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 Lab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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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리뷰 총점 9.2 (35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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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 과학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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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랩 걸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k******4 | 2018.09.17 리뷰제목
랩 걸호프 자런/김희정알마출판사/2018.1.24.sanbaram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열대우림이 점차 사라지고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기후변화가 인류 최대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도 세계 곳곳에 슈퍼태풍이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 변화의 한 사례에 해당된다. 그 모든 것의 기저에 식물이 있다. 식물은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영양분을 만드는
리뷰제목

랩 걸

호프 자런/김희정

알마출판사/2018.1.24.

sanbaram

 

지구의 허파라고 하는 열대우림이 점차 사라지고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많아지면서 기후변화가 인류 최대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요즘도 세계 곳곳에 슈퍼태풍이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 변화의 한 사례에 해당된다. 그 모든 것의 기저에 식물이 있다. 식물은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영양분을 만드는데 활용하기에 줄여주고 산소를 공급해준다. 이런 식물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과학자들도 큰돈이 되지 않는 연구에 열정을 쏟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랩 걸은 제목처럼 실험실 여성이라는 뜻이다. 성차별을 이겨내고 과학계에서 식물관련 연구로 일가를 이루기까지의 이야기다. 호프 자런은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조지아 공과대학과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부교수로 재직했다. 폴브라이트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로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 랩 걸을 통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현재 오슬로대학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랩 걸 과학계의 심한 여성차별을 딛고 온 힘을 다해 식물연구 과학자로 자란 한 여성의 삶과 사랑,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담은 자전적 기록이다. 3부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말없는 가정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 실험실을 놀이터로 알고 자라면서 생각한 일과,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병원의 약국에서 아르바이트 경험과 지도교수의 조수로 활동하며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외톨이로 공부하는 빌을 만난다. 2부에서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조지아 공대에서 첫 식물학교수 생활을 시작하며 어려움을 겪는다. 함께하는 빌도 중고트럭과 실험실을 전전하며 힘겹게 생활한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씩 운전하여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왕복하는 등 열정을 쏟았지만 힘겨운 생활을 못 벗어난다. 그러다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빌은 어려서 오른손가락 몇 개를 사고로 잃어서 외톨이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찾은 안식처가 그를 인정해 주는 저자다. 3부에서는 모임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된 클린트가 알고 보니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서로의 일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되어 결혼을 했다. 임신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과학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었고, 힘겹게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노르웨이를 거쳐 하와이로 이사를 했다. 아이는 자라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저자 또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숲에 들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이로 자란 큰 나무들을 올려다볼 것이다. 그러나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드물다. 발자국 하나마다 수백 개의 씨앗이 살아서 기다리고 있는 데도 말이다.(p.50)” 그 씨앗 중 절반 이상은 모두 자기가 기다리던 신호가 오기 전에 죽고 말 것이고, 이 모든 죽음은 이렇다 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머리 위로 우뚝 솟은 자작나무 한 그루당 매년 적어도 25만 개의 씨앗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기 전 적어도 1년은 기다린다. 체리 씨앗은 아무 문제없이 100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각각의 씨앗이 정확히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그 씨앗만이 안다. 온도와 수분, 빛의 적절한 조합과 다른 많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는 신호가 있어야 싹을 틔운다고 저자는 말한다.

 

씨는 닻을 내리자마자 우선순위를 바꿔, 모든 에너지를 위로 뻗어 올라가는 데에 집중한다. 보유하고 있던 영양분은 거의 다 바닥이 났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료를 확보하려면 빛이 절실하다. 숲에서 가장 작은 식물이니 자기 위에 있는 모든 식물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내내 그늘이라는 비참한 환경까지 견뎌내야 한다.(p.96)” 주근은 곁뿌리를 내보내 옆에 서 있는 다른 식물들의 뿌리와 얽혀서 위험 신호를 주고받는다. 시냅스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뉴런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뿌리 시스템 즉 뿌리의 표면적을 모두 합하면 이파리 면적을 모두 합한 것의 100배가 넘는 경우가 많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제거해도 멀쩡한 뿌리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의 식물들은 다시 자라난다. 그리고 그런 회생은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반복된다.

 

떡갈나무 한 그루에서 나는 수십만 개의 이파리 중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사실 어떤 잎은 다른 잎의 두 배 정도 크기인 것들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떡갈나무 잎은 완벽하지 않고 대충 그려진 청사진 한 장을 가장 독특하게 응용한 것이다. (p.96)” 잎은 중록맥이라고 부르는, 가운데 잎맥에 있는 일련의 세포를 확대하며 자란다. 주변에 있는 단세포들은 언제 분열을 중단할지를 독립적으로 결정한다. 말단에서 작은 잎맥들이 발달하면서 형성되다가 줄기에서 완성된다. 이파리 만들기를 완수하고 나면 당을 아래로 보내서 뿌리를 더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란 뿌리는 물을 더 많이 끌어올려서 새로운 이파리를 키우고, 새 이파리들은 당을 더 많이 만들어 내려 보내고, 이런 식으로 4억년이 흘렀다.

 

모든 식물은 두 가지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나는 위에서 오는 빛,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래에 흐르는 물이다. 두 식물 사이의 경쟁은 한 가지 동작으로 결정된다. 더 높이 뻗는 동시에 더 깊이 파고드는 것.(p.116)” 이런 전투가 벌어졌을 때 목재가 얼마나 큰 무기가 될지 생각해보자. 빳빳하지만 탄력성이 있고, 강하지만 가벼운 물질이 이파리와 뿌리를 따로 분리시키고, 연결하며 지탱해주는 장점을 지니는 것이 바로 목재다. 그렇게 해서 나무들은 햇빛과 물을 향한 경기에서 4억 년 이상 압도적 승리를 거둬왔다.

 

각각의 이파리를 따로따로 띄워두는 방법으로 나무는 자신의 표면을 일종의 사다리처럼 만들어 빛이 속속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면 어느 나무든 위쪽에 달린 이파리들은 아래쪽에 달린 이파리들보다 평균적으로 크기가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람이 불어서 위쪽에 달린 이파리들을 움직이면 아래쪽에 햇빛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p.173)” 아래쪽에 달린 이파리들의 녹색이 더 진하다. 햇빛을 흡수하는 색소가 더 많이 들어 있어서 그림자를 뚫고 들어온 더 약한 빛을 흡수하도록 도와준다. 이파리를 만들어 낼 때, 나무는 각각의 이파리에 대해 개별적으로 예산을 세우고, 다른 이파리의 위치를 고려해서 각각의 이파리가 위치할 장소도 정해야 한다.

 

유카립투스가 발산하는 휘발성 유기 화합물은 잎이나 나무껍질에 상처가 났을 때 감염을 방지해서 건강하게 유지하는 소독약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휘발성 유기 화합물에는 질소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다.(p.238)” 나무가 휘발성 유기 화합물을 대량으로 뿜어내도 그다지 손해 볼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코가 감지하는 유칼립투스 특유의 향기 같은 것이 존재한다.

 

긴 겨울 여행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들은 경화과정을 거친다. 먼저 세포벽의 투과성이 극적으로 증가해서 순수한 물은 흘러나오고 세포 안에 남은 당, 단백질, 산이 농축된다. 이 화학물질들은 효과적인 부동액 역할을 해서 온도가 0도보다 훨씬 더 떨어져도 세포 안에 든 액체는 시럽 같은 액체 상태가 유지된다. 세포들 사이의 공간은 세포에서 나온 고도로 정제된 물로 채워지는데, 이 물은 너무도 순수한 상태여서 여기엔 얼음 결정의 핵이 돼서 자라도록 하는, 혼자 떨어져 돌아다니는 원자가 하나도 없다.(p.275)” 얼음은 분자가 3차원적인 결정을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에 얼음이 생기려면 핵, 즉 모종의 화학적 돌연변이가 있어야 그것을 기초로 얼음 결정이 쌓아올려지는 것이다. 핵이 될 만한 디딤돌이 전혀 없는 순수한 물은 영하 40도까지 초냉각을 해도 얼음이 없는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일부분은 화학물질로 가득 채우고, 또 다른 부분은 완전히 순수한 상태로 유지하는 경화과정을 거쳐 중무장하고 나무는 겨울 여행을 떠나 서리, 진눈깨비, 눈 폭풍을 견뎌낸다. 나무들은 겨울 동안 자라지 않는다. 순환주기 중 빛이 존재하는 시간이 감소하는 것을 감지해서 낮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알고, 월동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해는 온화했다가 한 해는 혹독했다가 하는 식으로 겨울 기온은 변덕을 부리더라도 가을에 낮이 짧아지는 변화는 해마다 똑같다.

 

다 자란 나무는 대부분의 물을 똑바로 뻗어 내려가는 곧은 뿌리를 통해서 공급받는다. 땅 표면 가까이 자리 잡은 뿌리는 가로로 자라면서 그물 같은 짜임을 만들어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방지한다. 이 얕은 뿌리들은 또 건조한 흙으로 수분을 흘려보낸다. 특히 해가 지고 이파리들이 활발하게 땀을 흘리지 않을 때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p.328)” 다 자란 단풍나무는 밤새 수동적으로 깊은 곳에 흡수한 물을 얕은 뿌리를 통해 흘려보내 물을 재배치한다. 이런 큰 나무들 근처에 사는 작은 나무들은 필요한 물의 절반 이상을 이렇게 재활용된 물에서 얻는다.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인류 문명은 4억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단 세 가지로 즉, 식량, 의약품, 목재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버렸다. 우리의 끊임없고 점점 더 거세지는 집착으로 인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p.399)” 이 황폐의 규모는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 재해가 미친 피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자연파괴를 멈추지 않는다. 좀 더 편리함과 호화로움을 찾아 나무를 벌목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이제는 조절하여 자연과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식물과 생태계, 인류의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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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여성 연구자로 산다는 것!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i*****n | 2019.06.10 리뷰제목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대체로 애초에 그 직업을 선택하고자 노력해서 결실을 이룬 경우도 있을 터이고,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직업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바로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경우
리뷰제목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경우 대체로 애초에 그 직업을 선택하고자 노력해서 결실을 이룬 경우도 있을 터이고, 혹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직업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는 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바로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한 식물학자의 자전적인 삶의 기록이다. <랩걸이라는 제목은 실험실(laboratory)’여성(girl)’을 결합하여 만든 단어로,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는 여성 과학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지식소매상을 자처한 유시민이, 이 책을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선택한 자신의 딸에게 권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이후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돌려놓고 있었다. 지난 겨울 구입을 하고, 한동안 이 책을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읽기 시작하면서, 유시민이 본격적인 학문의 길에 접어든 딸에게 권하고 싶은 것으로 왜 이 책을 거론했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이 책에는 식물학자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여 학자로 성장하고, 또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삶과 학자로서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었다.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나 역시 학자로서의 길을 가고 있기에, 더더욱 연구자로서의 저자의 생각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깊이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운 유려한 문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지닌 강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던 저자의 어린 시절의 삶이 현재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은 자명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뒤늦게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자는 처음에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으로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좇아 과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실험실의 삶의 선택하여 식물학을 연구하는 학자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 책의 속표지 뒷면에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을 어머니께 바치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나는 그 표현에는 저자가 어머니로부터 배웠던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재능으로 인해서, 과학자로서의 자전적인 삶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목차에도 식물학자로서의 저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저자의 서문이라 할 수 있는 프롤로그에 이어, 전체 3부로 구성된 목차는 식물의 성장 과정에 빚대어 있기 때문이다. ‘1부 뿌리와 이파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식물학자로서 자리를 잡는 과정과 대학 교수로 출발하는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후 ‘2부 나무와 옹이에서는 26세에 조지아 공대의 교수로 부임하여, 실험실을 꾸리고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성과와 시련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3부 꽃과 열매에서는 존스홉킨스 대학을 거쳐 하와이 대학에 정착하기까지의 연구자로서 확고한 위치를 마련하고, 클린트와의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을 이룬 현재의 상황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연구 파트너로서 과의 만남과 우정은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여겨진다. 대학원 시절 만난 친구 과의 인연은 저자에게 연구자로서 저자의 경력에 있어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자, 믿음직한 동료라는 사실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연구자에게 있어 동료 학자들은 때로는 가족과 다른 의미의, 끈끈한 관계로 맺어진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저자가 학자로서 성장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의 상당 부분은 연구 파트너인 의 몫이 무시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저자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줄지는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안정적인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겼던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리뷰의 결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나는 남의 말을 듣는 데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을 잘 한다. 나는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고, 단순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한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해낸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다. ...... 그런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내가 여성 과학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도대체 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따라서 상황이 닥치면 그때그때 내가 무엇인지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동료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도 그들에게 충고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음 두 문장을 되뇐다. ‘이 일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할 때를 빼고.’”(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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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자서전 & 과학서] 랩걸 Lab Girl 평점10점 | n******6 | 2018.07.26 리뷰제목
[자서전 & 과학서] 랩걸 Lab Girl 발행: 2017년 2월 / 분량: 410쪽저자: 호프 자런 / 옮긴이: 김희정분류: 과학자 자서전 & 나무 이야기출판: 알마 출판사표지그림: 신혜우 / 디자인: 안지미 허성준 이 책은 실험실 소녀가 큰 나무와 같은 과학자로 성공한 이야기와 나무에 관한 실험과 식물을 둘러싼 과학적인 정보가 맞물려 있다. 나무의 꿈을 꾸는 씨앗과 꽃이 곧 저자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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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 과학서] 랩걸 Lab Girl

 

발행: 20172/ 분량: 410

저자: 호프 자런 / 옮긴이: 김희정

분류: 과학자 자서전 & 나무 이야기

출판: 알마 출판사

표지그림: 신혜우 / 디자인: 안지미 허성준

 

이 책은 실험실 소녀가 큰 나무와 같은 과학자로 성공한 이야기와 나무에 관한 실험과 식물을 둘러싼 과학적인 정보가 맞물려 있다. 나무의 꿈을 꾸는 씨앗과 꽃이 곧 저자의 삶과 사랑, 과학에의 순수한 열정으로 비유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자서전으로도 과학서로도 동시에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저자 호프 자런은 1969년 미네소타 오스틴에서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나무처럼 성장하였다. 그녀는 풀브라이트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이다. 그렇게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 바로 랩걸이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작가로서의 재능도 인정을 받았다. 2016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그녀는 현재 오슬로 대학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날마다 나무를 보고, 나무가 하는 일을 보면서 세상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도록 노력하는 일. 나무가 무엇을 하려고 애쓰는가, 나무의 소원은 무엇일까, 무엇을 좋아할까, 나무에게 말을 걸고 웃어 주고, 사진을 찍고, 이파리 개수를 세워 보는 일. 소리 내어 이야기하고 글로 적어보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계속 계속 나무 관해 이야기하고, 날마다 벌어지는 나무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

그렇게 저자는 책을 통해서 자신이 나무에게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들을 우리 독자도 같이 하자고 권하고 있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어머니께 바치는 것이다

 

어머니께 바치는 이 글은 그 뿌리가 어머니로부터 나왔다는 말로 들린다.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성장했지만. 그래도 그 토양과 씨앗은 어머니로부터 거름이 되어 나왔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녀가 과학자로 성장한 이야기는 3부로 나뉘어져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나무의 생애와 입체적으로 맞물려 있기도 하다.

 

[1부 뿌리와 이파리]

 

나무_

팽나무는 씨를 키우고 그 주변에 그물을 씌우고, 그 그물을 뼈대 같은 걸로 감싼 다음, 사이사이 난 구멍을 복숭아씨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물질로 채웠다. 그렇게 해서 씨를 보호해서 싹을 틔우고, 결국 나무로 자랄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나무는 또 그렇게 씨앗들에서 장기적 기후 정보를 캐내려는 데 있어 이레이스 같은 하얀 격자 창살들이야말로 귀한 정보가 든 금고임에 틀림없었다. 씨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 요소인 이 격자 창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102)

 

_

그곳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우리만이 열쇠를 갖고 있는 우리의 첫 실험실이었다. 작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것이었다. 나는 그 텅 빈 방을 우리가 언제나 계획하고 꿈꿔왔을 실험실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본 빌의 눈에 감탄했다. 과가의 꿈과 현재의 현실 사이에 커다란 격차가 있었지만 그는 우리의 새 삶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도 그 삶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133)

 

나무의 씨를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 요소인 격자 창살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첫 관문이었다면. (저자/호프 자런)가 현재의 현실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삶 자체를 받아들이고 열정을 쏟는 일이 그녀가 과학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뿌리요, 이파리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2부 나무와 옹이]

 

나무_

4억 년에 걸친 식물과 곤충 사이의 전쟁에서 양쪽은 얼마간 피해를 입었다. 1977, 워싱턴 주 킹 카운티에 있는 주립대학 연구용 숲은 곤충의 습격을 받아 완전히 폐허가 됐다. 공격에 앞장선 것은 텐트나방 애벌레들이었다. 잔혹하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전사들인 텐트나방 애벌레들은 나무 몇 그루의 이파리들을 남김 없이 먹어치우고 다른 많은 나무들도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피해를 준 다음 그 지역에서 여러 종류의 활엽수 나무종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드는 현상을 촉발시켰다. 전투에서는 패배해도 전쟁에서는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나무들의 역사를 보면 그 사실이 너무도 극명히 나타난다. (239)

 

_

나는 또 실존적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작은 소녀였을 적부터 나는 진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에 마침내 가까워졌는데 모든 것을 잃을 위험에 빠진 것이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데 바쳤다. 그러나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않은 밤샘 작업은 상황을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245)

 

실험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악몽에 시달리고, 여성 과학자에게는 더더욱 열악한 현실의 조건들이 마치 나무에 발생하는 병충해 같았다. 그런데도 마치 나무처럼 그것은 더 단단한 옹이가 되었고. 교수가 된 후 몇 해 동안 겪은 실패들이 그녀를 견고하게 만들고 실천 의지를 더욱 강하게 확립시켰다고 할 수 있다.

 

[3부 꽃과 열매]

 

나무_

식물을 다루다 보면 자주 겪는 일이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식물은 반으로 갈라놔도 뿌리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따. 위를 모두 잘라낸 나무의 둥치는 다시 온전한 나무로 자라기 위한 시도를 매년 하고 또 한다. 둥치의 안쪽은 잠든 싹으로 가득하다. 겉에서 보는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되는 싹들이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싹은 줄기로, 줄기는 잔가지로, 그중 운이 좋은 잔가지는 굵은 가지로 크고, 건강한 굵은 가지는 몇십 년을 버티면서 결국 이전만큼 녹음이 우거진 나무로 성장한다. 어쩌면 누군가가 베어버리려고 한 것 때문에 더 우거진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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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처음으로 피로감이 몰려온다. 쉬지 않고 48시간 내내 일을 하면서 새로운 데이터를 만날 때마다 피곤이 풀리고 감전된 것처럼 머리에 새로운 자극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로 곧잘 이어지던 예전의 긴 주말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여전히 연구에 관해 새로운 제안을 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예전보다 더 풍부하고 깊은 아이디어들이고, 그리고 앉아 있을 때 제일 많이 떠오른다. 그런 제안과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 확률도 더 놓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나는 초록색의 무언가를 집어들고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 씨를 좀더 심는다. 그 일은 내가 할 줄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387)

 

나무의 둥치 안쪽에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싹들이 있듯이. 저자에게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꿈틀 대고 있다. 초록색의 씨앗과 나무들을 더 많이 오래 볼수록 더 많이 생성되는 아이디어들.

 

내게는 어디에 그런 아이디어 씨앗이 존재할까 

 

이렇게 책을 덮고, 질문을 던지고, 주위를 둘러 본다. 당장은 찾지 못하겠다. 그러나 꾸준히 찾는 노력을 해야겠다.

 

그리고 함께 실험실에서 살다시피하는 나와 빌의 관계. 둘은 한마디로 현실의 삶을 함께 하는 동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또 함께 성장하는 우애 깊은 동지. 나는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면서 또한 성심성의껏 응원하는 바이다.

 

[사족]

표지의 그림이 너무 맘에 든다. 이런 식물세밀화가 내용 곳곳에서도 등장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점이 좀 아쉽다. 글만 있어서..

 

 

 

...

 

9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9 댓글 12
종이책 구매 랩걸 Lab Girl 평점10점 | o********o | 2018.12.23 리뷰제목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비밀이 존재한다. 우주의 비밀, 지구의 비밀, 인생의 비밀, 식물의 비밀,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비밀에 대부분 호기심을 갖지만 뛰어들어 알아내고 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또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처음 가졌던 경이로운 마음을 끝까지 갖는 사람도 드물다. 알면 실망하거나, 별개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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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비밀이 존재한다. 우주의 비밀, 지구의 비밀, 인생의 비밀, 식물의 비밀,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비밀에 대부분 호기심을 갖지만 뛰어들어 알아내고 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또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처음 가졌던 경이로운 마음을 끝까지 갖는 사람도 드물다. 알면 실망하거나, 별개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나 한다. 작은 비밀 하나하나를 알아가며 매번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과학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알쓸신잡에서 진공 상태에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같은 속도로 낙하한다는 것이 아름답지 않나요? 하던 과학자가 떠오른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어서 세상의 비밀을 알 때마다 크든 작든 대가를 치뤄야 한다. 세상의 비밀을 알아내 본 사람은 이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맞바꾸거나, 잃거나, 상처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또 꼭 나쁜 것이 아니어서 그것으로부터 더 큰 것을 얻게 되기 마련인데 그것은 알쓸신잡처럼 알아봐야 소용에 닿는 것이 아니어서 내가 가진 것과 맞바꿀만 했나 싶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세상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내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믿어왔다. 알게 되었고, 엄청난 일이었고 더 이상은 알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므로 끝까지 그 길을 갈 필요는 없다. 호프 자런과 빌은 나와 달라서 무엇을 내주었는지 저울질하지 않고 오로지 그 길을 간다. 자런과 빌은 병증을 앓는다. 조울증을 앓고 몇 시간씩 지속되는 두통을 앓는다. 보통의 사람이면 이쯤되면 이 일이 나를 망쳐버릴 것같은 두려움에 놓아버릴테지만, 이 둘은 그 품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몇 날 며칠 땅을 파거나, 몇 날 며칠 비를 맞으며 이끼 채집을 하거나, 우리같은 비과학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그렇게 몇 날 며칠, 몇 년을 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듯 보인다. 생을 다하는 날까지. 자런은 2009년에 마흔이 되었다면 2018년엔 49세이고 내년에는 쉰이 된다. 교수로 일한지는 2019년엔 24년이 된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빌과 자런은 사과나무를 심을 사람으로 보인다. <랩 걸>은 호프 자런의 자서전이지만, 읽는 동안 문학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픽션의 세계와 논픽션의 세계를 혼동하게 하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난과 고통의 연속인데 이야기는 우울하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래서 꽤 성공적으로 보이는 이 둘의 삶을 보고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 혹은 청소년이 이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십리밖으로 도망칠 것 같은, 읽기에는 재밌지만, 그 길을 가지는 못할 그런 삶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정말 훌륭한 과학자가 될 것이라 여겨지는 그런 삶이다. 내게 사랑하는 조카가 한 명있는데 나는 이 아이가 이런 험난한 삶을 가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무탈하고 가늘고 길게 사는 인생을 바란다. 그런데 올케는 조카를 과학고등학교를 목표로 키우고 있다. 유치원생 때 고생물학자를 잠깐, 아주 잠깐 꿈꾸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유투브 동영상만 뒤져보는 아이인데 말이다. 올케에게 이 책을 쥐어 줘도 아이가 고생물학자나 다른 과학자가 되기를 바랄까 싶다. 모든 꿈에는 지구력과 끈기가 필요하겠지만, 자런이 가는 길은 일반적인 꿈의 서너 배의 지구력과 투지, 끈기와 집념을 요하는 것 같다. 그것을 방해하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말이다. 대부분의 꿈이라 불리는 직업은 그것이 된 순간 모든 것을 얻는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라는 꿈은 노벨상을 받는다해도 끝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난 내 조카가 그렇게 평생을 분투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랩 걸>을 읽고 어떤 노력에 대한 보상이나, 고난과 역경을 뚫고 그에 빛나는 대가를 보란 듯이 아이들에게 가르칠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과학자가 되려한다면 이런 길을 감수하며 가야 하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너는 이 정도의 반만 노력해도 되는 무난한고 안정된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이런 인생을 겪지 않기를 바라. 안그래도 삶을 충분히 힘들다. 재미있게 읽은 <랩 걸>에 대한 내 감정이 이런 것이라는 것에 나도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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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랩걸, 과학자 또는 여성과학자, 그리고 직업으로서 과학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n*****m | 2019.06.08 리뷰제목
“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예쁘지도 밉지도 않다. 머리카락은 딱 금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닌데 최근 들어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눈동자마저도 녹색이 아니고 갈색도 아니다. 내 모든 것이 헤이즐넛 색이다. 제대로 된 여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남자보다 조금 부족한 존재라는 이 지루하고도 잘못된 믿음을 완전히 영원히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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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예쁘지도 밉지도 않다. 머리카락은 딱 금색도 아니고 갈색도 아닌데 최근 들어 흰머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눈동자마저도 녹색이 아니고 갈색도 아니다. 내 모든 것이 헤이즐넛 색이다. 제대로 된 여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남자보다 조금 부족한 존재라는 이 지루하고도 잘못된 믿음을 완전히 영원히 떨쳐버리지 못할 것이다.”

 

호프 자런이 자신에 대해 쓴 대목이다. 평범한 외모에, 어쩌면 성격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가지고 있으면서, 여성 과학자로서 편견과 싸워오면서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시골 마을 작은 대학의 과학 교수의 딸로 태어나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고,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어 과학자로서 역경을 헤쳐나간 이야기. 이렇게 요약할 수 있는 책이지만, 단지 그렇게 요약해버리면 너무나도 허전한 이야기가 바로 호프 자런의 『랩 걸』이다. 삶의 역경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야 이런 책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이 책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녀의 특별함이 아니라 그녀가 경험한 것들의 보편성이다. 과학자로서, 여성으로서의 삶. 다시 여성 과학자로서, 각광받는 분야가 아닌 분야의 연구자로서 인정받고, 무언가를 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 이런 것들은 지극히도 보편적인 것이며, 호프 자런의 삶과 글을 통해서 다시 깨닫게 된다.

 

호프 자런은 자신의 자서전과도 같은 이 책을 여러 구조로 나누고 있으면서 그것들을 옷감을 짜듯 엮어내고 있다. 하나는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로 구성된 순서다. 이 순서는 일단 그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삶의 과정을 비유한다. 뿌리를 내리고, 양분을 합성하기 위한 이파리를 내는 시기, 굳건한 줄기를 세우면서 상처에 옹이를 만들면서 견디고 이겨내는 시기,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 내는 시기. 이렇게 구성하면서 그 부분에서 바로 뿌리와 이파리에 대해, 나무와 옹이에 대해, 꽃과 열매에 대해 쓰고 있다. 식물학자로서 연구하고 알아낸 사실들이다. 그 내용들은 자신의 삶과 교차되면서 소개된다. 그러니까 이중의 교차인 셈인데, 그것들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는 한 가지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녀가 이 책을 통해서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녀의 평생 동지 빌과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처음 읽다 보면 둘의 관계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분명 남녀의 관계인데, 끝에 가면 둘이 이어지지는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지만, 자런은 다른 이와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그렇다고 빌과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도 든다. 서로 서로가 없으면 못견디는 상황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들의 관계가 바로 그런 것이니. (한 가지 끝까지 풀지 못한 의문은 왜 호프 자런은 교수가 되었고, 빌은 교수가 되지 못했냐는 것이다.).

 

호프 자런은 이렇게 쓰고 있다. “과학은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397) 상당히 오랫동안 이 구절에 멈춰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일. 뭔가 특별한 것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특별하지 않은 직업으로서의 과학. 매일매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뭔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일, 과학. 그 일을 하는 내가 자랑스러운가? 그런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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