈스턴의 모습을 만나면서 내가 느낀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과거 속 남자인 윈스턴 모습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해야 하는 참혹함은..디스토피아의 끝을 보여주려고 작심하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으니까말이다.
고전을 읽을때마다,특히 같은 책이 동시에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 되어진 경우 표지를 찾아본다.표지에 힌트(?)처럼 들어난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책읽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1984년처럼 재미는 있으나 도저히 느낌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난감해질때 함께 교감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앞서 '죄와벌'을 읽었을 때도 열린책들의 표지가 가장 나와 비슷한 느낌이구나 싶었는데,1984년에서도 열린책들의 표지에서의 느낌이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과 가장 닮아 있었다.민음사와 문예출판사는 수많은 윈스턴과 같은 인물을 상징정으로 보여주는 것에 머물렀다면 열린책들의 표지에는 윈스턴이란 인물에 매우 집중하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사실 윈스턴 말고도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윈스턴만 한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으로도 힘겨운 일이었다.그런데 표지에는 제2,제3의 윈스턴까지 보인다.디스토피아소설의 끝을 보여주려고 쓴 소설 같다고 생각한 나에게 마치 방점을 찍어야 할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한다.잘못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터 진실을 찾으려 혹은 기억하려 노력하는 인간이 거대한 권력앞에서 어떻게 무너져가게되는지..그런데 표지에는 윈스턴과 같은 인물이 끝없이 나타나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그런가 하면 을유출판사의 표지는 빅 브라더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싶다.그러니까 절대권력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하, 역사는 결코 프롤에게 행운의 손을 건내지 않을거라는 거다.혹자는 물어보지도 모르겠다.왜 이렇게 어둡게 오웰은 소설을 썼는가? 대안이라도 함께 제시해주어야 하는가 아니냐고.물론 소설에는 프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있고,제시도 있다.다만 윈스턴과 같은 인물들이 동시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조적 혹은 모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굳이 1984년으로 혹은 오웰이 소설을 썼던 1940년대로 시간을 돌리지 않아도 우린 알고 있지 않을까? 선거때마다 이데올로기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공권력이 쏜 물대포에 시민이 죽게되었음에도 엉뚱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 등등.원인도 알고 있고,답도 알고 있는데,아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밝은빛이 짠~하고 언제 보이게 될지 모르겠다.소설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건..1984년이 소설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미국의 미래학자 데이비드 굿맨은 오웰이 「1984년」에서 예언한 것 중 얼마나 들어맞았는지를 1971년에 검토한 바 있는데 이때 오웰의 예언 137가지 중에서 80가지가 실현되었다. 1978년에 다시 비교해 봤더니 무려 1백 가지가 실현되었다. 다시 한 번 조사해 본다면 137가지 중에서 과연 실현되지 않은 것이 몇 개나 있을지 궁금하다."
역자가 후기에서 밝힌 사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1984년」의 내용이 현실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분명 현실의 무언가를 연상시키긴 할 테지만 집요하게 수치상으로 따져서 이 정도라고 상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이 쓰인 연도는 1949년, 오웰이 예견한 1984년의 미래보다 한참을 더 와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2017년의 한국은 ― 1980년대의 한국보다 ― 조금 나아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건 아니라고 여겨진다. 현재는 이렇다.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하는 텔레스크린은 없어도, 나도 모르게 입력되는 CCTV는 있다. 사상범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통용하며 잡혀가지는 않아도, 블랙리스트는 있었다고 밝혀졌다. 내부 권력을 다지기 위한 전쟁과, 권력과, 계층은 소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무서운 집단주의로 매일같이 흑과 백으로 나누어 싸우고 물어뜯는다. 게다가 우리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디지털 공간에 정보를 매일매일 퍼나르기까지 한다. 귀찮게 인식하지 않지만, 인식하려 하면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도, 감시 아닌 감시 안에 있으며 꽤 무서운 세계에 살고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1984년」은 아주 노골적이고 정치적인 소설이다. '빅브러더'로 대표되는 최상위 권력은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시민을 감시하고 억압한다. 개인적 행위는 모두 통제된다. 당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위는 모두 사상죄로 처벌된다. 허튼짓을 하는 부모들을 자식들이 감시하며 밀고하고, 사상범들의 교수형을 구경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선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순응하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오싹한 것은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형식과 '이중사고'의 개념이다. 언어 말살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완벽히 지배하고, 언론과 문화와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무엇인가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제거하고 무지한 인간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세상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자각한 주인공 '윈스턴'이 일기를 쓰는 행위는 깊은 의미를 가진다. 당의 슬로건인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를 완전히 배반한 그는, 과거의 향수를 추억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되찾으려 애쓰며, 선택의 의지가 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을 표출한다. 그러나 상대는 '빅브러더'와, 기계처럼 그를 사랑하고 따르게 된 된 사람들뿐이다. 그의 시도는, 여느 사상범들의 시도처럼 좌절되고야 만다.
생생한 긴장감으로, 쉴 새 없이 내리치는듯한 책을 읽고 나니 진이 빠졌다. 인간의 마음은 얼마만큼 지배당할 수 있을까. 힘과 권력과, 전체주의에 의해, 집단의 이기심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말살되는 모습은 아직도 익숙하다. 오싹한 세계와 더 고단수가 된 지금의 오싹한 세계. 『1984년』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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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으면서 모른다는 것, 완전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교묘하게 날조된 거짓말을 말하는 것, 말살된 두 개의 의견을 동시에 가지고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 그 둘 다를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해 논리에 대항하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당이 민주주의에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은 죄다 잊어버리고 필요할 땐 언제든지 다시 기억 속으로 끌여들였다가 다시 재빨리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 똑같은 과정을 적용시키는 것, 이런 것들은 이해하기에 지극히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자신이 행한 최면 행위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이중 사고를 이해하는 데조차도 이중 사고를 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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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까지는 ― 어쩌면 그보다 이를 수도 있겠지만 ― 구어에 대한 모든 지식이 사라지게 될 거야. 과거의 문학도 모조리 없어지고 초서, 셰익스피어, 밀턴, 바이런과 같은 작가들은 오로지 신어판으로만 존재하게 될 거야. 그것도 내용이 바뀌는 정도를 넘어 원뜻과는 정반대로 변해 있을 거야. 심지어 당의 문학도, 슬로건도 바뀔 거야. 자유라는 개념도 사라졌는데 <자유는 예속>이라는 슬로건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어? 사상적 분위기도 확 바뀌게 될 거야. 사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런 사상은 존재하지 <않게> 되지. 정통주의라는 것은 사고하지 않는 것을 뜻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거지. 정통주의는 곧 무의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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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대 생활의 진정한 특성은 잔인성과 불안정성이 아니라 단순히 적나라함, 더러움, 무관심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은 텔레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거짓말뿐 아니라 심지어 당이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이상과도 닮은 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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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 순수한 것, 진실한 것은 지켜져야 한다. 자명한 이치는 사실로 지켜져야 한다! 확고한 세계는 존재하며 그 법칙은 변화하지 않는다. 돌은 딱딱하고, 물은 축축하고, 받쳐지지 않은 물체는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진다.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말하는 기분으로, 또한 중요한 원리를 발표하고 있는 감정으로 일기를 썼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하는 자유이다. 만일 이것이 인정된다면 그 밖의 것은 모두 이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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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포옹은 일종의 전투였으며, 절정은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것은 당에게 가할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