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읽고 큰 충격아닌 충격을 받았던 책, 카프카의 변신을 다시 만나 보았다.
프란츠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 출신의 유대계 독일인으로 자수성가한 상인이다.
하지만 독선적인 아버지와의 불화와 생활 전선에 있었던 어머니 때문에 남의 손에 키워졌던 성장 과정, 그리고 동생들의 잇단 죽음 등으로 카프카는 병약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카프카는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에 흥미를 가졌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학을 전공했더랬다. 그러나 변호사는 되기 싫어 저녁이나 밤중에 틈틈이 글을 써 나간다. 이러한 그의 여건은 하루키의 그것과 닮아 있기도 하다.
카프카의 <변신> 이후의 내용을 그린 듯한 하루키의 단편 '사랑스러운 잠자'를 쓴 것을 보면
그 역시 카프카를 남달리 생각한 게 아닐까. 불안과 우울, 절망 등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와
주인공 그레고르의 시각에 비쳐진 창밖의 흐린 풍경은 어쩌면 카프카 자신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 게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어쩌면 모든 짐을 내려놓고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한켠에 있었나 보다...가족의 빚과 여동생의 학비라는 짐, 하루종일 일만 하는 삶, 가족도 회사 사람도 그레고르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고된 일에서는 벗어나는 대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상처가 덧나 않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것이 가족이라는 점, 여기에서도 그레고르의 삶에 투영된 카프카의 마음이 보여 애잔하고 슬펐다..
게다가 그레고르가 없이도 가족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이며 끝맺은 결말이 더 서글펐다.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 속에서 무력한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추구했던 카프카.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책을 덮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에 잠겨 본다..
체코 프라하 카프카 박물관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아도 여러번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런 책들은 다른 사람의 권유이기보다는 내가 원해서 읽는 일이 많다. <변신>은 청소년기 이후에 여러번 읽은 책중 하나이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언제 읽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작년에 읽은 책임에도 다시 읽으면서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변신. 한번쯤 사람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 여러번 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한것이 생각난다. 이렇듯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길 상상하지만 흉측한 벌레로 다시 태어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벌레가 아니더라도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다른 생명으로 변해있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평범한 샐러리맨 그레고르 잠자의 변한 모습을 보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충격을 받는다. 가족들의 충격은 더 크다.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된 엄마는 사람 살리라며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이런 상황과 마주한다면 우리들은 자신있게 흉측한 벌레를 보듬어주며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정말 현실적인 반응들이기에 우리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지 모른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 잠자가 그런 모습으로 변했으니 그레고르 잠자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생활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슬픈 현실이다. 그렇지만 모습은 변했더라도 자신의 아들이자 오빠인 그레고르 잠자를 잘 보살펴 준다. 하지만 나중에는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린다.
가족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지언정 품어주는 것이 가족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견딜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 사람들은 삶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흉칙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자바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가족이 아닌 것일까. 이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일까. 가족조차 외면할수 밖에 없는 현실일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의문을 가진다. 열심히 살았지만 그레고르처럼 벌레로 죽어갈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몸은 흉측한 벌레로 변했지만 분명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란스럽다. 벌레의 몸으로 인간의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일까? 생각이 먼저인 것인지, 몸이 먼저인 것인지 그레고르 잠자조차 혼란스럽다. 더 슬픈건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같은 내용의 책을 나라는 같은 사람이 읽지만 매번 읽을때마다 느낌은 달라진다. 학창시절 처음 읽었을때는 단순히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하고 결국엔 가족들에게 버려진다는 피상적인 내용들이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날때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이 작품에 미친 영향까지 들여다 보게된다. 물론 지금도 온전히 내가 그레고르 잠자와 프란츠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몇 년이 흘러 다시 변신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에게는 기분 좋은 숙제로 남은 책이다.
사실 원래 계획은 [이방인]을 읽은 다음에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는 거였다.
그런데 [이방인]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읽고 싶어졌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이 워낙 분량이 방대하다보니 숨고르기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내 스스로 곰곰이 내 의식의 흐름을 살펴보니 [이방인] 이후 [변신]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대교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으며,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프라하에서 태어났으나 체코인도 아니었다.
또한 관청에 직을 가졌으나 순수한 관리도 아니었으며 완전한 작가 생활도 하지 못했다.
시민 계급도 노동자 계급도 아닌 카프카는 아무 세계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이방인이었다.
이러한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와 인간의 모습이 그의 소설의 전부다.
- 작품해설 中에서
사실 '고전'이라고 명명되는 소설들은 워낙에 많은 출판사들에서 번역이 되어져서 어떤 판본을 고르느냐도 참 중요하다. 엉성하게 번역된 책을 읽는 것처럼 고역도 없기 때문이다.
문득 고전들을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어려움이 그거였다. 판본 고르기. 더군다나 온라인에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책을 고르려면 그 점이 참 힘들다.
그런데 소위 '고전'이라는 것들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는 건데,
예전보다 글들이 쉽게 잘 읽힌다.
내가 운좋게 잘 된 번역본을 골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구...
나이를 헛먹지는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세월이 선물해 준 삶의 연륜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짧은 리뷰 하나 쓰기도 쉽지 않은 것 역시
나이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과 [변신]을 읽고 뭔가 흔적을 남기고는 싶은데, 선뜻 리뷰를 남길 엄두는 나지 않아서 [변신]의 작품 해설 중 일부분을 인용해보았다.
뫼르소가 느꼈을 그것,
카프카가 느꼈을 그것,
그레고르가 느꼈을 그것,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그것을
일정 부분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후기는 문예 출판사에서 출판하고 프란츠카프카가 쓴 [eBook] [ [eBook] [대여] 변신·시골의사 - 문예 세계문학선 020 를 읽고 작성하는 후기 입니다. 평소에 고전에 관심이 있긴 했는데 왠지 어려운 이 책은 어려운 책 같아서 쉽게 읽어 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표지가 좀 징그러워서 장벽 이었구요. 생각만큼 난해하거나 어렵지는 않아서 잘 읽었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