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문학을 읽는다. 나는 예전에 고전 문학들을 읽었고,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다.
그래도 내가 고전 문학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문체와 생각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해했던 고전들을 다시 만나면 반갑고 더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원래 이런 내용이었어? 하는 의문들이 더 많아진다.
테스. 이 책을 만나기전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나스타샤 킨스킨 주연의 테스라는 영화였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청초하고 아름다워서 책받침으로 코팅해서 가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창가에 기대어 어딘가를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났고, 그 영화로 인해 책을 읽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중학교 2학년때였던가? 그 책을 읽었던 것이... 그로 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책은 나에게 참 어렵게 다가온다. 간단히 사랑이라는 주제로 리뷰를 작성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쓰고 있는 지금도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모르겠다.
몰락한 가문의 가난한 집 장녀. 무능한 아버지와 대책없이 낙천적인 엄마. 그리고 줄줄이 사탕인 동생들. 집안 살림이 어려워지자 테스는 더버빌가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알렉을 만난다. 테스를 본 알렉은 그녀에게 반해 추근대지만 테스는 어렴도 없다. 그런 테스를 알렉은 힘으로 범하게 되고, 모든 것에 의욕이 떨어진 테스는 집으로 돌아온다. 주변 사람들의 수근거림에도 침묵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테스는 고향에서 떨어진 목장으로 돈을 벌러간다. 그곳에서 목사의 아들 엔젤 클레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후 엔젤이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자 테스 또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순결하지 못한 테스를 용서하지 못하고 엔젤은 브라질로 떠나고 테스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에서 조용히 보내던 어느날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테스는 다른 농장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알렉을 만난 테스는 그와 함께 고급아파트에서 살고 그녀의 가족도 그의 덕을 보게 된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엔젤은 자신이 테스를 사랑했음을 알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다시 재회한 엔젤과 테스... 다시 그들이 가까워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읽으면서 두 부분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한 가지는 가난한 집 장녀라는 그 무게가 그녀를 이렇게 내몬 것은 아닌지 가족들에게 화가 났고, 또 한 가지는 엔젤의 사랑 때문에 화가 났다.
우리 어머니 시절엔 장녀를 희생 시키고(혹은 딸들을) 장남들이 대학을 가곤 했다. 지금은 없어져 버린 이름... 식모 살이 부터 시작해 공장, 재봉질. 돈이 되는 곳엔 어디든 나이 어린 그녀들이 가서 일을 하곤했다. 그녀들 덕에 줄줄이 사탕으로 동생들은 학교엘 가고 대학엘 갔다.
테스의 예쁜 외모를 이용해(?) 부잣집으로 결혼시키려는 테스의 엄마를 보면서 욕지기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난한 집에서 예쁜 외모는 어쩜...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테스에게 당연하듯 돈을 요구하는 엄마는 테스의 인생을, 그녀의 아픔을 생각해 본적은 있었을까?
그리고 엔젤의 사랑... 우리는 사랑이라 말할때 그사람의 전체를 사랑한다고 하지 일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1시간 전까지 사랑하던 사람을, 사랑했던 마음을 순결하지 않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마음을 싹 거둬들일 수 있을까? 분명 방황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 아파할 수 있다. 하지만... 모르겠다.
그 당시엔 그게 당연한 것인지... 이젠 세상은 변했고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그 당시와 같지 않다. 남자보다 여자가 사랑에 더 당당 할 수 있고, 더 솔직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도 사랑은 그래도 어렵다. 어느 것 하나 정답이 없기에 어렵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알렉을 죽이면서까지 엔젤을 사랑한 테스를 내 이기적인 생각으론 모르겠다.
얼마나 사랑해야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다만 그 당시 테스를 지지하느냐? 지지 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니...
얼마나 파격적이었는지는 짐작이 간다.
육체적 순결과 정신적 순결. 그 당시 작가는 정신적 순결이 우위에 있다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쉽지 않은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
테스는 많은 요소들이 얽혀서 한 여자의 일생이 비극적으로 치닫게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단적으로 불행한 일만 겹쳐 일어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사회의 위선과 편견이 지금까지도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테스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주인공 테스를 중심으로 알렉과 에인젤이라는 두 남자가 나오는데, 두 남자는 테스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성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한 여인을 농락하고 끝내 미련스러운 욕심을 버리지 못한 알렉이, 어쩌면 테스를 불행하게 만든 가장 큰 요소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남편 에인젤과 그녀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부모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허울밖에 남지 않은 '신분'을 등에 업고 테스를 질이 좋지 않은 친척 '알렉'에게 보낸다. 그러고는 딸의 희생과 불행한 상황을 신경 쓰기보다는 눈앞의 물질적인 부분이 채워지는 것에 눈이 멀어 그녀를 더욱 곤란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또한 그녀가 처녀성을 빼앗기고 버림받은 것을 알자,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가문에 먹칠을 했다며 수치스럽게 생각을 하는데, 결국 테스는 남들의 눈총과 남과 같은 가족의 눈총을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게 된다. 이기적인 가족애와 허영심이 테스를 또 다른 불행으로 이끌어 버린 것이다.
그녀의 또 다른 불행은 나중에 남편이 되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하는 에인젤이라는 캐릭터다. 그는 이상적인 사랑을 속삭이고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처녀성을 잃은 여자인 것을 알자 그녀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지 못한 체 그녀를 떠나버리고 만다.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사랑을 아는 남자로 나오지만, 테스의 진정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떠난 에인젤. 결국 비열하고 위선적이기는 테스의 몸과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갖던 알렉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진정으로 에인젤의 사랑을 믿었던 테스는 순정의 마음으로 자신이 용서 받길 기다린다. 그녀는 끝까지 사랑을 믿고 불행한 운명에 저항하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그녀를 또 다른 고통 속- 죽음으로 밀어낸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남녀관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면서 사회의 잘못된 허영심과 편견- 이기심, 위선을 꼬집어 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문제점이 이 소설이 쓰인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면 알 수가 있다.
단순히 요즘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만 보아도 테스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그저 재미로 보고 흘려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드라마 속에 나타난 사회적 문제를 저도 모르게 학습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비열한 것들이 결국 아무렇지 않은 익숙한 것이 되어버리고, 몸에 배어서 잘못된 인습으로 계속해서 남는다면 우리는 또 다른 테스를 현실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토머스 하디는 불행한 운명의 여인을 통해서 현실의 아픔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테스' 이야기는 현실에 충분히 존재하고 있을 법한 '테스'를 향한 위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