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나는 누구를 얻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일은 못 할 것 같다, 아직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을 두고 하는 얘기라면 나는 이 생각을 쭉 갖고 살아갈 것 같다, 아마도. 아직 그런 생각이 들 만한 사람을 만나지도 못했다. 설사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내가 있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도 존재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일. 아직은 내가 분명하게 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두렵고, 그 선택의 책임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다. 아직은...
이디스 워튼의 소설 『이선 프롬』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는 선택하지 않았을 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이 정도의 마음, 이런 선택을 하는 순간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공학도가 되고 싶었던 이선은 잠깐의 대학생활을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학업을 포기하고 시골에 눌러앉는다.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던 지나와 결혼생활을 하며 가난한 농장 주인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7년의 결혼생활을 하던 중, 이선의 집으로 지나의 사촌 여동생 매티가 온다. 병약해진 몸으로 집안 살림을 돌볼 수 없었던 지나를 대신해 매티가 그 집안의 살림을 맡아 한다. 병약한 아내 지나와의 사이는 점점 틀어지고 이선의 마음이 피폐해져 갈 때 나타난 매티는 이선에게 또 다른 활력소가 된다. 발랄하고 싱그러운, 이선을 존중하며 그의 마음을 읽는 매티. 그렇게 이선과 매티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럴수록 지나의 투덜거림은 심해지고, 급기야 새로운 하녀를 구했다며 매티를 내보내려 한다. 육체적 관계는 없었지만 이미 서로에게 빠져든 이선과 매티에게 지나의 일방적인 결정은 갑작스럽다. 이제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이 싱그러움이 일상을 버티는 의지가 되려고 하는데...
그녀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이선은 그녀의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뜨거운 납덩이가 되어 자기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72페이지)
아내가 있는 남자. 아내와의 사이는 좋지 못하다고 해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으로 그는 유부남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집에 와 있는 아내의 사촌 동생과 사랑에 빠졌다. 보통 이런 상황을 불륜이라 부른다. 아내는 매일 아프다고 누워있고, 그런 아내를 보는 일은 점점 힘들어진다. 한 번씩 아내가 병원에 갈 때마다 그는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아내가 아픈 것은 슬픈 일이고, 그런 아내의 병구완을 해야 하는 것도 그의 의무겠지만, 가난한 그에게 아내의 병원비를 충당하는 일은 힘들다. 그런데 아내는 무슨 작정이나 한 듯 그의 속을 한 번씩 긁으려고 작정하는 것처럼 어느 시기를 정해 병원에 간다. 이 정도면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인다. 무료하다 못해 벗어나고 싶은 일상일 거다. 나아지지 않는 형편과 깨진 독에 계속 부어야만 하는 물을 길어 나른다. 그게 행복한 뒷바라지가 되어야 하는데 그의 아내는 점점 그를 옭아매는 역할을 꿰찬다. 그런 아내의 눈에 매티와 이선의 사이가 보이지 않을 리 없다. 그들의 눈빛을 알아챈 듯하다.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치료를 핑계(?)로 삼아 매티를 내보내고 새로운 하녀를 들임으로써 이 분란을 종결시키고자 한다.
뻔하게 보이는 그림 속에서 얼핏 이선의 아내 지나의 시선에 이입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힘든 나를, 당신의 아내인 나를 버리고, 감히 다른 여자를 마음에 담아?' 은근히 괴롭히는 일. 나는 지나가 그런 일을 천부적으로 해내고 있다고 봤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편과 매티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거다. 여기서 한 가지. 보통의 경우라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이선과 매티를 욕해야 하는데, 작가의 능력인지 아니면 이선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은 건지,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그의 마음을 미워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 말고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가 하는 이 사랑을 함부로 욕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남자의 사랑이 가난 앞에서 절대 피어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피어오를 수 없다는 현실이 저절로 보여서다. 현실의 가난이 그의 사랑마저 빈곤하게 한다. 그는 많은 생각 끝에, 굳은 결심을 하고 아내를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그의 현실은 사랑하는 여인을 구원해줄, 사랑하는 여인을 따라갈 여비조차 없다는 것. 이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순간에, 매티와 눈이 마주치던 그때, 두 사람이 눈빛으로 주고받은 대화가 진심이었을 텐데, 그 선택마저 그의 편이 아닌 듯한 결말이다.
그 일(?)이 있었던 후로 이십여 년을 더 살아온 그다. 어느 날 그의 마을에 들어온 이방인인 화자의 시선으로 이 소설은 서술된다. 음침하고, 꼭꼭 가린 듯한 그의 삶에 초대된 화자는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한 남자의 서글프고 안타까운 인생, 사랑을 말한다. 이제까지 보아온 그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결말을 보진 못했는데, 정말 참담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삶을 절망적으로, 많은 부분이 고통스럽게 그려졌다. 그의 인생에 희망을 심어주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소설은 판타지가 되어버릴 것 같은 내 생각이 너무 부정적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의 상황이나 현재까지의 삶에서 다른 결말을 본다는 것도 기적에 가까울 테니...
살면서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겠지만, 그 현실에서 자기의 마음이 따르는 곳으로 가고 싶겠지만, 그때마다 괴로움을 동반할 수도 있다는 게, 그렇게 선택한 인생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이선의 인생에서 본 건 그런 거다. 그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칠 때마다, 마음을 뿜어내듯 뭔가를 작정하는 순간에도, 온전히 내 맘대로 살아지지는 않는 게 인생일 수 있다는 거. 그건 이선의 아내 지나도, 그의 사랑이었던 매티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들에게 이런 결말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누구를 편들 수도 없었던,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하는 소설이다.
가끔 예스에서 특가 화장품을 구입할때 마다 책을 두세권씩 구입한다.
읽을 책들이 쌓여 있기도 하고 딱히 읽고 싶은 책도 없어 이런 저런 구실로 특가도서를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100년 넘도록 꾸준한 독자가 있고 애절한 사랑이기란다.
100년 넘도록 꾸준한 독자란 한사람이 100년 동안 못 산다고 가정하면 그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거니 당장에 질렀다... 뉴잉글랜드의 농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내용은 고립된 젊은 청년 이선 프롬의 사랑 이야기다. 오래된 작품인 만큼 격렬한 사랑 행위의 묘사는 그 어디에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어 약간 실망했다.(크~써놓고 보니 환자같다)그래서 미국 사회도 처음부터 성에 대해 개방적이진 않았음을 알았다.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달음.
격렬한 행위 묘사가 없는 대신 섬세한 감정 묘사가 절정을 이루는 소설이다. 깊고 깊은 산골에 감미롭고 애처러운 사랑에 대한 감정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고통스럽다. 사랑하는 것이 즉 고통이며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풍선처럼 바람을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 오르는 기분이다. 안고 싶고 만지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들...또 끝없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게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일들일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다며 죽음을 택하는 이선과 매트.....
반전이 되는 결론을 보면 그래도 사랑할까?
작사가 남국인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더니 이런 결론을 두고 하는 말같다.
이 책 리뷰가 한건도 없다니...의아했다. 번역에도 약간?아니면 출판사의 오타?라고 생각되는 미심쩍은 부분이 몇군데 있었다.
이선 프롬
독일인의 사랑, 좁은 문 보다 짧은 소설이나 안타깝고 씁쓸한 느낌이 드는 내용이다.
격정을 못 이겨 전개된 사건이 아니다.
7년 연상의 사촌에게 처음부터 연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모친의 병 구환을 위해 도와주러 와서 모친의 장례를 치르고 혼자라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사촌에게 계속 머물러달라는 게 청혼이 되고 결혼. 애정을 키워가는 사이가 아니었고 물리적인 고독을 떨치려 한 사유로 결혼은 순탄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막상 결혼을 하고 활달한 것 같았던 부인은 말수도 줄어들고 병약해지고 집안일을 꾸려나가기도 벅차 부인의 사촌의 딸-사촌은 빚만 남겨놓고 죽어 충격으로 사촌의 부인도 사망한 후 재산 없이 혼자 남은-이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주인공 이선 프롬은 그녀에게 빠져든다.
주어진 환경에서 이선 프롬에게 탈출구이자 유일한 낙이 살림 도와주러 온 처조카 매티 실버.
부인이 매티 실버를 쫓아내던 날 즉흥적으로 이선 프롬은 함께 가출하려 하나 당장 무일푼으로 실행할 수도 없다. 바래다주는 길에 이선 프롬과 매티 실버가 일치하는 의견은 썰매를 타고 스피디하게 달려 경사진 곳 느릅나무를 들이받는 것이다.
신도 무심하시지. 지옥이든 천당이든 두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데 결과는 최악이다.
이선 프롬과 매티 실버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셋이 함께 살아야 한다.
이선 프롬은 경제적인 능력과 무관하게, 애정과 무관하게 두 여성을 돌봐야 하고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두 여인과 같은 방에서 기거해야 하며 가축처럼 일해야만 거의 풀칠할 수 있다.
話者는 처음 본 이선 프롬의 용모와 표정과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서 궁금하게 되어 주변에서 그의 과거를 알고자 하던 차에 눈보라로 어쩔 수 없이 이선 프롬의 집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고 이 소설은 끝맺게 된다.
한때 도시에서 대학을 다녔고 결혼 당시에도 일정기간 후엔 도시에서 살 거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그들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고향 스타크필드를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병약하거나 불구에 가까운 두 여인이 세상을 다할 때까지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어 여유로운 시간도 갖지 못한다.
부인과 대조적으로 병약하지 않고 친절하며 관심도 가져주는 젊은 아가씨와 헤어지기 싫어 즉흥적이었지만 극단적 생각을 선택한 결과, 그의 미래는 이만저만한 쪽박이 아니다.
그렇다고 젊은 여성과 깊은 육체적인 애정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었는데 결과는 가혹했다.
이 소설의 결과물로 우린 사유하고 나서 어떤 의견을 가져야 할까
결혼이란 일정기간 배양기를 거치면서 상대방을 탐색해야 하고 애정을 키워야 하지, 쓸쓸해서 혼자가 싫어서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는 바람직하지 않은 견해는 지워야 하겠다.
그런데….나는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학교도서관에서 조우하여 3년간 꽤 진지한 연애를 졸업하며 골인했었건만? 정답이 없네. 남녀간 사랑이란.
퓰리처 상을 수상한 ‘순수의 시대' 전에 쓰여진 ’이선 프롬(1911)‘은 작가 이디스 워튼이 매사추세츠의 고향에서 관찰한 뉴잉글랜드의 삶, 인물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가 나름대로 히트했고 잘 알려진 이유도 있겠지만 ‘순수의 시대’가 보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다면 이 소설은 좀 더 어둡고 뉴욕 최상류층의 삶보다는 평범한, 농부의 삶을 다뤘다.
여성 작가로서 (굳이 제인 오스틴과 비견할 필요는 없지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같은 작가가 영문학 강의에서 오스틴의 소설을 페어리테일이라고 평했다면 오스틴처럼 로맨스와 결혼을 중심 주제로 했지만 큰 차이는 워튼의 소설은 그 페어리테일과 같은 면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선 프롬은 중편이지만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높이 평가받는 만큼 짧은 시간을 내서 진가를 경험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