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돌로지는 기획자들이 만든 조어로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아이돌로지-아이돌 음악 전문 웹진 '아이돌로지'에서 따온 것으로 아이돌학 또는 아이돌 연구를 말한다-라는 뜻이다. 페미돌로지 프로젝트가 한국여성문학학회 및 연세대학교 매체와예술연구소 주관의 컬로퀴움 형태로 시작되었고 이 책은 2019년 11월 첫 컬로퀴움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나 출간되었다. 아이돌 문화의 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춘 컬로퀴움은 여성팬덤과 남성 아이돌로 대표 재현되는 아이돌 문화가 여성혐오를 재생산하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성찰이 공론화되어 시작되었다. 이 책은 13명의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아이돌 팬덤문화의 역능과 모순, 착종을 분석하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각 부는 3장씩 이루어져 있다. 1부 '불타오르는 한류'는 1장 [미디어와 팬덤의 담론 전쟁], 2장 [초국적 한류와 걸그룹 노동], 3장 [탄광과 클럽]로 구성되어 있다. 3장 [탄광과 클럽]은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버닝썬 게이트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키워낸 남성 스타와 얼굴이 여성 대중에의 폭력을 통한 치부를 보증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버닝썬의 정치경제를 분석한 글이다. 1장의 글쓴이 이지행 교수님은 BTS 팬덤에게는 같은 아미로도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로 이 글의 논지는 유튜브의 여러 강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부 '트랜스하는 케이팝, 퀴어링하는 젠더'의 4장 [무해한 오빠에서 의리 있는 남자로]는 2PM에서 탈퇴당한 박재범이 어떻게 다시 성공을 이루었는지를 다룬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가족, 의리, 책임감 등을 강조한 그는 한국의 남성성 문화 규범을 충실히 따르면서 다시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이 글에서는 너무나 친숙한 장르 흑인 '힙합'문화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대중음악을 즐기는 독자들의 교양 수준을 높인다. 힙합이 백인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에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자기 서사, 자수성가한 힙합 이미지, 스웨그 정신, 디스로 가득 찬 배틀로 구성된 힙합이 현실 세계의 절대 강자인 백인 남성성을 굴절한 결과라는 해석은 흥미롭다. 미국 내 힙합 아티스트들은 가난한 할렘에서 태어나 거리의 총질에서 살아남아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랩하며 자수성가하는 이미지로 대표된다. 흑인 남성은 백인에게 침탈당한 남성적 권력을 가부장제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왜곡된 의식을 갖는데 소수자 남성일수록 남자다움이라는 규범적 질서에 더 민감하다는 해석은 한국의 박재범에도 적용된다. 가족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 한국에 와서 연습생이 된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소속사 아티스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의리,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을 보여주며 대중의 인정과 성공을 획득하며 바람직한 가부장으로 재탄생했다. 5장 [청춘의 퀴어링, 글로벌 대중문화의 꿈]에서는 북미 팬과 평론가의 관점에서 아이돌 문화를 분석한다. 이 글의 저자는 BTS의 음악을 시각적 콘텐츠로 구분한다. 보고 듣는 음악으로써 방탄의 음악에 나타난 복잡한 상호 텍스트적 실천의 궤적을 살핀다. BTS 팬이라면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변모했는지 익숙하다. 교실에서 사회규범에 반항하는 청소년들은 상남자가 되고싶다고 고백을 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규범적 가부장제 마초적 이미지에서 점점 탈피한다. 이 글은 BTS와 케이팝이 유예된 청춘이라는 에로틱하고 노스탤지어적인 미학을 통해 다양한 대중이 갖는 기대감을 관리하면서 트랜스퍼시픽 월딩이라는 특별한 사례를 제공한다고 분석한다. 이 장을 읽어가며 아미이자 독자로서 방탄의 음악을 보고 들으면서 느꼈던 미묘하고 애매모호했던 감상들이 학술 연구자의 문장을 통해 정확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방탄 콘텐츠는 '우정을 성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키는 동성사회적 유토피아로 돌아서며, 성장 내러티브에서 예감되는 상실의 비애비를 구현한다. 나는 BTS의 청춘 개념이 갖는 퀴어함을 세계적 차원의 젠더, 계급, 그리고 문화규범이 갖는 소외 효과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로 정의하고자 한다."라는 저자의 해석은 방탄 음악을 좀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6장 [동아시아 베어 남성 댄스 팀의 걸그룹 커버댄스]는 근육질이 아닌 동글동글한 체형의 베어 댄서들이 걸그룹 춤을 추며 자신의 젠더/섹슈얼리티 정체성을 표출하는 의미를 살핀다. 한국 사회는 타 문화권에 비해 젠더 다양성을 대외적으로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책을 읽으며 다소 생소했던 것은 6장 베어 댄서와 10장 소녀시대 GL 팬픽의 존재였다. 이 장에서는 베어 댄서들이 흉해내는 걸그룹의 '애교', '귀여움'을 분석하고 남성으로서 흉내낸 애교는 여성이 요구받는 애교와 다름을 구분한다. 걸그룹에게 강요된 인위적 애교와 귀여움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질문한다. 저자는 베어 커버댄스를 걸그룹이 상징하는 신자유주의적 성공과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진보적 역사에 제동을 걸며 대안적인 정치를 상상하게 한다고 말한다. 베어 커버댄스 팀은 실패를 감안하고 심지어 실패를 수행하기 위해 춤을 추지만 그 과정에서 돌봄에 기반한 친밀성을 관찰할 수 있다.
3부 '친밀성을 살게요'의 7장 ["항상 함께할 거예요"의 이면]은 아이돌과 팬과의 관계에 거래되는 상품 '친밀성'에 대하여 다룬다. 8장 [저항하는 팬덤과 소비자-팬덤의 모순적 공존]에서는 팬이 소비자 정체성을 더 강하게 내면화할 때 일어나는 산업과의 공모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초동 음반숫자, 음원 순위, 스밍 등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왜 아이돌은 연애를 할 수가 없는지 흥미롭게 고찰한다. 이 장은 산업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성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유예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체계를 비판할 수 있기를 제안한다. 9장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소비하는 팬덤, 소진되는 팬심]에서는 왜 팬덤이 아이돌 스타에게 자필 사과문을 요구하는지 탐구한다. 원래 자필 사과문은 형사 범죄로 기소된 피의자가 법정에서 선처를 구할때 쓰던 방법인데 이것이 어떻게 아이돌에게 진지한 반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본다.
4부 '여덕, 팬덤 그리고 코로나 19'는 10장 [다시 만나는 여덕, 소녀시대 GL 팬픽], 11장 [미스/터트롯과 여성/중년 팬덤의 탄생], 12장 [코로나 19 이후의 팬덤]으로 이루어져있다. 팬덤문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10장에서 여덕의 퀴어 팬픽이 있는지는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소녀시대와 같은 대표적 여성 아이돌의 팬픽을 통해 레즈비어니즘에 대한 호기심과 판타지를 분석한 이 글은 성적 차이와 다양성, 억압과 쾌락추구 등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는 기회를 준다. 11장은 중년 여성이 가사노동의 공간이자 여가의 공간으로 상징되는 '집'에서 미스/터트롯을 즐기며 새로운 연령대의 팬덤의 부상을 분석한다. 모성적 역할의 충실한 수행을 강요받는 '어머님'들은 팬덤 문화라는 하위 문화에서조차 조롱받던 존재였다. 그 중년여성들의 팬덤문화를 살펴보며 억압적 가부장제, 에이지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 12장은 코로나19로 대면 콘서트가 사라지고 온라인으로 전환된 팬덤의 산업을 분석한다. 디지털플랫폼이 새로운 수익창출 모델이자 아이돌-팬의 접촉공간이 되었다. 플랫폼 안에서는 팬이라는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디지털플랫폼은 아이돌 엔터회사의 생존이 달린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내 아이돌과의 친밀함을 원하는 팬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을 신속하게 개발해 내는 엔터회사의 창의성은 놀랍다. 위버스, 버블 등 디지털플랫폼에서 팬들은 지갑을 활짝 열어야 하고 돈을 쓰지 않는 팬은 팬이 아니다. 이 책 전반에서 신자유주의 소비문화를 언급하는데 디지털플랫폼은 이러한 추세를 더 강화시킬 것이다.
케이팝과 관련하여 파생된 유튜브 컨텐츠 중에 리액션 비디오가 있다. 이 리액션 동영상을 찍는 유튜버의 인종, 연령, 직업군 등은 점점 확장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리액션 비디오는 내가 즐기는 것을 남도 좋아하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내 취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타인의 인정을 통해 획득한다. 특히 전문가 리액션은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측면이 강화된 것이 아닐까 한다. 발레 무용수에게 내 아이돌의 춤실력을 성악가에게 내 아이돌의 보컬 실력을 검증 받는다. 방탄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케이팝에 대한 인식은 눈부시게 변했으나 여전히 순수예술에 비해 대중문화는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중에도 아이돌 팬덤은 더 어렵다. 팬덤 중 다수는 여전히 일상생활에서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팬덤에서만 자유롭게 활동한다. 1장 이지행 교수님의 글에 팬덤이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지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문화연구에서 의미 있는 연구로 등장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원인 중 하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크스주의적 대중문화 비판이론이라 한다. 대중은 자본주의적 문화상품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집단으로 깎아내렸고 이는 오늘날 엘리트 비판가들의 시각에도 영향을 끼쳤다. 케이팝 팬덤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여성팬덤은 능동적 문화주체가 아닌 맹목적 빠순이로 폄하되어왔다.
국가와 젠더의 경계를 넘는 아이돌 문화를 분석한 이 책은 현재 우리 삶의 여러 면들을 다양하게 살펴볼 기회를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팬덤문화를 즐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낯을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대중문화란 결국 우리의 욕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 등장한 담론들이 좀 더 다양한 매체에서 더욱 활발하게 토론되길 바란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이 책의 저자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