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심판) - 프란츠 카프카(김현성 옮김 / 문예출판사)
몇 년 전에 읽다가 중도 하차했던 경험 때문에 다시 잡고 싶지 않은 책이라 이번엔 다 읽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몇 년 사이에 내 독서력이 올랐는지(?) 이번엔 무리 없이 잘 읽을 수 있었고 심지어 이 책이 좋아졌다. 카프카의 인간을 바라보는 지독한 시선은 완전히 내 취향이었다. 내가 이 얘기를 했는데 남자친구가 옆에서 혀를 끌끌 찬다.(쳇) <변신> 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단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야만 합니다." "거짓이 세계의 질서가 되는군요." (p.275)
요제프 K는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소송당한다. 감시자가 붙고 언제 끝날지도 모른 채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재판과 관련된 관리들은 하나같이 부패했고, 무죄판결을 받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인물들 역시 하나같이 자기 생각만 하는 계산적인 사람들이다. 끝까지 왜 소송을 당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데 이런 점이 읽는 독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렵고 답답할 수밖에 없지만 읽다 보면 결국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카프카는 부패한 관습과 체제, 관리들, 도와주는 척 자기 잇속만 챙기는 다양한 이기적 인간 군상들을 그리기 위해 '소송을 당한 상황'만이 필요했다는 느낌이다.
/ 이 거대한 사법 조직은 말하자면 영원히 판가름 나지 않으며, 거기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인가 변화시켜 보려다가는 발붙일 곳을 잃고 자신이 추락하게 된다. (p.152)
이 책에서 변호사는 하잘것없는 지위다. 공인된 지위가 없는 무면허라 법체계가 허락하지 않는 존재이고 변호를 맡았음에도 사건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개인적인 연줄만으로 힌트를 얻고 열심히 재판관들의 비위를 맞추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변호사조차도 소송을 당한 피고인에게만큼은 엄청난 권력자라는 것에서 실소를 참기 어렵다. 자신의 소송에 몰두한 나머지 온갖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업무에서도 엉망이 되어버리며, 별 도움도 안 되는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현실. 소송이라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일상을 깨트리는 파괴적인 일인지를 표현하는 감각은 진짜 놀라웠다.
/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끝까지 침착하고 분별력 있는 이성을 갖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스무 개의 손을 갖고 세상에 덤벼들려 했다. 그것도 단 하나 합당한 목적도 없이. 그것은 옳지 않았다. (p.281)
카프카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주 지독하다. 이 점이 통쾌해서 마음에 들었다. 불완전한 인간, 그래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난 항상 그 반대의 면에 좀 더 끌린다. 카프카의 이런 시선은 불완전한 인간존재의 하찮음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취향이지만 완전히 내 스타일이었다. 요제프 K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깔본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자세가 기본에 깔려 있는 것이다. 소송에서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도취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사탕발림에 홀랑 넘어가 부패한 사법제도를 자신이 까발리고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영웅심까지 보여주는데 참 정주기 힘든 성격이다. 만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도움을 준다는 핑계로 이득을 취하려 하고 뒤통수를 때린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간 지옥인 것이다.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어째서인지 남자친구는 또 옆에서 혀를 끌끌 찬다) 염세적인 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내 취향인 것을 어쩌나. 아마도 내가 좋았던 부분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카프카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그런 사람 바로 내 옆에 있음) 호불호가 큰 작가일 듯한 느낌. 재밌게도 중도 하차했던 괴로운 책이었으나 이제는 내 취향의 책이 되었다.
/ 죄가 있다면 이 체제에 있고, 고위 관리들에게 있습니다. (p.110)
/ 당신은 내 도움을 전혀 원하지 않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고집쟁이여서 남의 말은 듣지도 않아요. (p.139)
/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개인적인 연줄로서, 이것이야말로 변호의 중요한 가치이다. (p.148)
/ 단 하나 올바른 태도는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다. (p.152)
/ K는 자신이 지금 화가의 이야기에서 모순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재판소 소송 과정 자체의 모순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p.189)
/ 누구나 나중에는 변호사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되죠. (p.227)
/ 용의자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게 낫다. 가만히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울 위에 올려져 죄를 저울질당하기 때문이다. (p.241)
/ 전에는 언제나 얼마나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가 하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이름이 무거운 짐이 되었고, 이젠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p.262)
/ 그러므로 나는 재판소에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어찌 당신에게 용무가 있겠어요. 재판소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맞이하고, 가면 가게 내버려 둘뿐입니다. (p.277)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나서 카프카를 알게 됐다.
변신에 나온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달라진 현실에 슬프면서도 안쓰러웠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힘이 없어진 한 인간의 모습이 저럴까 싶었다.
그때 받았던 카프카에 대한 느낌이 심판이라는 또 다른 카프카의 세계를 접하게 만들었다.
심판의 줄거리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던 은행가로 잘 나가고 있던 요제프 k가 기소를 당하면서 시작된다. 낯선 이들의 방문으로 요제프 k의 삶은 뒤죽박죽이 된다.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왜 체포됐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소송은 진행된다.
요제프를 도와주는 변호사조차 믿을 수 없다.
말로는 잘 되어간다고 하나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들 온갖 추측과 예측만 난무할 뿐이다.
요제프는 하루하루 답답한 시간을 보내며 일상 생활을 이어가지만 언제 체포되어 이런 일상의 평화가 깨질 것인지 불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제프가 본인이 모르는 죄를 짓은 것이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하지만 요제프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책 속에서 그의 죄를 찾을 수 없었다.
그와 신부가 나눈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하는 건... 인간에게 죄는 없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요제프 k에게 심판을 내리는 판사의 이름이 카프카라는 것만 봐도 느낄 수 있듯이 이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을 의미할 것이다.
원죄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인간은 늘 끊임없이 자신을 자문하고, 깨우쳐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로 인해 죄를 짓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원죄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내려진 벌은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이었다.
요제프 k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처럼...
요제프 k는 또 다시 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일상적인 시간에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의 한 면에 대해 소송이라는 매개체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소개
인간의 원죄 의식과 존재 상실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프란츠 카프카 대표작.
감상
심판은 기존 문학과는 다른 파격적인 구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미완성일뿐더러 이야기의 흐름 자체도 친절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해석에 있어서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이 소설은 요제프 K 라는 은행에서 인정받고 있는 어느정도 성공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범죄자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습격당하며 시작한다. 그들은 K의 죄가 무엇인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그가 기소되었고 그것만이 사실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며 K를 범죄자로 규정짓는다.
K는 당연히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고 감시자들의 행동이나 재판장의 모습도 기존의 상식과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무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이 소송을 장난 혹은 어처구니 없는 비현실적인 사건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의 주위에 재판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그를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을 보며 자신이 기소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점차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있을만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게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법과 재판을 침범할 수 없는 우러를 만한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방황을 하게된다.
그 후 마지막 장에서 살 수 있는 기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순경의 의심을 사지 않게 사형집행인들을 순순히 따라가는가 하면, 최후의 순간에는 누군가 나를 도와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개같이' 라는 말을 남기고 죽어버린다.
이처럼 큰 잘못없이 열심히 살아가던 K를 죽인것은 권력을 지닌 법원에서의 기소였고, 그에 대해 저항할 의지를 보이지 못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한번 선고가 떨어진 사람에게는 무죄판결이 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기소는 곧 파멸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부와의 만남에서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문이 있을때 문지기가 존재하더라도 그 문을 지나는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다. 죽어서야 문지기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음을 알게된 농부는 얼마나 허망했을까? 스스로의 행동과 판단을 방해하는 주위의 것들은 말그대로 주위의 것들일 뿐이다. 마지막 한 발은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독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성에 쉽게 빠져들기 힘든 내용구성을 가진 책이지만 나중에 성장해서 한번 더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인 요제프K는 시작부터 소송을 당해 체포되는데 이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왜 소송을 당했는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소송이 진행되는 약 1년의 시간 동안 누가 소송을 한 것인지, 소송 절차가 어떤지 등 관련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독자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결국 K는 자신이 소송당한 이유나 소송 대응방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나름의 대응을 해 나가야 합니다. 작품에서 소송은 우리 인생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사실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누구나 불시에 인생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러면서도 K가 그랬던 것처럼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대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작품을 통해서 프란츠 카프카는 삶의 이유나 방법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못ㅂ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K는 자신의 소송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에 예속되고 맙니다. 그는 감시원들에게 체포되고 주말마다 법정에 출석하며, 심지어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결국 소송을 당했다는 것은 법에 의해 모든 자유가 박탈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은행 업무는 할수 있으나 겉보기에는 자유롭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겁니다. 중요한 것은 겉보기 자유가 아니라 실제적 자유입니다. 그것을 깨달은 K는 화가 티롤렐리와의 대화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표면적 무죄 판결이 아니라 실제적 무죄판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이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입니다. 실제적 무죄판결을 통해서만이 실제적 자유를 얻을수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든 예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작가는 K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K는 소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독자는 소설 속 배경이 되는 사회에서는 결코 법의 집행이 투명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올바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법치주의 나라에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못하다는 걸 우리는 자주 느끼곤 합니다. 정해진 절차나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죠. K역시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요. 특이하게도 K가 도움을 청하는 대상은 대부분 공식적인 직함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심지어 홍트 변호사인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고 단언하죠. 이런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홀트 변호사는 자기 의뢰인인 블로크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법 제도가 법조계를 왜곡하고 있는 겁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법 제도가 공정하고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 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제프 K가 자기가 소송당한 이유도 모르고 죽음을 당한 것처럼 되지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생의 이유와 목적을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